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판넨베르크

서론

은바리라이프 2018. 1. 9. 11:08

서론


1. 신학 공부와 철학의 기능


철학의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한 역사적으로 형태를 갖춘 기독교 교리를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적으로도 기독교 교리의 진리 요청에 대해서 고유하고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성서에 대한 역사-비평으로부터 조직신학으로 넘어가려면 자명한 판단 형성의 전이라는 의미에서 철학적으로 형성된 의식이 아주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사안은 신학을 이런 저런 철학에 짜 맞추는 일이 아니라 신학적이며 철학적인 개념 형성에 종사함으로써 확대되는 문제의식에 참여하는 일이다.

  조직신학은 기독교 역사에서 볼 때 교부시대 이후로 늘 철학과의 논의를 통해서 발전해왔다. 이에 대한 사실적 근거들이 신학의 대상 가운데 들어있으며, 그런 근거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이제 곧 언급될 것이다. 또한 기독교 교리의 이런저런 형태에 대한 일종의 비판적 판단 형성은 이런 사실적 기초를 항상 고려해야만 한다. 이 경우에 이런 판단 형성은 각각의 철학적 사유형식의 테두리에서도 역시 관련되며, 따라서 철학적 문제 의식의 계속된 역사를 알아 가는 데서도 실행되어야 한다.

기독교 교회는 역사적으로 철학의 문제에 기본적으로 열중하려는 요구를 배척했다는 사실은 왜 많은 신학도들이 성서 주석으로부터 교의학 역사나 조직신학으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특히 조직신학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에, 그래서 결국 신학적 판단 형성의 근거를 추가적으로 제시하는 걸 배우게 된다면 기독교 교리의 주제에 대해 고유하게 판단을 내리는 일에서 영적인 자명성을 획득할 수 없다. 조직신학적 반성없이 주석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설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해석학의 질문들은 단지 미학적 판단을 통해서만 제어될 수 있다. 결국 설교자들은 자신이 어떤 고유한 판단의 난제들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을 짐짓 보여주기 위해서 근본주의에 치우쳐버리지 않으려다가 시대정신의 다변적인 유행에 휩쓸려버린다. 더욱이 우리 시대에 일반적으로 선포되는 설교가 조직신학의 과업에 대한 노력을 다시 게을리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슬픈 현상이다. 이 과업을 충실히 실행하려면 철학적 문제 지평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해야만 하는데, 이는 곧 어떤 조직 신학적 판단에 관심을 갖는가의 문제와 연관된다. 주석적, 철학적, 그리고 교의학적, 교리사적 이해가 연결됨으로써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질문에서 논증과 판단능력이 주어진다.


2.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의 핵심


기독교 신학이 애초부터 철학과의 교리적 논의에 돌입했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적 근거는 사도들이 선교적 사신을 하나님에 대한 선포로 시작했다는 점에서(살전1:9) 알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모든 현실적인 것들의 창조적인 근원에 대한 언급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적인 근원과 일치하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자명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비유대인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 신학은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인 언급을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연결시켰는데, 이 질문은 곧 신적인 현실성의 참된 형태에 대한 것이었다.1) 베르너 예거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것은 유럽에서 제기된 철학의 근원적 질문이었다.2)

