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제목은 <밍크코트>, 하지만 영문명은 <Jesus Hospital>이다. 영문 제목을 오롯이 직역하자면 ‘예수 병원’인 셈이다. 영화제 측에서 소개한 줄거리를 대충 보면 최근 한국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한기총 문제’나 ‘순복음 교회의 내홍’이 떠오른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견지한 극 영화인가하는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사회 내에서 개신교가 가지는 현재의 위태로움과 더불어 일반 대중이 가지는 그 불편함을 연상하며 깜깜한 상영관으로 발을 옮겼다. 신이 보시기에 과연 이 영화는 어떠할까?
영화 <밍크코트>는 신아가, 이상철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부터 함께 한 공동 연출작이다. 제 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오늘’ 부문 속 ‘비전’ 섹션에 올라와 있는 작품으로, 주인공은 둘째 딸 현순이다. 교회 권사인 홀어머니를 중심으로 첫째 딸, 둘째 딸, 막내아들은 ‘믿는 집안’의 자녀답게 각자의 가정을 꾸려서도 열심인 기독교인이다. 미묘하게도 형제간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 영화 초반 가족 간의 식사 장면에서 드러난다. 식사 중에 어떤 교회를 출석하느냐는 첫째 딸의 물음에 둘째 딸 현순은 쭈뼛거리며 개척교회에 나간다고 에둘러 말한다. 현순의 대답에 빈정거림과 관심 사이를 넘나드는 듯 형제들의 훈수가 이어진다. 그리고 영화는 8개월 후의 모습으로 넘어간다.
영화 '밍크코트' | ||
영화 <밍크코트>에서는 거의 모든 장면들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촬영하는 핸드헬드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느낌을 내는 고정 샷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앞서의 가족 식사 장면에서도 형제들 간의대화, 밥을 먹는 모습이 모두 조금은 흔들리는 핸드헬드로 촬영되었으며, 이 샷들이 빠른 컷으로 편집되면서 갈등이 엿보이는 형제간의 관계가 더 증폭된 불안의 느낌을 관객에게 전한다. 신실해 보이는 기독교 집안의 풍경 속에서 가족 간에 평안함이 아니라 위태로운 느낌이 영화 전반을 이루고 있다.
‘8개월 후’의 상황은 이렇다. 기독교 병원에 늙은 어머니는 혼수상태로 누워있다. 우유배달로 어렵게 생활하는 둘째 딸 현순은 병원비를 보태지 못해 형편이 보통인 다른 형제들에게 눈치를 받고 있다. 현순은 오직 주님에 대한 믿음에 의지해, 누워있는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입원실에서 통성으로 방언을 토해내며, 다른환자의 눈치나 살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병원은 형제들에게 혼수상태인 어머니의 소생 가망이 없다 며 ‘연명 치료 중단’을 권유한다. 첫째 딸과 막내아들, 그리고 며느리는 ‘연명 치료 중단’에 합의를 하지만 현순은 불같이 화를 낸다. 어떻게 어머니를 죽일 수 있냐고. 그리고 현순은 어딘가로 급히 차를 몬다. 현순은 전도사라는 한 여성을 만나 산 속에서 기도하며 그 여자로부터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다. 어떠한 계시를 받은 현순은 형제들의 합의를 사탄의 것으로 판단한다. 형제들의 합의에 맞서는 것은 현순에게는 성전(聖戰)이 된 것이다.
영화 전반에 보이는 현순의 모습은 관객에게 광신을, 기독교인이 보기에는 '이단'을 연상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종교적 믿음에 따라 어머니의 ‘연명 치료 중단’에 맞서는 현순의 모습이 이 영화 자체의 이야기는 아니다. 기독교적 믿음은 영화를 둘러싼 표피일 뿐이고, 핵심은 가족 간의 갈등이며 인간의 의존적 믿음이다. 각자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며 갈등하는 가정과 형제간의 모습을 이 영화는 핸드헬드 기법과 화면에 꽉 차는 클로즈업, 빠른 컷 전환으로 담아 관객의 마음을 끊임없이 불편하게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할 때 마다 전도사 찾아가 '계시' 받는 현순
형제들은 끊임없이 기독교적 하나님 안의 거시적인 믿음과 죽고 난 뒤 영생을 통한 평안을 강조하지만, 화면에 비치는 모습은 그와는 반대로 미시적인 각자의 욕망과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위선을 부각시켜 보인다. 광신으로 보일 여지가 있는 둘째 딸 현순도 마찬가지이다. 현순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종교적 신실함은 극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축이지만, 그 축은 위태롭기만 하다. 주체적 믿음이 아닌 것이다.
