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말씀묵상 #115
(제목) 믿음과 율법주의 /마17:22-18:4
예수를 믿으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믿음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수년이나 수십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옛말에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읇는다고 했는데 교회 생활 수십년을 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믿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믿음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천지 교회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며 그 믿음을 가져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일반교회는 구원받지 못한 바벨론교회라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일반교회에서는 그들의 믿음은 잘못된 이단신앙으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오늘날은 무엇이 정통신앙이고 무엇이 정통신앙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신자들에게 인분 먹여 세간을 떠들석하게 하고 있는 빛과 진리교회는 우리나라에서 정통보수를 자부하는 교단 소속입니다.
이 교회의 문제는 신천지가 그렇듯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의 사역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당했던 고린도서에 나오는 그런 고난을 훈련을 통해 겪어야 믿음이 성장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신천지교회가 성경을 알레고리로 풀어서 문제가 됐다면 빛과 진리교회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풀어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빛과 진리교회의 문제를 지나친 문자적 성경해석 때문으로 봅니다.
믿음이 아닌 것을 믿음으로 보는 것 중에 가장 큰 문제는 율법주의입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신앙을 좋다고 하는 많은 교회들이 율법주의를 따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문자적 해석을 하면 율법주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신앙의 삶 속에 옮겨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율법화 하여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술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는데 문자적 해석을 하는 교회는 "술 취하지 말라"는 이 부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율법화시킵니다. 그래서 술을 먹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되고 믿음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이며 이로인해 죽어서 징옥에 갈 수도 있는 것입닏다. 한국교회가 술을 금지한 것도 이러한 문자적 해석으로 인한 율법주의 신앙 때문입니다.
술 먹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믿음의 척도로 삼는 주일성수나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성수는 구약의 안식일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율법화 한 것이고, 십일조 역시 구약성경의 규례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율법화한 것입닏다.
앞에서 예를 든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에서 바울의 핵심은 술취하지 말라는 게 아나리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술취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설교하고 적용하여 신자들에게 성령충만을 받게 하려고 애쓰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충만은 율법주의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까 빛과 진리교회의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은 에베소4:12 " 성도로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청년시절부터 교회에서 엄청나게 봉사를 많이 했음에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셍우지 못한 것은 온전케 되는 훈련이 없었기 때문임을 깨닫고 목사가 된 후 자기 교회 청년들을 철저한 신앙훈련시켰고 이로인해 3000명이 넘는 대교회로 이루었습니다. 외적으로 보면 그는 성공한 목회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가 신자들을 교회 리더로 세우기 위한 방법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았으므로 훈련생들이 망우리 공동묘지에 모여서 서로 돌아가면서 나무에 달아놓고 39대씩을 매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수십가지 되는 성경적 훈련목록을 만들어 신자들에게 지옥훈련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의 일환으로 인분을 먹인 것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바울이 자신을 인분처럼 여겼다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인분을 먹어봐야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가를 알 수 있는 그런 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 교회 목사가 엽기적인 짓을 신자들에게 시켰다고 비난을 하지만 사실 문제의 본질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율법화시켜서 그것을 행하는 것이 믿음인 것처럼 세뇌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훈련을 시킨 훈련조교들보다 담임목사의 신앙관이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율법화시켜서 신자들을 그 속에 갇히게 만들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좋은 신앙으로 알게 하는 율법주의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이런 식의 목회를 하는 이유는 율법주의가 교회를 성장키는 강력한 효괄를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담임목사가 카리스마가 있으면 율법주의 목회는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이단 소리를 들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주의 신앙이 믿음이 아니라면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 신앙의 참된 믿음은 무엇일까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나 사도바울은 기독교 신앙의 최대의 적이 율법주의라고 말합니다.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면 올바른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그렇게 싫어하신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본문에서 예수님은 믿음과 율법주의의 차이를 말하기 위해 두 가지 비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낚시해서 잡은 물고기 입에서 돈을 꺼내어 세금을 내는" 이야기와 "천국을 어린아이에 비유한 것"입니다.
만일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율법화 시킨다면 그리고 이것을 믿음의 훈련으로 삼는다면 이러한 신앙훈련 목록이 생겨날 것입니다.
-바닷가에 가서 입에 금화를 물고 있는 고기를 잡을 때까지 낚시하기.
-어린아이같이 되기위하여 일주일에 한번은 유치원복을 입고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과 뛰놀기.
