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구원론, 보편주의, 만인구원론(Apocatastasis / Universalism)
1. 모든 존재자의 최후의 완전한 구원을 가리키는 헬라어이다. 만인 구원론, 혹은 보편주의라고도 한다. 이 이론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와 오리겐(Origen)과 같은 신학자들의 저작 속에서 발견되어 지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완전성을 강조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랑의 최후의 표현일수가 없다고 믿었다. 이러한 오리겐의 주장은 후대에 가서 정죄되었다. 바르트(KarlBarth)의 저작 속에서도 보편 구원의 이상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2. (1) 용례: 영어에서의 universalism이란 최소한 다음 세가지 의미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1) 가장 최근에 실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용어의 첫번째 뜻은, 어떤 한 국가나 민족이 하나님으로부터, 혹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한 신으로부터 특별한 보호와 은총을 누리는 특권을 소유한다는 생각을 배제하면서, 모든 국가와 민족이 단 한분이신 하나님께 실제적으로든 잠재적으로든 동일한 관계 속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보편주의'는 주로 바우르(F.C. Ba-ur)의 영향력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 대립개념은 particularism(배타주의)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민족 하나에 대하여 신 하나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견해가 표현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삿 11:24에서 여호사밧은 아모리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 이러한 일종의 배타주의가 보다 개방적인 사고로 커가는 단계들, 즉 처음엔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으로서 온 백성을 다스리시던 여호와의 통치로부터, 다음엔 이 세계의 유일한 신으로서 그 세력이 보편적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하는 백성으로 뽑으신 여호와의 통치에로 바뀌어가는 단계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구약성경에는 군데군데 메시야 대망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을 다른 민족들에게까지 확장시키려는 뜻이 표현되고 있다(예를 들어 사 19:23,25를 보라).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보편주의와 누가의 저작들의 보편주의의 차이점을 잘 알고 있다(갈 3:28, 골 3:11, 행 10:35, 17:24-28). 그러면서 이와는 대조적인 유대인과 유대적 기독교인들의 배타주의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들은 이방인에 대한 복음전도를 전적으로 불찬성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사도 바울이 강력히 비난하였던 그런 관습들을 이방인에게 강요하며 또 그런 분위기를 만들려 하였다. 또 신약성경에서 보다 보편주의화된 견해는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되어 모든 민족에게 미치게 될 구원의 선포로부터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에 대한 묵시적 환상과 그 문이 결코 닫히지 않을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에로 나아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2)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의한 은혜의 범위를 신학적으로 묻는 것과 칼빈의 선택과 예정의 교리가 복음의 명백한 목표, 즉 만인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묻는 것과 관계가 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다섯 요목들 가운데 두번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과 고난에 의해서 일반적인 모든 인류의 죄와 각 개인의 특수한 모든 죄들에 대한 속죄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중생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참된 신앙을 소유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도 이 은총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도르트 교회회의(1618년)에 의해서 오류로 정죄되었다. 하지만 이외에도 절대적인 예정이나 특수한 구원(칼빈의 입장을 말함)이라는 언어를 중재 완화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로는 소뮈르의 프로테스탄트 신학교 교수였던(1618-22) 카메론과 그의 제자이자 소뮈르에서 신학교수였던(1633) 아미로가 있다. 이 두 사람이 목표했던 바는 신께서는 도르트 신조에 나와 있는 것보다도 인류에게 보다 더 넓고 진정한 은총과 선의를 가지고 계심을 입증하려는 것이었다. 이 두 사람은 전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일반적 구속의지를 가정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실효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한 특수의지의 활용을 통한 강화가 요청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공로는 그 자체로는 충분한 것이지만, 모든 인간에게 효력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비록 (그리스도의 공로가 가진) 구원의 힘은 보편적이라고 하지만 그 적용만큼은 개별적이라는 것이다. 즉 일반의지는 (법령적) 의지가 아니라 (훈계적) 의지로서, 그것은 죄에 얽매인 인류에게는 전적으로 겨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구원의 보편성은 조건지어져 있고, 그 보편적 구원의 약속은 sub conditione fidei(신앙의 조건 아래)에 있다. 그런 뜻에서 모든 사람에게 대한 죄의 용서로서의 '객관적 은혜'와, 하나님의 특수 의지에 의해서 개인에게 적용되는 '주관적 은혜' 사이에는 위와 비슷한 구별이 있게 된다. 은총의 특별한 행위는 여러가지로 기술된 다. 즉 때로는 은총은 '효율적인 소명'(effectual calling)과 동일시되는 듯도 하고,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문맥에서 은총은 인간을 진리에 대한 지식에로 이끌어, 그 지식이 심정에 영향을 미쳐 그를 회개케 하는 그런 것을 일컫기도 하는 듯하다. 이 학파의 교리는 '조건적 보편구원론'(hypothetical universalism)이 라고 알려져 있다. 이 교리의 발표는 프랑스에서 아미로가 약간의 박해를 받는 결과와 스위스 개혁교회들이 소뮈르에 있는 신학교에서 자기네 학생들을 철수시키는 결과를 빚어냈다. 그리고 프랑스 정통 프로테스탄트 사상의 중심지로서는 세상에 있는 신학교가 등장하게 되었다. 아미로와 그의 친구인 폴 테스타르는 알랑송(1637년)과 샤랑통(1644-45년)에서 열린 프랑스개혁 교회의 교회회의들에 출두하도록 소환당하였으며, 심의 결과 그들에게 지워진 이단의 혐의를 모두 면죄받았으나, 이들에 대한 방면은 개혁교회측의 완고한 칼빈주의자들에 의하여 강한 반발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샤랑통의 목사이던 석학 쟝 다예(달라이우스)가 1655년 [Apologia pro duabus Synodis Nationalibus]를 저술하여 그들의 반박에 대하여 자기들의 입장을 증명하고 또한 변호하였다. 한편 고칼빈주의자의 주장에 대하여는 라이든의 교수 프리드리히 쉬판하임(1600-49년)이 [Disputatio de gratia universali](1644년)를 저술하였고 이어서 [Exercitati-ones](1646년)를 저술하여 변호하였다.
