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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철저해부

은바리라이프 2011. 5. 4. 08:09

이슬람 철저해부

 

 

 

 

오늘 속회 주제는「기도로 일을 성취한 사람」이다.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시종인 느헤미야가 폐허가 된 고향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바사 총독의 이름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수리하고, 성전을 지은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도 기도로 우리의 사명을 성취할 것을 촉구하는 과목이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의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 자살테러를 일삼는 이슬람이, 터진 구멍에 스며드는 독가스처럼 스며들고 있는 이 때, 이를 전혀 모르고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은 우리 그리스도교를 박멸의 대상으로 알고 있어 언제 우리를 향해 자살테러를 할지 모르건만 우리는 그들을 친구로 착각하고 있다. 이 자료는 이를 알려주기 위해 정성껏 만든 자료다.(오소운)

 

 

 

 

 

 

1. 이슬람의 천국관

“코란 이외에 남자들에게 오직 한 명의 아내만 거느리라고 가르치는 다른 성서는 없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아내를 거느리는 것이 허용되었다. 왜냐하면 성경(Bible)에는 아내의 수를 제한하라는 것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 이었다”(후세인 키르데미르, 한국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궁금해 하는 33가지, 아담출판사, pp. 97-98)

하기야 이슬람에는 타끼야(TAQIYA) 라는 편리한 법(?)이 있어서 이슬람에 유익이 되는 거짓말은 허용을 하니까 그렇게 써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면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는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해 놓았을까?

 

2. 일부다처제도

“너희가 고아들에게 동등하게 대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으면 다른 여인들 두 명 그리고 세 명 그리고 네 명과 혼인하라. 그러나 그들을 공평하게 대할 자신이 없으면 한 명과 결혼을 하든지 혹은 네 오른손이 소유하는 것(노예 소녀들이나 전정포로 여인들)으로 하라. 그것이 불의를 행하지 않을 수 있는 더욱 적합한 길이니라”(코란 4장 3절)

결혼을 두명 세명 네명과 하라고 하면서 각 숫자 사이에 아랍어로 wa (and)라는 접속사로 연결이 되어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2+3+4 즉 9명을 허용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런 이들은 무하마드가 죽을 때 9명의 아내를 남겨두고 죽었다는 것을 예를 들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예언자의 삶은 모든 무슬림들이 따라 배워야 할 표본이기 때문에 우리도 9명까지 아내를 얻을 수 있다.”

 

“간음하지 않고 정상적 부부로서 자기의 재산 범위에서 처를 얻는 것은 허용되고 있다.”(코란 4장 24절) 러지(Razi)라는 이슬람 학자는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재산이 많으면 원하는 대로 숫자에 제한을 받지 않고 아내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이슬람권에서는 수십 명의 아내를 둔 사례들도 많다.

 

가. '이슬람의 천국'은 어떤 곳인가

1) 술과 여자가 많은 곳

이슬람의 천국에는 4개의 낙원이 있다고 한다. 거기는 두개의 샘이 흐르고 과일 나무들이 무성하여 침대에 누워서 손이 닿는 곳에 각종 과일이 열려 있어 따 먹는데 금지 당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코란 55장-56장) 그리고 그 낙원에는 썩는 일이 없는 물이 흐르는 하천과 맛이 변하지 않는 우유가 흐르는 하천, 달콤한 술이 흐르는 하천, 그리고 맑은 꿀이 흐르는 하천이 있다고 한다.(코란 47:15)

 

이슬람에서는 이 세상에서 금하는 것들을 낙원에서는 아무 지장 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슬람권에서는 술을 금하고 있다. 그래서 이슬람국가의 공항에서 술을 소지했다가 빼앗기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술집을 구경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술을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법으로 금한 것이고 발각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밀매 형식으로 거래가 되므로 술값만 올려놓은 셈이다. 이는 코란의 구절에 근거한 것을 실천하려는 정부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코란에서는 술을 금하고 있다.(코란 5:90-91) 그러나 천국에서는 술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다(코란 56:18)고 하는데 그 술은 혼합된 술이며(코란 76:5) 두통과 취하는 일이 없는 술이라고 한다.(코란 56: 19) 코란에는 이 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취하지 않는다.

