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성경배경사

바리새인

은바리라이프 2012. 5. 8. 12:35

바리새인


Ⅰ) 기원

바리새인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포로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성전과 함께 종교의식을 빼앗긴 채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직 율법서만 가지고 갈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종교와 생활의 중심이 된 것은 율법이었으며, 그 이후로 율법은 유대인의 정체성의 근원이 되었다. 포로에서 귀환한, 에스라 이후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성전중심의 생활을 하게 되었고, 제사장을 율법과 종교문제의 최고의 권위자로 여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성전 중심의 제사장 같은 성직귀족계급과 율법중심의 서기관 또는 'Sopherim'이라고 불리는 '율법학자'라는 이중적인 권위체계가 생겨났다. 이런 이중구조가 진행되면서 제사장이 아닌 율법학자들이 모세 오경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생활에 적용시켰으며, 이들은 성전의 제사장들에게 충성할 의무도 없었고, 그들의 규정에 반론을 제기하기 까지 이른다.

이렇게 성직귀족계급과 율법학자 사이의 대립은 페르시아 시대 말엽과 헬라시대 초엽에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포로 시대와 귀환 후의 시대에는 평신도 율법학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위대한 회당의 사럼들'과 '제2성전의 사람들'이다. 이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이방의 신전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운동의 주도적 세력이었다. 이들이 실질적인 지배권을 획득하자, 세습성직자들의 힘이 약화되었다.

더구나 셀레우코스 왕조에서 임명한 성직자들은 세습제사장 계열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자 정통 유대인들은 제사장을 믿거나 의지할 수 없었다. 헬라문화가 유대인의 생활에 침범한 이후에는 오랜 세월 동안 성전의식이 완전히 정지하기까지 했다. 반면에 율법은 이와는 상황이 달랐다. 강대국의 힘으로나, 이와 합세한 성직자들의 힘으로도 율법은 파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율법은 여전히 유대인들의 정체성과 충성심의 구심점으로 남아 있었다.

마카베오가 저항할 때, 종교적 중심세력은 서기관들의 집회, 유대회당과 경건파인 하시딤(Hasidim), 즉 율법에 충실한 사람들로 이루어졌다(마카베오상 7:11-17). 이들이 셀레우코스 왕조의 헬라화 정책에 항의한 반면에, 실권층이던 성직자 계급은 시리아 정복자와 화평을 맺음으로써, 민족의 대의를 저버렸다. 이들이 사두개인들(Sadducees)의 선조였다. 마카베오 치하에서 성전의 예배는 회복됐지만, 그가 세운 하스몬 왕조는 게루시아(Gerousia) 내지 원로원이라는 통치조직체를 유대에 도입시켰다.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평신도의 'Sopherim'을 게루시아 평의회의 국민의 대표로 인정한 것이다. 유대교 국가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게루시아 자체가 헬라문화의 침투를 상징한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게루시아는 평신도가 통치하고 행정하는 것으로 성직계급보다 지위가 높은 헬라의 제도였기 때문이다.

바리새 운동이 바로 이 헬라시대에 평신도 율법학자계급에게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렇게 새로이 등장한 바리새파의 핵심을 형성한 것은 일단의 평신도 서기관이었으며, 여기에 여러 파벌이 동조하여 강화되고, 나중에는 성직자도 가세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기세로 인해 초기 헬라 시대의 어느 단계에서는, 모세 오경의 유일한 권위가 성직자이며, 따라서 성직자들이 백성의 지배자라는 기존의 구도에 강하게 도전하게 되었다. 바리새인이라는 명칭이 역사에 등장할 때는 이미 이들이 이렇게 유대의 기성종교단체로서 자리를 확보하고 있을 때였다.

포로 후에 이런 유대교 안에서의 큰 변화는 오랜 세월 갈등을 빚어왔다. 왜냐하면 성전은 여전히 유대인들의 중심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제사장이라는 성직은 위신과 권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갈등의 한편은 성직자 계급과 그들의 지지자들인 사두개인들이고, 다른 한편은 평신도 신분의 율법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인 바리새인들인데, 이 둘 사이의 권력 투쟁은 다음 2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이 갈등의 양상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의 유대교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Ⅱ) - 명칭

바리새인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이 낱말의 기원을 '분리되어 있는 사람'(파루쉬[parush], 페리쉬[perish])의 뜻인 히브리어 파라쉬(parash , 아람어 페라쉬[perash])로 파악하고 있으나, 무엇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이 단어는 율법을 성직자들처럼 해석하는 자들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평신도 해석자들이 한때 동료 성직자들과의 관계를 끊고 떨어져 나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이름의 기원을 주전 163년의 하시딤과 유다 마카베오파 사이의 '분리'에서 찾는다. 이러한 설명들은 그다지 적절한 것 같지 않다.

