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을 통해서 본 여호와의 전쟁
(창24:1‐67)
24:1 아브라함은 이제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다.
24: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아 보는 늙은 종에게 말하였다. "너의 손을 나의 다리 사이에 넣어라.
24:3 나는 네가,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두고서 맹세하기를 바란다. 너는 나의 아들의 아내가 될 여인을,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가나안 사람의 딸들에게서 찾지 말고,
24:4 나의 고향, 나의 친척이 사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나의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찾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여라."
24:5 그 종이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며느님이 되실 여인이 저를 따라오지 않겠다고 거절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주인 어른의 아드님을 데리고, 주인께서 나오신 그 고향으로 가야 합니까?"
24:6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였다. "절대로 나의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 말아라.
24:7 주 하늘의 하나님이 나를 나의 아버지 집, 내가 태어난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나에게 말씀하시며, 나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너의 씨에게 주겠다' 하셨다. 그러니 주님께서 천사를 너의 앞에 보내셔서, 거기에서 내 아들의 아내 될 사람을 데려올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
24:8 그 여인이 너를 따라오려고 하지 않으면, 너는 나에게 한 이 맹세에서 풀려난다. 다만 나의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만은 말아라."
24:9 그래서 그 종은 손을 주인 아브라함의 다리 사이에 넣고, 이 일을 두고 그에게 맹세하였다.
24:10 그 종은 주인의 낙타 가운데서 열 마리를 풀어서, 주인이 준 온갖 좋은 선물을 낙타에 싣고 길을 떠나서, 아람나하라임을 거쳐서, 나홀이 사는 성에 이르렀다.
24:11 그는 낙타를 성 바깥에 있는 우물 곁에서 쉬게 하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는 때였다.
24:12 그는 기도하였다. "주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오늘 일이 잘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24:13 제가 여기 우물 곁에 서 있다가, 마을 사람의 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면,
24:14 제가 그 가운데서 한 소녀에게 '물동이를 기울여서, 물을 한 모금 마실 수 있게 하여 달라' 하겠습니다. 그 때에 그 소녀가 '드십시오. 낙타들에게도 제가 물을 주겠습니다' 하고 말하면, 그가 바로 주님께서 주님의 종 이삭의 아내로 정하신 여인인 줄로 알겠습니다. 이것으로써 주님께서 저의 주인에게 은총을 베푸신 줄을 알겠습니다."
24:15 기도를 미처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왔다. 그의 아버지는 브두엘이고, 할머니는 밀가이다. 밀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로서, 아브라함에게는 제수뻘이 되는 사람이다.
24:16 그 소녀는 매우 아리땁고, 지금까지 어떤 남자도 가까이하지 아니한 처녀였다. 그 소녀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동이에 물을 채워 가지고 올라올 때에,
24:17 그 종이 달려나가서, 그 소녀를 마주 보고 말하였다. "이 물동이에 든 물을 좀 마시게 해주시오."
24:18 그렇게 하니, 리브가가 "할아버지, 드십시오" 하면서, 급히 물동이를 내려, 손에 받쳐들고서, 그 노인에게 마시게 하였다.
24:19 소녀는 이렇게 물을 마시게 하고 나서, "제가 물을 더 길어다가, 낙타들에게도, 실컷 마시게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24:20 물동이에 남은 물을 곧 구유에 붓고, 다시 우물로 달려가서, 더 많은 물을 길어 왔다. 그 처녀는, 노인이 끌고 온 모든 낙타들에게 먹일 수 있을 만큼, 물을 넉넉히 길어다 주었다.
24:21 그렇게 하는 동안에 노인은, 이번 여행길에서 주님께서 모든 일을 과연 잘 되게 하여 주시는 것인지를 알려고, 그 소녀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24:22 낙타들이 물 마시기를 그치니, 노인은, 반 세겔 나가는 금 코걸이 하나와 십 세겔 나가는 금팔찌 두 개를 소녀에게 주면서
24:23 물었다. "아가씨는 뉘 댁 따님이시오? 아버지 집에, 우리가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방이 있겠소?"
