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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소형근 교수

은바리라이프 2021. 10. 6. 10:45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1)
소형근
(서울신학대학교, 구약학)
한글초록
본 연구는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죽음과 사후세계를 다루기에 앞서 구약성서의 인간이
해를 다루었으며, 또한 구약성서의 죽음이해를 다루었다. 또한 죽은
자, 즉 사자(死者)가 가는 곳은 어디인지를 살펴보았고, 구약성서에 나타
난 부활사상을 소개했다. 여기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인간은 ‘흙’(창 2:7)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며, 하나님의 ‘생명호
흡’(창 2:7)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운명론적인 존재이며, 또한 창조주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생명
호흡’을 거두어 가실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었다(시 104:29-30).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고대 이집트에 비하면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성서
* 이 연구는 2019년도 서울신학대학교 교내연구비 지원에 의한 연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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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영생’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단 2회 인간에게 사용됨).
또한 구약성서는 인간이 죽으면, ‘쉐올’, ‘보르’, ‘샤하트’, ‘케베르’로 내려
간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죽은 자는 ‘조상에게로 돌아간다’, 혹은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간다’로 말하고 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족묘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 함께 매장하는 관습 때문으로 보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자가 사후에 조상들의 모임에 들어감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오경의 법전에서 ‘신접자’와 ‘초혼
자’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금지규정은 역으로 당시 고대
이스라엘의 민중 신앙을 반영하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야훼신앙의 핵심 사상에서는 철저히 금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부활사상
을 볼 수 있는 본문은 두 곳이다. 이사야 26:19과 다니엘 12:2이다.
이 두 본문은 모두 묵시문학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구약성서
에는 죽은 자의 다음 세계에 대한 묘사를 침묵하고 있으며, 키르베트
엘-콤에서 나온 명문에서는 야훼를 ‘나의 수호신’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물론 이 명문은 구약성서의 전통 야훼신앙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사자(死
者)에 대한 민간신앙으로 볼 수 있다.
Ⅰ. 서론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러한 인간학적 이해는
그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학문의 영역에서 논의되어 왔던
주요 주제들 중에 하나이다. 오늘날 학문의 거장을 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학문의 영역이 세분화 되어 있듯이 ‘인간학’ 혹은 ‘인간론’에
대한 이해의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해서 어느 하나의 획일화된 결론을
도출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 N. Harari)는 지난 수 세기 동안 권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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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이 천상의 신(神)에게서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이동했지만,
이제 조만간 이 권위가 인간에게서 알고리즘(Algorism)으로 이동할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즉, 다가오는 기술혁명이 빅데이터 알고리즘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나 혹은 ‘인간성’이라는
생각의 기반이 흔들리거나 큰 도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1) 이처럼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기원을 논하기도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더불어 인간의 권위와 가치마저 포기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세상의 이런
위기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인간
은 인간 스스로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2) 즉,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면, 종국에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은 누구나가 겸허해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오늘날 인간에 대한 문제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정신사적 접근, 신학적인 접근이 그래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구약성서가 말하는 인간이해와
죽음 이해 그리고 죽은 자의 사후세계와 사자(死者) 숭배, 그리고
부활사상과 야훼와 사후세계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이를 통해 구약성
서가 말하는 죽음과 사후세계를 종합, 정리하게 될 것이다.
1)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전병근 옮김 (서울: 김영사, 2018), 85.
2) 이신건, 『인간의 본질과 운명』 (서울: 신앙과 지성사, 2010), 17; 한동구, “규범과
리더십”, 「신학과 선교」 48(2016), 12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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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구약성서의 죽음 이해
1. 구약성서의 인간 이해
구약성서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우선 인간은 재료적
인 측면에서 ‘흙’으로 창조되었다(창 2:7; 욥 10:9; 사 29:16; 시 90:3
등). ‘흙’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바빌론의 길가메쉬 서사시
(Gilgamesh epic)3)나 동양의 중국 창조신화4)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이야기 소재이다. 구약성서에서도 인간이 ‘흙’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한다(창 2:7). 하지만 히브리 성서의 인간창조의 재료는 고대 근동이
나 중국 창조신화의 ‘투박한 흙’이 아니라, ‘정교하고, 미세한 흙의
입자’를 가지고 인간을 창조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창세기 2:7의 표현
에 따르면 인간은 히브리어 ‘아파르’(‘apar), 즉 ‘미세한 흙먼지 입
자’(Staub)를 가지고 창조된 존재이다(KBL III, 815). 그런데 구약성서
의 인간창조 이전의 묘사인 창세기 2:6에 따르면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고 기술하고 있기에 인간을 창조했던
재료인 ‘흙’은 이미 수분이 함유된 ‘아파르’였던 것이다. 즉, 히브리
성서가 말하는 인간창조의 재료는 물기를 머금고 있는 ‘아파르’였다.
예언자 이사야에 따르면 이런 수분이 있는 흙으로 인간을 창조한
3) 길가메쉬 서사시에는 신 아루루(Aruru)가 손을 씻고 난 후에 진흙을 한 움큼
떼어 들판에 내던지자 엔키두(Enkidu)를 창조하게 되었다고 알려준다. 참고.
제임스 B. 프리처드, 『고대근동문학선집』 (강승일 외 5인 옮김) (서울: CLC,
2016), 111.
4) 중국의 창조신화들 중에 여와의 인간창조신화, 독룡족의 인간창조신화, 다우르족
의 인간창조신화에는 인간을 창조할 때 ‘진흙’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참고.
Li Hu Lin, “구약성서와 중국 창조신화의 인간창조 비교연구” (서울신학대학교
미간행 석사학위논문, 2017), 41-42, 54-55, 60-61,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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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묘사하고 있다(사 64:8). 그런 인간의 코에 하나
님은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창 2:7b). ‘생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니쉬마트 하이임’(nishmat ḥayyim)으로 ‘숨’, ‘호흡’에 해당하
는 ‘네샤마’와 ‘생명’에 해당하는 ‘하이’가 합성된 단어이다. 따라서
창세기 2:7의 ‘생기’는 흙이었던 미완성 피조물이 하나님의 ‘생명
호흡’이 들어감으로 살아 움직이는 완성품으로서 인간이 되었다.
그런 인간은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창조되었다.5) 그러나 인간은 ‘흙’으로 지어진 존재이다 보니, 언제든지
깨질 가능성이 있다(사 30:14). 여기서 ‘깨짐’은 인생의 고난과 역경으
로 인한 ‘생채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결국 흙의 수(壽)를 다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죽음을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은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타락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수고’해야지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며(창
3:16-17), 종국에는 ‘아파르’였던 인간이 다시 ‘아파르’로 돌아가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창 3:19b).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 때
불어넣었던 ‘생명 호흡’을 각 사람들로부터 거두어 가심으로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시 104:29-30; 사 42:5; 욥 33:4; 34:14-15 등).6)
이것이 우리 인간이며, 구약성서는 이런 인간의 치명적인 한계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5) 이영재, “농(農)의 눈으로 보는 구약성서 7: 토라의 인간론과 인생론”, 「기독교사상」
643호 (2012), 90.
6) 베르너 H. 슈미트, 『구약성서입문 III』, 차준희 ․ 채홍식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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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약성서의 죽음이해
고대 근동에서는 인간이 죽은 후에 사후세계가 있어서 그곳에서
인간은 생명을 연장하게 된다고 이해했다. 특히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카’(ka)가 육체를
떠난 후 사후세계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이때 자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누비스(Anubis)가 사자(死者)를 맞이하게 되며, 아누비스는
사자의 가슴에서 심장을 꺼내고 양팔저울에 선의 규범이며, 정의의
기준인 마아트(Maat)의 깃털로 측정하게 된다. 이때 서기관 토트
(Thoth) 신이 이생에서 사자의 정의로운 삶을 측정한다. 이후 호루스
(Horus) 신은 죽음을 관장하는 자신의 아버지 오시리스(Osiris) 신
앞으로 사자를 인도하고, 오시리스는 판결을 내려 사자의 다음 생애를
결정하게 된다.7) 고대 이집트가 인간의 사후세계를 구체적으로 묘사
한 것과 달리 구약성서는 인간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 큰 관심이
없었다. 구약성서는 기껏해야 죽은 자는 ‘쉐올’(sheol; 창 37:35; 42:38;
민 16:33)이나 ‘보르’(bor; 시 28:1; 30:1)나 ‘샤하트’(shaḥat; 욥 33:18,
24, 30; 시 55:23; 94:13) 혹은 ‘케베르’(qeber; 시 5:9; 88:4-5)에 들어간
다고 설명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고대 이스라엘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적 영혼불멸의 사상과도 거리가 멀다. 즉, 고대 그리스 철학이
7) J. P. Allen, Middle Egyptian: An Introduction to the Language and Culture
of Hierography (Cambridge: Cambrige University Press, 2000), 94; 프랑수아
트라사르, 『파라오 시대 이집트인의 일상』, 강주헌 옮김 (서울: 북폴리오, 2005),
129.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서 사자의 부활은 자격을 갖춘 자만이
가능했던 것이고, 그래서 오시리스 신의 판결이 중요했다. 오시리스는 판결 후
사자에게 오시리스의 영지에서 한 뙈기의 땅을 주어 평생 그곳에서 살아가게
했다.




