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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성결교회의 역사의식- 이명직, 이 건의 종말신앙을 중심으로

은바리라이프 2020. 6. 16. 08:27

초기 성결교회의 역사의식

- 이명직, 이 건의 종말신앙을 중심으로 -

 

 

 

이신건

 

들어가는 말

성결교회는 '역사의식'이 약하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역사의식의 결핍 혹은 역사도피주의는 비단 성결교회에만 두드러지는 현상은 아니다. 이미 한국에 기독교를 전래해 준 선교사들의 메시지 자체가 소위 '복음'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종류의 역사성, 사회성을 가급적 배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선교사들의 기독교 복음이해의 근원을 캐낼 처지는 못된다. 그러나 본인의 짧은 이해로서는 그들의 선교전략 그리고 식민제국주의 팽창 등의 요소들이 깔려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물론 한국의 억압적 상황,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 등이 여기에 가세했음도 지적되어야 하겠다.

여하튼 선교사들의 메시지의 비역사성의 한 측면으로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심각한 '하나님 나라의 망각증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메시지에서 개인과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복음의 기본적 핵심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 건너온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갖는 역사성에 반발한 나머지 이를 지나치게 개인화, 내면화 혹은 내세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것을 강하게 배제해 왔다.

성결교회의 설립과정도 대체로 한국 기독교의 형성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결교회의 메시지의 근간을 이루는 전도표제인 '사중복음'도 성결교회의 신앙구형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비록 '사중복음'은 루터의 지나친 '칭의중심'과는 달리, 그리고 '성결론'을 축으로 삼는 웨슬레의 복음이해와는 달리, 루터나 웨슬레에게서 그다지 강조되어 있지 않은 '신유'와 '재림'에 대한 신앙을 가미하여 '온전한 복음(Full Gospel)을 표방했지만, 선교사들이나 초기 성결교회의 지도자들의 사중복음 이해도 결국 다분히 개인구원 중심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탓인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라는 한국의 3대 교파 중의 하나라는 의식에도 불구하고 성결교회는 한국교회사의 페이지에 기록될 만한 역사적 업적을 남긴 것이 없다는 자책감과 열등의식을 안고 있다. 오히려 최근에 들어서는 성결교인뿐만 아니라 타교단의 역사학자들도 성결교회의 친일적 행각을 들추면서 부끄러운 면을 폭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한 송기식 목사의 논문 '한국 성결교회의 일제수난사에 대한 바른 이해'(활천 442호, 1990. 5)는 유익한 자료와 시사적 입장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여하튼 여기서 본인은 다시금 이 문제를 다룰 입장은 아니다. 단지 본인은 일제시대의 성결교회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이명직, 이 건, 두 목사의 글들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그들의 역사의식을 조명하고, 그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초기 성결교회의 역사의식을 읽어내고자 한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더 폭넓은 연구를 위한 작은 기고로서 기여하길 원할뿐이지, 초기 성결교회의 역사의식에 대한 충분한 해석이기를 자처하진 않는다.

 

I. 이명직, 이 건의 역사의식의 기본특징


1. 임박한 종말의식과 재림신앙

이명직, 이 건 두 인물의 역사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그들의 종말신앙이다. 그들이 쓴 글들 중에서 시대를 의식하고 역사를 해석하는 입장은 종말신앙을 통하여 표출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역사의식은 대부분 종말신앙을 통하지 않고서는 드러나지 않을 만큼 그것과 밀접히 짜여져 있다. 재림신앙은 사중복음의 한 요소이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신앙의 중요한 한 항목이지만, 특히 일제시대의 억압적 상황에서 재림신앙은 역사적 비극의 극복과 신앙인의 위로로서의 기능을 크게 했다. 예를 들면, 길선주 목사는 '요한계시록의 종말 해석'의 붐을 일으켰다. 묵시문학도 유대인의 처참한 역사적 질곡 속에서 이의 혁명적 극복에 대한 신앙을 표현함으로써,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었다.

이명직은 자신의 시대를 마지막 때의 징조가 각 방면에서 드러나는 시대로 의식하고 있다.

현 시대가 대환란이 갓가온 시대인 것을 알 수 잇나니라. 주께서 말세의 징조를 말삼하실 때에 (1) 예수의 일홈으로 교파가 만하질 것, (2)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잇을 것, (3) 각국의 혁명란이 잇을 것, (4) 반기독운동이 잇을 것, (5) 기근, (6) 온역, (7) 지진이 잇을 것을 예언하섯는대(마24, 눅21), 지금 세계의 상태를 보면 아직 대환란은 니러낫다고 할 수 없스나 장래 대환란의 준비로 이 모든 기미(氣味)가 완연히 나타낫나리라... 우리가 한가지 생각할 것은 지금은 곧 마지막 때인 줄 알 뿐 아니라 말세조짐(兆朕)이 각방면으로 유감업시 나타난 것은 사실이라. 우리의 실제문제는 무서운 대환란을 격지 말고 곳 에녹이 홍수의 환란을 격지 안코 승천함과 갓치 공중에 휴거되기를 준비할지니...(주1)

이 건에게도 당대가 마지막 때일 것이라는 종말적 위기의식이 나타난다.


