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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본 사주팔자(四柱八字)

은바리라이프 2012. 2. 24. 00:57

복음으로 본 사주팔자(四柱八字) 


2008년 8월 27일   이 근 호 목사 

참고서적 : [역과 점의 과학]   나가다 하사시 저 / 심우성 역 / 동문선 (서울 : 1991) 
               [변화를 이용하는 지혜 주역]   서우선 저 / 문학아카데미 (서울: 1999) 


Ⅰ. 서 론 

왜 요즘 교인들이 점차 교회를 떠나고 신앙생활을 포기하는가? 그것은 자신들의 몸이 요구하는 본성이 전보다 더 강렬해졌기 때문이다. 몸은 외부 세계에 적응하게끔 되어 있다. 외부 세계란 모든 변화를 두고 말한다. 변화를 읽어내고 그 변화에 대처하는 것이 몸이 뿜어내는 본성이다. 쉽게 말해서 “요즈음 내가 힘들다”라는 말은 그만큼 변화가 요란해져서 안정성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동안 교회 다닌 것은 어느 정도 안정적이 다고 자신의 몸이 판단했기 때문인데 경제가 어려워지고 인심이 흉흉하고 각박해지면서 다른 안정적인 대처방안을 찾아보도록 몸이 요구하는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수천 년 인류 역사를 통해서 인간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몸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방식이 무엇이었는가? 안정성을 찾는다는 것은 변화를 제대로 읽어서 그 변화를 ‘나를 위한 변화’로 전환하는 시도를 뜻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들은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하여 눈에 뜨이는 대로, 보이는 대로 들어오는 모든 변화를 일정한 형식으로 구획 정리 해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렇게 정리하지 아니하면 자신의 머리가 복잡해서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다. 눈에 들어오는 변화들을 정리하는데 있어 제일 수월한 것이 바로 ‘반복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 우주가 신으로 만들어졌다고 감안했다. 이는 곧 신적 요소가 모든 구석에 다 파급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확실히 하는 인식이 바로 신의 몸체가 산산조각 나서 그것들이 위치하기만 하면 곧 대우주의 사물들이 된다. 별이 그러하고 해가 그러하고 달이 그러하고 심지어 인간도 그러하다. 신은 자신이 만든 것을 방치하는 법이 없다. 우주가 돌아가는 전체가 곧 신 몸체 덩어리가 돌아가는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의 신만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성질을 달리하는 온갖 신들이 다 동원된다. 존재하는 사물의 수만큼이나 신의 숫자도 많다. 

옛날 사람들이 이런 허황된 신화를 허황되다고 여기지 않았던 이유는,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서 대 자연은 반복적인 질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반복성’만은 그 어떤 이론이나 논리로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진리로 보였던 것이다. 이 ‘반복성’이 인간의 눈에 보였던 것이다. 이 ‘반복성’이라는 확실함을 기초로 해서 신이 작업하는 원리 안으로 모든 변화를 묶어내려고 한 것이다. 신 따라 같이 움직이면 자기 신상에 좋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어차피 인간은 대자연이 주는 것으로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질서를 얻어낼 수 있는 반복성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는가? 별의 움직임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창 1:14-16) 


Ⅱ. 본 론 

1. 별의 움직임 

고대인들은 대형을 흩으려지지 않는 별자리 말고 따로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별에 주목했다. 그것이 바로 토성과 목성과 화성과 금성과 수성과 해와 달이다. 이것들이 돌아다니므로서 모든 우주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러하다. 인간이 태어난 순간에 이들 별들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를 놓고 따지게 되면 그 사람에게 평생 부여되는 대자연적 질서가 된다. 

특히 이들 별과는 달리 유독 눈에 들어오는 천체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해와 달이다. 이들 7개의 별들이 이 지상을 하늘에게 지배한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별이 하루씩 지구를 지배한다. 오늘은 수성이 지배한다면 내일은 목성이 지배한다. 이렇게 해서 일곱 개의 혹성이 한 번씩 지배받아 되풀이되는 기간이 7일이다. 특히 태양에 비해서 달은 주기성이 강하다. 달은 7일을 간격으로 변화의 윤곽이 뚜렷하다. 달 자체가 점점 커지기도 하고 점점 작아지기도 한다는 것이 참으로 심오하다. 신의 의지가 이것보다 더 명백하게 창공ㅇ[ 나타날 것은 따로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활의 변화를 붙잡는 기준으로 달을 택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것을 알도다”(시 104:19) 