2) 이성을 흐리게 하지 않는다.

3)두통이 없다.

4) 구토를 하지 않는다.

5)소변을 자주 보게 하지 않는다.

 

이슬람에서는 불법 성행위를 철저히 금하고 있다. 그래서 간음하다가 발각이 되면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을 통해서 잔인하게 공개처형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의 천국에서는 여러 명의 아름다운 처녀들과 성행위를 마음대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코란 56:35)

 

아랍어 코란에는 후리(huri: 선녀라고 번역할 수 있다)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코란에 기록된 이들에 대한 묘사만 봐도 대단한 미녀들임에 틀림이 없다. 눈이 크고 아름답다.(코란 56:22)

 

아무도 손대지 않은 순결한 처녀들이다.(코란 55:74) 그녀들이 침상에 누워서 기다리고 있다.(코란 55:76)

 

비슷한 나이 또래로 만들어 놓았다.(코란 56:37) 잘 보호된 달걀 같다.(코란 37:49) 비단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고 은팔찌를 하고 있다.(코란 76:21)

 

그들의 가슴은 볼록하다(코란 87:33).

 

이슬람에서는 코란과 거의 버금하는 권위를 가진 하디스(Hadith)라는 책들이 있다. 그 하디스에 보면 그 처녀(huri)들에 대해 아래와 같은 표현이 있어 읽는 이들을 당황케 한다.

 

그 처녀(huri)들의 숫자를 72명이다. 70명은 특별히 창조된 처녀들이고 두 명은 인간 여성들이라고 한다. 지상의 아내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여자는 천국에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코란 56:35-37)

 

2) 자살군단(自殺軍團)

(아래 글은 ‘이규태 코너’ 에서 인용한 글임)

이라크전에서 드디어 몸에 자폭장치를 한 자살군단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역대 어느 전쟁보다 통치자와 피통치자, 그리고 군인과 민간인을 갈라 싸워야 하는 이 전쟁에서 이 위장 인간무기는 전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이 자살군단은 사막 전투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산노인부대(山老人部隊)’라는 암살군단이 10세기 전후해서 암약했던 선례를 본뜬 것이다. 이란 아라라트산에 본거지를 둔 이 암살군단은 암살병력을 길러 반대종파의 우두머리들을 암살했고, 그 후 이곳을 침입했던 십자군과 몽골군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 것도 바로 단검(短劒) 하나로 무장한 산노인부대였다. 십자군의 명장 레이먼드 백작이며 예루살렘의 곤래드왕, 사막국들의 대공(大公)들을 암살한 것도 이 산노인 암살군단이었으며 몽골군이 아라라트산성을 점령, 무참하게 학살을 감행한 것도 그 시달림에 대한 보복이었다. 프랑스 문호 뒤마의 ‘암굴왕’의 주제가 되기도 한 이 산노인성은 그 이전에 마르코폴로가 이곳을 지나면서 그 견문을 적어 남겨 알려졌다. 이 산성에 환상적인 궁전을 짓고 과수 틈에 꿀과 젖이 흐르는 사이로 미녀들을 거닐게 하여 천국을 지상에 재현해 놓았다. 그러고서 청소년들 눈을 가리고 이곳에 납치, 대마초를 먹여 환각을 일으키게 하고 천국으로 착각케 한다. 신선처럼 차린 산노인은 이들을 자객(刺客)으로 내보내면서 성공하면 이 천국에서 영생한다는 심증을 준다. 암살자를 뜻하는 영어 ‘어새신’이 대마초를 뜻하는 ‘해시시’에서 비롯된 것이라던데 바로 이 산노인성에서 맺어진 연관이다. 지금도 ‘독수리의 둥지’라는 뜻의 이 암살교단의 본거지가 폐허로 남아 있음을 보았으며, 이 밖에도 150여개의 산노인성이 흩어져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암살교단의 위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10세기에 시작된 이 암살작전이 산발적으로 명맥을 잇다가 그 천여년 후인 이번 이라크전에 자살군단으로 부활한 셈이다. 후세인 대통령을 수호하는 친위부대를 페다인부대라고도 부른다던데, ‘페다인’이란 헌신자란 뜻으로, 바로 이 암살교단 자객의 미칭인 것이다. 그 자살순교를 자임하는 페다인이 4천명에 이른다 한다.