철학의 근원은 종교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철학은 종교와 독립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종교적 전승에 대한 주장을 비판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발생했다. 이것은 철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해서 질문하는 경우에 다루어져야 할 아주 근본적인 실태이다. 이 실태가 철학자들의 의식에서 철저하게 작용하는 일은 그렇게 자주 있지 않거나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 철학은 크세노폰(Xenophanes) 이후로 이 실태를 오히려 뒤바꾸었다. 말하자면 철학적 진리를 종교적 전승 가운데서 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철학이 역사적으로 앞서 있었던 종교적 사실에 의존적이라는 것은 근대의 역사 의식이 제고되어 그 근본적인 의미가 발현됨으로써 그 진가가 인정되었다. 더욱이 철학은 자기보다 역사적으로 앞서 있었던 종교를 개념화한다는 헤겔의 명제를 통해서 강화되었다. 이런 명제를 통해서 헤겔은 철학을 신학과 이웃하는 기능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어디서 종교적 전통의 내용에 대한 신학적 반영과 구별되는지 뒤에서 다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서양철학의 근원에서 볼 때 종교적 전승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비판적이었다. 개개인들이 그것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에 많은 신들에 관한 종교적 전승을 언급한다는 것을 불신하게 되었다.3) 이 경우에 항해와 무역을 통해서 다른 문화와 신들에 대해 알게된 지식이 아마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스 신들의 기능과 다른 신들의 기능을 유비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기원전 6세기 고유한 신화적 전통에 대한 신뢰를 불신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갔던 소아시아를 페르시아가 정복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충격이 있었을 것이다.4) 어쨌든지 당시의 철학자들은 신들에게 전가하는 것을 자신들의 기능으로, 즉 인간이 세계 안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그 현상의 근원(arche)과의 관련에서 생각하는 것을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기능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신들의 탓으로 돌리는 그 이외의 특별한 것들을 근원의 기능과 비교했다. 이 경우에 이들의 중심 기능을 감당하는 신들에 대한 종교적 표상은 별로 고려의 대상이 안 되었다. 이 표상은 예컨대 신인동성동형론적이었다. 많은 신들은 코스모스의 단일성과 대립한다. 코스모스의 참된 근원은 오직 단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신만이 코스모스의 단일성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철학자들은 종교적 전통과 달리 세계의 신적인 근원으로 돌려야만 할 “참된 실체”에 대해서 질문했다.5) 이 경우에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상이한 주제들은 공동의 주제에 대한 각양의 변형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즉 변하지 않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무엇이 과연 참된 근원인가, 무엇이 과연 참되게 신적인 기능을 완성시킬 수 있는가. 물, 무한자, 공기, 이성인가?6)

철학은 종교적 전통에 대한 비판적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언급의 적법성을 아르케-기능의 증명 가능성과 연결시켰다. 이로써 철학은 민족 신앙의 신들에 해당되는 그 어떤 기준도 설정하지 않았는데, 설령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철학적 주제라 할 종교적 전승은 이 기준을 거부했을 것이다. 신들은 바로 세계 현실성의 근원이라고, 혹은 모든 것을 규정하는 전망의 근원이라고 주장되었다. 신들에 대한 표상은 이렇게 표상된 것들이 실제로 모든 것에 대한 근원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아닌지라는 관점에서 측정되어야만 했다.

헬라 세계에서 유대의 유일신론은 이미 다신적 민족 신앙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한 하나님에 대한 유대의 신앙을 확증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으며,7) 더 정확히 말해서 이미 제2이사야(사41:29, 비교 41:4, 43:10)가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야말로 바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말씀을 확증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이러한 주장으로부터 특별히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관할권이 발생하게 된다. 헬라파 유대교가 그랬던 것처럼 기독교도 역시 헬라 세계에서 모든 인간의 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사신을 선포하기 위해서 철학자들에게 접근하는 사명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그에게 돌아와야만 했다고 말이다.(살전1:9). 물론 이는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의 언급이 철학자들에 의해 신적인 근원으로 개발된 비판적인 기준에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신에 대한 철학자들의 가르침과 필적하만 한다는 사실을, 혹은 더 나아가서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으로 신적인 현실성에 대한 상이한 철학 학파들의 진술들이 기독교-성서적 하나님 이해와 항상 밀접하게 놓여 있지는 않았다. 즉 플라톤 학파의 철학자들처럼 가까이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기독교 신학자들에게는 철학자들이 신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신에 대한 성서 사신과 모든 시각에서 일치되지 않았다는 의식이 놓여 있었다. 따라서 철학자들의 주장과 논증적인 논의를 거쳐야만 할 과업이 제기되었다.8)


3. 신관과 세계 개념, 그리고 철학과 개체 학문 사이의 긴장


기독교 신학이 철학과 연관되는 가장 중요한 사실 기초는 근원적으로 나사렛 예수의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참되고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기독교 교리였으며, 그것은 지금까지도 역시 유효하다. 그러나 우선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일종의 특별한 테마를 특징짓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해 해야 한다. 고대 기독교가 다신교적 민족 신앙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가한 비판은 하나님 이해와 세계 이해의 상호 교환적 상관관계를 그 논증의 토대에 두고 있다.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은 모든 현실적인 것들의 창조적 근원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모든 현실적인 것들, 즉 인간과 코스모스의 유래와 연관해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유는 여전히 실제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나님과 모든 현실적인 것들의 전체성이 상호종속성과 상관적 연루성에서 상호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공허한 낱말이 될 뿐이거나, 아니면 사실적인 바탕이 없는 표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 표상은 예를 들어 신인동성동형론이나 종교적인 투사에 의한 결과로 비쳐지는 비판에 떨어진다.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은 채 세계와 인간의 현실성을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모든 현실적인 것의 전체를 하나님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전제에서만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철학은 자신의 과업을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이미 현실성을 전체 가운데서, 즉 코스모스의 단일성에서 생각한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 질문의 상대개념이었다. 아주 최근까지, 즉 니체 시대까지 하나님에 대한 사유와 세계 개념의 상대개념을 통해서 철학의 포괄적인 주제가 규정되었다.