노아에게 말삼하시던 성신께서 모든 사도를 통하야 이 시대의 파멸도 에언하고 잇는 것이다. 바울은 '남은 때가 얼마되지 않이 하엿다'(고전 7:29)고 하엿으며 요한은 '지금은 마지막 때라'(요일 20:18) 하엿으며 이제 베드로는 만물이 마지막이 갓가 왓다 하엿으니 비행기를 자랑하고 군함을 자랑하고 대포를 자랑하고 라디오를 자랑하고 각양의 예술을 자랑하야 시대의 복지를 꿈뀌고 잇는 현대는 실로 위험하다... 지금은 참으로 마지막 때일다. 정치계로나 교육계로나 산업계로나 다 종국이 닥첫다. 금후는 건설이 파멸에 도라갈 것이요. 문명이 지옥이 될 것이다... 지금은 시대의 종말일다. 열국이 쟁웅(爭雄)한다. 특히 근래 일중충돌(日中衝突)은 세계대전란의 전조가 않인가 크게 주목할 일이다... 우리는 세계의 육해공군이 다 아마겟돈 대전쟁을 예비하고 잇는 줄 아는 것이다.(주2)

그런데 이 건의 임박한 종말의식은 당대의 시대적 정황에 대한 묵시적 해석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는 종말을 세대주의자처럼 시대경륜적 필연의 과정으로도 본다.

시대를 구별하여 말하면 천지창조로부터 노아홍수 때까지 약 2천년이오, 노아 홍수로 기독강세시까지 약 2천년이오, 기독강세 후 현금까지 2천년이 갓가워온다. 그러면 우리 성경상으로 보면 현대는 세계말이라 할 것이다. 창세 후 6천여년인대, 앞헤 잇는 천년시대를 통산하면 7천년이 되는대, 이는 곳 타락된 인류와 저주밧은 우주회복의 완전 수적 실현으로 볼 것이다.(주3)

이 건은 종말시대의 대환란에 이어 올 세계를 정의와 평화로 세계로 보고 열렬히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

아 기독의 재림은 실로 전 우주의 기대일다. 이 세계는 하로라도 속히 정의의 통치자가 나타나야 되겟다. 성서에 '실로'가 임한다(창49:10)고 하엿으니 이 실로의 뜻은 '평화의 人君'이라는 뜻일다. 그런즉 실로는 세계를 정의와 화평으로 통치하실 기독을 가르칠 것일다. 전세계는 이 실로의 임함으로하야 평화가 실현될 것이니 이것이 곧 성서의 세계관인 동시에 또한 우리의 세계관일다... 원컨대 실로여 속히 나타나시옵소서 아멘.(주4)

인류의 이상은 영원한 평화의 세계를 꿈꾸며 만물의 신음은 영원한 자유의 영광을 바라고 잇다. 이는 전우주의 기독재림 촉성운동일다. 인류의 평화의 이상을 실현하며 만물의 신원의 간원을 해결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잇는 것이다. 산천도 이를 기대리며 초목도 이를 기대리며 금수도 이를 기대린다. 더욱이 구속함을 엇은 성도는 특히 이에 대한 간원이 잇는 것이다. 아! 속히 그리스도의 평화의 세계가 나타나기를 기대린다.(주5)

2. 역사과정의 비관적 파악

이명직, 이 건 양 인물에게서 공통되는 또 하나의 확신은 역사와 우주의 과정이 멸망의 길을 밝는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인류의 타락과 죄성에 근거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심판도 염두에 두고 있는 확신이다. 이명직은 당대의 역사를 머잖은 종말 앞에서 멸망을 자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를 경고한다.

모든 나라들이 큰 재앙이 얼마 아니 되여서 자기의 머리 우에 떠러지려 하는 것도 아지 못하고 복을 구하기에 급급하며 혹 일신의 향락을 구하며 가정의 번영을 구하며 부국강병책을 연구하며 군함대포를 제조하며 문명의 세력으로 사회를 개량하야 이 사회를 하여곰 장차는 황금시대가 되게 하리라는 몽상을 하며 모든 사람들이 죄악 중에서 말하기를 '평안하고 튼튼하다'고 할 때에(살전 5:3) 아해 밴 여인에게 해산기약이 홀연히 임하는 것과 갓치 멸망, 곳 대환란이 부지불각 중에 임하게 되나니라(주6)