24:24 소녀가 노인에게 대답하였다. "저의 아버지는 함자가 브두엘이고, 할머니는 함자가 밀가이고, 할아버지는 함자가 나홀입니다."
24:25 소녀는 말을 계속하였다. "우리 집에는, 겨와 여물도 넉넉하고, 하룻밤 묵고 가실 수 있는 방도 있습니다."
24:26 일이 이쯤 되니, 아브라함의 종은 머리를 숙여서 주님께 경배하고
24:27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주인에게 주님의 인자와 성실을 끊지 않으셨으며, 주님께서 저의 길을 잘 인도하여 주셔서, 나의 주인의 동생 집에 무사히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고 찬양하였다.
24:28 소녀가 달려가서, 어머니 집 식구들에게 이 일을 알렸다.
24:29 리브가에게는 라반이라고 하는 오라버니가 있는데, 그가 우물가에 있는 그 노인에게 급히 달려왔다.
24:30 그는, 자기 동생이 코걸이와 팔찌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또 노인이 누이에게 한 말을 누이에게서 전해 듣고, 곧바로 달려나와서, 우물가에 낙타와 함께 있는 노인을 만났다.
24:31 라반이 그에게 말하였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할아버지는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어찌하여 여기 바깥에 서 계십니까? 방이 준비되어 있고, 낙타를 둘 곳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24:32 노인은 그 집으로 들어갔다. 라반은 낙타의 짐을 부리고, 낙타에게 겨와 여물을 주고, 노인과 그의 동행자들에게 발 씻을 물을 주었다.
24:33 그런 다음에, 노인에게 밥상을 차려 드렸다. 그런데 노인이 말하였다. "제가 드려야 할 말씀을 드리기 전에는, 밥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라반이 대답하였다. "말씀하시지요."
24:34 노인이 말하였다. "저는 아브라함 어른의 종입니다.
24:35 주님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셔서, 주인은 큰 부자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주인에게 양 떼와 소 떼, 은과 금,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를 주셨습니다.
24:36 주인 마님 사라는 노년에 이르러서, 주인 어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으셨는데, 주인 어른께서는 모든 재산을 아드님께 주셨습니다.
24:37 주인 어른께서 저더러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인을, 내가 사는 가나안 땅에 있는 사람의 딸들에게서 찾지 말고,
24:38 나의 아버지 집, 나의 친족에게로 가서, 나의 며느리감을 찾아보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여라' 하셨습니다.
24:39 그래서 제가 주인 어른에게 여쭙기를 '며느님이 될 규수가 저를 따라오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였습니다.
24:40 주인 어른은 '내가 섬기는 주님께서 천사를 너와 함께 보내셔서, 너의 여행길에서 모든 일이 다 잘 되게 해주실 것이며, 네가 내 아들의 아내 될 처녀를, 나의 친족, 나의 아버지 집에서 데리고 올 수 있게 도와 주실 것이다.
24:41 네가 나의 친족에게 갔을 때에, 그들이 딸을 주기를 거절하면, 나에게 한 이 맹세에서 너는 풀려난다. 그렇다. 정말로 네가 나에게 한 이 맹세에서 네가 풀려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42 제가 오늘 우물에 이르렀을 때에, 저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제가 오늘 여기에 와서, 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24:43 제가 여기 우물 곁에 서 있다가, 처녀가 물을 길으러 오면, 그에게 항아리에 든 물을 좀 마시게 해 달라고 말하고,
24:44 그 처녀가 저에게 마시라고 하면서, 물을 더 길어다가 낙타들에게도 마시게 하겠다고 말하면, 그가 바로 주님께서 내 주인의 아들의 아내로 정하신 처녀로 알겠습니다'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24:45 그런데 제가 마음 속에 기도를 다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왔습니다. 그는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긷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에게 '마실 물을 좀 주시오' 하였더니,
24:46 물동이를 어깨에서 곧바로 내려놓고 '드십시오. 낙타들에게도 제가 물을 주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을 마셨습니다. 따님께서는 낙타에게도 물을 주었습니다.