2. 음양오행설 

대자연의 변화는 서로 상충되면서 움직인다는 사실에 고대 중국인들은 주목했다. 두 대립되는 성질을 놓고서 한 쪽을 ‘양’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다른 한 쪽은 ‘음’이 된다. 예를 들면 해는 달과 대립된다. 해가 양이라면 달은 음이 된다. 음이 가만있지 않고 양을 공격하고, 공격받은 양이 가만있지 않고 음을 상대로 나아간다면 자연스럽게 여기서 ‘운동’이 일어나게 마련이라는 것이 고대 중국인들의 생각이었다. 모든 대자연의 움직임을 이 음양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다섯 가지의 별의 움직임에서 모든 변화의 성질을 얻어내는 것과 연계하기 위해서는 실생활에서 눈에 띄는 성질들을 거기에다 부여해보는 것이다. 즉 하늘의 별과 지상에 있는 인간들의 세계에서 파악되는 사실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만약에 하늘의 별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지상에서의 미래 일을 예측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지상의 인생 생활이란 하늘의 변화에 종속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남자는 양이요 여자는 음이라서 서로 자주 싸운다’라는 사실만으로 미래를 열어갈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 궁합이 잘 맞겠느냐 하는 것은 우주의 대변화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이냐에 순종해야 한다. 그래야 개선의 여지가 있고 몸은 그 희망으로 행복해진다. 지상의 음양 성질과 하늘의 다섯 천체를 결합시켜서 미래를 대비하는 원리가 바로 ‘음양오행설’이다. 

중국에서의 오행설은 목성(木星)으로부터 출발해서 나무가 불(화성)을 낳고 불이 흙(토성)을 낳고 흙이 금속(금성)을 낳고 금속에 물(수성)을 낳고 물이 나무를 낳는 식으로 진행된다. l이런 진행의 관계라면 서로 평화롭게 잘 사는 모양새이지만 세상의 관계라는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서로 상극을 이루게 된다. 나무는 금속과 흙과 상극이요, 불은 금속과 물과 상극이요, 흙은 나무나 물과 상극이요, 금속은 나무와 불과 상극이요, 물은 불과 흙과 상극이다. 서로 살면(상생) 좋은 것이요 상극이 되면 나쁜 일이 곧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신이 무심히 진행하는 질서 체제 안에서 본인들이 각자 알아서 상생관계는 머물러 있으면 되고 상극 관계는 피하면 그만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인식의 체제까지 이 오행으로 배당하면 된다. 숫자도 그러하고, 방위도 그러하고,(수는 북쪽이요, 목은 동쪽이요, 화는 남쪽이요, 금은 서쪽이요 토는 중앙을 차지한다.) 1년 계절도 오행으로 각지 배당한다. 인간의 신체를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인간의 입맛까지 오행으로 잘라서 각기 배치 시켜놓았다. 이렇게 배당시켜 놓아야 그 다음에 배당시켜 놓은 성격끼리 대비해서 재수 좋은지 나쁜지를 헤아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는 반찬거리를 다 준비되었다. 음양과 오행의 인식으로 요리만 하면 된다. 요리를 처음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그것은 임의로 사태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음과 양 두 개의 상반되는 성질이 있다고 간주하고서는 무조건 나누기만 하면 된다. 그 나누어진 것들을 마치 신이 개입해서 생긴 흔적이라 여겨서 그 흔적을 ‘점괘’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 다음의 해석은 오행에 따라서 살펴보면 된다. 

대젓가락 50개를 쥔다. 이제 아무렇게나 양쪽으로 나누기만 하면 된다. 왜 50개냐? 50이 우주 전체를 의미한단다. 근거 있는가? 없다. 이 50개에서 우선 하나를 뺀다. 이 1개는 태극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49개 남는다. 왼손에 49개를 쥐고서 염불을 외우면서 우연을 가장해서 양편으로 나눈다. 왼손에 있는 것을 천책(天策)이라고 한다. 하늘의 책략이라는 말이다. 오른쪽에 있는 분량을 지책(地策)이라고 한다. 하늘의 뜻이 드디어 땅에서도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 지책 가운데 하나를 따로 떼어 낸다. 이것을 인책이라고 한다. 인간도 미래 책략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참여했다는 표를 내겠다는 것이다. 