소형근,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179
육체의 사멸성과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반면,8) 고대 이스라엘은 육체와 영혼이 하나였으며, 분리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9) 그래서 히브리 성서는 살아 있는 사람을 ‘네페쉬
하야’(nephesh hayah, 창 2:7), 즉 ‘살아있는 영혼’으로 표현했고,
죽은 사람을 ‘네페쉬 메트’(nephesh met, 민 6:6), 즉 ‘죽은 영혼’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구약성서에서 죽음은 소멸이 아니었다. 죽은
자의 육체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죽은 자의 뼈가 존재하는 한 여전히
그 사람의 영혼도 존재한다고 보았다. 다만 죽은 자의 그 영혼은
“극도의 허약한 상태에 처하여 있을 뿐”이다.10)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육체와 뼈가 묻혀 있는 무덤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는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와
같이 인간의 사후세계에 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묘사가 없을뿐더러,
죽은 자가 사후(死後)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죽은 자의 나라(kingdom
of the dead)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다만 구약성서는 인간이 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로 말하고 있다.11) 그 첫 번째는 인간이
‘흙’(ḥomer)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흙의 모습인 ‘티
끌’(ʿapar)로 돌아가야만 한다(욥 10:9). 이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운명론적 결과라 할 수 있다. 인간의
8) 이신건, 윗글, 191.
9) 김이곤, 『삶,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 (서울: 프리칭아카데미, 2007), 15.
10) 롤랑 드보, 『구약시대의 생활풍속』, 이양구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3),
118; 참고. 구자용, “죽음—그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실존: 구약성서적 창조와
지혜전승의 관점에서 본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고찰”, 「구약논단」 49집 (2013),
348-375.
11) 김영진, “고대 이스라엘의 죽음에 대한 이해”, 「한국기독교신학논총」 32집 (2004),
97.




