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에 아트를 입혔다, 아트 마케팅
삼성 63인치 PDP 루브르 박물관에서 신제품 발표회
BMW가 만든 아트카 유명미술관에 전시
화장품·과자 등 대중소비재로까지 아트마케팅 확산
전은경 월간디자인 기자
입력 : 2007.10.05 13:52
- ①영국의 아티스트 잉카 쇼니바레가라벨(label) 디자인을 맡은 벡스 맥주 ②BMW 850 CSi 1995년 모델을 ‘아트카’로 꾸미는 데이비드 호크니 ③무라카미 다카시가 디자인한 루이비통 핸드백 ④장 폴 고티에가 디자 인한 의상으로 만든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 ⑤백남준씨가 디자인한 스와치의 백남준 스페셜
삼성전자는 지난 2002년 당시 세계 최대 크기였던 63인치 PDP TV 신제품 발표회를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최했다. 유서 깊은 박물관에 설치한 PDP TV로 세계 유수의 명화를 고화질로 선명하게 재현함으로써, 삼성전자는 제품의 우수한 해상도와 고급스런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홍보할 수 있었고, 예술을 존중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구축했다.
LG전자는 지난해 ‘꽃의 화가’로 불리는 하상림의 작품을 냉장고 전면에 적용한 ‘아트 디오스(Art DIOS)’를 선보였다. 냉장고가 단순히 주방가전제품이 아니라 주방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고급 제품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예술과 비즈니스를 결합한 ‘아트마케팅(art marketing)’이 디자인 경영의 새로운 트렌드로 뜨고 있다. 아트마케팅이란 앤디 워홀, 백남준 등 유명한 예술가나 그들의 작품을 활용해 기업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일종의 감성마케팅 전략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미술관을 가지 않고도 일상 생활에서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향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트마케팅은 BMW·루이비통·스와치 등 세계적인 명품(名品) 브랜드의 전유물처럼 인식됐으나, 최근 맥주나 과자, 생활용품 등 대중적 소비제품까지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또 아트마케팅의 대상도 제품뿐 아니라 매장 인테리어나 광고, 이벤트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아트마케팅을 ‘일회성 지출’이 아닌 ‘브랜드 차별화를 위한 투자’로 인식하면서, 아트마케팅은 글로벌 고급 브랜드를 지향하는 기업들에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현대 사회에서 문화 없는 경제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면서 “오늘날 문화가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라는 사실을 정부와 기업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 예술품 대우받는 제품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유명 아티스트와 기업의 결합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너지효과를 낳는 동시에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이슈로 주목받는다. 특히 명품과 최고의 아티스트가 만나면 효과는 더욱 배가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고가의 자동차 업체다. BMW는 1975년부터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아트카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프랭크 스텔라,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A.R. 펜크, 데이비드 호크니, 제니 홀처 등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이 BMW 자동차를 캔버스 삼아 작업했다. 지금까지 16대의 아트카 컬렉션이 발표됐는데, 가장 최근작은 지난 9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공개된 덴마크의 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의 작품 ‘유어 템포(Your Tempo)’다.
BMW의 예술과 디자인, 기술의 발전을 상징하는 아트카는 예술품으로 간주돼 매년 루브르박물관, 런던 로열아카데미, 베니스 팔라조 그라시,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 등 유명 미술관에 전시된다.
■ 전 세계 수집가를 열광시키는 한정판
평범한 ‘상품’도 아티스트의 손길이 닿는 순간 특별한 ‘작품’이 된다. 소량 생산되는 한정판(limited edition)이 대표적 사례다. 수억원을 호가하는 오리지널 작품에 비해 중산층도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인 한정판은 소비자들에게 대리만족의 즐거움을 준다. 예술적 아우라(고고한 분위기)가 넘치는 한정판 앞에서 사람들은 지갑을 열지 못해 안달이 난다.
코카콜라 벨기에는 2002년부터 코카콜라 캔이나 병에 아티스트, 사진작가,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덧입혀왔다. 지난해에는 ‘아트 오브 다이닝(the art of dining)’이라는 주제로, 서양 미술의 가장 유명한 식사 장면인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과 피터 브뤼겔의 ‘농부의 결혼식’을 패러디한 작품을 콜라병에 재현했다. 각각 2만5000개씩 생산된 이 한정판을 구입하기 위해 전 세계 수집가들은 비행기를 타고 벨기에로 몰려들었다.