왼쪽에 그대로 쥐고 있는 천책을 8로 계속 나눈다. 그러면 그 나머지가 8이 못되게 된다. 그 남은 나머지에다 인책 가지 하나를 첨부해서 최종 나온 숫자가 최종 괘가 된다. 가령 오른손 지책이 26개라면 계산이 다음과 같다. 

(50-1)-26=23  23÷8=2...7   7+1=8   여기서 나온 8은 곤(坤)괘에 해당된다. 곤괘란 무엇인가? 세상을 8가지 성질로 나눌 때 제 여덟 번째 해당되는 성질을 갖는다는 말이다. 즉ㄹ 태극이 둘로 나누어지면 음양이 되고 음과 양이 다시 각각 나누어지면 노음(老陰)과 소양(少陽)과 소음(少陰)과 노양(老陽)으로 나누어지고 이들 네 개의 성질은 최종 8개의 더욱 세분화된 성질로 정착된다. 곤(坤), 간(艮), 감(坎), 손(巽), 진(震), 이(離), 태(兌), 건(乾)이 바로 이것이다. 이 건에서 곤까지 담긴 의미는, 건조한 하늘로부터 대지에 이르기까지의 순차를 표시한 것이다. 그래야 전체 우주를 다 표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8괘는 그냥 있지만 오행과 합류된다. 그러면 8괘는 방향을 차지하게 되어서 상생과 상극의 관계로 해석 가능한 현상으로 자리 잡는다. 

인간의 사주란, 시간마저 음양오행설에 잠식당해 각기 개성적 성질을 지니고 오행설 안에 배치 받게 되는데 그 출생된 시간을 따져서 그 시간이 품고 있던 그 때의 우주의 변화와 관계성 속에 그 인간이 평생 놓이게 된다는 이론이다. 즉 사람으로 태어나 인간생명체가 시작이 될 때, 바로 그 순간 태양과 달과 지구의 위치관계에서 어떠한 작용관계가 있었는가를 예측하는 도구를 구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은 음양오행설에 의해서 잘라내는 작업이 선행된다. 

크게는 우주 속에서 ‘해’라는 시간이 자리 잡게 되고, 그 다음에는 ‘달’이라는 시간이 자리 잡고, 그 다음에는 ‘일’이라는 시간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다음에는 그 하루의 어느 ‘시점’이라는 시간이 자리 잡는다. 시간을 무엇으로 자르는가? 전체 우주는 인간의 수 헤아림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수 헤아림에 동원되는 것은 사람 손가락 열 개다. 그래서 손가락 열개를 이용하여 시간을 구획한다.(갑甲,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하지만 단순히 열 개로 나누게 되면 변화를 야기 시키는 관계성이 수립될 수 없다. 따라서 열개로 나누어진 시간은 음양오행설 틀에다 집어넣어야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된다. 갑을은 목(木)이요 병정은 화(火)요, 무기는 토(土)요, 경신은 금(金)이 되고, 임계는 수(水)가 된다. 상생이나 상극이나 하는 것으로 치달을 것이냐를 따지기만 하면 될 일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이 10(십)간干의 전반부 5개를 양이라고 정하고 (갑을병정무) 후반부 5개를 음이라고 정했다(기경신임계). 이렇게 배당을 해놓아야 변화를 그럴싸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은 12달로 정해버리고 각 달에는 시간적 숫자를 매겼다. 이것이 ‘12지支’다. 음력으로 1년을 정했는데, 양력으로 따지면 11월부터 시작해서,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가 그것이다. 10개의 간과 12가지의 지가 합하여 간지(干支)라고 한다. 역시 이 12지도 오행구조에 배당되고 방위적으로도 배당된다. 북쪽은 자가 되고 동쪽은 묘가 되고 남쪽은 오가 되고 서쪽은 유가 된다. 

이 12지는 달 뿐만 아니라 하루 시간에도 배당되어 12조각난다.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 사이가 자시(子時)가 된다. 10과 12의 최소공배수가 60이 되므로 십간과 12지를 맞추어보면 갑자, 을축, 병인과 같이 60가지로 짜 맞출 수 있다. 사주(四柱)란 시간의 네 기둥을 뜻하는 것으로 연주, 월주, 일주, 시주를 두고 말하는데 글자 수가 총 8자로 있다. 

