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세대의 이념과 단절
핵심 아이콘은 랩음악
‘8090 세대’란 1980, 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세대를 말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사이에 10, 20대 ‘새파란’ 청춘을 보낸 세대를 뜻하죠.
이들 세대는 얼마 전까지 한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7080 세대’와는 확연한 차이점을 보입니다.
1970, 80년대 학번인 이른바 ‘386 세대’가 주축이 되었던 7080 세대는 생맥주에 통기타, 그리고 대학가요제로 특징지어지는 세대입니다. 7080 세대는 대중가요화된 운동권 노래에 익숙한 이념 지향적인 세대죠.
하지만 8090 세대는 철저히 개인주의적입니다. 대학 입학 당시 이념서클에 가입하라는 선배들의 강한 권유를 뿌리친 채 영화나 여행 서클을 만들고, 데모나 집단 토론보다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통해 용돈을 벌거나 이성과의 짜릿한 연애에 더 관심이 많았던 바로 그 세대죠. 이념적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로우며, 삶의 질을 중시하고, 개인의 취향을 똑 부러지게 주장합니다.
이들 8090 세대의 문화 아이콘은 서태지와 랩 음악입니다. 선배들의 심각하고 묵직한 정서를 비웃으면서 속사포 같은 랩 가사를 배설해 내기 시작한 8090 세대. 이들은 7080 세대로부터 “사회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싸가지 없는’ 세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요. 8090 세대의 끝자락에 선 그룹 ‘H.O.T.’가 나와 ‘아이돌 그룹’ 문화를 본격적으로 확산시켰습니다.
요즘 대중문화계에 ‘8090 문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맘마미아’와 같은 뮤지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7080 문화’가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떠오른 지가 어제 같건만, 벌써 8090 문화가 새로운 문화 중심으로 부상하는 것입니다.
공연계에선 뮤지컬 ‘젊음의 행진’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6월 29일 막을 올린 이 작품은 1980년대 젊음의 아이콘이었던 KBS 인기 버라이어티쇼 ‘젊음의 행진’을 뮤지컬로 옮긴 ‘추억 상품’이죠. 쇼 ‘젊음의 행진’ 초대 MC를 지낸 공연기획자 송승환씨가 프로듀서로 나섰고, 이 쇼의 댄스 팀인 ‘짝꿍’의 멤버 출신 강옥순씨가 안무를 맡았습니다. 가수 심신의 ‘권총춤’과 박남정의 ‘ㄴ자춤’을 패러디한 안무와 노래가 8090 세대의 향수를 흠씬 자극하죠.
방송에는 8090 문화가 침투한 지 오래입니다.
SBS 라디오 ‘윤지영의 러브FM 8090’은 제목부터 ‘8090’을 노골적으로 앞세웁니다. 이 프로그램에선 ‘서태지와 아이들’은 물론 김건모·신승훈 등 100만장 이상의 음반을 팔았던 밀리언셀러 가수들의 음악을 주로 들려 줍니다.
케이블TV 채널 tvN의 ‘박수홍의 섬싱 뉴’에서는 ‘섬싱 뉴 8090’ 코너를 통해 1980, 90년대 유행했던 만화 주제가와 외화 시리즈 등을 회고합니다. 또 SBS TV ‘도전 1000곡’에선 최근 ‘8090 동창회 스페셜’ 코너를 꾸미고 가수 김승진, 이상원(소방차), 강수지, 김혜림, 이정석, 이범학, 박성신 등이 나와 당시의 추억을 함께 이야기했죠.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 버려야 한다는….”(‘난 알아요’ 가사 중)
이토록 가슴 저린 가사를 경쾌한 랩 음악에 실어 내 이별의 아픔마저 ‘신바람 나게’ 즐겼던 ‘서태지와 아이들’. 이들의 자유분방한 음악을 듣고 자란 8090 세대가 장차 우리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게 될지 자못 궁금합니다.
이승재<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