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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역사 3) - 에스라하우스 성경강좌 녹취록

은바리라이프 2012. 2. 27. 15:41

성경과 역사 3) - 에스라하우스 성경강좌 녹취록

 

아담에서부터 노아시대까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담은 아마 B.C.4000년 전후해서 그 때에 출발 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담에서 노아 때까지는 사람들이 수명도 길 뿐만 아니라, 결혼이나 첫 아기를 낳는 년령이 상당히 성경적으로 보면 늦습니다.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몇 살에 낳은 지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세 번째 아들 을 낳은 기간은 확실히 기록을 해 놓았는데, 아담의 나이 130세 때에 셋을 낳았다고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고요. 셋이라는 사람이 첫 아들 에노스를 낳았을 때는 105세에 첫 아들을 낳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에노스가 게난을 90살이 되어서 낳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게난이 그 아들 마할랄렐을 낳았을 때는 70세 였다고 합니다. 다시 마할랄렐이 야렛을 낳았을 때가 65세 였고요, 
마할랄렐이 65세에 낳은 것은 상당히 일찍 낳은 것입니다. 

야렛 이라는 사람이 에녹을 (하나님께 들려 올라간 사람) 낳을 때에는 162세나 되어서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을 때에는 (므두셀라는 제일 오랜 산 사람입니다.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65세에 낳았고, 므두셀라가 노아의 아버지 라멕을 낳았을 때에는 187세에 낳았습니다. 200세 가까이 다 되어서 노아의 아버지 라멕을 낳은 것입니다.

라멕이 다시 노아를 낳을 때에는 182세 때에 낳았고 노아는 첫 아들을 500세 쯤 되어서 낳았습니다. 노아가 500세 된 후에 과 과 야벳을 낳았다고 합니다.(창5:32) 여기 까지 보면 빨라도 65세 늦으면 182세 이렇게 나옵니다.

그 후 홍수 후에는 이것이 현저하게 차이가 납니다. 
홍수 후에 아르박삿은 35세에 낳았고, 셀라는 30세에 낳았고, 에벨은 34세에 낳았고, 벨렉은 30세, 르후는 32세, 스룩은 30세, 나홀이(아브라함의 할아버지) 데라를 낳을 때에는 29세에 낳습니다. 제일 젊을 때에 낳았습니다. 어쩌면 지금 하고 비슷합니다.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을 때에는 130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에는 100세입니다. 이삭은 60세가 되어서 야곱과 에서의 쌍둥이를 낳게 됩니다. 아이를 낳는 연령뿐만 아니라 홍수 이전과 홍수 이후에 삶에 달라진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환경이 현저하게 달라지는데 제일 먼저 인간의 수명이 500-600살로 빨리 떨어져서 400상, 300살, 200살 이렇게 하여서 나중에는 데라는 205세, 아브라함은 175세, 이삭은 180세, 야곱은 147세, 모세와 아론은 120세와 123세, 그리고 여호수아는 110세, 이때 까지만 하여도 100살이 넘은 것이지요. 

지금에 비하면 그 연령도 작은 연령이 아니지요? 그 당시에 보면 급격히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사사시대를 거치면서 성경 말씀대로 안 살아버리고 그냥 가나안 땅 사람들처럼 살아버렸습니다. 그렇게 가나안 땅 사람들처럼 살아 버리니까 수명도 가나안 사람들처럼 다윗도 70세, 솔로몬도 70세, 사울도 그만그만 이렇게 해서 인간의 나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이렇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보면, 먹고 마시는 모든 문제, 생활 이런 것이 일반 세상 사람과 같으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특별히 장수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고 있고, 비슷하게 병들고, 비슷하게 병들어 죽고 하니까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재발견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구약성경에 보면 먹고, 마시고, 입고, 생활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이 모든 것을 세상 사람과 조금 다르게 한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구별되게 한다. 구별되게 한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거룩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그냥 다르게 한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쫓아서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살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 보다 건강하고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거룩하고, 착하고, 그리고 복을 받고 하는 이런 모습을 하나님이 보여 주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든지 말든지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처럼, 혹은 가나안 땅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혹은 바벨론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을 하면서 그 율법이 눈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게 하고, 흐리지 않게 해서 항상 그 율법에 따라 살게 되면 정말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심지어 애굽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이 하나도 너희에게 걸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그동안에 개혁 신학자들을 포함을 해서 18세기, 19세기, 20세기, 한 3세기를 지나오면서 우리 모든 과학이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해 오면서 부터는 본래 과학이라는 것은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서 나온 것인데 미신만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성경 까지도 배격을 하는 과학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그런 식으로 되어서 제가 볼 때에는 상당히 많이 잘못 되었다고 봅니다.

