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2/칼럼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은바리라이프 2007. 8. 7. 16:07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1> 李鴻章의 화려한 미국 방문
| Opinion |
2007-08-05
111년 전 여름(1896년 7월 21일 정오) 대청제국(大淸帝國)의 전(前) 직예총독(直隷總督) 겸 북양대신(北洋大臣)인 이홍장(李鴻章)이 미국 뉴욕항에 도착했다. 6개월 전부터 유럽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숱한 화제를 뿌린 74세의 노정객(老政客)을 보기 위한 인파가 아침부터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20>중국 올림픽의 아버지 王正廷
| Opinion |
2007-07-29
지난 3월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5차 회의에 저장(浙江)성 대표로 참가한 텅터우촌 당위서기 푸치핑(傅企平)은 펑화(奉化)의 수이우창(稅務場)촌을 올림픽 성화 교체 지점으로 채택해줄 것을 건의했다. 왕정팅(王正廷, 1882∼1961)의 고향 마을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9] 한 사람의 올림픽
| Opinion |
2007-07-22
1919년 5·4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은 민주(民主)와 과학(科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모든 분야에 확산시켰다. 체육도 예외일 수 없었다. 부동자세, 구보, 총검술 등 군대식 체조들이 조금씩 멀어지고 육상이나 구기 종목 등이 생활 속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24년 국민체육의 확산>>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8] 袁世凱의 한국인 부인들
| Opinion |
2007-07-15
부인은 하나지만 ‘이타이타이’(姨太太, 혼례를 올리지 않고 한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부인)는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지론이었다. 그에겐 부인 외에 9명의 이타이타이가 있었다. 부인 위(于)씨는 허난(河南) 지주집안 출신이나 문맹이고 신구(新舊) 예>>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7] 張學良과 宋美齡(下)
| Opinion |
2007-07-08
쑹메이링(宋美齡)은 시안을 폭격하려는 난징 정부의 결정을 보류시키고 1936년 12월 22일 시안으로 떠났다. 비행장에 나온 장쉐량(張學良)을 보는 순간 난징에서부터 굳어 있던 쑹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장제스(蔣介石)를 대신해 장쉐량과 옌안에서 급파된 저우언라이(周恩來)와 협상>>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6] 張學良과 宋美齡(上)
| Opinion |
2007-07-01
장쉐량(張學良, 1901∼2001)은 1925년 6월 상하이 미국영사관 만찬에서 국민당 원로 후한민(胡漢民)의 소개로 쑨원(孫文)의 처제 쑹메이링(宋美齡, 1897∼2003)을 처음 만났다. 한 세기를 일관한 두 사람의 우의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둘 다 장제스(蔣介石)를 모를 때>>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5 ] 紅衛兵이 탄생하던 그날
| Opinion |
2007-06-24
홍위병(紅衛兵)은 국가 조직이나 군대가 아닌 젊은 학생들의 집합체였지만 문화대혁명(1966∼76) 초기 2년간 중국의 사회ㆍ정치ㆍ문화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소멸된 인물군체(人物群體)였다. 홍위병은 문혁 전야인 1966년 5월 칭화(淸華)대학 부속중학에 출현한 독립적인 >>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4] 물ㆍ햇빛ㆍ바람을 무서워한 林彪
| Opinion |
2007-06-17
1966년 10월 장칭(江靑)이 중화인민공화국 원수이며 부총리 겸 국방부장인 린뱌오(林彪)를 찾았다. 감기에 걸렸다는 장칭의 말에 린뱌오는 “물(水)은 차가운 성질(寒性)이다. 찬 기운이 모공을 통해 진입하면 내장의 더운 기운(火)과 충돌해 모순이 발생한다. 그게 감기다. 나는 >>
⑬세 살에 황제 된 光緖帝
| Opinion |
2007-06-10
기원전 221년 진시황(秦始皇)이 황제를 칭한 이래 494명의 황제가 있었다. 추증(追贈)된 73명을 빼면 421명이었다. 이들 중 29명이 열 살이 안 돼 황제에 올랐다. 어린 황제가 가장 많았던 왕조는 청(淸ㆍ1636∼1911)이었다. 12명의 황제 중 창업기 2명(順治ㆍ康熙>>
300년 비밀결사 '靑幇' 최고의 두령 杜月笙
| Opinion |
2007-06-03
중국 역사와 함께해온 비밀결사의 깊은 뿌리와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민족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한족 부흥운동의 배후에는 그들이 있었고, 아주 복잡한 성격의 역사적 인물들을 배출했다. 가로회(哥老會) 지파인 청방(靑幇)은 17세기 초 만주족이 청(淸)을 건국하면서 두각을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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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간 가계부 쓴 대문호 루쉰
| Opinion |
2007-05-27
루쉰(魯迅ㆍ1881~1936)의 경제상황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제대로 된 수입이 있었을 것 같지 않다는 얘기다. 1909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루쉰은 항저우ㆍ사오싱ㆍ난징에서 3년, 베이징에서 14년, 샤먼ㆍ광저우에서 1년, 상하이에서 9년 등 27년간 사회활동을 했>>
중국 최초의 여성 누드 모델 파동
| Opinion |
2007-05-20
1911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미술전문교육기관 상하이미전(上海美術專科學校)은 1914년 교과과정에 인체사생을 개설하고 남자 모델을 공모했다. “혼이 그림에 빨려들어가 기(氣)가 손상되고 사람이 죽는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응모자가 없었다. 15세 소년이 자원했다. 이름이>>
옌안의 밤 사로잡은 江靑
| Opinion |
2007-05-13
1933년 봄 배우가 꿈이었던 19세의 칭다오(靑島)대학 도서관 직원 리윈허(李雲鶴)는 부두 창고에서 공산당에 입당했다. 영문과의 셰익스피어 강의를 몰래 듣다가 쫓겨난 후였다. 훗날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톈진(天津)시장이 된 황징(黃敬)의 소개로 당에 들어갔다. 30년대의>>
中 최후의 고전 시인 천싼리
| Opinion |
2007-05-06
1936년 국제 펜클럽 회의가 런던에서 열렸다. 신문학과 구문학을 대표하는 후스(胡適)와 천싼리(陳三立)가 초청을 받았다. 천은 참석하지 않았다. 자신이 중국을 대표한다고 생각지 않았다. 인도 시인 타고르가 방문해 시집을 선물했을 때도 어쩔 줄 몰라 했다. “타고르는 인도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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