180 신학과 선교 제54집
죽음은 자연 질서의 일부분으로써 당연하고, 필연적인 결과이면서
인간이 땅 위에서 수고하는 노동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다.12) 다윗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왕상 2:2)라면서 솔로몬에게 유언하는데, 이는 다윗이 죽음
을 인생의 일부분으로 담담히 받아들였다는 증거이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한 요소로써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매 한가지이다(전
3:19). 두 번째로 인간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창 3:22-24). 그래서 인간의 죽음은 신학적으로 볼 때 하나님
과의 관계로부터 나오며,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의미
한다.13) 그래서 죽은 자들과 접촉은 자신의 몸을 더럽힐 수 있기에(레
21:1-4) 고대 이스라엘은 죽은 자들을 터부시했다. 또한 죽은 자들은
야훼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다(시 6:5; 사 38:18).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들의 하나님이면서 생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특정인들은 이 죽음으로부터 제외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경건한
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으며(창
5:24),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
다(왕하 2:11).
3. 사자(死者)의 자리(Sitz)
그렇다면 구약성서에서 죽은 자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12) 이은애, “히브리 성서에서의 죽음과 장례: 존재와 관계에 대한 기억”, 「구약논단」
60집 (2016), 140-141. 인간은 타락 이전에 ‘노동’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즉, 아담은 타락 이전에 에덴동산을 경작해야 하는 노동의 명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창 2:15).
13) K. Liess, “Tod” (RGG4 8) (Tübingen: Mohr Siebeck Verlag, 2005), 431.




소형근,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181
구약성서는 죽은 자가 가는 곳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즉, 죽은
자는 히브리어 ‘쉐올’14), ‘보르’, ‘샤하트’, ‘케베르’로 간다고 말하는데,
이 단어들은 우리말로 ‘무덤’, ‘웅덩이’, ‘구덩이’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예를 들면, 야곱은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자신 또한 “스올
(sheol)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창 37:35)고 말한다. 예언자
에스겔은 죽은 자를 ‘구덩이’(bor)로 내려가는 자라고 말한다(겔
31:16). 엘리후가 욥에게 했던 충고의 말에는 하나님이 고난당하는
자를 ‘구덩이’(shaḥat)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욥
33:24). 탄원시의 시인은 자신의 현재 상황이 ‘무덤’(qeber)에 내려가
는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시 88:4). 그런데 이 네 개 명사들의
용례들 중에 공통점이 있다면 이 네 개의 명사들은 ‘내려가다’(to
go down)라는 히브리어 ‘야라드’(yarad) 동사와 함께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15) 즉, 죽은 자들은 사후(死後)에 하늘로 올라가는
것16)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지상세계 아래로 모두 내려간다고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스올을 ‘무덤’과 일치하는 것으로
14) 우리말 성서에서 히브리어 ‘쉐올’(sheol)을 ‘죽은 자들의 세계’, ‘음부’, ‘저승’
등으로 번역하고 있으나(게제니우스, 『히브리어 아람어 사전』, 799), 때론 ‘쉐올’이
적절한 의미를 찾기 힘들어 히브리어 용어 그대로 우리말 성서(‘스올’)에서 사용하
고 있다.
15) 구약성서에는 ‘스올에 빠지다’(민 16:30), ‘스올로 돌아간다’(시 9:17), ‘스올에
버리다’(시 16:10), ‘스올에서 끌어내다’(시 30:3), ‘스올에 떨어졌다’(사 14:11)
등과 같은 표현도 사용되고 있다.
16) 구약성서는 매우 드문 경우이지만 이와 달리 진술하기도 한다. 즉, 전도서 3:21에는
사람의 ‘영’이 위로 올라간다고 말하고, 전도서 12:7에는 인간의 ‘영’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로핑크는 인간의 ‘영’이 위로 올라간다는 것을 플라톤의
영혼 불멸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한다. 참고. N. Lohfink, “Gegenwart
und Ewigkeit: Die Zeit im Buch Kohelet”, Geist und Leben 60 (1987), 2-12.




182 신학과 선교 제54집
보기 때문이며(시 30:3; 잠 1:12), 죽은 자를 매장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관습 때문으로 보인다.17)
또한 구약성서는 죽은 자가 ‘조상에게로 돌아간다’(창 15:15;
민 20:26; 신 32:50 등), 혹은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간다’(창 25:8;
35:29)고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죽은 자가 ‘조상에게 돌아간다’는
표현에서 ‘조상’은 히브리어 ‘아보트’(ʾabot)로 ‘선조들’(fathers)을 의
미하며, ‘돌아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보’(boʾ)인데 ‘보’는
우리말 ‘오다’(to come), ‘가다’(to go)에 해당한다. 따라서 죽은 자가
‘조상들에게 돌아간다’라는 말은 ‘조상들에게 간다’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가족묘 매장관습을 반영하는 표현이다. 즉,
고대 이스라엘은 가족 공동묘를 정해놓고, 그곳에 가옥의 구조와
같이 보통 네 개의 방을 만들어 가족들의 시신을 매장하는 관습이
있었다.18) 이러한 예는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산 밭과
굴이 있는 지역에 그의 부인 사라와 아브라함 자신과 아들 이삭과
17) ‘스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스올’을 중립적인 장소의
‘무덤’으로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장소로써 ‘음부(=지하세계,
지옥)’라는 개념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스올’이 구약성서에서 부정적인
의미가 강한 이유는 ‘스올’에서는 하나님과 죽은 자가 단절되어 있고(욥 7:9),
‘스올’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고(사 38:18), 흑암의 장소(욥 17:13)이기
때문이다. 참고. 최순진, “구약성경에 나타난 죽음, 죽음 이후의 세계 및 부활에
대한 이해”, 「한국개혁신학」 52권 (2016), 192-221.
18) 한상인, 『이스라엘 왕국 시대의 고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5), 208.
고대 이스라엘의 가족 동굴 무덤은 가나안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으로 돌로 된
암반을 뚫거나 자연동굴을 이용하여 묘실의 세 면에 세 구의 시신을 안치하는
자리를 마련해 놓고, 그 안에는 네 개의 방을 만들어 놓아 살아 있는 유가족이나
후손들이 언제든지 왕래할 수 있는 형태의 무덤이었다. 이런 무덤이 주전 8세기에
남왕국 유다의 지배적인 무덤의 형태였다. 참고. E. Bloch-Smith, Judahite Burial
Practices and Beliefs about the Dead (Sheffield: JSOT Press, 1992), 51.