현순은 불안할 때마다 한 전도사를 찾아가 '계시'를 받고자하며, 그 계시는 때마다 달라진다. 그러한 모습은 믿음을 강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말씀이 가지는 권위와 영속성을 해체시키고, 인간의 연약함만이 강조되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영화 '밍크코트' | ||
할머니의 ‘밍크코트’ 이야기는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밍크코트’로 인해 수진은 할머니를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드디어 전체 극의 전개를 통틀어 형제들이 바라보는 각자의 욕망으로 둘러싸인 현재의 상황과 불확실성의 계시에서 벗어나, 현순의 딸 수진만이 확실한 과거의 사건을 상기함으로써 거시적으로 상황을 관조하게 되는 유일한 인물로 극 종반에 등장하게 된다.
유산위기 처한 딸 때문에 처음으로 자신의 믿음 직시하는 현순
이러한 와중에 임신 중이었던 수진은 유산의 위기에 처한다. 이로 말미암아 아직 태어나지 못한 생명과 겨우 연명하며 꺼져가는 생명의 중첩이 극 전체를 휘감는다. 수진의 수술이 시작되고 도중 혈액이 부족한 불상사를 겪는다. 수진이 생명의 크나큰 위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밍크코트' | ||
'맹목적인 믿음' 통해 인간의 나약함 조명
모든 것이 공(空)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한 철학자 나가르주나는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이 사실 ‘의존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논증한다. 나가르주나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모든 것들은 자기동일성이 없는 것, 즉 ‘공’한 것으로 판명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공을 이해한 사람은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벗어나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새롭게 본다는 점이다.
착각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을 영위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여기서 우리는 영화 속 현순을 바라볼 수 있다. 신에 대한 맹목적이고도 의존적인 현순의 믿음에서는 신이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수진과 그녀의 뱃속 생명이 꺼져가는 상황이 현순의 그 믿음을 극한까지 끌고 간 뒤에야 현순은 일그러진 믿음에서 해방된다. 현순은 신에 대한 의존이 결국 자기의존성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고 비로소 현실을 새롭게 보게 되는 전기를 가지게 된다.
눈 내리는 옥상에서 기도하는 현순의 장면과 더불어 수진의 꿈속에 나타난 할머니가 수진에게는 어머니이자 자신에게는 딸인 현순을 잘 부탁한다는 일종의 판타지 장면에서도 영화를 관통하는 현실적이고 갈등적인 화면 구성이 다시 한 번 해체된다. 인간의 불안과 갈등, 그리고 협잡꾼처럼 자신의 믿음으로 타인을 더운 분란케 하는 극단적 감정으로부터 등장인물의 해방과 함께 관객도 해방되는 지점이다.
기독교 비판 영화가 아니다…인간 본성의 허구에 일침
영화 <밍크코트>는 신이 주는 거룩한 평안과 계시를 맹신하는 현순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역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는 깜깜한 상영관에 발을 들여놓을 때 예감했던 ‘기독교 비판’의 영화가 아니다. 신의 주체도 결여되고, 믿는 자의 주체도 결여되어버리는 왜곡된(또는 맹신의) 믿음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과 인간 본성의 허구성에 일침을 가하는 영화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들은 ‘있을 법한’ 가족 간의 갈등 이야기에 들어맞는 촬영기법으로 더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의미를 전한다.
영화 <밍크코트>가 영화제만이 아닌 일반 배급을 통해 관객이 인간의 연약함을 직시하는 그 순간을, 두렵지만 남은 시간을 빛나게 할 그 순간을 가져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