이 낱말은 문자적으로 엄밀하고 철저하게 레위기의 율법식으로 준수하려는 나머지 불결한 것, 특히 불결한 자들, '세상 사람들'로부터 분리해 나온 사람들을 뜻한다. 또한 히브리어의 파루쉬는 '거룩한, 신성한'을 뜻하는 카도쉬(qadosh)와 관계가 있다. 따라서 시프라(Sifra)는 레위기 11장 44-45절에 나오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를 '내가 분리되어(parush) 있으니 너희도 분리될지어다(perushim)'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해석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분리된 자들' 내지 '거룩한 자들'이다.

또 다른 설명은 명사 '바리새'의 뜻을 '해석자'를 의미하는 말로 여긴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파라쉬의 뜻 중에는 '가르치다, 쪼개다, 분할하다'의 뜻이 있는데, 이는 곧 '해석하다'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리새라는 이름이 수동형이라는 점에서 이 이론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 하나의 설명은 이 헬라식 이름이 '바사인'을 뜻하는 아람어 프리쉬(perishi')의 헬라어 형태라는 것이다. '바사인'이라는 말은 바리새인의 반대자인 사두개파가 바리새인이 외국의 교리, 특히 바사의 교리를 유대교에 도입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바리새인에게 붙인 별명이었다는 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입장만이 특출나게 타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의미는 불결한 것에서 '분리되어 있는 자들'로 생각되며, 이 종파의 율법상의 분리주의, 특히 의식상의 분리주의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Ⅲ) 특징

바리새인의 주요한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율법존중주의에 따른 분 리주의, 전통적 유전의 철저한 준수, 진보주의가 그것이다. 첫째, 바리새인의 주요특징인 율 법존중주의는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말한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바리새인은 율법 해 석상의 철저한 정확성과 율법의 세부적인 고수로 유명했다. '조상으로부터' 구두로 전승해오 는 율법의 전통이, 정교한 체계로 발전하게 된 것은 율법 해석상에서 보여준 그들의 '정확 성'에 기인하며, 이것이 역사적인 바리새주의의 주요 특성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율법 주위에 울타리'를 두른다고 해서 비난을 받았고, 때문에 '벽을 두르는 자'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즉 이들은 모세 오경에 바리새인의 전통이라는 '벽'을 둘러서 모세 오경을 가두어두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동시에 비바리새인들을 자신들이 독점한 모세 오경의 은혜에서 배제하는 자들이라는 비난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유대교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종파로 남을 수 있었던 이 유는 율법 해석상의 정확성 뿐 아니라, 그들이 전통을 실제로 준수하는데 있어서 유대교 종 파 중에서 가장 엄격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서 7장 3절에서처럼 자신의 몸과 의식용 비품 및 기구에 관한 의식적인 정결과 분리를 강조하게 된 것도 율법을 존중하는 바리새인의 엄 격주의라는 특성 때문이다. 그들은 레위기식의 규약의 의식상의 요건을 세밀히 준수함으로 써 정결에 대한 완전론을 달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들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에서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의식상의 부정을 두려워하여 상처입은 사마리아 사람을 피한 것 처럼 비(非)바리새인 즉 평민들을 불결하다고 피했다. 신약성서에 기록된 안식일에 대한 그 들의 태도나, 잔과 대접의 겉을 깨끗이 씻는 그들의 태도(마 23:25)는 다른 문서들에 나오는 바리새인에 대한 묘사와 일치한다.