나는 빛과 진리교회의 리더쉽 훈련 목록을 보면서 왜 "성령충만을 받을 때까지 기도하기"와 같은 신앙훈련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이런 훈련을 했다면 지금처럼 예수님을 욕보이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은 것은 그가 성령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다가 생각지 않게 당한 일이지 율법에 따라한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두 이야기는 기독교 복음이 무엇인가를 가장 단순하게 보여줍니다.
세금을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묻습니다. "네 선생은 반세겔을 내지 않느냐?"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을 잘 지키지 않으니까 세상 법도 잘 지키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서 이런 질문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엉겹결에 "내신다"라고 대답을 하고 예수님께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직 세금을 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
베드로가 "타인에게입니다"라고 답하자. 예수님은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 것도 곤란하고, 금화가 든 고기를 낚기 위해서 날마나 바다에 가야 한다는 식ㅇ으로 해석해도 곤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세금내는 일로 골치아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가 해결하실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세금을 못내서 힘들어하는 어린아이는 없습니다. 그것은 어른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해야 할 모든 골치아픈 법적인 일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만의 방법으로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 뱃속에 있는 돈으로 세금을 내는 것입니다. 부모가 있는 어린아이들은 노는 일만 하면 됩니다.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하는 것은 노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이 그 다음에 나오는 "천국의 어린아이"의 비유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기독교 신앙은 "어린아이 같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같이 된다는 것은 법 없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서도 14세 이하의 어린이에는 형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또한 어린아이들은 법적인 행위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모든 법적 권한은 친권자인 부모에게 있습니다.
율법주의 신앙이 위험한 것은 무언가 율법을 정해놓고 그것을 반드시 지키라고 강요하고 지키게 하는 것은 어른들 세계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성경에서 기독교 복음을 한 마디로 가장 잘 나타낸 말씀은 요1: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런데 한글개역성경은 이 말씀을 율법주의 관점으로 번역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자녀에게 큰 권세가 주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교인들이 기독교인이 되면 엄청난 권세가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너댓살 먹은 어린아이에게 큰 권세를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만일 너댓살 먹은 아이에게 핵폭탄을 누를 수 있는 권세를 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생각만 해도 끔직합니다.
어른들이 모여있는 율법주의 교회의 특징은 위계질서가 분명하다는 것이며 그 꼭대기에는 담임목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해진 질서에 따라야 하고 특히 그 질서의 가장 꼭대이게 있는 담임목사의 말에는 절대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는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을 성경을 바탕으로 만든 법과 규례로 행사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어떤 행동도 합리화시킬 수 있으며 법적 처벌을 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빛과 진리교회도 이런 형태의 교회입니다. 그래서 복음적인 교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닌 것입니다.
조폭보다 더 무서운 집단은 어린아이들이 조폭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면 조폭행세를 하는 어린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조폭보다 더 무성운 것은 어린아이라서 사리분별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할 어린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사리분별이 없는 일탈행동을 할 때 그들의 행동의 어디로 튈지 몰라 더 무서운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아야 할 교회가 어른 흉내를 내면 이렇게 됩니다.
예를 들면, 신천지나 빛과 진리의 교회에서 처럼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전혀 말이 안되는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신앙의 명분으로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어린아이의 본질에서 벗어나 어른행세를 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행동을 하는데 정작 자신들은 아주 진지한 것입니다.
저들이 어린아이 신앙을 잃어버리고 어른처럼 행세하는 이유는 그들 공동체 안에 아버지 하나님이 안계시기 때문이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안계시기 때문이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율법중의 교회의 특징은 담임목사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 노릇을 하고 신자들은 담임목사를 하나님이나 예수님처럼 섬깁니다.
(기도) 한국교회가 올바른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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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T.LEE
교회를 셍우지 못한 것은--> 교회를 세우지 못한 것은
징옥에 갈 수도 있는 것입닏다. -->지옥에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떠들석하게 하고 --> 떠들썩하게 하고
에베소4:12 -->에베소서 4:12
39대씩을 매를 맞았다고 -->39대씩의 매를 맞았다고
강력한 효괄를 발휘하기 -->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한다는 식ㅇ으로 --> 한다는 식으로
14세 이하의 어린이에는 --> 14세 미만의 어린이에게는
5월 7일 오후 12:25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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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T.LEE
저들은 빛과 진리, 교회의 의미를 알았을까요? 하나님이며 복음의 본질도 모르지만, 교회라고 하는 의미를 크게 왜곡시킨 탓으로 엽기적인 가학을 자행한 것입니다.