24:47 제가 따님에게 '뉘 댁 따님이시오?' 하고 물었더니, 따님께서는 '아버지는 함자가 브두엘이고, 할아버지는 함자가 나홀이고, 할머니는 함자가 밀가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따님의 코에는 코걸이를 걸어 주고, 팔에는 팔찌를 끼워 주었습니다.
24:48 일이 이쯤 된 것을 보고, 저는 머리를 숙여서 주님께 경배하고, 제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주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은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하셔서, 주인 동생의 딸을 주인 아들의 신부감으로 만날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24:49 이제 어른들께서 저의 주인에게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보여 주시려거든, 저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을 해주시고, 그렇게 하지 못하시겠거든, 못하겠다고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셔야, 저도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4: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였다. "이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말할 수가 없습니다.
24:51 여기에 리브가가 있으니, 데리고 가서, 주님이 지시하신 대로, 주인 아들의 아내로 삼으십시오."
24:52 아브라함의 종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서,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고,
24:53 금은 패물과 옷가지들을 꺼내서 리브가에게 주었다. 그는 또 값나가는 선물을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주었다.
24:54 종과 그 일행은 비로소 먹고 마시고, 그 날 밤을 거기에서 묵었다. 다음날 아침에 모두 일어났을 때에, 아브라함의 종이 말하였다. "이제 주인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떠나게 해주십시오."
24:55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는 "저 애를 다만 며칠이라도, 적어도 열흘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더 있다가 떠나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24:56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를 더 붙잡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께서 이미 저의 여행을 형통하게 하셨으니, 제가 여기에서 떠나서, 저의 주인에게로 갈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24:57 그들이 말하였다. "아이를 불러다가 물어 봅시다."
24:58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다 놓고서 물었다. "이 어른과 같이 가겠느냐?" 리브가가 대답하였다. "예, 가겠습니다."
24:59 그래서 그들은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일행에게 딸려보내면서,
24:60 리브가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우리의 누이야, 너는 천만 인의 어머니가 되어라. 너의 씨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24:61 리브가와 몸종들은 준비를 마치고, 낙타에 올라앉아서, 종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데리고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24:62 그 때에 이삭은 이미 브엘라해로이에서 떠나서, 남쪽 네겝 지역에 가서 살고 있었다.
24:63 어느 날 저녁에 이삭이 산책을 하려고 들로 나갔다가, 고개를 들고 보니, 낙타 행렬이 한 떼 오고 있었다.
24:64 리브가는 고개를 들어서 이삭을 보고, 낙타에서 내려서
24:65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다. "저 들판에서 우리를 맞으러 오는 저 남자가 누굽니까?" 그 종이 대답하였다. "나의 주인입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너울을 꺼내서, 얼굴을 가렸다.
24:66 그 종이 이제까지의 모든 일을 이삭에게 다 말하였다.
24:67 이삭은 리브가를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었으며, 이삭은 그를 사랑하였다. 이삭은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위로를 받았다.
오늘 설교 본문과 설교제목을 보시면서 조금 의아해 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왜 이삭의 결혼 장을 설교하면서 그 제목을 여호와의 전쟁이라 했을까하고 조금 의아해 하지 않으셨어요?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많은 설교자들이 이 창세기 24장을 본문으로 하여 그리스도인들의 결혼관이라든지 순종하는 아내의 모습 등에 관해 설교를 해 왔고 많은 주석서들도 대부분 성도의 결혼에 관한 메시지로 24장을 해석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창세기 24장을 22장과 연결해서 보고 싶습니다.
