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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전쟁사가가 그린 20세기 ‘아마겟돈 전쟁’

은바리라이프 2007. 7. 2. 21:05
최고 전쟁사가가 그린 20세기 ‘아마겟돈 전쟁’
6년간 전대륙에서 5천만명 앗아간 최대 살육전
거대한 전모 명료한 필치로 살핀 존 키건 역작
유럽서부·동부·태평양전쟁 나눠 전략·전투 정밀 묘사
한겨레 고명섭 기자
» <2차세계대전사> 존 키건 지음·류한수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4만원
화염병을 뜻하는 ‘몰로토프 칵테일’은 핀란드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1939년 겨울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틈 타 핀란드를 쳐들어갔을 때 북유럽의 이 작은 나라 국민들은 맹렬하게 항전했다. 핀란드인들은 도로를 따라 진격하는 소련 탱크부대를 측면 공격으로 툭툭 끊어놓은 뒤 눈 속에 처박힌 탱크들을 화염병으로 공격했다. ‘몰로토프 칵테일’이라는 이름에는 소련에 대한 비아냥이 담겨 있었다. 당시 소련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는 틈만 나면 “나는 핀란드인의 좋은 친구”라고 떠들었는데, 불시에 공격을 받은 핀란드인들이 ‘그렇다면 이 술이나 받아라’하고 화염병을 던졌던 것이다.

‘몰로토프 칵테일’ 핀란드 항전서 유래

‘몰로토프 칵테일’은 핀란드인들에게는 그야말로 국운을 건 결사항전의 상징이었지만, 그 술병에서 피어오른 불꽃은 2차대전이라는 어마어마한 전화에 비하면 한 점 티끌에 지나지 않았다. 핀란드 병력을 다 합친 17만5000명은 이 묵시록적 전쟁의 수많은 격전지 가운데 한 곳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에도 미치지 못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부터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까지 만 6년 동안 벌어진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살륙전이었다. 지구의 거의 모든 대륙에서 전쟁의 불길이 치솟았고 5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전방과 후방이 따로 없었다는 점에서도 2차대전은 그 이전의 모든 전쟁과 성격이 달랐다. 말 그대로 총력전이었고 총체전이었다. 이 전쟁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소련의 경우만 따져 보면, 군인 사망자가 최소 870만명이었고 민간인 사망자는 그 두 배인 1700만 명을 넘었다. 무기를 들지 않은 사람들이 이토록 많이 죽어나간 것은 1차 세계대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국의 전쟁사학자 존 키건이 쓴 <2차세계대전사>는 그 규모의 거대함으로 인류 역사에 획을 그었고 그 참혹함의 강도로 인류의 정신에 지울 수 없는 화인을 남긴 ‘20세기의 아마게돈 전쟁’의 전모를 살핀 역작이다. 영·미권 5대 전쟁사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지은이는 유럽에서부터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까지 2차대전의 불길이 번진 모든 곳을 지구적 시야에서 살피고 있으며, 전쟁의 기원과 경과와 결말을 선명한 필치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의 돋보이는 점은 한 권의 책으로는 요약하기 어려운 방대한 사건들을 명료한 분석틀로 짜임새 있게 서술했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전쟁의 양상을 유럽 서부전선의 전쟁, 유럽 동부 전선의 전쟁, 태평양 전쟁으로 나눈 뒤 각 전쟁의 주요 인물인 히틀러·도조·처칠·스탈린·루스벨트의 전략을 분석한다. 또 전투의 특성을 보여주는 특정한 전투의 형태인 항공전·공수전·항공모함전·기갑전·시가전·상륙전을 살피고 본보기 전투를 상세하게 묘사하며 군수보급·전략폭력·비밀병기 같은 전쟁학의 쟁점을 각각 장을 할애해 다룬다. 이 책은 전쟁의 대동맥을 그림과 동시에 모세혈관을 아울러 그림으로써, 인류의 80%가 휘말려들어간 이 거대한 사태의 양상을 충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 프랑스 국경 지대에서 독일군 전차부대에 맞서 싸우던 영국군 전차연대 대원들이 후퇴하는 장면.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은 전차부대를 앞세운 전격전으로 프랑스를 삽시간에 제압했다. 사진 청어람미디어 제공.
속도전·전격전 가공할 파괴력