5월 7일 오후 12:29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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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아멘~~
5월 7일 오후 12:39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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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리랏다
믿음에 관한 내용들은 교수님 의견에 적극 공감합니다. 교수님과 다른 의견은 역시 본문에서도 나오는 ou me 이중 부정 불변사입니다. 저는 천국에 들어가는 절대적인 기준이 어린아이들의 어떤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중 부정이 부정의 강조라기 보다는 부정의 부정이나 긍정의 강조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역시 이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문법적으로도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5월 7일 오후 2:11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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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T.LEE
살어리랏다 님--- ‘ οὐ μή ’는 ‘부정을 강화시키는 이중 부정 a double negative strengthening the denial’으로서 ‘not at all’ 또는 ‘certainly not’, ‘Never, never’가 되어 ‘결코 결코 아니라’가 되는 셈인데, 이것이 어찌 ‘certainly yes 절대 그러하다’라는 강한 긍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까?
5월 7일 오후 3:02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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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리랏다
강한 긍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로도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 같아서 드린 말씀입니다. 실제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한 것도 아닌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못들어갈 것이다라는 의미는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바람직한 해석은 아닌 것으로 여겨져서 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방법이 아니라도 하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가정법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가정법 현재의 경우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고 있고 부정과거시제에선는 순간적이거나 단속적인 것을 전제한다고 문법에서 정리하고 있는데 결코가 들어가면 지속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문맥의 해석에서 그렇게 보면 난제가 발생하는 일이 대부분이라서 그렇게 해석해보면 또 다른 이유로 설명이 가능한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저의 의견일뿐 정답은 아닙니다. 물론 성경을 함부로 해석하면 절대로 안되겠지만 성경해석에서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것입니다.
5월 7일 오후 3:14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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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T.LEE
"마 18:3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ye shall
not(οὐ μή) enter----" 네 - 항상 길을 열려 놓아야 한다는 그 취지는 맞는 말씀인 데, 그렇다고 더더욱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가 어찌 임의로 축소하거나 우리의 편의를 고려해서 해석할 수야 있겠습니까?
5월 7일 오후 3:18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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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리랏다
제 편의가 아니라 위의 답글에서도 제시했듯이 문법에서의 기록의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흐르는 전체 맥락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올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그릇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언젠가 인터넷에서도 esv성경 발행하는 곳에서도 2000곳 이상에서 성경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한 내용을 본적이 있습니다. 원본이 없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를 더욱 말씀이 그러한지를 베뢰아 성도들처럼 연구해보자는 의미의 글입니다. 성경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부분이 공감하는 다른 면에서조차도 교계의 눈초리가 매서워서 본질을 예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서 저는 그런 곳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운 입장에서 먼저 매를 맞아도 될 것 같아서 드리는 의견입니다..
5월 7일 오후 3:31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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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리랏다
가정법 현재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말해야 하는 것라고 여겨야 하고,
가정법 부정과거는 어떤 상황에서 한시적으로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문법적인 해석의 보편적인
이제까지 문법학자들의 결론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근거해서 문법적 해석으로는 ou me의 사용 거의가 부정과거라서 이제까지의 해석된 고정관념을 떠난다면 제가 의견으로 제시한 것처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기록의도에 더욱 가깝습니다. 저도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했지만 원어 성경을 공부한 이후에는 교파나 이전해석 모두를 제거하고 기록한대로만 보려다 보니 제 자신도 기존 신앙관과 충돌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신구약을 모두 해석하니 하나님의 뜻에서 결코 그릇된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러서 드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5월 7일 오후 3:41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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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최야곱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모든 성경해석의 오류는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1. 사람이 가르칠 수 없다.
2. 단, 성령을 받은 사람이 성령의 은사로서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자가 가르칠 수 있다.
3. 보혜사 성령을 받으면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보혜사 성령은 오순절에 제자들이 받은 "성령과 불"입니다.
이 성령을 받지 않고, 성경을 논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성령과 불"을 받지 못하셨습니까?
그러면 120명의 제자들처럼 금식하며 보혜사 성령을 간구하십시오.
아니면 성령과 불로 세례받은 주님의 종에게 안수를 요청하십시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죄들을 회개하여 마음을 깨끗이 한 후에 성령과 불을 사모하셔야 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들의 용서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성령과 불)을 받으리라.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들과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8-39)
ㅡ아멘입니다!!!
5월 7일 오후 8:52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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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주/집사/서울
살어리랏다 어린아이는 비유입니다. (그 의미는 설명이 필요없을 줄로 압니다)문자적 율법적 해석 운운하면서 뭔또 다시 글자꼬투리를 잡고 왈가불가 하십니까??