창세기 22장 17절의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는 구절과 오늘 본문 60절의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 지어다’를 샌드위치의 빵으로 놓고 그 사이의 내용을 샌드위치의 속으로 보자는 말입니다. 그러한 수미 일치법(inclusio)적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보면 그 내용이 단순히 그리스도인들의 결혼관에 관한 내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 전체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열심과 주권, 다른 말로 하나님의 전쟁에 관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리기를 성경에서 원수의 성문을 얻는다는 것은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지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를 물리치시고 당신의 목적인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는지에 관한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하나님의 계획과 실행과 적용, 즉 하나님 자신의 열심과 주권에 의해 성취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나님 홀로 완성하신 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하게 22장부터 오늘 본문으로 이어지는 문맥을 짚어 보고 오늘 본문의 설명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사건입니다. 그 모리아 산 사건은 약속의 자손은 하나님이 준비하신(여호와 이레) 어린양의 대신 죽음에 의해 탄생 된다는 십자가 복음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테스트에 합격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하시면서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게 바로 종국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질 복의 정체라는 말입니다.
그 말씀은 모리아 산에서 일어난 그 일련의 사건들이 대적의 문을 부수는, 다른 말로 대적을 무찌르고 승리를 쟁취하는 사건이었음을 선포하시면서 창세기 3장 15절의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는 영적 전쟁의 승리가 바로 그러한 모습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며, 아브라함의 씨, 즉 교회들도 그러한 모습으로 세상 속에서 마귀와 대적하여 승리를 쟁취하게 될 것이라는 아주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는 그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손이 되어 참 행복과 만족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준비하심(여호와 이레)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그러기에 그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공부하면서 보아 왔던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쪼개짐, 즉 십자가로 당신의 백성들을 탄생케 하실 것임을 거듭 천명하셨음에도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인간 쪽에서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급기야 하나님은 할례라는 실물 체험 학습을 명하심으로 약속의 후손은 인간의 불가능함(생식기의 쪼개짐)위에서 하나님의 쪼개짐(십자가)으 로만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고 그 이야기를 모리아 산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서 보여주신 것이며 거기에 이어서 나홀의 족보를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그 언약은 하나님의 준비로 반드시 필연적으로 성취되고 완성될 것임을 사라의 죽음에 앞선 리브가의 출현으로 한 번 더 확인을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렇게 홀로 준비하시고 계획하시며 홀로 당신의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믿는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은 불가능할 것 같고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굳게 믿고 세상을 상징하는, 죄인들이 득실거리는 가나안 땅에다가 막벨라 굴을 사면서까지 그 언약의 확실성과 최종 성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야기입니다.
(갈2:20)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구원 받은 성도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성도의 삶을 그 안에서 살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만 평가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다는 것이지요.
그 말은 그의 삶 속에 나타나는 불완전함과 여전한 더러움과 여전한 욕정과 여전한 범죄 등의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가난함과 부요함과 성공과 실패, 잘남이나 못남 등의 갖가지 환경 등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의 내용으로 전혀 카운트가 되지 않는다는 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에 여러분이 기대한 만큼 여러분이 거룩하게 변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때때로 예수 믿기 이전과 방불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더 많으십니까? 우리는 성도라 불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바라보면서 많은 실망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중에는 예수를 믿고 더 가난해지셨거나 예수를 믿고 병에 걸리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 중에 혹시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하고 좌절하고 계신 분은 없으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이 옛 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옛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에게 믿음이 발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나는 이렇게 불가능하고 추악해 보여도, 여전히 나는 이 세상 것으로 복을 받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도 내 안에 사는 이는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나는 안전하다는 뻔뻔함을 내어 놓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우리 옛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여전히 ‘내가 육체 가운데 산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더러운 옛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것은 운명적이요 신분적 선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이 역사 속에서 육체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의 육체에 갇혀서 자주 우리 자신에게 실망하고 그로 말미암아 극심한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구속하셨고 우리를 완성하신다 하셨으므로 그 사실을 믿고 절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모양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게 사라의 죽음이라는 절망적 상황 앞에서 가나안의 막벨라 굴을 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 창세기 23장인 것입니다. 그렇게 언약의 1세대인 사라가 죽었고 아브라함 자신도 이미 늙고 힘이 빠진 상태에서 아브라함은 충분히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 상황 속에서도 막벨라 굴을 산 것입니다. 