소형근,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183
며느리 리브가와 손자 야곱과 손주 며느리 레아가 함께 매장된 것을
통해 당시 고대 이스라엘의 매장관습을 알 수 있다(창 23:19; 25:9;
35:27-29; 49:31). 또한 ‘자기 열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마
이브’(ʿamayw)로 ‘그의 백성’(his people)에 해당하고, ‘돌아간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사프’(ʾasaph)로 ‘모으다’, ‘소집하다’라는 의미의
수동형 동사(niphʽal형)이다. 따라서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간다’라는
구약성서의 표현은 ‘그의 백성에게로 모인다’라는 의미가 된다. 죽은
자가 ‘그의 백성에게 모인다’라는 의미는 자신들의 조상이 있는 ‘공동
체’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은 자의 이름이 대대로
기억된바 된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죽은 후 조상들의
모임에 들어가길 소망하는데, 이러한 사상은 죽음을 조상들과 연결시
켜 산 자와 죽은 자,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려는 기억장치로 사용하면
서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려는 구약성서 저자의 의도라 할 수 있다.19)
그러나 죽은 자가 가족묘에 묻히지 못하거나, 혹은 시신이 짐승들의
먹잇감이 되는 경우는 하나님의 심판이자 저주로 여겼다(왕상 14:11).
Ⅲ. 구약성서에서 죽음 이후 세계
1. 사자(死者) 숭배
오경의 성결법전인 레위기 19:31과 신명기 법전인 신명기 18:11
에는 죽은 자의 영을 불러내는 자에 해당하는 ‘신접자’(wizard)와
‘초혼자’(necromancer)에 대한 규정을 다루고 있다. ‘신접자’는 히브
19) 이은애, 윗글, 142-143.




184 신학과 선교 제54집
리어 ‘오브’(ʾob)로 본래 ‘죽은 자의 영’이라는 의미이며, 수메르어에서
는 이 ‘오브’를 죽은 영혼들을 밖으로 소환해 낼 수 있는 깊은 ‘구멍’20)을
의미했다.21) 이 ‘오브’는 구약성서에서 ‘무당’과 동의어로 사용되곤
한다. 또한 ‘초혼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무트’(mut)는 ‘죽이다’라는
의미로, ‘초혼자’는 ‘신접자’나 ‘박수’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자였
지만, 이 둘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죽은 자에게 어떤 것을 묻는
행위를 하는 자’로 보인다.22) 오경의 법 규정에서 죽은 자의 영을
불러오거나, 죽은 자의 영과 대화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것은 이
법조항이 만들어질 당시에 이런 ‘가증한 행위들’이 공공연하게 시행되
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여기서 구약성서의 죽은 자에 대한 숭배사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사자(死者) 숭배 사상은 야훼 외에
또 다른 힘의 세력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성서에서는 엄격하
게 금지하는 규정이다. 물론 구약성서에는 빈번하게 나오지 않지만
마르제악 제도를 통해 사자 숭배에 대한 고대 이스라엘 민중 신앙의
일부 모습을 관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르제악 제도는 히브리어
20) 우가릿 지역과 고대 이스라엘(므깃도, 하솔, 악십 등)을 포함한 가나안 지역에서는
무덤의 천장에 구멍이 있어서 그곳을 통해 죽은 자에게 음식물이나 혹은 술이
공급되었던 것으로 보는데 이는 고대 근동에 있었던 사자 숭배의 모습이다.
그러나 가나안과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전체 무덤의 수에 비해 많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향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참고. E. Mazar, “Achzib”, The New
Encyclopedia of Archaeological Excavations in the Holy Land vol. 1, E.
Stern ed. (Jerusalem: Carta, 1992), 35-36; 김영진, 윗글, 110-111.
21) H. A. Hoffner, “בוא” (ThWAT I) (Stuttgart: W. Kohlhammer Verlag, 1973),
141-145.
22) 두에인 L. 크리스텐센, 『신명기 1:1-21:9』 (정일오 옮김) (서울: 솔로몬, 2003),
750; 참고. 강성열 외 14인, 『신명기』 (서울: 감신대출판부, 2004), 374-375.