예수님 말씀을 다 열거해 보면 이율배반적인 것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 시간 그 상황 군중들,,,, 여러 변수 가운데 때와 상황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핵심을 강하게 어필하시고자 하심입니다. 누구보다 쉽고 일반적인 수준으로 설교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어린아이면 어린아이....로
그와 같지 않은 경우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단순히 그런 것으로 알아 듣는 청중을 대상으로 하셨을것입니다.
그 상황 그 설교에서 뭐 복잡하게 어린아이와같지 않은 방법으로도의 가능성을 생각하십니까?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하면 됩니다.
살어리랏다필자님 자신의 어린아이에 대한 관점에 치우친 복잡한 해석이라 여겨집니다.
5월 8일 오후 1:49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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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리랏다
예 멤버님께서 무슨 의미로 예기하시는지 알겠습니다.
믿음의 자녀들이야 어떤 구절로 설명을 어떻게 하더라도 은혜로 받으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호모순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독교를 공격하기 때문에 그런 모순에서 우리들이 먼저 연구해보고 그릇 해석한 것이 있다면 말씀의 기록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의견으로 글을 올린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을 100%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도 제가 무조건 옳다고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원어의 기록된 것을 보고 해석을 그대로 반영해보자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문자주의면 안되고 어떨 때는 기록 문자를 그대로 보아야 한다면 우리 교회 스스로 변증에 대한 신뢰도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저는 글을 올리는 이유가 누구를 공격하려는 이유가 아닙니다. 말씀의 기록의도를 서로 연구해보자는 의도입니다. 그리고 신구약 성경을 원어로 이어서 번역을 해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율배반이나 상호모순이 대부분 없어지더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일반적이고 쉽게 설교하셨다면 비유를 들어 설명하시려는 것을 마태 14장과 마가 4장의 비유로 설명하시는 이유의 목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저는 번역의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 감추고 듣지 못하게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지 그들이 주관적인 시선으로 보려해서 하나님의 본질을 바로 못보기 때문에 객관화 시켜서 고쳐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여깁니다. 문법적 해석이 그렇게도 번역된다고 생각됩니다)
이제까지의 번역도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만 우리안에서 가지고 있는 상호모순적인 해석은 은혜로 덮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서로 고민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마음에 불편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5월 8일 오후 2:33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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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리랏다
교수님께서 불편하셔서 탈퇴를 원하시면 멤버에서 탈퇴하겠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입장을 이해하고 이렇게 좋은 말씀으로 해석해주시는 것을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부분적인 이견이 있는 것을 의견으로 제시하겠다는 말씀을 가입이후에 드리고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5월 8일 오후 2:38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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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주/집사/서울
살어리랏다다양한 방면으로 많은 공부와 책 논문 등을 읽어보시고 연구해보시고 책을 내시거나 직접 전도하시면서 모임등을 통해 설파하심이,,,,,,
성경 한구절 한문맥에 대한 그 훌륭한 세계의 석학 신학자들의 이견도 다양하고 많습니다.
그 많은 석학들의 논문과 의견들을 다 섭렵하고 말씀을 전하고 해 보면 결국 단순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단순이 아닌 단순이지요.
성령 받은 믿음의 자녀라면 성경해석 또한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증명하심이 ~
5월 9일 오전 7:18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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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리랏다
예 충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멤버님께서 읽으신 책중에 제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거나 멤버님께서 해석의 깨달음에 어느 경지에 이르게 한 국내외 책을 추천해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
한글 성경에 대한 질문입니다.
위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어린아이가 세번 언급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만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는데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비교해서 큰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글 성경으로 단순히 보면 모순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 가는데 그런 자를 누구와 비교해서 더 큰자라고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위에서도 질문드렸지만 멤버님께서 말씀하신 쉽고 일반적인 설교와 마태 14장과 마가 4장에 나타나는 비유에 대한 해석도 함께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글을 올리면서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하면서 올리려 했는데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이해가 안되게 설명과 의견을 드린것 같습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께 기도해 보겠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는 것을 어떻게 받으셨고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말씀을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면 읽으신 분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입니다. 제가 한글 성경에서 느꼈던 것과 원어 성경에서 깨닫게 된 것의 차이가 많아서 그런 저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모두를 위하는 사랑의 마음으로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부끄러움이 없었음을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5월 9일 오전 9:43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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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철
아멘 감사합니다
5월 9일 오후 10:50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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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박성만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삶속에서 실천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것. 결코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산으로 올라가서 조용히 일생을 마치면 좋은데 예수님은 치열한 경쟁사회속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라니 참 환장할 노릇이죠 그래서 저는 매일 넘어집니다 그러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또 가야겠죠 다시 넘어질때까지.
5월 11일 오후 1:11 표정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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