나는 죽어서라도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보겠다는 신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와 공간 속에서 여전히 더럽고 여전히 후패하고 여전히 죽어가고 있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과연 성취가 될 것인가 의심이 갈만큼 불안해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언약을 이루신다는 것을 굳게 믿는 믿음이 성도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맥을 놓치지 말고 24장을 이해를 하자는 겁니다. 창세기 24장은 여러분이 지금 읽으신 것처럼 아버지가 종을 보내어 아들의 신부를 불러오는 모양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하나님 아들 성자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를 부르시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이 땅으로 보내심을 받은 보혜사 성령님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불러 올려지는 우리 성도들의 구원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이 아버지의 계획과 아들의 필요와 성령의 적용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미리 힌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 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대적의 손에서 건지셔서 당신의 상속자인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는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 홀로 이루어 가실 것이며 반드시 승리로 완성하실 것임이 오늘 본문에 혼인잔치의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종종 당신을 교회의 신랑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마9:15)
15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 이니라
(마25:1)
1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렘3:14)
14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이러한 표현은 창세기 2장에서부터 미리 힌트 되어졌던 것입니다.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가 탄생한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그와 같은 살과 피를 소유한 신부인 교회가 탄생할 것임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라 했지요?
(창2:22~24)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여기서 연합이라는 말이 처음 나옵니다. 그러니까 위의 구절들을 연결해 보면 교회는 신랑과 신부가 혼인을 하여 둘이 하나로 연합되는 것처럼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한 지체가 되는 하늘의 공동상속자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1:3)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와가 아담에게서 나와서 다시 아담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형국처럼 예수로 말미암아 지은바 된 그분의 백성들이 다시 주님과 하나가 되는 이야기가 바로 구원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실 계획을 세우셨고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셨으며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서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셨으며 하나님이 둘을 하나로 연합시키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삭의 혼인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삭의 아내가 그의 가족에게서 나와야 합니까? 하와가 아담의 살과 피를 담고 태어나 아담과 연합하게 되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예수님과 연합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연합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친족에게서 이삭의 아내가 나오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이삭이 태어난 것이 누구의 약속이었습니까? 하나님에 의해 이삭이 준비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삭의 후손으로 열두 지파가 생기고 그들이 큰 민족을 이루어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을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셨지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미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삭이 반드시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삭의 혼인도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주도로 치러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을 보면 종이 신부를 간택하러 갔을 때 신부될 자의 대응에 대해 기도를 하는데 리브가가 그대로 반응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신부의 반응까지도 주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역사는 그저 향방 없이 이리 저리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역사에는 주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history(his story)라 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이 역사를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끝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알파요 오메가라 소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 역사와 인생을 우리의 손에 맡겨 두셨으면 우리는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붙드시고 운행을 하시기에 우리의 구원이 확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구원의 주도권은 하나님께서 쥐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란으로 종을 보낼 때에 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사자가 앞서 가서 신부를 준비하실 것이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구원을 얻게 될 신부들은 여호와하나님에 의해 준비되어지는 것이며 그 일은 반드시 실패될 수 없다는 것이 여호와의 사자의 개입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성도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여호와의 전쟁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해?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너 희도 꽤 괜찮은 존재야’라고 속삭이며 성도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막는 마귀의 세력을 격파하고 기필코 하나님 백성들의 완성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고야 마시는 여호와의 전쟁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완성하시고 성취하실 것임을 여호와의 사자의 출현으로 확인도장을 찍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전쟁이 출애굽기에 가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쟁으로 확대되어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영적이스라엘인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계시의 점진성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도, 가나안 전쟁을 지시하실 때에도 여호와의 사자를 미리 앞서 보내십니다. 이삭의 혼인을 주도하시면서 여호와의 사자를 앞서 보내시는 것과 흡사하지요?