이 논쟁은 영국에까지 전파되었다. 이곳에서 소올즈버리 주교 존 데브넌트는 자기가 참석하였던 도르트 교회회의를 마치고 항변파와 전택설주의자(Su-pralapsarians)들의 주장을 조정하는 입장으로서의 '중도적 입장'을 추구하였다. 그는 1650년에 케임브리지에서 발간된 [Dissertationes due de Morte Chr-isti de Predestinatione]에서 [Gallicana Controversia]를 특별 참조하며 이를 수행하였다. 한편 존 오웬은 이미 보편구원론의 '오류'를 비난하고 있었으며 특히 자신의 익명의 저술 [Salus Electorum Sanguis Jesu](1648년)에서 '프랑스 교회들과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중도적 입장을 취하려는' 자들에 대하여 공격을 가했다. universalist라는 용어가 보편구속론 옹호자들에게 처음으로 적용한 사람은 오버다이어 하우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그는 1648년 [The Universalist Examined and Convicted]라는 제명의 저술물을 발표하였다. 이 논쟁은 키더민스터에서 활동하던 리처드 벡스터로 하여금 이미 붓을 들게 하고 있었다.
이 저술은 [Universal Redemption of Mankind by the Lord Jesus Christ]라는 제명으로 1694년 조셉 리드에 의하여 출판되었는데 그는 벡스터의 조력자로 일해왔던 사람으로 1657년에는 벡스터의 구술을 받아 원고를 정리하던 사람이었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시기 내내 '일반구속'의 교리가 초기 영국의 침례교도들에 의하여 가르쳐져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소위 특별선택의 교리에 반대하기 때문에 '일반침례교도들'이라고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의 첫번째 인물은 토머스 헬위즈(1550?-1616?년)로서 그는 암스테르담에 있던 존 스미드의 적은 회중에 대한 주요 지지자로서 스미드에 의하여 세례를 받았고 스미드가 1612년 사망한 뒤 영국으로 귀환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는 1611년 수 페이지에 불과한 문서를 [A Short and Plaine Proof by the Word and Workes of God...that all men are redeemed by Christ]란 제명으로 일반구속론에 대한 그의 의견을 발표하였다. 헬위즈는 런던에 있는 이 침례교파의 창시자이며 그의 출생 지방에서도 같은 교파 교회를 설립하였다.
3) 세번째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universalism이란 소위 '보편구원론자'라 불려진 교회들 및 인물들에 의하여 주장되고 있는 교리를 의미한다.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이 교리표방자들은 전인류의 궁극적 구원을 신봉한다. 이 교리에 대한 반대자들은 이 보편구원론자들에 의하여 부분주의자(partialists) 또는 한정주의자(limitarians)라고 불려지고 있다.
성경에 대한 논쟁에서 보편주의자들이 주장은 주로 다음에 제시하는 점들에 근거하여 결정되었다.
가) 하나님의 목적: 즉 행 3:21에 나타난 바 apokatastasis panton(만물의 회복), 한번 상실되었던 최초의 상태에 대한 회복이 분명히 제시되고 있으며 따라서 세상의 종말은 곧 세상의 시작 떄와 똑같이 된다는 것이다.
나) 그리스도의 직무와 사역에 의한 그 회복의 방법 및 허가: 롬 5:18의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히 2:9의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등의 성경 본문이 이를 뒷받침하여 준다.
다) 궁극적 구원의 성격: 고전 15:24-28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저의 발 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이 구원의 극치는 인간의 각 심령 속에 하나님의 내재에 의하여 도달된다.