오늘날 철학은 아주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포괄적인 과업으로부터 밀려났다. 인간이 그 안에 놓인 현실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괄해나가야 한다는 과업으로부터 퇴각하고 말았다. 이는 하나님과 세계라는 주제를 통해서 규정된 철학적 사유의 형태(게슈탈트)를 “형이상학”으로 특징화함으로써,9) 그리고 형이상학이 끝장났다고 언급함으로 그렇게 되었는데, 사실 이런 형이상학의 끝장이 어디에 있는지 별로 확실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렇다. 하이덱거에 따르면 니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꽁트에 따르면 이와는 반대로 실증 학문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며, 딜타이에 따르면 역사적 사유의 돌출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실성을 전체에서 생각하려는 철학의 전통적 과업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경향은 개개 학문이 독립되는 결과 때문 만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신에 대한 철학적 교리의 해체가 세계 개념의 단일성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주제로 더 이상 긴급하게 요청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바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적 신학의 전통이 상실되자 곧 세계 인식은 경험적 개체 학문의 다양한 통로 방식으로 완전히 위임되어버렸다.

세계 인식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경험주의적 개체 학문이 독립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확산됨으로써 오늘날 신학에게도 역시 이런 학문에 종사하는 일이 철학과의 대화보다 훨씬 요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 주어졌다. 따라서 심리학과 사회학은 인간적인 현실성의 보편타당성을 요구하는 데 필요한 이해로 나타난다. 이간에 대한 신학적 언설은 보다 확고하고 표준적인 주장을 위해서 철학보다는 이러한 이해를 고려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현존 현실성의 포괄적인 주제가 그 어떤 개개의 인간론적 훈련에 의해서도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개개 학문 방법론이 한 철학적 숙고로 발전되는 일이 없게 되는 경우이다. 이때 개개 사실 영역과 그 문제들의 철학적 주제가 이루어져야 할 완전한 전체성이 늘 고려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각기 개체 훈련의 확실한 토대를 별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한 예를 들자면 위르겐 하버마스가 자신의 책 “인식과 흥미”(1968)에서 다룬 대로 인식 이론적 질문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 방법의 사용이 그것이다. 여기서 인식이론의 문제점들은 각각의 주도적 인식 흥미라는 관점에서 연구되었다. 이는 이 문제가 마르크스의 영향을 충분히 받은 사회학자의 이념 비판적 표상에 접근해 있었던 것과 같다. 더구나 어떤 주장이 진리라는 사실이 그 주장 명제들을 인식하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진리의 조건에 대한 질문이 인간적 판단에 의해서 주장 명제로 던져지는 일이 없이 말이다. 하버마스는 뒤에 출판된 판에서 아주 자세하게 이 진리개념에 천착했으며 이것을 어떤 사회학적 관점에서, 즉 판단의 동의라는 관점에서 다루었다. 사회학적 전망에서 파생되는 인식 이론적 문제들의 해석에 상응하는 생각들은 생물학적 진화론의 사용이 인식 이론적 질문들을 다룰 수 있게 했다. 철학적 인식 이론은 개체 학문 단위로 이루어지는 모든 구체적인 인식이 인식에 대한 “가능성의 조건들”을 이미 전제하고 그거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고집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개체 학자들은 자신의 특별한 작업 영역의 일반적 유효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이미 철학으로서 표명하는 셈이다. 즉 더 이상 자신의 특별한 분야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물리학의 의미를 세계 현실성에대한 이해라는 관점에서 기술해야할 자연 과학자들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그들의 입장 진술은 기본적인 자연 과학이라 할 물리학에 대한 오늘의 교육세계가 바쳐져야할 존경심을 자주 얻게 될 것이다. 물리학이 세계 이해에 끼치는 광범위한 영향력은 물론 철학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그 어떤 부가적 조치가 없이는 전문가로서 물리학자가 누려야 할 권위를 통해서 은폐되면 안 된다. 영국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1988년도에 출간한 책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에서 시간에 대해 아주 중요한 점들을 언급했다. 이미 제목이 암시하듯이 시간의 유래에 대한, 혹은 시간의 역사에 대한 생각은 역설적인 성격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 자체가 이미 시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시간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의 생성 역사 대한 언급은 논리적으로 순환적이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인간과 세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개체 학문의 효용성은 개체 학문의 방법론과 결과의 철학적 반영이라는 차원에서만 적절하게 다루어질 수 있다. 금세기에 아주 적은 수의 철학자들만이 (베르그송과 특히 화이트헤드) 세계 현실성의 철학적 해석을 전제했다는 사실은 여기서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철학은 오늘날 거의 경험 현실성에 대해서 기본적이고 요점적인 방향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철학적 신학의 전통을 간과한 결과라는 사실이 이미 강조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세계 개념을 주제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철학의 입장에서 방기되어버리는 그 틈으로 다양한 개체 학문이 급박하게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이런 개체 학문의 대표자들은 자기 스스로를 철학화하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일방적인 방식으로, 또한 철학적으로 충분하게 반영되지 못한 방식으로 그렇다.