 

3) 무한성교(無限性交)의 낙원

이븐 카티르(Ibn Kathir)는 낙원에서의 성교에 대해서 하디스를 주석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선지자가 “낙원에서도 성관계를 즐길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 영혼을 붙들고 계신 분의 이름으로 맹서하건대”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행위가 끝나면 그녀는 순수한 처녀로 되돌아 갈 것이다” (Ibn-Kathir, 코란 주석 56:35-37)

 

거룩한 선지자(무하마드)가 믿는 자에게는 낙원에서 성관계를 즐기도록 엄청난 정력이 부여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 어떤 이가 “오 알라신의 선지자여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하자 무하마드가 대답했다.

 

“일백 명분의 정력(精力)이 부여될 것이다.”

무슬림이라면 아무도 이 말을 부인할 수 없다. 코란과 하디스에 있는 것을 인용한 것이다. 이슬람의 최종 목적지라고 생각되는 낙원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기에 돈없어 결혼을 못 하는 청년들이 얼마나 가고 싶을까를 생각해 보라. 이런 천국에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지하드(聖戰)에서 순교하는 길이다. (코란 3:158, 169)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자살 폭탄테러의 원인은 대개의 경우 형편이 어려워 결혼 자금을 마련할 수 없는 10대 소년들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다. 순교자의 가정에는 정부에서 모든 생활비를 풍부히 대준다니 가난한 집 자식들이 너도 나도 폭탄을 몸에 두르고 자살테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막 12:25)

사람의 생명은 온 천하보다 귀하다.(마 16:26) 그런데 이슬람의 소년들은 진리가 아닌 섹스낙원과 생계비보조란 꾐에 속아서 원수를 죽이기 위하여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던져 버리는 엄청난 범죄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란 북부 실크로드를 따라가면 ‘산 노인성(山老人城)'으로 불리는 폐허가 된 고성(古城)을 볼 수 있다. 이 산성 안은 과수와 화초와 향나무가 자라고 꿀과 우유가 흐르는 가운데 황금 단청의 누각이 있고 그 안에는 술과 관능적인 여인들이 득실거리는 지상 낙원이었다. 한다. 이 산성의 지배자인 산노인은 스무 살 미만의 청소년들에게 하시 시(마약)을 먹여 혼수에 빠뜨린 다음 이 성중에 옮겨 잠을 깨게 한다. 그리고 미주(美酒)와 미희(美姬) 속에 실컷 즐기게 한 다음 다시 마취시켜 성 밖으로 운반한다. 그러고서 나를 위해 일신을 바친다면 이 낙원에서 영원이 살 수가 있다고 유혹한다. (출처: 예화신문)

 

3. 자살테러 부추기는 아랍TV

지난 5월 27일에 방송된 하마스TV의 프로그램을 보면 철모르는 어린아이가 자라서 하마스 샤히드(알라를 위한 순교)라는 단체의 전사(戰士)로 성장하는 과정을 감동적인 연출기법을 동원하여 미화하고 있다.

