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예쁘고 오래 보관해요
“를리외르는 가치있는 책의 겉표지를 아름답게 꾸며서 오랫동안 보관하도록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죠.”
를리외르(relieur)는 프랑스어로 ‘제본’을 뜻한다. 이 말은 lire(읽다)→relire(다시 읽다)에서 왔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예술제본가’. 국내에서 를리외르의 1호는 백순덕 씨(43ㆍ사진)다.
운명처럼 들어선 예술 제본의 길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 때 운명처럼 예술제본의 길에 들어서게 됐죠.”
그는 28살에 무작정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출판 학교를 알아보다 파리의 명문학교인 ‘에스띠엔느’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나이 제한(26세)이 있어 입학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이 학교에서 ‘파리 예술제본 학교(UCAD)’를 소개해 이 학교에 입학하면서 예술 제본가의 삶이 시작됐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어요. 멀쩡하고, 비싼 책을 사서 그것을 뜯어내 한 달 동안 표지를 꾸미는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점차 예술제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3년을 공부한 뒤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정부가 발행하는 ‘예술제본 교원 기술 자격증(CAP)’을 땄다. 그 뒤 파리 가까이 있는 아틀리에 베지네(Vesinet)에서 현대적 제본 장정 방법을 배우는 등 4년을 더 공부한 뒤 귀국했다(1998년).
‘책의 앞 장과 뒷 장’
1999년 1월 서울 홍익대 앞. ‘렉또 베르쏘’(Recto Verso: 책의 앞장과 뒷장이라는 뜻의 라틴어)라는 낯선 간판에 낯선 일을 하는 공방이 등장했다. 국내 첫 유럽식 예술제본 공방으로 백순덕 씨가 만든 것. 처음에는 예술제본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1천여 명의 제자들을 키웠다. 영화배우 김아중 씨도 그의 제자(?)다. 물론 영화 속에서.
“몇 년 전 ‘광식이 동생 광태’라는 영화에서 김아중 씨의 직업이 예술제본가였어요. 이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김아중 씨가 공방에서 예술제본을 배우며 너무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예술 제본 학교’의 꿈을 위하여
중세 유럽에서는 왕과 귀족들이 제본 전문가를 두었을 만큼 예술제본이 인기였지만 지금은 예술의 한 분야로 남아있다. 이제 출발한 우리나라에서는 ‘돈’과 거리가 멀다.
주 고객도 개인보다는 ‘선물용’. 문학서적을 주로 내놓는 한 출판사가 이청준, 김주영 씨등 훌륭한 작가들의 회갑선물로 그들의 작품을 ‘예술제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내년 봄에 지금까지 만든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이제 예술제본도 어느 정도 알려졌고, 가르치는 일 뿐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활동도 해야죠.”
예술제본으로 출판과 더불어 책 문화가 발전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뜻도 담겨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유럽식 제본학교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싶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제본 학교가 생기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예술제본을 하려면
○…책을 좋아해야 한다. 예술제본은 책 한권에 들어있는 출판인, 편집, 작가 등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 나의 노력을 더해 표지를 디자인 하고 꾸미는 것이기 때문에. |
신지인 기자 jour_sj@econoi.co.kr
어린이 기자 한마디
예술 제본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세상에는 정말 할 일이 많다.
유지상 기자(서울 동교초 4)
책 제본을 할 때의 기본 자세는 책을 읽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백순덕 선생님을 만나면서 일과 책에 대한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김세아 기자(서울 성서초 5)
예술제본이 자유롭기만 하면 되는 ‘북아트’와는 다르다는 점을 자세히 알게 됐다. 백순덕 선생님의 작품을 보게 돼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남수빈 기자(서울 옥정초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