2차대전은 속도의 전쟁이었다. 독일군이 폴란드 국경을 넘어가 바르샤바를 포위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보름 남짓이었다. 거의 숨돌릴 틈 없이 질주한 이 전쟁을 설명하면서 등장한 말이 ‘전격전’(블리츠크리크)이다. 신문기자들이 만든 이 말은 2차대전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를 집약한 것이었다. 폴란드의 19세기식 기마부대는 독일의 현대적 전차부대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비행기가 적국의 주요 지점을 맹폭해 기선을 제압하면 기갑사단이 땅위를 훑고 지나갔다. 전격전은 이듬해 독일의 프랑스 침공에서 공포스러운 파괴력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1940년 5월10일 독일군은 벨기에와 네덜란드로 밀어닥쳤다. 목표는 프랑스였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구축된 수백 마일의 콘크리드 방어선인 마지노선을 우회하는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네덜란드가 교전 3일 만에 독일에 항복했고, 같은 날 독일군이 프랑스 국경을 넘었다. 1차대전의 지루하고도 끔찍했던 참호전의 기억은 쉼 없이 내달리는 전차의 캐터필러 아래서 지워졌다. 6월 14일 파리가 독일군의 총구에 휩싸였다. 한 달 만에 유럽의 군사 대국이 독일 군홧발에 목이 눌린 꼴이 된 것이다. 프랑스 군사력이 독일에 비해 아주 열세였던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독일이 구사한 전술이 그만큼 탁월했다고 말한다. 독일군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전차로만 이루어진 기갑사단을 구축했고, 탱크사단이 지닌 기동성과 독자성은 상대국을 압도했다. 마지노선은 탱크를 앞세운 독일의 전격전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전격전은 유럽 동부전선에서도 그 무시무시한 위용을 과시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이 소련 국경을 넘은 것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의 서막을 여는 것이었다. 400만 명에 이르는 병력이 180개 보병 사단으로 나뉘어 노도처럼 러시아를 향해 진격했다. 20개 기갑사단이 진두에 섰다. 석 달 만에 소련군 300만명이 포로로 잡혔다. 레닌그라드가 포위됐고 모스크바가 독일군의 눈앞에 있었다. 붉은군대와 소련 인민은 처절하게 저항했다. 이 전쟁의 일방적 양상을 바꾼 것은 ‘1812년 요소’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1812년 러시아 정복 전쟁에서 나폴레옹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겼던 요인들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소련은 한꺼번에 먹어치우기에는 너무 넓은 땅이었다. 폭주하던 독일 탱크는 동장군이 들이닥치자 진창에 빠져 헛바퀴만 굴렸다. 소련의 대평원은 ‘라스푸티차’ 곧 ‘진흙의 바다’로 바뀌었다. 독일과 소련 사이 전쟁의 추가 그제서야 균형을 이루었다. 밀고 밀리는 소모전은 1942년 8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사상 최악의 인명 손실을 냈다. 다섯 달이 넘도록 계속된 공방전은 양쪽 지도자의 자존심이 걸린 결정전이 됐다. 1943년 1월 30일 마침내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 본대가 항복했고, 2차대전은 이제 독일의 패망을 향해 달리는 형국으로 돌아섰다. 2년 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참혹한 난타전 속에서 소련군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 책은 드넓은 시야에서 2차대전의 시작과 끝을 펼쳐 보여주지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과 미국의 관점에 쏠려 있다는 점이 그 약점의 하나다. 그러다보니 2차대전의 분수령이 된 독-소 전쟁이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어졌다. 이 책의 옮긴이가 연전에 번역한 리처드 오버리의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쟁>을 함께 읽는다면, 부족한 지점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