(출3:2)
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출23:20~21)
20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21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신들의 상황과 처지와 능력에 의기소침하여 자기들은 가나안 사람들 앞에서 메뚜기 같은 존재라고 스스로 자평하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이스마엘을 내 놓으며 조바심을 떤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일로 이스라엘은 40년을 광야에서 헤매다 모두 죽습니다. 그게 불신자들의 말로입니다. 하나님은 40년 후에 새 세대에게 나타나셔서 또 다시 ‘여호와의 사자가 앞서가서 이룰 것이니 가나안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다 해 주실 테니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신1:29‐33)
29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천신만고 끝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입구인 여리고에 이르자 정말 하나님의 군대가 여리고에 먼저 들어와 있었습니다.
(수5:13~15)
13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14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그렇게 여호와의 사자가 미리 앞서가서 싸우는 형국으로 여호와의 전쟁은 승리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구원입니다. 그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작은 그림으로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 여호와의 전쟁 이야기가 신약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세요.
아브라함이 보낸 종이 이삭의 신부를 만나는 곳이 어디입니까? 우물입니다.
구약의 우물가는 신랑이 신부를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야곱이 자기 아내 라헬을 어디서 만납니까?
(창29:10‐12)
10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11그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고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비에게 고하매
모세가 그의 아내 십보라를 어디서 만납니까?
(출2:15‐17)
15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
16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 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17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무리에게 먹이니라
이렇게 성경에서 우물은 신부가 신랑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신랑이 신부를 만나는 우물의 이야기는 신약으로 넘어가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게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우물가에 부정한 여인의 대명사인 사마리아 여인이 서 있습니다. 그녀는 세상 죄인들 속에서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교회를 상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세상의 남편들을 통해, 다른 말로 이 세상의 힘을 통해 목마름을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진짜 남편, 이제 다시는 그녀를 버리지도 않고 실망시키지도 않을 진짜 남편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그 남편은 그녀가 뭐가 잘나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똑똑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주님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오신 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창세전에 택해진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불원천리 사마리아까지 고단하게 그녀를 찾아가셔서 생수를 부으시고 그녀의 남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녀는 목마르고 버림받은 여인이었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그녀의 목마름이 되셨습니다. 주님이 그녀의 목마름을 가져가 버리시고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시며 목마른 자가 되셔서 죽으심으로 그녀는 영원한 해갈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녀의 버림받음을 가져가 버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시며 스스로 버림받은 자가 되셔서 그녀가 영원히 남편에게 버림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 버림받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연합되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그대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인의 상태로 사망에 던져져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을 가득 안고 찾아오셨습니다.
본문 10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보낸 종이 아브라함의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싣고 신부에게로 떠났다는 대목이 나오지요?
(창24:10)
10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는데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렇게 성령하나님은 하나님의 좋은 선물을 한 아름 품으시고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입니다.
(요16:13~15)
13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15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그렇게 내려오신 성령께서 마치 아브라함이 보낸 종이 리브가에게 금은 패물과 의복과 귀 고리와 코 고리를 선물해 주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들을 부어주셨습니다.
