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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 구역의 '[이방인의 뜰]에 대한 오해

은바리라이프 2022. 12. 3. 15:22
예루살렘 성전 구역의 '[이방인의 뜰]에 대한 오해

권영진 목사의 정언향 칼럼
Giotto di Bondone(1304-06), Scrovegni Chapel, Padua, Italy

어떤 글을 읽는데 그 내용 중에 '예수님 시대의 성전(헤롯성전을 의미-필자 주)에는 [이방인의 뜰]이라는 명칭의 장소가 있었는데 여기는 이방인들도 들어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도 있도록 배려를 한 곳이다. 이것은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도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곳을 장사와 환전하는 곳으로 만들어 더럽히면서 이곳을 이방인들의 예배와 기도 장소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분노를 이끌어냈고 그것을 예수님께서 몸소 증명해 보이셨다'는 논지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글쓴이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성도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하고 처음엔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내용을 가르쳐 주었다는 사람이 성경공부 간사님이라 하는 내용이 있어서 이게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구나 싶어서 잠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의 상당 부분의 글들이 '이방인의 뜰'을 그런 의미로 해석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간사님도 아마 이런 글들을 보았겠지요.

이런 해석을 누가 최초로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의미를 살펴보건데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 회복 운동]과 관련된 쪽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자주 쓰는 가르침 중 하나가 (이스라엘에 새롭게 세워질) 성전을 통해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 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오해와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이 '이방인의 뜰'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인터넷에 있는 성경과 신학에 관한 글은 위험한 내용이 많으니 검증된 신뢰할 만한 저자와 명확한 출처(reference)가 없는 글은 어지간하면 신뢰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1. [이방인의 뜰]은 본래 성전에 속한 곳이 아닙니다.

이것은 헤롯이 제2성전(스룹바벨 성전)을 개축, 확장하면서 소위 [성전산]이라고 불리는 확장된 형태의 [대규모 성전 테마파크]를 지으면서 늘어난 공간 중 하나입니다. 이는 헤롯이 자신의 위세도 과시하면서 더불어 유대인들에게 '봐라 내가 사실은 이렇게 끝내주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선전용 시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헤롯에 잔인한 정치에 만정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로마의 '윗 분'들에게 들어갔다가는 헤롯의 정치적 생명도 위태롭기 때문에 이런 일을 했던 것입니다. 즉 민심을 잡기 위한 일종의 [전시행정]을 한 것입니다.

각설하고, 이곳은 본래 성전과 확장된 [성전산] 사이에 존재하게 된 공간입니다. 본래의 성전 즉, 스룹바벨 성전(2성전)이 소위 [내벽]이 되고 헤롯이 새롭게 조성한 성전산이 [외벽]을 이루는 구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공간이 생긴 것입니다. 따라서 이곳(이방인의 뜰)은 헤롯이 조성한 별개의 공간 중 하나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전의 본래 구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오리지널 성전에는 애당초 [이방인의 뜰]이라는 명칭의 공간 자체가 없습니다.

이곳이 [이방인의 뜰]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이곳은 성전과는 관련이 없는 곳, 즉 일종의 관광구역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성전산에 오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방인(특히 로마인들)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이들을 위한 각종 편의들이 제공되었습니다(요즘으로 말하면 노점 같은 것들). 또 멀리서 성전에 제사하러 오는 유대인들을 위한 행정적 편의(성경에 나오는 환전, 제물로 사용할 동물들의 매매 등)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이게 나중에 예수님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2. [이방인의 뜰]은 예배나 기도 장소가 아닙니다.

이곳은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상징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곳이고 당연히 예배 장소도 아닙니다. 여기는 앞서 말씀 드린대로 관광지 비슷한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온 이방인들은 대부분 '여기가 헤롯이 이번에 조성한 성전을 컨셉으로 한 테마파크래 돈 무지하게 퍼부었네...' 이러면서 요즘 말로 [셀카 찍고 인증샷 남기는 곳] 정도의 공간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도 많았구요. 그런 어수선한 곳에서 무슨 기도며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만일 이방인들 가운데 실제로 하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고 싶었던 사람은 유대교로 개종을 하고 소위 안뜰(스룹바벨 성전)로 들어가 정해진 규정에 따라 정식으로 종교적 제의를 했습니다. 흔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실제 사례도 있었던 일들입니다.

 

이스라엘 박물관의 예수시대 예루살렘 모형중 성전 부분.

 

3. [이방인의 뜰]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공존을 말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심각하게 왜곡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방인의 뜰]은 오히려 당시 유대인들이 얼마나 이방인을 끔찍히 경멸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이곳과 성전 사이에 약 1.5미터 정도의 담을 쌓아두고 '여기 넘어가면 이방인은 죽을 줄 알아라!' 하고 무시무시하게 경고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치졸한 일인데 담의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실제 성전 안쪽을 훤히 볼 수 있고 실제로 들어갈 수도 있게 해 놓고 막상 들어가면 죽인다고 협박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방인들을 개돼지 취급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잘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곳은 그야말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혀 있는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성경에서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성전 내에 이방인들을 데리고 들어왔다고 고소당해 집단린치를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21:27-36) 이것을 봤을 때 당시 유대인들이 얼마나 이방인들을 사람 같이 생각하지 않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방인의 뜰]과 성전을 격리하는 것은 결코 이방인들을 향한 호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은 [이방인들의 뜰]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뒤집어엎으신 까닭은 이곳이 원래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곳인데 거기를 장사하는 곳으로 바꾸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긴 원래 장사도 할 수 있는 곳이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소통하는 곳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짜 화가 나신 이유는 거기서 장사를 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 나와서 같이 장사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제사와 관련된 제물을 팔고, 거기에 필요한 환전을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나와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정말 분노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장사를 하면 안 되는 인생들이 나와서 장사를 - 그것도 어마어마한 폭리를 남기는 절반은 사기에 가까운 짓들을 - 하고 있었으니 성전의 본래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한복음은 이에 대해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은 단순히 그들의 비리에 대해 분노하신 것을 넘어, 유대인들에게 허락된 성전은 이제 그 기능과 목적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성전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의미를 완성하시고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학적]인 것이라고 예수님의 행동의 의미를 잘 설명해 줍니다.

 

이와 같이 간단하게 [이방인의 뜰]을 둘러싼 일련의 왜곡된 해석에 따른 오해의 내용을 교정해 봤습니다. 처음의 글을 읽은 독자들은 '아하 [이방인의 뜰]에 저런 은혜스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하고 오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런 글이 많은 경우 교회 홈페이지나 기독교 단체의 자료실 같은 곳에 있어서 성도님들을 더욱 이런류의 글을 믿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은혜스러운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은혜스럽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사실을 왜곡한다면 그것은 결국 거짓일 뿐입니다. 이는 단지 [이방인의 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에 많이 돌아다니는 각종 [예화] [간증]을 포함한 모든 소위 [은혜로운 글(심지어는 신학적 글도)]에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런 풍토가 교회 내에서 좀 더 개선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