소형근,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185
‘마르제아흐’(marzeaḥ)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구약성서에서
이 단어는 2회 사용되고 있다(암 6:7; 렘 16:6). 본래 ‘마르제아흐’는
‘부르짖는 소리’(cry) 혹은 ‘술 마시고, 떠들어 대는 환락의 소리’라는
뜻이다.23) 이 마르제아흐는 초상집에서 행해지는 애곡(哀哭)과 같은
행위로, 포우프(M. H. Pope)는 이 마르제악을 “죽은 자를 위해 잔치를
여는 조합”이라고 규정했다.24) 마르제악 제도는 회원을 두고 있었고,
회합장소가 있었으며, 술을 마시는 행위와 수호신이 있어서 상속의
문제도, 왕을 인준하는 문제도 여기에서 결정했었다. 이 모임은 성읍에
서 정기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마르제악 제도가 에블라 문서와
우가릿 문서, 페니키아 문서, 엘레판틴 문서, 나바티아 문서, 랍비
문서 등 고대 근동에 매우 광범위하게 시행되던 제도였다.25) 마르제악
회원들이 죽은 성자(聖者)나 혹은 죽은 영웅을 섬기는 이유는 “회원으
로서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고대의 죽은 영웅에게서 유래한 정통성을
지닌 합법적인 존재였고, 동시에 그런 영웅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려는 욕구를 이 제의적 모임을 통해 분출”했던 것이
다.26)
고대 근동의 마르제악 제도의 사자(死者) 숭배 모습을 구약성서에
23) H.-J. Fabry, חזרמ (ThWAT V) (Stuttgart: W. Kohlhammer Verlag, 1986), 11-16.
24) M. H. Pope, “Notes on the Rephaim Texts from Ugarit”, in: Essays on the
Ancient Near East in Memory of J. J. Finkelstein, ed. by M. de. J. Ellis,
Memoirs of the Connecticut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19 (Hamden:
Archon Books, 1977), 166.
25) 윗글, 163-182.
26) 우택주, “마르제악 제도와 죽은 자를 위한 제의: 비교”, 「구약논단」 8집 (2000),
124-125.




186 신학과 선교 제54집
서도 그 흔적을 찾으려는 학자들의 시도가 있어 왔다. 히브리어 ‘마르제
아흐’(marzeaḥ)가 구약성서에서 두 번 나오는데 아모스 본문은 ‘외치
는 소리’(6:7)로 나오며, 예레미야 본문은 장례와 관련된 상가(喪家;
16:5)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우택주는 이 두 본문이 고대 이스라엘의
마르제악 제도를 대변한다고 보았다.27) 아센(B. A. Asen) 또한 이사야
28:1-6이 마르제악 제도의 폐해로 인해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이
왔고,28) 남왕국 유다도 그와 동일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보았다.29)
또한 주전 6세기 예언자 에스겔은 담을 허물고 문을 통해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모든 우상이 사방 벽에 그려져 있고, 장로 70명이
그곳에 서서 손에 향로를 들고, 향연이 구름 같이 피어오르는 신비한
제의를 경험하게 된다(겔 8:7-13). 애커만(S. Ackerman)은 이 또한
마르제악 제의였다고 주장한다.30) 구약성서에서 마르제악 제도가
매우 낯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미 고대 근동에서는 이 마르제악
제도가 보편화 되어 있었고, 이스라엘 또한 이런 제도를 모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고대 이스라엘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 마르제악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고대
근동의 마르제악 제도와 같은 명쾌한 예시가 구약성서에서는 부족하
기 때문에 고대 근동의 제도를 구약성서에 그대로 대입하기를 강요하
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경의 성결 법전(레 19:31)과
신명기 법전(신 18:11)에서 죽은 자의 영을 불러오거나, 죽은 자의
영과 대화하려는 자들을 금지하는 법 규정은 당시 민간신앙에서 있었
27) 윗글, 103-132.
28) B. A. Asen, “The Garlands of Ephraim: Isaiah 28:1-6 and the MARZEAH”,
JSOT 71 (1996), 73-87.
29) 우택주, 윗글, 127.
30) S. Ackerman, “A Marzeaḥ in Ezekiel 8:7-13”, HTR 82 (1989), 267-281.




소형근,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187
던 신접자들과 초혼자들의 제의행위들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31) 이러
한 예가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던 사울 왕 앞에 이미 죽은
자였던 사무엘의 ‘영’이 땅에서 올라온 사건으로 알 수 있다(삼상
28:11-14).32) 전쟁을 앞둔 왕의 두려움과 신앙의 영웅을 통해 신탁을
구하려는 시도33)가 토라의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시행되었다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민간에서 이런 토속신앙이 널리 퍼져있었다는 증거
가 된다.
2. 구약성서의 부활사상
죽은 자들이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돌아간다는 생각이나, 자기 열조에
게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사후 세계에 대한 고대 이스라엘의 관심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일부 본문들 중에는 죽은 자가 죽음으로
끝나거나 혹은 죽음의 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부활사상을 지적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 본문은 구약성서에서 자주 나오지
31) 구약성서에는 ‘무당’(출 22:18; 레 20:6, 27; 신 18:10; 사 57:3) 혹은 ‘박수’(레
19:31; 신 18:11; 삼상 28:3, 9; 왕하 21:6; 대하 33:6)라는 표현도 자주 반복되고
있다.
32)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이어지는 과도기에 고대 이스라엘의 최고의
지도자였다. 사무엘은 왕만 아니었을 뿐, ‘사사’(삼상 7:15-17)요, ‘선견자’(삼상
9:19)요, ‘선지자’(삼상 3:20)요, ‘제사장’(삼상 2:18)이었다. 사무엘은 마르제악
제도의 죽은 성인이나, 죽은 영웅 숭배의 대상이 될 만큼 충분한 자격을 갖춘
존재였다. 하지만 사무엘상 28장에서 땅에서 불러낸 사무엘의 영을 마르제악
제도의 일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구약성서의 자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 랄프 W. 클레인, 『사무엘상』, WBC 10, 김경열 옮김 (서울: 솔로몬, 2004),
459-460.
33) 사무엘상 28:11에 따르면 사울이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올리라고 말한다.