둘째, 그들의 특징은 첫 번째 특징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상의 유전을 철저히 준수한 것이 다. 이른바 '장로들의 유전'(마 15:2, 막 7:3,5)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존중은 사두개인들과의 차이를 확연히 드러낸 점이다.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보수적이고, 고정적이어서 새로운 상황에 순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전통은 구전(口傳)이 본질적인 특색이었으므로 새로운 사태에 순응할 유연성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권위적 전통을 가진 조직체가 바리새주의 안에서 자라났으며, 항상 확장이 가능했다. 그래서 바리새인의 정경은 오세 오경을 넘어서 예언서와 성문서까지 모함할 수 있었다.

셋째, 바리새주의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는 새로운 사상에 대한 개방성이다. 요세푸스가 바 리새인을 '합리주의자'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에는 진보주의자 들에 속해 있었다. 벨하우젠(Wellhausen)은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유대인의 운명에 대해 두 가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사두개인은 정당에 불과할 정도로 하스몬 왕조와 성직자 계급 및 집권귀족계층과 밀착되어 있었다.

반면에 바리새인은 그들의 종교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본질적으로 정치와는 관계가 없는 운동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핑켈슈타인(Finkelstein)은 바리새인은 민주주의 정당뿐 아니라, 국민이 일으켰던 진보적 종교운동의 선봉자였으며, 사두개인들은 낡은 성직제도와 지주 귀족층을 대표하는 단체라고 한다.

결국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모두 권력단체였으며, 유대교에서 지배권을 장악하려고 저마다 분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사두개인은 옛 방식과 현상 즉 구질서를 유지하려는 관료주의에 귀착된 반면, 바리새인은 주전 2세기부터 줄기차게 유대에서 국민을 대변하는 자유주의자요, 또한 진보주의자였다.


Ⅳ) 정의

바리새인에 대해 요세푸스와 신약성서가 언급한 정의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 둘 의 바리새인에 대한 공통적인 이해는 성문과 구전으로 된 율법의 가르침과, 내세와 죽은 자 의 부활을 유포하는데 평생을 바친 학자계급이라는 것이다.

요세푸스는 이들에 대해 유대인의 지배적인 '철학'의 해설자로 묘사하면서, 사두개인 및 에세네파와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 정의했다. 사두개인들은 성문화된 규정만을 인 정했는데,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유전들까지 백성들에게 전하며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에, 이 둘의 갈등은 심했다.

요세푸스가 평가한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가장 정확한 해설자이며, 사상적으로 지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어서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완전한 삶의 방식을 제공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영혼불멸과 육신의 부활을 가르쳤으며, 운명과 자유의지의 상호작용을 인정했다. 유명한 바리새인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가말리엘(Gamaliel)의 아들 시몬은 율법에 있어서 죄고의 전문가였다고 요세푸스는 언급했다.

신약성서는 바리새인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요세푸스와 비슷한 이해를 보 여준다. 빌립보서 3장 5-6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1장 13-14절에서 그는 스스로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다고 언급했다. 즉 바울이 자신을 바리새인으로 소개하면서 율법과 조상의 유전에 충실했던 것으로 언급한 것은, 요세푸스의 바리새인 이해와 정확 히 일치한다. 여기서 '유전'(paradosis)이라는 표현은 전문적인 용어인데, 복음서 기자들에 의해서도 구전된 율법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막 7:3, 8-9, 13; 마 15:2-3, 6). 이처럼 바리새인들은 두 가지 율법을 가르치는 학자들이며, 바울은 이들의 율법해석의 상당부분을 지지하고 있다.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도 바리새인은 두 가지 율법을 다루는 학자계급으로 나타나 있다. 마가복음서 7장 5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장로들의 유전' 즉 율법에 기록되지 않은 전통 을 해석하고 준수하는 자들로 묘사된다. 그들은 율법의 권위자들로 자처한다. 예를 들면 안 식일에 밀의 이삭을 자르는 것에 대해 예수가 말리지 않는다고 비난할 때(막 2:23-27), 장로 들의 유전을 범하는 것을 말리지 않는다고 경고할 때(마 15:1-9), 이혼에 대한 문제로 논쟁할 때(마 19:12-9),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에 대해 논쟁할 때(마 22:15-22) 등 그들은 스스로를 율법의 권위자로 자처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예수가 그들을 지칭한 말씀이다.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마23:2-3). 여기서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율법의 권위있는 대변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께 혹독한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으로 보아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요세푸스와 신약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바리새 인은 성문과 구전이라는 두 가지 율법 모두를 강조하며, 율법에 권위있는 학자겸 교사들임 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