신학에게는 이러한 실태가 특별히 불만스럽다. 왜냐하면 신학은 하나님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인 세계에 대해서도 언급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상을 하나님에 대한 언급과 대상적 개념으로 언급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날 신학은 철학적 세계 해석의 대상에 대해서 적극적이며 비판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러한 대상은 오늘날 훨씬 멀리 떨어져나가 버렸다. 그러나 이 과업은 신학에게 여전히 주어져 있다. 철학이 지향하고 있는 그 방향에 아주 분명한 틈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함으로써 철학사에 대해서 훨씬 많이 공부해야할 자극을 받게 된다. 지난 시대의 철학이 현실성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이 과업을, 즉 오늘날까지 해체되지 않은 이 과업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또한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꼼꼼히 들여다보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곧 세계와 인간의 현실성에 대해서 정확히 들어맞는 전체 방향을 잡아나가는 과업이, 이 과업은 배척될 수 없는 것인데, 오늘날에도 역시 철학적으로만 수행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신학과 철학을 이질화하는 그런 모델을 간단히 받아들임으로써 야기된 상황들에 대한 반성을 뜻한다.


1)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졸고를 참조하라. “Die Aufnahme des philosophischen Gottesbegriffs als dogmatisches Problem der frühchristliche Theologie", in: Grundfragen systematischer Theologie 1, 1967, 296-346. 
2) W. Jaeger, Die Theologie der frühen Griechischen Denker, 1953. 
3) 이 문제에 관해서는 특별히 크세노폰의 단편 11-16에 잘 나와 있다. (F.J. Weber, Fragmente der Vorsokratiker, 1988, 68-70). 
4) F.M. Cornford는 자신의 중요한 저작인 From Religion to Philosophy. A Study in der Origins of western Speculation (1912) Harper Torchbook 20, 1957.에서 기원전 6세기 상업도시 밀레도에서 있었던 철학의 근원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항해 민족에게 있을만한 탐색과 모험의 고유한 정신이 바로 그 근원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143). 물론 여기에는 페르시아의 소아시아 정복에서 벌어진 정치적 붕괴의 시간적 경험이 전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탈레스는 이미 앞서서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Herodot Historie 1, 170). 
5) 이에 관해서는 각주 3에 인용된 예거의 책을 참조할 것. 
6) 이에대해서는 U. Hoelscher의 논문을 참조하라. Anaximander und die Anfaenge der Pjilosophie(1953), in: H.G. Gadamer(Hg.), Um die Begriffswelt der Vorsokratiker(1968), 95-176. 휄셔는 특별히 탈레스가 에집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한다.(126). 
7)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에대해서는 H.A. Wolfson이 충분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Philo, 2 Bde. 1947. 
8) 이에 대해서는 각주 2에 나오는 논문을 참조할 것. 
9) 이에대해서는 하이덱거가 슨 Über die ontologische Verfassung der Metaphisik, in: Identität und Differenz(1957), 7. Aufl 1982, 31-67.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