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뉴스/문화읽기

독일 기독사이트 www.erf.de에 '부모공경'이란 주제하에 실린 글 번역

은바리라이프 2011. 6. 29. 13:46

독일의 기독사이트인 www.erf.de에 '부모공경'이란 주제하에 실린 글을 가져와 번역한 것입니다.
 

인구변화에 대한 예측은 독일이 고령화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티모 얀케(Timo Jahnke)*의 말을 들어보자.
 

경악스러운 사실들
독일이 점점 더 고령화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고령화'는 인구에 회자되는 단어다. 이러한 인구 통계학적인 경향은 분명하며 앞으로는 세대 간의 불균형 정도가 지금 보다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연방통계청의 예측조사에 따르면 2005년 독일 인구의 약 19%가 65세 이상이었다. 그 나이의 인구가 2030년에는 -각 계산의 변형에 따라-27-30%, 2050년에는 30-36%에 달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른 결과들
인구변화에 대한 이러한 예측들은 그에 따른 결과들을 가져오며 다양한 사회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것들은 이미 오늘날 부분적으로 경험되고 있으며 재정제도(연금), 보건제도(요양), 주거상황과 연관된 영역들에서 '고령화의 도전'은 앞으로 더 분명하게 커질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이유
특히 젊은 세대가 벌써부터 이 고령화의 문제들과 씨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이 질문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더욱 더 중심에 놓여야 하는가?
왜냐하면 기독교적 가치들과 성경의 증언이 이 질문들로 내몰기 때문이다. 그 중심내용은 노인들에 대한 젊은이들의 동정과 인정 이상의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세대들 간의 사회 내적인 평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형은 성경적 시대에 이미 장려되었다. 왜냐하면 이미 당시에 젊은이와 노인의 원만한 동거가 교회 안에서나 사회 안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노인들을 대하는 법'이란 주제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노인과 노인을 대하는 법에 대해 아주 광범위하게 말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본보기로 나이 든 부모를 대하는 내용을 가진 본문을 주로 다루려 한다.
 
구약

성경적인 세대간의 계약: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노인공경에 대한 계명(레19:32)의 약간 세분화된 설명은 10계명 속의 부모계명이다(출20:12, 신5:16). 대부분의 주석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여기에서는 어린 자녀들을 둔 젊은 부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의 돌봄에 종속되어 있는 늙은 부모를 말한다. 경험이 많은 노인으로서의 부모는 자녀들에 의해 절대적인 존경의 인물로 대해져야 한다. 이것은 이 계명을 경시했을 때의 부정적인 결과들이 묘사된 구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제멋대로 이 계명을 범하는 자에게는 저주(신27:16)와 심지어는 사형(출21:15,17 레20:9, 신21:18-21)이 경고되고 있다. 어떤 경우이든 불쾌한 결과들이 따라온다(잠17:25, 19:13,26, 20:20, 28:24, 30:17).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부모들이 그 자녀들을 교육하고 훈육하면서 행했던 일에 대해 자녀들로부터 그들에게 해당되는 인정과 감사를 경험하도록 부모들을 하나님의 아주 특별한 보호 아래 두신다. 뿐만 아니라 이런 맥락 가운데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부모는 말하자면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의 선물을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도구들'이다. 노인공경의 계명과는 달리 부모계명을(10계명 중 유일하게) 축복-스스로 장수하며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는-과 연결되어 있다.

신약
신약성경에서도 부모계명은 명백하게 다시 다루어진다. 이 계명의 반복적인 언급(아래 참조)은 이 계명의 파괴력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주의해야 할 의무임을 강조한다. 하나님께 노인들이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신약성경에서도(아버지와 어머니라는 특별한 인물 가운데) 자녀들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은 이러한 관점 뒤에 어떻게 노인들, 특히 부모를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경적 원칙이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 자신도 의심스러운 공적인 기부행위를 근거로 자신의 부모에게 물질적 지원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들과 같이 행하도록 부추겼던 바리새인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신다(마15:3-6, 막7:8-13). 영생의 길에 대해 물었던 부자청년과 대면하여 예수님은 반드시 지켜야 될 계명들 중 하나로서 부모계명을 강조하신다(마19:16-24, 막10:17-23, 눅18:18-24). 예수님도 자신의 죽음에 앞서 남겨질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심으로(요19:26-27) 친히 이 계명의 실제적인 적용(부양의 측면에서도)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삶의 모범을 보이셨다.

