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모세오경

피 남편, 피 흘리는 남편 (출4:25)

은바리라이프 2014. 12. 18. 08:43
  피 남편, 피 흘리는 남편 (출4:25)
                
개역: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출4:25)
 
흠정역: 그때에 십보라가 예리한 돌을 취해 자기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 앞에 던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흘리는 남편이로다, 하매
 
KJV: Then Zipporah took a sharp stone, and cut off the foreskin of her son, and cast it at his feet, and said, Surely a bloody husband art thou to me.

 
모세가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에서 주께서 그를 만나 죽이려 하셨습니다(출4:24).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는 것이 목표였다면 죽이려고(sought to kill) 할 필요없이 그냥 단번에 죽이시면 그걸로 그만입니다. 주께서 그를 죽이려고 하시는 것을 모세와 십보라가 깨달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이것은 아마도 모세가 생사를 넘나드는 심각한 장애나 질병을 겪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것은 제가 개역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구절 중 하나입니다. 십보라가 모세를 "피 남편"이라고 했다는데 아무리 성경을 읽어봐도 도대체 피 남편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구절을 이해 못하면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가 다시 그를 가게 하셨는지(출4:26,27), 그 다음에 왜 모세와 십보라가 헤어졌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개역의 번역이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운 모호한 번역이라면, 다음의 번역은 성경 말씀의 본래 의미에서 벗어난 잘못된 번역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 당신은 피로 얻은 나의 신랑입니다(출4:25)
 
가톨릭: "나에게 당신은 피의 신랑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현대어: 당신은 참으로 나와 피로 맺어진 남편이에요
 
성경 어디에도 십보라가 피 값으로 남편을 얻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더구나 십보라가 자기 아들의 포피에서 흘러나온 피로 모세와 부부로 맺어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십보라가 모세와 부부로 맺어진 다음에 아들을 낳게 되는 것이지, 아들을 먼저 낳은 다음에 그 아들의 포피에서 나온 피로 남편과 맺어진다는 것은 누가 읽어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조지 워싱턴은 자기 아버지와 함께 만든 통나무 집에서 태어났다." 라는 문장과 같습니다.
 
성경의 전후 문맥과 관련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모세의 가정에 대해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4장을 읽어보면 모세가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웠다고 합니다(출4:20). 모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게르솜이고(출2:22), 다른 한 명은 엘리에셀입니다(대상23:15).
 
모세가 자기 아내와 아들들을 데려다가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 땅으로 돌아갔으며 하나님의 막대기를 자기 손에 잡았더라(출4:20).
 
그의 아들들은 결코 신생아가 아닙니다. 그들은 나귀를 탈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40세 즈음에 십보라와 결혼했고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의 나이가 80세이므로 아주 늦둥이를 낳지 않은 이상 그의 아들들은 이미 어느 정도 성장했을 겁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너희 대대로 모든 사내아이는 집에서 태어난 자든지 또는 네 씨에서 난 자가 아니라 타국인에게서 돈으로 산 자든지 난 지 여드레가 되면 너희 가운데서 할례를 받을지니라(창17:12).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레위 지파 출신 모세의 아들이 아직도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모세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자 십보라는 그녀의 아들들(sons) 중에서 한 아들(son)의 포피를 베어냈습니다. 즉 두 아들 중에서 한 명은 그 때까지도 아직 할례를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십보라가 어떤 여자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는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의 일곱 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제 미디안의 제사장에게 딸 일곱이 있더라. 그들이 와서 물을 긷고 구유에 채워 자기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출2:16)
 
이미 어릴 때부터 이교도들의 관습에 젖어있던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는 할례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남편 모세가 어린 아들의 몸에 칼을 대서 피를 흘리는 것을 볼 때에 그녀는 그것을 잔인하고 혐오스럽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처음에 모세가 큰 아들에게 할례를 행한다고 할 때에는 뭐가 뭔지 몰라서 그냥 하자는대로 했지만, 둘째 아들을 낳고 나서 그 아들에게도 할례를 한다고 하자 십보라는 또 연약한 어린 아이의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게 한다고 결사적으로 반대를 한 모양입니다. 결국 모세도 아내의 강경한 반대로 할례를 못하고 그냥 넘어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야 할 모세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역시 문제가 된 것은 할례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그분께서 그를 가게 하시니라. 그때에 그녀가 말하기를, 당신은 피 흘리는 남편이로다, 한 것은 할례 때문이었더라(출4:26).
 
십보라는 마지 못해서 아들에게 할례를 하긴 했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당신은 나에게 피 흘리는(a bloody husband) 남편이다"라고 한 마디 해 주었습니다. 십보라의 말은 공동번역이나 가톨릭역 등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는 당신과 피로 맺어진 사이예요." 라는 식의 사랑 고백이 아닙니다. 당신은 피비린내나는 남편, 피 흘리는 남편, 꼭 피를 보게 만드는 남편이라는 말 속에는 그녀의 불만과 남편에 대한 조롱, 이스라엘의 종교적 관습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출애굽기 4장 26절에서 십보라가 이 말을 내뱉은 후로 그녀의 모습은 잠시 동안 출애굽기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출애굽기 18장 2-3절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때에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전에 돌려보낸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녀의 두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그 중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더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타국에서 외국인이 되었도다, 하였기 때문이더라(출18:2-3).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두 아들들은 모세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로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는 아내를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데리고 갈 수가 없었을 겁니다. 원치 않는 아들의 할례 문제로 잔뜩 부어있는 십보라 역시 이집트에 가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을 다시 자기 장인 이드로에게 돌려보냈습니다(출18:2-3).
 
즉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이집트에서 남편과 함께 고난을 당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행하신 그분의 크신 권능과 표적들을 하나도 보지 못했으며,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는 놀라운 일도 겪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눈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갈라진 바다 사이로 통과하는 놀라운 사건도 아버지 이드로와 함께 말로 전해듣기는 했겠지만(출18:1)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출애굽기 18장에서 이드로가 십보라와 두 아들을 모세에게 데려온 후 그녀는 다시 모습을 감춥니다. 그녀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 생활을 했는지, 다시 미디안 땅으로 돌아갔는지에 대해서 성경에 명시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다음 성경 구절을 보면 모세가 자기 아내 십보라와 헤어졌거나 그녀가 이미 죽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세가 이디오피아 여인과 결혼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결혼한 그 이디오피아 여인으로 인하여 모세를 비방하니라(민12:1).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미디안 사람이지 이디오피아 여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십보라가 이디오피아 여인이라면 미리암과 아론이 출애굽기 18장에서 십보라를 보았을 때 그 자리에서 모세를 꾸짖어야지 왜 이제 와서 문제를 삼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이디오피아 여인은 모세의 새 아내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이디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은 그의 아내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때 십보라가 모세의 옆에 있었더라면 미리암이 나서기 전에 그녀가 먼저 쌍심지를 켜고 덤벼들었을 겁니다.
 
양치기 소녀 십보라와 도망자 모세가 우물에서 만나서 결혼에까지 이른 것은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 들리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한 요셉의 결혼 생활도 아마 이와 비슷했을 겁니다(창41:45). 일부 기독교 신문에는 십보라가 "내조의 여왕"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제가 읽어본 성경 말씀에 의하면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갈등하고 다투다가 마침내는 소리없이 사라진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