188 신학과 선교 제54집
않고 단 2회에 그치며(사 26:19; 단 12:2)34), 이 본문은 공교롭게도 묵시문학
의 장르에 속해 있다.
프로이스(H. D. Preuß)는 이사야 24-27장을 묵시본문(Die sog.
Jesaja-Apokalypse)으로 분류한다.35) 그는 이 본문을 포로 이후의
상황에서 나왔으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찬양으로 화답하는 긍정적
인 찬송과 함께 성읍에 대한 심판선언을 주로 다루고 있는 종말론적
단락들의 모음집으로 이해했다.36) 이런 종말론적 묵시 본문 안에서
하나님은 “주의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
다”(사 26:19)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본문을 부활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로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이스라엘의 미래적 회복을 의도하
는 것으로 봐야 할지?가 오랫동안 학자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주목해 봐야 할 것은 이사야 24-27장이 묵시문학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본문이라는 사실이다. 묵시문학은 두 가지 중심
주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우주전쟁을 통한 세계
심판(Weltgericht)37)의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
들이 성산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Heimkehr)38)이라는 요소이다.39)
34) 에스겔 37:1-14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이야기(5절)는 죽은 자의 부활을 의도했다기
보다 포로 상태에 있던 유다 백성들의 회복을 상징화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에스겔 37장의 본문은 구약성서의 부활사상 본문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참고. 마빈 A. 스위니, 『예언서』, IBT 구약학 입문시리즈 5, 홍국평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5), 199.

35) H. D. Preuß & K. Berger, Bibelkinde des Alten und Neuen Testaments


(5. Aufl.) (Heidelberg: Quelle & Meyer Verlag, 1993), 161, 164.


36) 윗글, 164.


37) 하나님이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고, 지면을 뒤집어엎으실 것이다(사
24:1). 그때 땅이 깨지고, 깨져서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려서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거릴 것이다(사 24:19).





소형근,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189
그런데 이 두 가지 요소가 이사야 24-27장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이사야 26:19에 나오는 죽은 자가 살아나고, 시체들이 일어난다는
표현은 전통적인 ‘스올 경험’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어쩌면 신약성서
의 부활사상이 태동할 수 있었던 모판이 묵시문학이었는데, 이런
묵시문학적 요소를 이사야 24-27장이 잘 갖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사야 26:19을 단순히 이스라엘의 회복40)을 꿈꾸는
의도로 이해하기 보다는 묵시문학적 요소의 일부로써 부활사상41)을
표현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42)
또 다른 묵시문학의 요소가 포함된 본문이자 부활사상을 드러내
고 있는 본문이 다니엘서이다. 프로이스는 다니엘 7-12장을 묵시문학
(Apokalypse)이라는 문학적 장르로 분류한다.43) 특히, 다니엘 12:1-3
은 ‘부활의 약속’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이 내용은 마지막 때까지
감추어야 할 비밀에 속했던 것이었다(단 12:4). 이 본문이 묵시문학적
요소들을 잘 갖추고 있다는 근거는 우주전쟁에 하나님의 세력인 천사
장 미가엘(Michael)이 등장하여(단 10:13, 21; 12:1) 하나님의 세계
심판을 주도하고, 또한 신실하고, 지혜 있는 자들은 구원을 받거나,
38) 종말의 날에 야훼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까지 하나하나 모으실 것이며(사 27:12), 그 날에 큰 나팔을 불고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 예루살렘 성산에서
야훼를 예배하게 될 것이다(사 27:13).
39) H. D. Preuß & K. Berger, 윗글, 164.
40) H. Wildberger, Jesaja 13-27 (BKAT X/2)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78), 995.
41) W. Rudolph, Jesaja 24-27 (BWANT 4) (Stuttgart: W. Kohlhammer, 1933),
18-32.
42) 참고. K. Liess, 윗글, 431.
43) H. D. Preuß & K. Berger, 윗글, 194.