사도 바울 또한 부모계명에 큰 가치를 둔다. 그는 이것을 우선 에베소서(6:1-3)의 소위 말하는 '기독교적 가정법' 속에서 언급한다. 또한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들에서도 부모의 가치를 주제로 삼고 있다.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 것은 폐해로 지탄하고 있다(딤전1:9, 딤수3:2).

성경은 부모계명을 넘어 더 여러 번 '노인'이란 주제에 관하여 입장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묘사되며 노인들은 그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존중과 부양이 필요한, 존경해야 할 인물에 해당된다. 더우기 교회적 봉사의 뿌리들이 노인들과 연관되어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살펴 보면 오늘날까지 그 시사성을 잃지 않는 노인들을 대하는 기본원칙들이 나타난다.

윤리적 결과들
세계역사와 서구의 인류역사는 수백년 간 기독교의 영향력이 각인되어 왔고 이는 오늘날까지 서양의 가치규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가치와 원칙들 중 어떤 것들은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한 사회의 윤리적 상태는 노인들을 대하는 법에서도 나타난다. 노인들을 존경으로 대하는 것은 이미 시사한 바처럼 아주 기독교적인 과제이지만, 그들을 그들의 존엄과 가치에 맞게 대하는 것은 또한 이 사람들이 이루었고 세웠던 것들을 기념하는 것도 명령한다. 이러한 지식과 경험의 보물들이 회상되고 언급되는 일이 점점 줄고 있다.

만약 사람들이 노인들을 가치 있는 인격체로 기억하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삶의 마지막까지 유효하기 때문에 노인들은 삶의 마지막까지 존경과 인정을 받을 가치가 있다. 기본법에 명문화 되어 있는 이 사실을 회고하는 것은 노인들과 관련된 생각과 행동을 긍정적으로 형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노인들에게 활동의 장을 제공함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노인들의 재정적 안정을 위한 장기간의 연금확보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신호이다. 이미 여러 곳에서 실행되고 있는 소위 말하는 '세대간 거주'의 보조금정책 또한 더욱 확대되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친척관계로 맺어진 여러 세대들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몇 몇 대학들에서는 이미 노령에도 새로운 지식을 얻는 기쁨을 간직하고 있는 노인들을 위한 특별강좌들을 제공한다.

학교들이 활동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이나 학생들의 숙제를 도와주는 일 등에 참여하는 일을 맡김으로 '아주 어린' 세대와 교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개별적인 프로젝트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노인들이(베비시터원칙이나 데이케어원칙에 따라) '일일(대여)조부모'로서 참여함으로 역으로 '일일(대여)가족'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시민단체들도 생각할 수 있다.

이동하는 치매카페, 기도의 대부대자관계 등 많은 것이 가능하다
교회와 공동체 또한 노인들과 관련하여 많은 발전잠재력을 갖고 있다. 외부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한가지 가능성은 사회봉사활동의 확대이다. 노인들을 목표로 선교사업을 할 수도 있다. 방문봉사나 차량봉사, 장보기와 같은 봉사활등들은 가능한 활동들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미래지향적인 것이 있다면 이동식 '치매카페'를 들 수 있다. 또한 만남을 위한 카페들도 교회와 공동체의 다양한 세대들을 말 그대로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이곳에서 지혜와 경험 같은 노인들의 속성들이 긍정적으로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이로부터 예를 들어 기도의 대부대자관계가 발전되어 한 노인과 젊은이가 각각 서로 연결되어 상호교류를 하도록 자극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배를 구성함에 있어서도 많은 것이 가능하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이미 다양한 연령층에 맞는 '연결' 예배들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한 세대가 지속적으로 선호되지 않는 성공적인 협력은 상호적 과정이라는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다른 세대의 취향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실제적으로 체험될 수 있다.
 

*티모 얀케는 윤리와 가치에 대한 연구소의 학문적 동역자이며 깜뻔의 개신교 신학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있다.
이 요약글의 전문은 www.ethikinstitut.de 에서 읽을 수 있으며 다운로드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