 

TV프로그램의 내용은 어린 아이가 어려서부터 모스크를 출입하고 코란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 안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자라고 코란과 함께 다른 한손에는 자동소총을 쥔 테러리스트로 성장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을 고백하며 전의(戰意)를 불태우는 내용이다. 청년이 된 아이는 하마스의 일원이 되어 실제로 전투에 참여하고 결국은 장엄한 합창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가운데 알라신을 위해 자살 폭탄으로 순교한다. 그리고는 TV에

 

“그의 순결한 피는 명예와 영광이다.”

이런 자막과 해설이 나온다.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제작된 것이다. 반복적으로 순교와 적개심을 고취하고 있으며, 프로그램 중간에는 순교와 죽음의 내용을 담은 뮤직비디오까지 삽입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아이들은 순교를 통해 얻는 명예와 축복의 달콤함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하마스TV 뿐 아니라 관영 PATV와 Al Aqsa TV에서도 방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부가 제작한 각급학교 교과서에도 순교가 미화되어 있다. 8학년의 한 교과서에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오 영웅들이여…. 너희들이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동안 적들은 살길을 찾느라고 바쁘다. 그대들이 흘린 핏방울은 내일 커다란 운석이 되어 적들의 머리를 깨부술 것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프로그램을 방송한 하마스TV는 팔레스타인의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으로 인해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방송의 역할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방송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에서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다른 손에는 기관총을 든 전사의 모습을 반복해서 방송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하마스TV의 경우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지난 3월부터 현재까지 반복해서 방송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가운데는 실제로 자살폭탄테러를 저지르고 사망하여 순교자로 추앙 받고 있는 여성 테러리스트인 레엠 리야쉬의 4살 먹은 딸이 직접 출연하여 어머니의 뒤를 따르겠다는 맹세의 노래를 부르는 섬뜩한 장면도 있다. 그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이 딸이 죽은 어머니의 시체에서 직접 파편을 뽑아내는 장면으로 끝내고 있다.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는 하마스의 설립자이며,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당한 아흐메드 야신의 일대기를 어린이용으로 제작한 프로그램도 있다. 이 프로그램 역시 어린 아이를 등장시켜 야신의 발자취를 따를 것을 맹세하며 군복을 입고 군사훈련에 참여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 어린이들은

 

“이스라엘은 야신을 죽였지만, 우리는 미래에 수천 명의 또 다른 야신으로 성장할래.”

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01년부터 2004년 사이에 PATV 등을 통해 1백회 이상 방송된 또 다른 프로에서는 순교의 길을 떠나며 부모에게 남긴 어린 전사의 편지 내용을 담고 있다. 그 편지에서 어린 전사는 순교를 달콤한 꿈이라고 묘사하고 있어 보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오히려 죽음을 동경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03년 사이에 자주 방송된 한 뮤직비디오는 실제로 교전 중 사망한 실제 인물인 무함마드 알 두라가 천국의 낙원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장면을 담고 있다. 11살짜리 팔레스타인 소녀는 TV인터뷰를 통해 잘라 말한다.

 

“모든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은 지금의 삶보다는 장렬한 순교를 동경한다. 그것이 꿈과도 같은 낙원으로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출처 : EMN서울에서)

 

4. ‘알라’는 창조주인가

이슬람에서는 자신들이 믿는 신인 알라가 천지를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다. 코란에는 인간의 창조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코란 15장 33절에 보면 알라께서 인간을 도토(陶土,토기장이들이 그릇을 만드는 검은 진흙)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dust, 곧 먼지)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창2:7)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코란 86장 6절에 보면

“인간은 뿜어 나오는 액체로 만들어진 것이니(이슬람국제출판국)” “그는 뿜어 나오는 물로 만들어졌고….”(김용선역)

 

그런데 코란 32장 8절에는 또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인간을「비천한 물」(김용선역),「보잘것없는 액체」의 추출물(이슬람국제출판국)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코란 96장 2절에 보면「응혈(凝血, 엉긴 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이슬람 국제출판국, 김용선역)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최영길 번역본에는 내용상의 모순을 없애고 신자들의 의심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 세 부분을 모두 “정액(精液)”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코란 21장 30절에서 창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구절을 찾았다.