190 신학과 선교 제54집
죽음에서 깨어나 영생을 받게 될 것이며,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들은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단 12:1-3). 그런데 폰티어스(N. Ponteous)는
이 본문을 저자가 죽은 자의 부활사상을 말하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계획하는 본문이었다고 주장한다.44) 그러나 다니엘 12장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묵시문학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 있는 본문이
맞다. 특이한 점은 다니엘 12:2에 선인이나 악인 할 것 없이 모든
“자는 자 중에서” 깨어나는 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자는 자’45)
라는 표현은 ‘죽은 자들’을 의미하고,46) ‘깨어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어 단어는 ‘키츠’(qîṣ)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KBL III, 1026). 즉, 다니엘 12:2은 천사장 미가엘의 우주전쟁을
통한 세상 심판 후에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일부는 “영생”(ḥayey
ʿolam)47)을 얻고, 또 일부는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ʿolam)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이스라엘의 미래적 구원과 회복을
다루는 주제가 아니라, 묵시적 종말사상에 근거한 개인의 부활을
다루는 주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구약성서에 나오는 죽은 자의 부활과 관련된 본문들(사
26:19; 단 12:2)은 공교롭게도 묵시문학적 장르에 속하는 본문의 일부
였으며, 내용적으로도 묵시문학적 요소로 해석해 볼 수 있었다. 따라서
44) N. Ponteous, Daniel (OTL) (London: SCM Press, 1965), 170.
45)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복수형(‘자는 자들’)으로 쓰이고 있다.
46) 존 E. 골딩게이, 『다니엘』 (채천석 옮김) (서울: 솔로몬, 2008), 537-539.
47) 구약성서에서 ‘영생’이라는 단어는 4회 사용된 반면(창 3:22; 시 133:3; 단 4:34;
12:2), 신약성서에는 47회 사용되었다. 그런데다가 구약성서가 ‘영생’을 ‘인간’에
게 적용시킨 경우는 단 두 본문(시 133:3; 단 12:2)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영생’이라는 주제가 구약성서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소형근,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191
이 두 본문은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래적 회복을
알리기 위한 주제라기보다는 종말의 때에 죽은 자 한 개인의 부활을
의미하는 주제로 보이며, 이러한 주제는 포로 이후 대두되었던 묵시문
학의 영향으로부터 온 것이다.
3. 야훼와 사후 세계
과연 죽은 자가 사후 세계에서 다시 이 세상으로 올라올 수
있는 것인가? 죽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죽은 자들을 관장하는 곳은 어디이며, 또한 누가 이들을 관리하는
것일까? 사후 세계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이 있을 수 있다. 일단 전도서
9:10에는 인간이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고 말한다. ‘일’은 히브리어 ‘마아세’(maʿ
asheh)로 ‘인간의 손으로 하는 노동’을 말한다. ‘계획’은 히브리어
‘헤쉬본’(ḥeshbon)으로 ‘계략’, ‘계산’을 의미하며 ‘어떤 계산적인 사
고활동’을 말한다. ‘지식’은 히브리어 ‘다아트’(daʿat)로 ‘인격적이며,
경험적인 지식’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마지막으로 ‘지혜’는
히브리어 ‘호크마’(ḥokmah)로 인간 경험의 전 영역을 망라하는 것으
로 전쟁의 전략을 실행하거나(사 10:13), 제사장의 의복을 만드는
기술을(출 28:3), 지도자들의 통찰력을(사 11:2) 말하기도 한다. 이처
럼 죽은 자가 가게 될 ‘스올’에는 생명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전도자
코헬렛은 이 세상에서 할 일들을 다하라고 말한다.48) 욥기 또한 ‘스올’
에 내려간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고(욥 7:9), 시편의
시인은 죽은 자는 ‘스올’에서 잠잠히 있다고 말하며(시 31:17), 아가는
48) 롤랜드 E. 머피, 『전도서』 (김귀탁 옮김) (서울: 솔로몬, 2008), 265.




192 신학과 선교 제54집
‘스올’이 잔인하고, 불길 같이 일어난다고 말한다(아 8:6). 아마도
이러한 묘사는 ‘스올’에 대한 고전적인 표현들에 해당한다고 본다.49)
그러나 이런 고전적인 ‘스올’의 세계에 대한 이해와는 달리, 주전
8세기 키르베트 엘-콤(Ḫ. el-Kōm)50)에서 발굴된 명문(Inschrift)에는
사후 세계를 주관하는 야훼를 소개해 주고 있다. 특히 키르베트 엘-콤
명문들 중에 세 번째 명문에는 부자(ʿashîr) 우리아(Uriyahu)가 이
명문을 기록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부자 우리아가 이것을 기록했다.
2. 우리아가 야훼 앞에서 복을 받기를 바란다.
3. 그리고 나의 보호자(=수호신)
그(=야훼)가 그의 아세라를 위해 그(=우리아)를 구원하셨다.
4. […]
49) 아모스 9:2(“그들이 파고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며”)에서 말하는
‘스올’에서 하나님의 손이 붙잡아 낼 것이라는 의미는 ‘죽음 직전’에 있는 자를
살리신다는 의미이지, 이미 죽어서 ‘스올’에 있는 자를 부활시킨다는 것이 아니다.
스위니는 아모스 9:2에 나오는 ‘스올’과 ‘하늘’의 개념사용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날 곳이 없음을 표현한다고 보았다. M. A. Sweeney,
Berit Olam: The Twelve Prophets (vol. 1) (Collegeville: The Liturgical Press,
2000), 270
50) 키르베트 엘-콤(Ḫ. el-Kōm)은 헤브론에서 서쪽으로 14km, 라기스에서 남동쪽으
로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며, 도굴꾼이 이곳 무덤에서 나온 명문 1번을
소개하면서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1967년 고고학자 디버(W. G. Dever)의
주도 아래 두 개의 무덤이 발굴되었고, 그 중에 세 개의 명문과 여러 개의 그림들과
짧은 어구들이 함께 나왔다. 참고. J. Renz & W. Röllig, Handbuch der
Althebräischen Epigraphik (Bd.1)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1995). 200.




