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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안에 사는 삶

은바리라이프 2007. 12. 30. 19:16

진리 안에 사는 삶

엡 4:21-32


    Scripture Reading

     

    Sermon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참되시고 주님은 의로우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참되어야 하고 의를 따라야 합니다. 거짓과 불의는 주님을 향한 성도의 삶을 망가지게 합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을 식게 합니다. 사랑을 식게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 편에 서야 합니다.

       본문 21절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진리를 들었고 그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22절 이하에서는 그 진리와 상반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욕심을 따라 사는 삶이 그것입니다. 욕심을 따라 살 때 진리에서 멀어집니다. 바울 사도는 그런 삶을 구습을 좇는 것 다시말하면 주님과 관계없었을 때의 삶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런 삶을 거듭나지 못한 삶이라고도 말합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던 때, 그 때의 모습을 가리켜 옛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옛 사람에서 벗어나 새롭게 되라고 말씀합니다.  23절 말씀이 그것을 명령합니다.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새로워지시기 바랍니다.

       새롭게 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옛 것을 버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실 새 집으로 이사를 하다보면 버려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버리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대부분은 많이 못버리고 다시 싸들고 갑니다. "혹시 나중에 필요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지요. 그렇지만 가만히 보면 10년을 싸고 다녔어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많습니다. 집착하는 것은 때로 좋은 일이 아닙니다. 새롭게 되는 일을 주저하면 결국은 그 모양 그 꼴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삶도 새롭게 되는 것에 주저하거나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왜냐 하면 옛 것 그대로, 구습을 따라 사는 것은 퇴보하는 삶이지만 새롭게 되는 것은 앞서가는 삶입니다. 진보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새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옛것에 집착하고 뒤를 돌아보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못합니다. 물론 '온고이지신'이란 말처럼 옛 것에서 교훈을 얻고 그것이 오늘의 기초가 됩니다마는 옛 것에 집착하다보면 미래가 없습니다.

       본문은 옛 사람은 욕심을 따라 버리지 못하고 구습에 매달려 사는 사람이지만, 새롭게 된 삶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욕심에 머물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의와 진리와 거룩입니다. 그것을 좇는 삶이 하나님의 생각을 이어가는 삶입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 자기 욕심, 자기 습관을 경계하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옛 모양 그대로는 결코 하나님을 바르게 따를 수 없으며 참된 경건에 이르지 못합니다.

       본문에서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는데 그 말은 자기 안에서 요동치며 유혹하는 욕심을 버리는 것과 구습, 즉 옛날에 안주하려 하는 자세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25절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사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거짓에 솔깃합니다. 진실보다는 거짓이 더 매혹적이고 그럴듯합니다.

       텔레비전 프로에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프로가 있지요? 세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극으로 구성해서 보여주고 패널들이 그 중 진실로 생각하는 한가지씩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선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거짓은 진실보다 더 잘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소박한 진실보다는 거짓에 더 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짓을 잘 분별하는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거짓은 잠깐 후면 드러납니다. 진실을 듣기를 힘쓰고 진실을 말하기를 힘쓰고 진실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한 몸의 지체로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라는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서로 지체이기 때문에 거짓을 멀리하고 진실에 속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거짓된 말과 이간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그 사람은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부정적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소극적이 되고 그러다보면 자기 신앙마저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26절 이하에서 에베소 교회가 진리 편에 서서 살수 있도록 다양한 윤리적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분을 품는 것이 바로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도둑질을 경계하고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즉 힘써 일해서 그것으로 선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것이 있습니까? 29절 말씀을 보면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더러운 말이란 문자 그대로는 욕설과 음탕한 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의미는 남을 해하려고 거짓증거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차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29절 하반부에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말로 욕하는 것이야 자기만을 파괴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행하는 말은 그 공동체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에 있어서 덕스러워야 하고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더러운 말은 이간질과 속임수와 자기 욕심에 끌려 내뱉는 말입니다. 그러나 참된 말, 선한 말, 덕스러운 말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염두에 둡니다. 한 몸, 한 지체됨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러운 말은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오직 참된 말을 듣고 선한 말과 덕스러운 말을 듣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교회는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교회를 깨뜨리기 위해 온갖 계략으로 사람들을 충동질합니다. 거기에 넘어가면 사탄이 가장 좋아합니다. 교회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남을 해하려 거짓 증거하는 말, 더러운 말을 멀리하고 교회 안에서 덕을 세우기 위해 선한 말, 참되고 진실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그것에 힘쓸 때 우리 교회는 은혜로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은혜로운 교회로 유지되는 것을 가장 싫어할 존재가 바로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은혜로운 상태를 깨려 하는 것은 자기 욕심에 기인한 것이고 사탄에게 조종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이냐 거짓이냐를 분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은혜로운 상태를 깨느냐 아니면 그 은혜의 지속을 위해 힘쓰느냐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로 소문나도록, 사탄의 속이는 말을 경계하고 오직 진리 편에 서서 참되고 선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런 말만하시기 바랍니다.    

       더러운 말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다 보면 교회의 평화를 깨게 되고 은혜로운 교회가 되는 것을 훼방합니다. 교회가 흔들릴 때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가 흔들리지 않도록, 성령께서 근심하지 않으시도록, 구원의 날까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치심을 받은 아름다운 모습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31절 이하의 말씀이 그 답입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을 삶과 신앙의 지표로 삼아 은혜로운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성령께서 말씀과 양심을 통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말과 일을 위해 힘씁시다.

       2007. 1. 24(수)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둥교회 목사 박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