“믿지 않는 자들은 하늘과 땅이 닫혀진 한 덩어리였음과 내가 그것을 연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나는 또한 물로부터 모든 생물을 만들었으니 그래도 저들은 믿지 아니하느냐? (이슬람국제출판국)”

 

“하늘과 땅은 서로 맞붙어 있던 것이었으나 우리가 이것을 갈라 떼어놓고 또 물을 가지고 모든 생물을 창조했다는 것을 그래도 그들은 믿지 못하느냐? (김용선역, p. 347)

여기 보면 모든 생물을 물로 창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최영길역에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물을 모든 생명체의 근본으로 두셨으나 그들은 믿지 아니하려 하느뇨?”

모든 생물 속에는 인간도 포함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코란이 말하는 것에는 커다란 모순이 있다. 물론 이 물도 정액이라고 주장을 할 수도 있겠으나 모든 생물을 정액으로 만든 것은 아니기에 또한 모순될 수밖에 없다.

 

또 코란 41장9-12절에 보면

“이틀 동안 대지를 창조하시고, 4일 동안에 대지에 양식을 창조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셔서 이틀 동안에 하늘을 일곱 개로 나누셨다.”

 

이런 구절이 있다. 안식일을 빼고도 2+4+2=8일인 것이다. 코란의 다른 구절에는 천지창조를 6일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코란11장 7절, 25장 59절 등) 8일간 창조했다고 하니 둘 중의 하나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알라께서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후에 수증기(혹은 연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다.”(코란 2:29, 41:11)

이 구절은 그 하늘은 알라가 만들기 전에 있던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알라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하늘로 가서 그것을 일곱으로 나누는데 이틀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 하늘도 알라가 만들었다면 최소한 하늘을 만들기 위한 또 하루가 있어야만 한다.

 

5. 무함마드는 이스마엘 후손?

이슬람의 신 알라(Allah)와 기독교와 유대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섬기던 바로 그 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기독교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종교를 타락시키고 경전으로 내려 준 성경을 변질시켰기 때문에 무함마드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경전의 원본을 내려 보내어 아브라함의 종교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이슬람이라는 주장이다.

무함마드는 과연 이스마엘의 후손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자면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순서다.

 

성경의 아브라함(Abraham)과 코란의 이브라힘(Ibrahim)이 과연 같은 인물인가? 우선 성경의 아브라함은 아버지 이름이 데라(창11:31-32)인데 코란의 이브라힘의 아버지 이름은 아자르(Azar)다.(코란 6:74) 아버지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는데 99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 바꿔주신 것이다.(창17:5) 그런데 코란의 이브라힘은 젊었을 때부터 이브라힘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코란 21:60) 또한 성경의 아브라함은 이방인들에 의해서 불속에 던져진 일이 없는데 코란의 이브라힘은 이방인들이 그를 불속에 던진 것을 알라께서 구해 주셨다고 한다.(코란 21:68-69)

 

코란의 여러 주석에 보면 그를 태워 죽이려던 이방인들은 앗수르왕 니므롯의 백성들이라고 한다. 특별히 성경에 아브라함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간 일이 없는데 코란의 이브라힘은 메카에서 이스마엘과 함께 카바(Kaaba)신전을 건축한 사람이라고 한다.(코란 2:125-127) 그리고 이슬람의 제 2경전이라고 불리는 부카리의 하디스에 보면 이브라힘은 이스마엘에게 이혼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성경과 코란의 이러한 내용상의 차이는 성경의 아브라함과 코란의 이브라힘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아니라 이스마엘이 메카에 가서 살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스마엘이 메카로 간 것이 아니라 바란 광야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을 보자.