특히 이 건에게서 비관적 역사파악은 세계사의 과정이 부패와 후패의 과정을 밝는다는 역사법칙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릇 창조함을 받은 만물은 다 후패의 노예가 된 것이다. 일월성신도 그러하고 산천초목도 그러하고 조수곤충도 그러하고 지어인생(至於人生)도 그러하다. ...아! 우주는 후패의 고에 신음한다.(주7)

대저 문명의 종국은 타락과 파멸인 것은 역사의 법칙일다... 문명의 이기를 발명하야 자연을 극복하는 줄 자신하는 모든 과학가 너희들도 큰 심판이 임할 것을 생각하여야 되겟다.(주8)

 

3. 문명 비판

임박한 종말의식과 이에 근거한 비관적 역사파악은 문명비판으로 이어진다. 이명직은 직접 문명을 비판하기보다는 문명과 접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

왜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를 들고 바로 싸호지 못하고 십자가를 숨기고 철학, 과학을 대신하는가 곳 그것이 타협의 수단이다... 왜 직접전도에 주력하지 안코 유치원, 야학갓흔 결과도 업는 일에 노력하는가 하면 전투력을 일허버린 자의 일이다...참생명이 잇는 교회는 싸호나니 지금까지 허공을 치는 역사를 긋치고 직접전도에 주력하라.이단과 싸호라 죄악과 싸호라.(주9)

이 건은 특히 노골적으로 맑시즘적 유물사상, 상업과 맘몬주의를 비판할뿐만 아니라 사회개혁과 의식 교육 등의 인간적 노력도 무익한 것으로 본다.

과연 세계의 평화는 군비축소, 현사회제도개혁 등으로 말매암아 올 것이 아니다.(주10)

현대는 실로 홍수전 문명과 갓치 유물사상이 고도에 달한 것이다. 현대인의 정신은 다 맑스로 구주를 삼는데 도라간다. 동맹파업, 소작쟁의는 소위 '빵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초하엿다. 저들은 사람이 악하여지는 것이 사회제도의 불공평이라 하며 의식주의 불만족이라하야 환경을 변혁하고 의식을 해결하면 곳 황금시대로 화할 줄 꿈뀌는 것이다. 아 그렇다. 이것은 다만 헛꿈을 뀌며 잠고대하는 사람의 소위(所爲)인 것 뿐이다. 환경이 사람을 거룩케 하며 악하게도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생애는 그 시대가 그렇게 하엿는가, 않일다.(주11)

이갓치 부호의 세력이 왕성하면 그 국가의 종교와 정치와 도덕은 반다시 퇴폐하여 가는 것이다. 금일 교회 내에도 무엇으로 속화가 드러오며 교역자의 타락도 무엇으로 말매암아 오는가. 즉 부호에게 말매암아 오나니 엇던 교회에는 돈목사, 돈장로, 돈집사가 잇는 것이다... 부호로 사치가 생기며 안일이 생기며 따라서 음행이 생기는 것이다... 부호여 그 보물을 하늘에 일을 행하면 복일다.(주12)

과연 현시대에 종교, 교육, 정치, 산업 등 제방면에 세력을 뻐치고 잇는 것은 상업이라는 큰 왕일다... 아 상업이라는 이 세력 안에는 종교는 업고 순진한 도덕도 볼 수 업는 유물, 유리(唯利)의 대폭군이 주장하나니라.(주13)

 

 

II. 평 가


1. 긍정적인 면

임박한 종말의식과 재림기대, 역사만물의 비관적 파악 및 문명(혹은 시대정신)비판은 신앙적 경성을 일으키고, 영혼구원과 성화를 향한 열정을 자극한다. 이명직은 머지 않은 재림을 기대하면서 대환란을 피하고 공중에 휴거되도록 준비하라고 촉구하며(주14), 안일이나 세상과의 타협을 경종하면서 싸울 것을 호소한다(주15). 그리고 그는 휴거될 자의 자격으로서 성결한 생활을 강조한다.

그러면 엇더한 사람이 휴거될 자뇨 하면 '음녀'로 더브러 더럽게 하지 아니 하고 정절이 잇는 자로 어린 양이 어대로 인도하던지 따라가는지라. 뎌희가 무리 중에 구속함을 엇어 처음 닉은 열매가 되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드린 바 되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업고 흠이 없는 자더라. 이와 갓치 그 심령이 성결하야 세속에 얼매임이 업서야 주께서 공중에 임하실 때에 휴거될지니라.(주16)

이 건도 향락주의, 세속주의를 경고하면서 세속에 초연한 성결한 삶을 강조한다.

