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이노 디자인 대표 인터뷰
보기 좋고 쓰기도 좋아야 그렇다고 비쌀 필요없어
쉽게 즐기도록 만들어라
김덕한 산업부 기자 ducky@chosun.com
입력 : 2007.10.05 14:02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한국 산업디자인 선두 주자인 이노(INNO)디자인 김영세(金暎世·57) 사장은 최근 또 다른 실험을 시작했다. 이노디자인이 독자적으로 디자인한 제품을, 개발·제작·유통시키는 자회사 ‘이노맨’을 설립한 것이다. MP3, 마우스, 가정용 전화기 등 6개 디지털 제품을 이노 브랜드로 내놨다.
김 사장은 “메이커의 제품을 디자인해주는 게 아니라 디자인 회사의 브랜드로 생산 유통시키는 ‘뒤집어보는’ 시도”라면서 “과거의 고객사(client)에게 이제는 하청 생산을 시키는 패러다임의 혁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에 가장 가까운 게 디자이너이고, 디자이너가 소비자의 요구(needs)를 발견해 아이디어를 만들면 기술은 따라오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1999년 주장한 ‘디자인 우선(design first)’의 세상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디자인회사가 직접 브랜드를 띄우는(launching) 것은 대단한 모험입니다. 디자인 품질뿐 아니라 제품품질까지 책임져야 할 것이고, 이노에서 디자인을 사갔던 기존 고객사들의 반응도 좋지 않을 텐데요.
“우리는 삼성 휴대폰, LG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디자인해왔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겹치는 제품군(群)에는 이노브랜드 제품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창의 경영은 그런 한계를 뛰어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20여 년 전 미국에서 이노디자인을 설립할 때 궁극적인 목표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운영상 복잡한 문제 때문에 실제 그 꿈을 이루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죠. 디자이너가 소비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만들면 기술과 생산이 따라주는 프로세스(process)의 역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노디자인이 한국 산업디자인계의 스타로 떠오르게 된 것은 이노디자인이 디자인한 아이리버 MP3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부터였습니다. 그런데 이후 아이리버는 애플의 아이팟 등에 밀리며 고전했습니다. 원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시장과 기술의 환경이 바뀌는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리버의 전성기 이후 아이리버 제품은 이노가 디자인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디자이너가 바뀐 후,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실패하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만져보고, 바라보면서 느낌으로, 정말 동물적으로 알아챕니다. 이게 새로운 디자인인지, 적당한 모방인지…. 디자인은 마케팅의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고, 비즈니스의 승패를 온전히 좌우합니다.”
―그럼 어떤 디자인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습니까.
“이런 말을 가끔 합니다. 아들 녀석이 열여섯 살 어버이날에 지 엄마에게 스스로 만든 쿠폰북을 선물했어요. 세탁하기, 세차하기, 안마해주기 같은 쿠폰을 그렸는데 거기에는 다 유효기간이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사랑’이라는 쿠폰 유효기간은 영원하다고 돼 있었어요. 그걸 보고 제 처가 눈물을 흘렸죠. 디자인은 그런 겁니다. 좋은 디자인은 소비자를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죠. 그때부터 제 디자인 전략은 아주 간단해졌죠. 소비자를 사랑하자. 소비자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소비자를 울리는 제품이 히트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곧 사랑입니까.
“제가 쓴 책(이노베이터)에서 저는 디자인을 39가지로 정의했습니다. 디자인이란 변화의 추구다, 사랑이다, 즉 남을 위하는 일이다, 감성이되 논리적(emotional logic)이다, 장식미술·기술·상술(商術)의 논리가 아니라 ‘인술(人術)’의 논리다, 즉 결국은 사람을 연구하는 것이다….”
―결국 어떤 디자인이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보십니까.
“잘 팔리는 디자인이죠. 떼돈을 벌겠다는 디자인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디자인, 히트상품입니다. 많이 팔리려면 보기 좋아 눈에 팍 들어야 하고, 쓰기 좋아 점점 더 빠져 들게 돼야 하고, 또 만들기 쉬워야 합니다. 즉 꼭 비싼 것은 아니어도 된다는 거죠. 럭셔리(luxury) 디자인은 베스트 디자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진짜 즐길 수 있는 디자인, 그러면서도 비용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죠.”
―그럼 최악의 디자인은 어떤 것인가요.
“안 팔리는 디자인, 혹은 도움은 안 되는데 꽤 팔리는 디자인, 아무 의미 없이 돈만 드는 디자인….”
―경영에서 디자인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경영자들의 디자인관은 어떻습니까.
“디자인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죠. 디자인을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쪽과 디자인이 영업이익이라고 생각하는 두 부류가 있다면 전자는 디자인 투자에 부담감을 가지고 후자는 과감하게 투자할 겁니다. 후자가 이길 수밖에 없죠. 그러나 ‘디자인 경영’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조심스럽습니다. ‘고위 경영자는 디자인도 도사다! 모든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개념이라면 위험하다는 거죠. 우리가 ‘디자인 개발도상국’ 수준이었을 때는 세계 시장과 제품을 많이 경험하고, 지식이 많은 경영자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우리는 그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럼 경영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디자인을 중시하되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디자인 경영’보다는 ‘디자인 사용’이 더 맞는 말입니다. 디자인의 소스(source)는 무한대입니다. 밖에서 사와도 되죠. 굳이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 안에서 디자인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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