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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개론 - 제2장 구약성경의 영감성

은바리라이프 2012. 2. 13. 16:47

구약개론 - 제2장 구약성경의 영감성  


제 2 장 구약성경의 영감성


1.성경의 독특한 영감성에 대한 증거

첫째로 구약성경 39권의 밑바닥에 흐르는 의미깊은 통일성이 있다.그것은 구약이 편집되기까지 수세기가 지났지만 유기적인 상호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것이다.그것은 하나의 마음,저자가 되시는 하나님 자신의 마음이 나타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자연 스럽다.

둘째로 세계의 모든 종교들 중에서 오직 히브리 종교와 기독교만이 논리적으로 옹호할수 있는 인식론(종교지식의 학문)을 제공한다. 성경을 떠난 4천년 동안의 인간 연구와 철학적 탐구의 결과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수 있고 우리의 생애를 위한 그의 뜻을 알수 있는가? 오직 그가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할때 뿐이다. 그분 자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대답을 결코 할수가 없다. 성경이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로 우리에게 그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는 이 중요한 사실을 관찰하여야 한다. 성경은 스스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특별 계시임을 증거한다. 그것은 그 말씀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왔다는 주장을 우리에게 하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만약 한 하나님이 계시고 그가 우리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그가 이 지식을 우리에게 확실히 부여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원문의 무오성

다음으로 우리가 물어야할 질문은 이 책은 어떤 종류의 기록인가? 

그것은 여러 종류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가?

만약 이 기록된 계시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의 고유한 목적인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신빙성 있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성취할수 없을 것이다. 만약 성경이 진리와 오류를 섞어둔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것은 다른 책인 코란,베다,우파니샤드,아나덱트,일리아드,오딧세이 등과도 겉은 것이다. 인간이 성경의 진리에 타당한 판단을 내리려면 그는 하나님과 영혼의 영적 가치들에 대해 성경이 아는 것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에 전적으로 의존하여야 한다. 만약 그 계시가 쓸모있고 신빙성 있는 것이 되려면 그것은 인간의 오류있는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무오한 것이어야 한다.


3.사본의 전승이 무오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오류에서 벗어났다는 무오성은 성경책들의 원본에 해당된다.그것들은 모든 실수와 무관하다.하나님께서 성경의 인간 저자들로 하여금 오류나 거짓을 쓰게 하실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성경의 텍스트는 어떠한가?

그것 역시 모든 종류의 오류에서 벗어난 것이어야 하는가?


원본을 처음 복사할때 펜을 약간 잘못돌린 것과 사본을 사본하면서 전수되어 가는 중에 더 많은 실수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경우는 거의 피할수가 없는 일이었다. 원본을 무오하게 복사를 할수 있다고 보증하는 것은 기적과 다름이 없다. 오늘날 원문 비평가들은 구약 성경의 초기 사본들에서 많은 종류의 사본상 실수를 발견하였다. 이것들은 메시지 자체를 왜곡시키며 그 참뜻을 전달할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심각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질수가 없다. 그 분은 자신의 계시를 전달할수 없기 때문에 후세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올바로 이해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분이 성경의 표준판과 권위있는 사본들을 복사하는 서기관들에게 어떤 억제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메시지를 왜곡시켰을 것이다. 만약 그 메시지가 오도되면 기록된 계시를 주신 그 전체적 목적이 무효로 돌아가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왜곡된 성경은 진리와 오류의 잡탕이므오 인간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기 보다는 인간의 판단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하는 것은 구약성경이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이전 시대의 모든 문학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히브리어 성경의 전수에 있어서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없었다면 똑같은 모순과변화의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사야서 두 권이 사해 근처의 쿰란 동굴 1에서 1947년에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이전에 알려진 가장 고대의 사본(A.D.980)보다 약 1000년 이전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 표준판과 비교해볼때 95%이상의 단어에 일치한다. 나머지 5%의 차이는 펜을 잘못돌렸는지 스펠링을 다르게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4.영감 교리에 대한 성경의 자체 증거

성경은 스스로 그 무오성을 주장하고 있는가?종종 성경은 그 무오성을 주장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성경을 깊이 연구할수록 성경은 그 스스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르짖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요 10:35).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벧후 3:16).