거기에다가 그리스도, 기독교, 개혁교회에 대해서는 너무 신약만 중요시 한 나머지 구약 같은 것을 예사로 무시해 버리고 구약의 율법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구약의 율법 중에서 의식법, 할례라든지, 제사, 제물이라든지 여러 가지 씻는 그릇이라든지 옛날 구시대 예루살렘 성전의 의식법인 이런 것들은 정말 폐하여 져 버렸습니다. 오늘날 상관이 없어 져 버린 것입니다.

윤리, 도덕법이라든지 그런 것은 그대로 지키면 그것이 복이 되는데 이것을 한 때 무시를 했던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남자 아이가 나면 낳은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도록 가르치고 있거든요. 그런데 할례는 우리 구원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거든요.

그러나 오늘날 누가 뭐라고 해도 할례를 받는 것이 위생상으로 더 좋고, 할례가 율법적으로 성경에 있으니까 우리가 안 하겠다고 하면 안 되고요. 그것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할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주신 법이니까 그 법 때문이 아니고 오늘 우리가 의학과 과학과 상식을 공부를 하면서 역시 할례는 우리 인간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위생법에 관한 모든 것도 보면, 가령 음식물 규정을 보면 상당히 세밀하게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도 지금 와서 보니까 안 지키는 것 보다는 지키는 것이 훨씬 났습니다. 
이런 것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것이 신학자나 성경학자들이 아니고 의사들과 경건한 과학자들이 3500년 전에 성경이 모세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지만 오늘날 현대 의학으로 볼 때에 현대 환경학적으로 볼 때에, 영양학적으로 볼 때에 이것이 너무나 진실한 것이고, 너무나 유익한 것이었다는 것을 재발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논의해 가는 중에 노아 홍수 이전 세계, 노아 홍수 이후 세계, 율법시대, 율법 시대 중에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았던 사사들의 시대, 왕정 시대, 율법을 지키다 말다가 하는 그런 시대, 혹은 바벨론 포로 가서 지내던 그런 시대, 포로 갔다 와서 신구약중간사 시대, 그리고 신약시대, 그리고 중세시대, 그리고 개혁 시대, 근대 이렇게 공부를 하게 될 것입니다. 큰 역사의 획을 긋는 어떤 단락들이 있거든요.

창세기에서는 지난번에 3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에덴동산 시대, 노아 홍수 이전 시대, 노아 홍수 이후부터 시작을 해서 요셉까지 시대를 보았고, 그들이 애굽에서 보내는 400년 시대, 이런 시대도 우리가 크게 구분을 해서 성경을 보는 분들이 시대 구분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치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올라가거나 독수리가 높은 산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독수리가 감상을 하는 (새가 밑을 내려다보는 것을 조감도(鳥瞰圖)라고 합니다.) 

건물은 건물 안에 들어가서 보면 건물이 잘 안보이고 새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서 새처럼 보면서 감상을 하는 조감도처럼 역사 전체를 보는 그런 안목이 있으면 여기서부터 또 한 획을 긋는 한 시대였구나,  단락이였구나 구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과거에서 현재까지 연장선을 그어 봄으로써 우리 앞에 펼쳐지는 미래는 어떠한 세계가 되겠는가? 하는 것을 내다보게 되는 것이지요. 역사학 교수 중에서 E.H.CAR라는 교수가 쓴역사란 무엇이냐 하는 책이 있거든요.  그 분이 하는 말은 역사란 것은 어제와 오늘의 대화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한국의 어떤 교수는 어제와 오늘의 성실한 대화가 없이는 보다 나은 미래는 약속 할 수 없다. 오늘 우리는 어제에 대해서 모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X세대, Y세대 하는 젊은 층들이 너무 컴퓨터의 가상세계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실제 세계 였고, 어제라는 과거의 역사를 너무 등한히 하는 그래서 어제도 모르고,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사는 오늘을 모르니까 미래도 가상 세계 꿈꾸는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지를 못해서 큰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젊은 분들이 역사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면서 성경과 역사 좀 더 성실한 마음으로 접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과 역사의 시간을 마련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큰 사건들이 분명히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것이 기초로 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종교의 경전처럼 가치가 우월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왔던 역사와 성경을 한번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