(2) 교부들의 문헌에 나타나는 보편구원론: 기독교계에서 임박한 종말론 기대와 메시야의 천년 지상 통치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가자, 기독교계의 관심은 물질적 우주계를 제치고 대신 영적 영역의 진보과정을 포함한 이 세계의 과정에 대한 생각에로 쏠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영역에 관해서는 여러 형태의 영지주의에 의해 그들은 친숙해 있었다. 기독교적 플라톤주의는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는 제담 약속들을 희랍 철학의 많은 정신요소들과 결합시켰다.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철학자들이 수개의 거짓된 영지주의적 지식에 반대하여 하나의 진정한 영지주의를 발표하고자 작업에 착수하였을 때 이들은 구원에 대한 관념을 개인에 대한 규모로보다는 우주적 규모로 제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견해(주후 220년)에 의하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정화적 원리는 현실생활 이후에 이르기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망이란 인간의 혼이 그에 의하여 구속적 영향을 더욱 직접적으로 입게 되는 수단이며, 교정 및 회개를 통하여 이 영혼은 여러 국면의 영적인 발전과정에 이를 수 있는데, 그 최고도의 발전은, 무한한 선이며 사랑이며 진리인 존재와의 영원한 결합을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태초에 창조된 바의 하나님과의 유사성의 완성이다.
오리게네스(주후 254년)는 영혼이 정화적 원리에 대한 개념을 그 범위 및 세부적 해설 면에서 더욱 큰 진전을 보여 주었다. 그의 사상 내용은 클레멘스의 사상보다는 훨씬 고심한 흔적이 보이며 또한 훨씬 사색적인 깊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이 세계 내의 인간생활이 단지 하나의 사슬고리에 불과한 일종의 존재의 사슬을 생각하고 있었다. 영혼은 하나의 무한한 과거, 즉 영혼이 아주 다종다양하게 체험과 훈련을 쌓았던 그런 과거로부터 이제 현재에로 도래한다. 그리하여 이 영혼은 현재에서 자유의지의 특권을 활용하며, 한편 끊임없이 영혼의 구속을 위해 애쓰는 영적인 영향력에 대해 수용적이냐 혹은 거부적이냐에 따라 부상하거나 혹은 침몰한다. 오리게네스는 영혼들을 이끌어 모든 존재의 목표에로, 즉 하나님을 닮을 이룩하는 그것에로 이끄는 신적인 사업을 현생을 넘어선 미래의 아이온에게까지 확산시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종국적으로는 만유 가운데의 만유이시기 때문이다. 타락한 천사들과 마귀들도 인류와 함께 최종의 구원을 받도록 구조될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주후 541-543년, 유스티니아누스 통치시) 오리게네스 사상이 이단으로 파문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 파문 및 정죄를 당한 이유는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오리게네스의 견해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와 그 이후로도 정죄당한 이유는 그가 주장한 영혼의 선재설 교리와 사탄도 종국에 가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상을 주장한 때문이었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주후 394년)는 그의 궁극적인 모든 악의 폐기에 대한 자신의 중심견해를 가지고 오리게네스와 같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그의 말한 것을 살펴보자면, "만일 하나님이 현존하는 모든 것 안에 존재하려 한다면 악이 그들 중에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부활이란 단지 현재의 자연을 그 원상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발원된 어떤 것도 하나님의 왕국으로부터 탈락될 수가 없다. 만물들과 혼합 되어진 악이 소멸시키는 불에 의하여 용해되어 없어졌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을 보았던 만물은 악이 들어오기 이전의 상태인 태초의 그와 같은 상태로 될 것이다.
이와 똑같은 견해가 알렉산드리아의 디디무스(주후 395년)에게서도 취하여 졌는데, 그는 명백히 오리게네스가 가지고 있었던 악마(사탄)의 회개설을 찬성하는 입장을 보여 주고 있었다.
후기 동방교회 교부들 중에 오리게네스주의에 대하여 반대론을 펴고 있던 한 사람으로 몹수에스티아의 데오도루스(주후 428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그는 죄와 죄의 형벌이 하나님의 도덕적 목적에 사용되는 대행자, 즉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지식과 회개에 이르게 하는 유도적 역할을 하여 사악한자의 회복을 촉발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사상의 흐름은 재차 9세기의 요안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주후 877년)의 사상 안에서 범신론적 신정설이 형태로 표면에 대두되었다. 그는 일종의 복잡하면서도 또는 어떤 면에서는 불일치적인 사상적 도식의 결미에 만물이 신성에로 흡수되는 것을 말했는데 악과 사망과 불행이 결국에 가서는 선과 생명과 축복으로 변형이 될 것이며 consummatio mundi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주적 구원론 신앙의 형태를 띤 경향이 종교개혁을 바로 앞둔 시기에 다양한 형태의 교리 및 신앙형태로 연결되어 나타났는데, 예를 들면 이 신앙경향은 자유정신 형제파가 취하고 있었던 도덕률 폐기론에서 그리고 알바넨시아의 카다리파에게서 보여졌던 광신적인 금욕주의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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