소형근,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193
키르베트 엘-콤에서 발굴된 명문에는 야훼 신명이 들어간 신적인
이름(theophoric name)이 사용된 것으로 봐서(1열과 2열) 기록자는
야훼신앙을 가진 자로 볼 수 있고, 야훼를 복 주시는 이로 소개하고
있음을 볼 때(2열) 야훼 숭배자가 더 확실해진다. 이 글을 쓴 저자가
우리아 자신이라고 알려주고 있는데(1열), 문제는 우리아가 1인칭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3인칭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3열에서 구원의 대상인 ‘그’(him)는 우리아 자신을 의미한
다. 이에 대해 미트만(S. Mittman)은 우리아가 죽음 직전에 이 명문을
스스로 기록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51) 하지만 1열의 ‘기록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형태(הבתכ)는 능동의 형태(qal형)로도 번역 가능하
지만, 사역적 의미(kausative Bedeutung)로 번역해도 무방하기 때문
에 1열을 무덤의 주인인 우리아가 아닌, 다른 기록자에게 위탁하여
기록했다고 볼 수도 있다.52) 그런데 이 명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죽은 자가 야훼를 “나의 보호자”, 즉 “나의 수호신”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53) 이것은 우리아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자신을 보호하
는 수호신으로서 야훼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이 주전
8세기 고대 이스라엘 땅 안에 있었던 사자(死者)에 대한 민간신앙의
모습은 아니었나 추측해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모습은 구약성서의
야훼신앙과는 별개의 것이다.
51) S. Mittmann, “Die Grabinschrift des Sängers Uriahu”, ZDPV 97 (1981), 139-153.
52) J. Renz & W. Röllig, 윗글, 각주 3번. 이 명문을 우리아가 아닌 위탁받은 자가
작성했다면 3열의 “나의 보호자”라는 용어를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고대인들의 상위 5% 이내만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무덤에
글을 기록했던 자들은 특별히 위임받은 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53) J. Naveh, “Graffiti and Dedications”, BASOR 235 (1979), 27-30.




194 신학과 선교 제54집
Ⅳ. 결론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며(창 2:7), 하나님의 ‘생명 호흡’(창 2:7)으로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언젠가는
깨지거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운명론적 존재가 인간이었고,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명 호흡’은 창조주가 원하면 언제든지 거두어
가실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었다(시 104:29-30).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치명적인 한계를 인식할 수 있다.54) 구약성서에 나오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고대 이집트에 비하면 관심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약성서는 인간이 죽으면 ‘쉐올’, ‘보르’,
‘샤하트’, ‘케베르’로 내려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죽은 자는 ‘조상
에게로 돌아간다’ 혹은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족묘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 함께
매장하는 관습 때문으로 보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자가 사후에
조상들의 모임에 들어감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경에는 ‘신접자’와 ‘초혼자’의 행위에 대해 금지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레 19:31; 신 18:11). 이런 금지 조항이 있다는
것은 당시 죽은 자의 영을 불러오거나, 죽은 자의 영과 대화하는
행위들을 공공연하게 시행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일부 학자들이
죽은 자를 숭배하는 마르제악 제도를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구약성서에서는 고대 근동에 보편화된 마르제
악 제도를 명확하게 주장할 만한 내용이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돌의 신접한 여인이 죽은 사무엘의 영을 땅에서 불러오는 행위를
54) 박영범, “교회의 삶을 돕는 교회론을 향하여”, 「신학과 선교」 46 (2015), 77-115.



소형근,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195
통해 신접자 혹은 무당의 제의적 행위들은 보편화되었던 것으로 보인
다. 그리고 구약성서에서 부활사상을 말할 수 있는 본문이 이사야
26:19과 다니엘 12:2이다. 이 두 본문은 묵시문학이라는 공통된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미래적 회복을 의미하기보다, 묵시문학의
특징들 중에 한 요소인 ‘부활사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구약성서는 사후 세계인 ‘스올’을 생명이 없는 상태로 이해하기 때문에
이미 ‘스올’에 내려간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하며(욥 7:9), ‘스올’에서
죽은 자는 잠잠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구약성서 밖의 자료인 키르베트
엘-콤에서 발견된 명문 중에는 부자 우리아가 자신의 무덤에 야훼를
“나의 보호자”, 즉 ‘나의 수호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사후
세계에도 우리아 자신을 보호하시는 신으로서 야훼를 생각했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기록은 구약성서의 전통 야훼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자(死者)에 대한 민간신앙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196 신학과 선교 제5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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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근,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199
■ Abstract
The Death and the Afterlife of the Old Testament
So, Hyeong Geun
(Seoul Theological University, Old Testament Theology)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death and the
afterlife of the Old Testament. To begin with, this article deals
with human understanding, death understanding and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in the Old Testament. The conclusions
obtained here are as follows: Man is made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the breath of life(Gen 2:7), therefore man is fatalistic
being who must return to the ground, and if the Creator God
wants, he can at any time take away human life(Ps 104:29-30).
Compared to ancient Egypt, the death understanding of the ancient
Israel was not very interested in the afterlife. In this sense, the Old
Testament has few reference to the everlasting life(only in Ps 133:3;
Dan 12:2). Also the dead in the Old Testament goes to the fathers(Gen
15:15; Num 20:26) and to gather unto his people(Gen 25:8), and descends
to Sheol, Bor, Shahat and Qeber. This seems to be due to the custom
of ancient Israelite making family graves and burying them together,
and on the other hand, it seems that the dead are trying to continue
their national identity by joining a group of ancestors after death.
The laws of the Pentateuch prohibits the conduct of a consulter with
familiar spirits and necromancer(Lev 19:31; Deu 18:11), it can be inferred



200 신학과 선교 제54집
that these prohibitions reflected the popular faith of ancient Israel.
However, this is strictly forbidden in the core ideas of Israelite Jahwism.
There are two texts(Isa 26:19; Dan 12:2) that show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Both texts have something in common: Apocalyptic
Literature. Also the Old testament is almost silent on the description
of the dead, and the inscription of Ḫ. el-Kōm wrote God as ‘my guardian’.
Of course, this inscription does not reflect the traditional Jahwism
of the Old Testamentm, but it can be seen as a folk belief in the
dead.
주제어
죽음, 사후세계, 부활, 스올, 마르제악 제도
Death, Afterlife, Resurrection, Sheol, Marzeaḥ Institution
* 논문투고일 2019. 05. 11. 심사완료일 2019. 05. 14. 게재확정일 2019. 0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