(벧후1:3)
3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리 브가가 그 금은 패물과 의복을 선물로 받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자기 신랑의 풍요함과 부유함을 미루어 알게 되고 기대한 것처럼 우리 성도 또한 이 땅에서 보증으로 주어진 성령의 역할로 하늘의 풍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하늘의 선물을 부어주신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신랑 예수가 기다리고 계시는 참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안전하게 인도하여 주인이 계시는 가나안 땅으로 무사히 귀환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삭과 이브가의 혼인잔치가 성대하게 치러진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세상에서의 신앙의 여정을 다 마치고 마침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순결한 모습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계19:7‐8)
7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21:9~11)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이것이 바로 성도의 결국이며 구속사의 결론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인 교회를 각양의 보석으로 표현하시고 그들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 칭하십니다. 그 말은 이제 주님의 신부인 교회가 주님이 거하실 처소로 거룩하게 완성이 되어 그 무엇보다 찬란하고 존귀한 존재로 완성이 되었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지점으로 인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모습에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좌절할 필요 없습니다. 그대로 인정하시면 됩니다. 나 는 여전히 육체가운데 살면서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오히려 저항하며 그 하늘의 삶을 막는 존재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나의 그 모습을 카운트하지 않으시고 그 너머의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나를 평가해 주신다는 그 뻔뻔함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깊이깊이 젖어 들어 갈 때 우리의 삶은 예수의 삶을 토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세기 24장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구원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던 죄인들에게 먼저 찾아가셔서 그들을 당신의 신부로 삼으시는 구원의 이야기가 혼인 잔치의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그렇게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어 하나님에 의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브두엘과 라반이 그 모든 일의 시작이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창24:50)
50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일에 그분이 우리를 동역자로 불러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마치 아브라함의 종에게 이삭의 신부를 불러오는 일을 시킨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부들을 불러오는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요3:28‐30)
28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 할
자는 너희니라
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고후11:2)
2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 함 이로다
우리 성도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종으로 아직도 자기의 신분이 하나님 나라의 왕비들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눈먼 채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리브가들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신부라는
복되고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롬10:14~15)
14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일하다 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입으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먼 길 마다않고 열심히 다니며 전하다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주인의 부요함과 주인집의 풍요함을 잘 알아야겠지요? 그리고 우리 주인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를 알아야겠지요? 지 금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참으로 보잘 것 없다 할지라도 우리 주인이 계신 새 하늘과 새 땅의 풍요를 확신하며 오늘을 희망과 기대 속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하늘 왕자의 신부로서의 삶을 살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28:18~20)
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지난주에 제가 사랑하는 대학부 후배이자 신학교 후배인 한 목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 친구는 아주 영리하고 똑똑한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대학 때부터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아주 특별한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신학을 공부하러 오면서부터 그의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셨고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은 정신병원에 십 수 년 간 입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미국에 오자마자 가진 돈을 모두 사기를 당해서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밤에는 컨테이너로 박스를 옮기는 힘든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아내가 대장암과 난소암 판정을 받아서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쯤 되면 욥의 아내의 일갈처럼 ‘하나님을 저주하고 떠나라’는 원망의 음성이 그 안에서 들려올 법도 하지 않습니까?
그 친구가 너무나 힘이 들어서 애리조나 광야에 나가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외쳤답니다.
‘하나님, 저 너무 힘듭니다. 주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힘들게 놔두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 때 그 친구 마음속에 신명기 34장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느보산에 세우시고 가나안 땅을 모두 보여주시면서 마치 약 올리시듯이 ‘너는 저 땅에 못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를 거기서 죽여 버리셨습니다.
모세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모세가 갖은 고생 마다않고 어떻게 해서 거기까지 왔는데 바로 그 가나안 앞에서 죽이십니까? 그 때 모세의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술합니다. 그 말은 모세가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아무 말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말은 모세는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것으로 아무 것도 주시지 않으시고 심지어 죽을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너 이제 내 곁으로 와라’하고 부르시면 기쁘게 가야 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란 것입니다.
그 친구는 그 신명기의 말씀을 떠 올리면서 ‘하나님 당신께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시고 제가 가진 모든 희망까지도 무너뜨리신다 할지라도 저는 하나님이 이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저와 함께 동행 하신다는 그 사실만으로 기뻐하겠습니다.’하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상황과 처지와 변하지 않는 여러분의 모습에 낙담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 속에서 믿음을 발휘하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언약을 이루십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서게 되실 것입니다. 그 소망의 자리를 바라보시면서 오늘을 이겨 내십시오.
그렇다면 성도는 이 땅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가? 그 부분은 이번 주 수요 성경공부 때, 심도 있게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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