10간은 하늘의 시간을 측정한다고 해서 천간(天干)이라고 하고 12지는 땅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해서 지지(地支)라고 한다. 사주팔자에서 8자(팔자)는 이렇게 천간과 지지로 나누어지는데 천간에는 할아버지궁(宮)과 아버지궁, 자기 궁, 아들 궁이라는 위치 관계를 가진다. 즉 연주는 할아버지 관계, 월주는 아버지관계, 일주는 자기와의 관계, 시주는 아들과의 관계다. 마찬가지로 지지에는 할머니궁과 어머니궁과 배우자궁과 딸의 궁이 있는데 연주는 할머니와의 관계요 월주는 어머니와의 관계요 일주는 배우자와의 관계요 시주는 딸과의 관계다. 

10천간과 12지간과 음양과 오행의 관계가 서로 맞물려 있다. 갑을 양인 반면에 을은 음이다. 하지만 갑과 을은 모두 목(木)에 해당된다. 인은 양이요 묘는 음이지만 5행으로 보면 둘 다 목(木)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하여 병은 양이요 정은 음이지만 둘 다 오행적으로 봐서 화(火)에 해당된다. 오는 양이요 사는 음이지만 둘 다 화에 속한다. 무는 양이요 기는 음이지만 둘 다 토에 해당되고, 진술은 양이요 축미는 음이지만 둘 다 토에 해당된다. 경은 양이요 신은 음이지만 둘 다 금에 해당되고, 신은 양이요 유는 음이지만 둘 다 금에 해당된다. 임은 양이요 계는 음이지만 둘 다 수에 해당되고, 자는 양이요 해는 음이지만 둘 다 수에 해당된다. 

이제 인간이 출생한 시간에다 이런 관계를 집어넣으면 된다. 가령 1994년 12월 19일 오후 2시에 누가 태어났다고 보자. 60갑자로 만든 표를 보게 되면 이 사람은 갑술년 병자월 기묘일 신미시에 태어난 것이 된다. 이 60갑자를 가지고 약육강쇠를 따져서 미래를 점친다. 부조화냐 아니면 조화로우냐를 미리 따져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연과 및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느냐를 결정케 하는 것이다.   


Ⅲ. 결 론 

사람이 사주팔자를 보는 것은 지금의 자리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미래가 깜깜해서 사태 파악을 위해 큰 운명을 훔쳐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우선 사람이 큰 운명이나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무척 겸손해 보이고 공손해 보일 것이다. 실은 정반대다. 사람은 큰 거목마저 넘어뜨릴 때 존재의 희열을 느낀다. 큰 운명을 미리 알고 신에 대해서 미리 안다는 것은 그것조차 박차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자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음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선한 신은 하나다. 역시 내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주팔자를 보는 것은 자기 자신 빼놓고 나머지 모두를 못난 신으로, 덜떨어진 신으로, 질 나쁜 신으로 정리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점을 친다든지 사주를 보는 것은, 운명의 신을 자기보다 더 나쁜 악마적 존재로 분류하기 위한 조치다. 

오늘날 교인들은 교회 와서 사주를 본다. 60갑자라는 복잡한 수 계산을 하는 것 대신, 다른 요인들을 동원한다. 예를 들면, “나는 지난 주 새벽기도회부터 시작해서 교회 출석을 여러 번했다. 이것은 아마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건성으로 몇 번 보았다. 이것은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웃 사람 몇 명을 전도했고, 큰마음 먹고 목돈을 헌금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중보 기도했으며, 직장에서 뇌물을 거절했다. 따라서 이런 나의 행위가 답답하기 짝이 없는 침침한 운명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피는 이런 인간들을 가려내게 된다. 십자가 안에 놓여 있는 인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구원한 피의 사랑을 증거 할 위치로 새롭게 창조된 자다. 재수가 있느니 없느니 것을 따질 수 있는 그런 영역에서 밖으로 튕겨져 나와 버렸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7-8) 

성도는 진리를 새삼 찾는 자가 아니라 늘 진리라는 덩치와 부딪치면서 사는 자다. 즉 미완성적인 상상력과 추리력과 예측력이 완성을 만나면서 끊임없이 약속의 완성 속에서 허무하게 녹아져가는 것이다. 미래? 세상 사람들이 고대하는 미래가 성도에게는 이미 현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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