희소성과 특별함을 갖춘 한정판은 세월이 지나면 경매를 통해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스와치의 ‘아티스트 스페셜’은 소더비 경매에서 거래되는데, 매년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는다. 스와치의 아티스트 스페셜에는 그동안 백남준, 키스 해링을 비롯, 영화감독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로버트 앨트먼, 구로사와 아키라,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이 참여했다. 백남준의 스와치는 소더비경매에서 5000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 광고도 예술이다
소비자들이 스쳐 지나가기 쉬운 광고도 유명 예술가가 참여하면 주목할만한 예술이 된다. 이런 ‘아트’ 광고들은 제품의 장점을 강조하기보다는 아티스트와 브랜드 이미지를 중첩(오버랩)시키는 데 주력한다. 앱솔루트 보드카는 예술이 된 광고의 대명사다. 고급 보드카 시장을 석권한 앱솔루트는 1985년 브랜드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앤디 워홀과 손을 잡는다. 앤디 워홀이 독창적으로 해석한 앱솔루트 이미지를 그린 그림을 광고로 내보낸 것이다. 앤디 워홀에서 시작한 앱솔루트의 아트 광고에는 그동안 스텔라 매카트니, 톰 포트, 장 폴 고티에, 마놀로 블라닉, 존 갈리아노 등 유명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다.
미국의 대형 할인매장 타깃(Target)은 2005년 8월22일자 ‘뉴요커’의 모든 광고지면을 독점 구매해 자사의 광고를 싣는 깜짝 이벤트를 실시했다. 타깃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들에게 전면광고 한 면씩을 할애하면서, 단 3가지 조건만을 제시했다. 첫째 뉴욕을 주제로 할 것, 둘째 타깃의 로고를 사용할 것, 셋째 검은색·흰색·빨간색만 사용할 것 등이었다. 타깃은 중저가의 할인점임에도 불구하고, 트렌드·디자인·제품 담당 부사장을 둘 만큼 디자인에 주력하고 있다. 또 매주 금요일 오후 뉴욕 현대미술관의 무료 입장을 후원하는 등 예술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광고를 저렴하게 해결하기 위해 싸구려 전단지를 쓰는 경쟁 할인점들과 대조적 전략을 쓴 것이다. 그 결과 “타깃은 싸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쇼핑장소”라는 인식을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원래 의도대로 백화점 같은 할인점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 대중 소비재로 확산되는 아트마케팅
명품, 패션, 고급 자동차 브랜드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아트마케팅은 다수의 소비자들을 상대하는 소비재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영국계 생활용품업체인 유니레버는 매년 ‘테이트 모던 갤러리’와 손잡고 ‘유니레버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벡스 맥주는 데미안 허스트로 대표되는 영국의 젊은 작가 군단 ‘yBa(Young British Artists)’라든가, 트레이시 에민, 더글러스 고든, 오노 요코 등 세계적 아티스트들에게 맥주 라벨 디자인을 의뢰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화장품, 비누, 신용카드, 과자 등에 오리지널 명화를 프린트한 ‘명화 마케팅’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아티스트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아트마케팅은 기업·브랜드 이미지를 동반 상승시켜주는 효과를 갖는다. 또 아티젠(art와 generation을 합친 ‘아티 제너레이션·Arty Generation’의 줄임말)으로 불릴 만큼, 예술적 디자인이 살아 있는 상품을 선호하는 소비자군의 기대 심리도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기업·브랜드의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유명 아티스트만을 선호하다 보면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 같은 어색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궁극적인 차별화를 위해서는 아티스트의 이름값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조화시켜야 한다. 또 아트마케팅에 성공한 기업들이 일회성 이벤트식 접근보다는 꾸준한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새로운 미래가 온다’의 저자 대니얼 핑크(Daniel Pink)는 ‘지는 MBA, 뜨는 MFA’라는 글에서 “최근 기업 경영에서 예술 관련 학위가 가장 인기있으며, MFA(Master of Fine Arts)가 MBA를 대체하고 있다”고 밝혔다. 품질과 기술력의 차이가 좁혀진 글로벌 무한경쟁의 시대에는 감성적인 접근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아트 비즈니스’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21세기에는 아트와 비즈니스를 영리하게 디자인하는 기업이 성공한다.
앤디워홀: 코카 콜라, 캠벨 수프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아트 마케팅의 물꼬를 튼 공로자로 꼽힌다. 자신의 스튜디오를 ‘공장’이라 말하며 조수들을 시켜 작품을 ‘대량’ 생산했던 팝 아트의 신화적 존재 앤디 워홀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린 아티스트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 그의 에디션(edition)이 생산되고 있다.
키스 해링: 살아서는 불우했으나 죽어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 앤디 워홀의 친구였던 키스 해링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인기가 높다. 접근하기 쉽고 친근한 그의 작품은 열쇠고리부터 광고까지 전방위적 분야에서 만날 수 있으며, 그의 스타일을 오마주한 그래픽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백남준: 예술은 생쇼이며 사기라고 했건만, 백남준만큼 인기 있는 아티스트도 드물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이자 플럭서스(Fluxus)의 대표 선수였던 그의 작품은 기업, 은행, 신문사 로비에서 실제로 확인할 수 있으며 달력, 커피잔, 시계 등 다양한 형태의 상품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올라푸르 엘리아손: 라푸르 엘리아손이란 이름이 약간 생소할 수 있지만,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 중 하나다. 2003년 ‘유니레버 시리즈’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런던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서 날씨 프로젝트를 선보인 이래 루이비통, BMW 등 지금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줄지어 섰다.
(조선일보 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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