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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마2:1-11) / 오윤란

은바리라이프 2007. 8. 10. 16:20
(성탄)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마2:1-11) / 오윤란

2005-09-27 13:49:16, Hit : 1055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마2:1-11)




이 시간 우리 함께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나실 때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와 요셉은 물론이고, 양 치던 목자들, 동방박사들, 시므온과 안나 등이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만남의 사건은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직접 보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경험하는 귀한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귀한 비밀이 있어요. 이 비밀을 알아야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럼 그들이 예수님을 만났던 방법이 무엇일까요?




1. 말씀의 약속 붙잡을 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눅2:25-27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했습니다.




여기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의 아름다운 신앙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의롭다고 다 아기 예수 만난 것은 아닙니다. 또 경건하다고 아기 예수 만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리는 우리가 말씀의 약속을 붙잡을 때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령이 역사하셔도 말씀 없으면 만날 수 없습니다. 말씀 영접이 하나님 영접이고 예수님 영접입니다. 아기 예수 탄생을 이제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적용하면 중생의 사건입니다. 말구유 같은 심령에도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복음의 말씀 받아들이지 않으면 절대 예수 만나지 못합니다.




2. 정직한 전문가가 되면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마2:1-2에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했습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천문학을 연구하는 점성술사들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별을 연구하다가 이상한 별을 발견하고 이것을 위대한 왕이 나는 표적으로 보고 유대까지 찾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천문학에 이 땅에 위대한 사람이 날 때면 꼭 하늘의 징조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자기 분야에 전문가가 되되 정직한 전문가가 된다면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 가장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 철학자입니다. 철학의 시작은 수 천 년 전부터지만 아직도 진리를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는 만사가 원인이 없는 것이 없다는 인과논증으로 하나님 계심을 증명했습니다. 이 신비로운 우주와 지성을 가진 인간의 존재가 그냥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결과가 있게 한 참 근본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정직한 생각들입니까?




그러나 반대로 진화론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은 과학에 전문가도 못되고 정직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은 확실하지도 않은 수없는 가설을 기초로 한 것으로 과학도 아니고 정직성도 없습니다. 어떻게 거기서 하나님을 만납니까? 우리가 무엇을 전공하든 한 가지에 진정한 전문가가 되면 하나님을 아니 계시다 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과학이 발달되어 전문화되니까 성경이 진리임이 밝혀지고 영적 세계까지도 입증되고 있지 않습니까? 차갑기 유명한 법학의 세계에서도 이 세상에 상선벌악의 원리가 있고 양심이 존재함을 보고 하나님 계심을 깨닫습니다.



바다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 역시 하나님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시107:23-31에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했습니다. 몇 년 전 따뜻한 나라로 가고 싶다고 북한을 탈출한 김만철씨도 바다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배에서 내리자마자 예수 믿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박사들도 별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오다가 그 별을 놓치고 서기관들의 성경 교훈을 통해서야 비로소 예수를 만났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느냐? 전문가들이 하나님을 만나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거나 예수님이 자기 구주이심은 알지 못하므로 최종적으로는 성경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께 가까이 인도했다는 점에서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3. 고난의 연단 속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납니다.




눅2:36-38에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했습니다.




또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안나 선지자입니다. 이 선지자는 기도대장인데 기도대장이 아무렇게나 생겨진 것이 아닙니다. 안나는 어떤 가운데 아기 예수님을 만났는가? 몸과 마음의 극심한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말이 그렇지 과부 된 지 팔십사 년 동안 이 얼마나 경제적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모든 면에서 어려운 일입니까? 이젠 나이까지 많아 하나님 말고는 의지할 곳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안나는 날마다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신의 정에 빠지지 말고 안나의 본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 고난 속에서 주님을 만난다는 교훈입니다. 욥도 고난 속에서 듣기만 했던 주님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났습니다. 바울도 고난 속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고난만 당한다고 다 주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 그 고난의 교훈을 깊이 깨달을 때 주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고난이라는 아주 비싼 값을 지불하고서도 그 교훈을 받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변하는게 없어요.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 안나와 같이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만납니다.




4. 사랑과 사명에 목숨 바칠 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눅2:8에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그랬습니다.

여기 목자들이 언제 성탄 소식을 듣습니까?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킬 때입니다. 왜 양을 지킬까요? 맹수들이 양을 해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숨 거는 직업이 바로 목자의 직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셨습니다. 목자가 목숨 내걸지 않으면 그것은 예수님 말씀대로 이리가 오면 달아나기 때문에 다 삯군이요 가짜에요(요10:12). 그러므로 여기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켰다는 것은 그들이 목숨내건 참 목자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예수님 만나려면 자기 신앙과 사랑과 사명에 목숨 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일하는데 이 핑계 저 핑계 제발 그러지 말고 목표를 정하세요. “내 일생 많든 적든 선교사 한 분은 협력해야 하겠다.” “나는 오지에 크든 작든 예배당 하나는 지어 바쳐야겠다.” 혹은 “나는 교회가 더욱 새롭고 귀하게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이런 일에 목숨 바치시기 바랍니다. 사명감도 없는 사람들이 자리만 차지하면 그것은 방해될 뿐이에요. 신앙과 사랑과 사명에 목숨 거세요. 그러면 예수님을 만나요. 초대교회 교인들도 신앙에 목숨 걸었기에 예수님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역의 현장인 갈릴리에서 뵈오리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러시아의 구두수선공 마틴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다가 성탄절 전야에 세 번이나 만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틴은 매일 일을 마치면 말씀 보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성탄을 이틀 앞두고 예수님이 너무나도 만나고 싶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데 예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마틴아 내가 내일 너의 집에 찾아 가겠다.” 그런데 다음날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대신 연로하신 청소부 할아버지와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 업은 가난한 아주머니 그리고 한 푼 달라는 보기 흉한 거지 밖에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마틴은 평소 하던 대로 그들에게 따뜻하게 대접하고 도와주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실망한 마틴이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님 왜 오신다 하고서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어제와 같은 음성이 들립니다. “마틴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세 번이나 가지 않았니? 그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면으로든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만나야 구원이요 평안이요 거룩이요 하나님 나라요 축복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으니 이미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예수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정직한 전문성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고난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목숨 건 사랑과 사명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