 

‘그가 바란 광야에 살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애굽 여인을 아내로 얻어 주었다’(창21:21)

 

애굽 여인과 결혼할 때는 그가 바란 광야에 살았지만 평생을 거기서 살았다는 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히브리 원문에는 ‘때에’라는 말이 없다.

 

‘그는 바란 광야에 살았다. 그리고 그의 모친이 애굽 여인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이게 올바른 번역이며 킹제임스 번역이나 굳뉴스바이블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이스마엘의 거처는 바란 광야 즉 이스라엘 남쪽,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보냈던, 가데스바네아 북부 바란 광야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이 메카에 가서 살았다는 이슬람의 주장이 성경으로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의 후손들 중 어떤 사람이라도 메카에 가서 살았고 그들의 후손 중에 무함마드가 태어나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친절하게도 무함마드의 후손들의 거처까지 알려주고 있다.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하윌라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창25:18)

 

그런데 하윌라에서 술까지 통하는 지역이 어디인지 우리가 잘 모른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영어 성경에 보면 거기가 어딘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Near the border of Egypt(이집트 국경 부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쉽게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스마엘의 모친인 하갈은 애굽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아내도 애굽 여인이었다.(창21:21) 그렇다면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이 애굽 근처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언어이자 할머니의 언어를 그 자식들과 손자들이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살았을 것이라는 것이 자연스런 추측이며 성경도 애굽 국경 부근에서 살았다고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들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시편 83편을 읽어 보자.

 

“주님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

주님의 원수들이 누구란 말인가?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이들이 주님의 원수들이라고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마지막 18절에 보면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마치고 있다. 즉 이스마엘 후손들과 하갈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원수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며 살았던 것이지 그 후손들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그대로 대대손손이 물려주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농담이지만, 이스마()엘(El)=마귀를 하나님(엘)로 믿는 자들이니까. 이스마엘 족은 하나님의 원수 곧 마귀의 앞잡이다.

 

이것은 이스마엘이 하갈의 복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의 장래를 예언해 준 것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창16:12)

 

이스마엘은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형제(이삭)과 대적하며 살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이스마엘은 그의 형제들과 적대적 관계로 살 것이고 그의 후손들 역시 그 형제들 즉 이삭의 후손들과 적대관계를 가지고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고 또 그 예언대로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살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6. '무함마드의 출현이 신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고?

“이것은 옛사람의 경전에도 있는 것이다.”(코란 26:196)

이란의 중서부에 아와즈(Ahwaz)라는 도시가 있는데 거기서 북쪽으로 약 2시간 정도 자동차로 가면 에스더가 왕비로 간택되었던 수산성이 있다. 수산성의 정문에서 약 100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다니엘의 묘지가 있는데 거기에는 동판으로 큼지막하게 새겨서 벽에다 걸어놓은 다니엘을 소개하는 글귀가 보인다.

 

그 중에 이런 문장이 보이는데

“다니엘은…무함마드가 태어날 것을 예언한 선지자이며 예수와 함께 재림할 선지자다.”

그들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이렇게 담대하게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다니엘의 이름을 빌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다니엘을 소개하는 한 장짜리 인쇄물을 준다. 읽어 보니 성경 다니엘서 12장에 무함마드가 출생할 것을 다니엘이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읽어 보았다. 아무리 봐도 무함마드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책자를 보니 다니엘서 12장 3절을 말하는 것이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이것이 무함마드의 탄생을 예언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무슬림들이 무함마드의 탄생이 예언되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요한복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여기서 보혜사라는 말씀은 헬라어 원문에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고 되어 있다. 그것을 무슬림 학자들은 페리클레토스(perekletos, 빛나는, 칭찬받는)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함마드 라는 이름은 아하마드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칭찬받는 자, 빛나는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서에 나오는 별처럼 빛난다는 말씀이나 보혜사를 보내시겠다는 말씀을 무함마드의 등장을 예언한 것이라고 그들은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이다.

출처: 한국이란인교회 이만석 목사의 글에서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