“…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이 …그의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히 1:1-2)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 1:10-1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5.하등적 영감관

성경의 영감에 대하여 신 정통주의적 접근을 하는 자들은 성경에 있는 교리적 진실과 오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소위 그리스도의 마음을 제시한다.진리의 기준은 그리스도의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선언들중 많은 것이 소위 “그리스도의 마음”과 너무나 크게 충돌하고 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33).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등 

그의 진술중 기록된 몇가지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가 어떠했겠다는 철학적인 개념을 세우고 동일한 자료에 기록된 다른 진술들의 신빙성에 대하여는 그것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그 진정성을 부인해 버리는 것은 전혀 일관성이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밟아 나가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억지로 집어넣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중 인간의 마음이 승인해 주는 것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이 참된 종교적 지식을 얻는데 있어서 부적당하고 신빙성이 없는 도구임을 보았었다. 성경이 인간을 판단해야 한다. 인간은 결코 성경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을수 없다.


전형적인 신정통주의적 성경관은 성경을 단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정도로만 보는 것이다. 성경의 텍스트가 인간 저자에 의해 쓰여졌으며 모든 인간들은 죄에 빠졌고 오류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성경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이 틀림이 없다고 말한다. 이와같은 성경관은 모든 종류의 과학적 역사적 오류들을 향해 문호를 개방하며 모세,이사야,다니엘과 나머지 글들의 진정성에 대해 합리주의자들이 고등비평을 하는 것을 용인하게 돤다.성경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이 모든 실수와 오류가 있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진다. 신정통주의의 신학자들은 성경 기록의 진실성에 대한 합리주의적 고등비평의 공격을 옆으로 돌리고 초자연에 대한 과학적 반박앞에서 기독교 메시지의 의의를 살리려고 노력하다가 계시 자체의 성격에 대해 역설적인 견해로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 성격 자체에 있어서 성경화 될수 없다는 견지를 지지한다.


6.성경의 난제를 다루는 법

사실 우리에게 전수된 성경의 텍스트는 성경 무오의 교리에 도전을 하는 듯이 보이는 난제들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어려움들중 어떤 것들은 본문 비평학을 올바로 사용함으로써 해결이 된다. 이런 문제를 다룰때 두가지의 가능한 방법이 있다. 


첫째는 그 개개의 난제가 풀릴때까지 성경 자체가 주장하는 무오성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문제가 생길때마다 그것이 만족스럽게 해결될때까지 성경은 의심받는 위치로 강등이 된다. 이러는 동안 신자는 성경에 대한 의심이 풀릴때까지 영혼의 고통과 힘든 의심의 고리에 묶여 있게 된다.


둘째는 명백한 불일치 앞에서도 성경 기록의 무오성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굳게 잡고 후일의 연구가 답을 확실하게 제시할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다.오직 성경의 신적인 기원이 성경 현상을 설명해 준다고 믿으며 나사렛 예수와 함께 기록된 하나님 말씀의 무오성을 붙잡고서 제기된 모든 문제가 결국 해결될때까지 믿고 바라보는 것이다.성경의 신적 권위를 확신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그 무오성에 대한 의심이 풀려 질때까지 기다리는 자가 어리석고 합당치 않게 보인다.그것은 종종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절차를 밟는 다기보다는 우유 부단한 자세로서 하나의 전제에서 다른 것으로 논리성이 없이 왔다 갔다 하게 된다.명백하고 분명한 상이점이 성경에 있다면(특히 원본에서 확증될 수 있는 것이라면)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신앙을 버려도 좋은 이유가 될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와같은 것이 증명될때까지 혹은 이와같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역사나 과학에서 오류가 있는 것이 법률적 증거의 법칙에 따라 확증이 될때까지 성경을 믿는 자는 그것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란 전제를 잊어서는 안된다.그동안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이와같은 오류는 법정에서 만족할 정도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