경성할지어다. 그러면 빵문제, 자유연애, 상리(商利)주의로 충만하엿던 노아, 롯시대를 계감삼아 우리는 이러한 현세향락주의 곳 사두개적 누룩의 감화를 밧아 세상일만 생각지 말고 오직 신앙직선으로 심령적 생애를 계속하시길...(주17)

우리들은 엇더한 경우일지라도 속화와 타협할 것 업시 오직 초연한 성별의 생애로 지내여야 되겟도다. 뎌 진흙 속에서 올나 온 연화를 보라. 일호의 더러움과 아모 상관업시 초연히 그 아름다움을 보전하나니 성도의 생애도 세상에 처하야 이러한 것이다.(주18)

임박한 종말기대의 특징을 띠는 초기 성결교회의 두 지도자의 역사의식은 내면적 영성의 촉발과 경성, 성별된 생활에 기여하였고, 직접 전도를 통해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교회로 하여금 싸우도록 독려함으로써, 성결교회의 부흥에 촉매가 될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예수의 복음과 초대 교회의 선포도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임박함에 의해 각인되어 있고, 이러한 종말론적 완성의 복음은 한편으로는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회개하기를 촉구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과 해방의 미래를 향해 열려 있게 만들었다. 암울한 일제의 무단정치와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우리의 신앙선배들은 종말론적 역사의식을 견지하고서 교회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어 왔으며, 각성과 전도를 촉구했다. 비록 그들의 역사의식은 시대적 환경과 제한된 성서 지식에 의해 제약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비역사적'이지는 않았으며, 그들의 신앙도 결코 탈세계화나 피안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상에서 심판을 통해 도래하는 평화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재림에 대한 신앙을 생생히 견지했고, 이를 통해 역사적 고난의 극복과 그리스도인의 승리를 확신했다. 만약 이러한 신앙이 없었다고 한다면, 고난받는 교회는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2. 부정적인 면

그러나 그들의 종말의식은 지나치게 결정론적인 묵시적 종말론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 앞에서 능동적으로 역사에 참여하고 역사를 변혁하려는 의지가 결핍되어 있었다. 결정론적, 비관적 역사파악은 개인의 경성과 개인전도 이외의 다른 적극적 노력의 대안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개인의 중생과 성화에 제한함으로써, 선교영역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물론 예수도 진보주의의 제창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분명히 비관적인 결정론자도 아니었다. 그의 예언자적 종말선포는 하나님 나라의 선취 형태로서 새로운 삶의 형태(죄인들과의 개방된 친교, 식탁공동체, 지배와 착취, 소외와 가난이 없는 삶의 구현)를 창조했으며, 제도악과 충돌하였다(귀신추방, 부자비판, 성전체제에의 도전, 로마제국과의 갈등).

이에 반해 두 지도자들의 역사의식은 오직 개인적 경성과 성결만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비록 그들도 간접적으로 군사적 대립과 살인, 포학 등을 지적하면서 일제의 폭압적인 지배를 비판하였지만, 묵시적 언어가 담고 있는 현실저항 의식이 상당히 추상적인 것으로 변하였으며, 순식간에 휴거되어 구원받기를 바라는 수동적 자세가 그들의 심성을 강하게 지배하였다. 그리고 세상에 오염되지 않은 채 거룩하게 살고 세상에 대해 초연하게 살려던 그들의 자세는 세상 속에서 책임적으로 살고 세상을 구원하려는 자세(세상의 소금, 성결의 누룩)를 억압하였으며, 군비축소나 사회제도 개혁, 의식교육, 문명적 이기의 발전 등 인간적 모든 노력은 결정론적이고도 임박한 종말론 기대 때문에 완전히 무시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비(非)역사적이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많은 점에서는 '초(超)역사적인' 신앙특징을 보여 주었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성결교회의 신앙구형과 역사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

 

(주)

 

1. 이명직, 대환란시대, 활천 50호, 제5권 1호, 20.

2. 이건, 시대의 종말, 활천 113호, 제 10권 4호, 182 ff.

3. 이건, 시대의 전감, 활천 63호, 제 6권 2호, 71.

4. 이건, 시대의 종말. 184.

5. 이건, 우주의 신음, 활천 76호, 제 7권 3호, 129.

6. 이명직, 대환란시대, 17.

7. 이건, 우주의 신음, 128f.

8. 이건, 시대의 종말, 182f.

9. 이명직, 전투의 교회, 활천 72호, 제 6권 11호, 568.

10. 이건, 타락한 인류의 진상, 활천 66호, 제6권 4,5호, 238.

11. 이건, 타락한 인류의 진상, 238.

12. 이건, 평민선지 아모스, 활천 104호, 제9권 7호 36.

13. 이건, 시대의 전감, 74.

14. 이명직, 대환란 시대, 20.

15, 이명직, 전투의 교회, 567f.

16. 이명직, 휴거, 활천 48호, 제 4권 11호, 16.

17. 이건, 시대의 전감, 74.

18. 이건, 정치가적 대에언자 다니엘, 활천 103호, 제9권 6호, 30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