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뉴스/문화읽기

이슬람 천국 만들면 여성들의 천국 될까?

은바리라이프 2011. 5. 4. 07:43

이슬람 천국 만들면 여성들의 천국 될까?
현경교수의 이슬람순례 (38) 근본주의 신봉하는 인도네시아 여성들
한겨레
» 자카르타 아시아재단 수석 연구원인 리스 마르코스(맨 왼쪽)와 가족들.
세계에서 제일 큰 무슬림 인구가 사는 인도네시아. 다양한 종족, 언어, 문화, 종교 때문에 건국 이래 다원주의를 주장해 온 이 부드러운 이슬람 국가에도 근본주의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종교의 근본을 지키자는 보수적인 운동으로 여러 종교에서 자신의 종교의 가르침만 옳다는 독단주의, 배타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운동의 뿌리에는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대두된 사회변화, 계몽주의 이래 나타난 근대성(modernity)에 의해 붕괴되고 있는 자기 정체성(Identity)을 고수하겠다는 노력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어떤 사회 변화에도 변화될 수 없는 몇 개의 진리를 주장하며 이 진리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한다.

근본주의는 ‘여성=모성’이라며 여성을 통제한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왜 자발적으로 ‘열혈당원’이 되는 걸까? 아시아재단 리스 마르코스 연구원은 “근본주의 집단이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를 바탕으로 여성들에게 이슬람 천국 건설에 필요한 ‘전사’ 생산자로서 자부심을 갖게 한 결과”라고 했다

» 세계에서 가장 무슬림 인구가 많은 나라인 인도네시아에서는 다양한 이슬람 사원을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근본주의 집단은 여성에 대해 생물학적 결정론을 가지고 본질주의(Essentialism)적으로 접근한다.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자궁을 가졌으므로 이 세상에 아이를 낳기 위해 온 것이며 가장 중요한 생의 목적은 어머니가 되는 것, 모성을 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성=여성성=모성’의 등식은 창조의 질서이자 신의 뜻으로 규정되며, 그 사회의 가부장적 전통과 스테레오타입의 여성성에서 벗어나는 모든 여성들은 여러 방식을 통해 처벌된다.

그러므로 근본주의 집단에서 자신의 도그마와 문화를 지키는 가장 큰 지표 중 하나가 여성의 삶에 대한 통제다. 그들은 여성의 생각, 삶의 방식, 의상 등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맞게 디자인해서 그들 집단의 여성들에게 강요한다. 그러니 그들의 가르침이 여성들에게는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 세계에서 가장 무슬림 인구가 많은 나라인 인도네시아에서는 다양한 이슬람 사원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많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근본주의 집단에 참여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열혈당원’ 노릇을 자처한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지금 수많은 여성들이 이슬람 극단주의, 근본주의 집단으로 대거 합류하고 있다.

도대체 왜 수많은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여성들은 근본주의적 집단에 자진해서 들어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여러 인도네시아의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리스 마르코스(Lies Marcoes)를 찾아가서 그에게 답변을 얻으라고 한다.

 

리스 마르코스는 자카르타의 아시아 재단 수석 연구원으로, 시내에서 한시간 이상 떨어진 교외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우리가 전에 어딘가에서 만난 적이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얼굴이었는데 어디서 만났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호구조사(?) 끝에 그녀의 눈빛이 갑자기 빛나더니 나를 와락 껴안고 소리를 지른다.

“우리는 95년 베이징 여성대회 때 같은 방을 썼던 룸메이트였어요! 그때 내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 당신과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아마 기억이 안 날 거예요.”

그제야 겨우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 같이 방을 썼던 촌스러운(?) 인도네시아 여성. 수줍어하고 자기 표현을 못 하는 사람이라 기억 속에 잘 입력이 안 되었던 사람이다. 그녀에게 지난 10여년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내 앞에 서 있는 자신있고 당당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여성운동가가 기억에서도 지워진 베이징의 그녀라니 …. 정말 사람 팔자 시간문제고 프로는 아름답다고 할 수밖에 ….

리스 마르코스는 베이징 여성대회에서 큰 충격을 받은 뒤 암스테르담에 가서 여성학과 사회학으로 학위를 받고 자카르타로 돌아와 일하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전문분야가 근본주의라고 한다. 인생에서 며칠 밤을 같이 잤다는 것이 대단한 인연인지, 너무도 쉽게 깊은 대화들이 술술 풀려 나왔다.

그의 집 발코니에 앉아 열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정스러운 남편과 의젓한 자녀들이 우리에게 계속 간식과 차를 날라다 주었다. 수피즘에 매료되어 자연치유와 명상에 전념한다는 출판사 편집인인 그녀의 남편은 오늘의 그녀가 있게 도와준 삶의 파트너다. “당신이 아홉 달 동안 아이를 임신하느라 고생했으니 아이들이 태어나면 9년 동안은 내가 전담해서 키우겠다”고 약속한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의 약속을 잘 지켰다고 한다. 여기서 또 내 잠정적인 관찰이 증명되는 것 같다. “만약 그이가 진정한 무슬림이라면 일하는 여성에게는 무슬림 남자가 최고의 남편감이다.”

리스 마르코스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 퍼져나가는 근본주의의 근거에는 지구화에 의해 심해진 극심한 빈부격차, 가난, 삶의 유동성, 정체성 해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제국주의의 이슬람 침략에 대한 분노, 인도네시아의 세속주의 정부가 보여준 경제부흥과 민주주의 수립의 실패 등에 기인한다고 한다. 민족주의, 사회주의, 경제개발, 세속주의, 민주주의 … 모두 그럴싸한 비전을 제시하며 인도네시아 민중들에게 잘사는 미래를 약속했지만 어느 하나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에 대해 인도네시아의 근본주의자들은 마지막 남은 카드로 ‘이슬람’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라 한다. 그들은 이제 이슬람 종교에 근거한, 부정부패를 물리치고 모든 ‘우마’(공동체)가 함께 나누며 사는 이슬람 이상국가, 파라다이스를 꿈꾼다 한다.

» 현경교수 이슬람순례
이 집단에서는 여성들을 이 파라다이스의 어머니라고 치켜세우며 파라다이스 건국을 위한 전사들을 많이 생산해 달라고 부탁한다. 여성들은 근본주의를 통해 가지게 된 파라다이스 건국의 어머니라는 정체성에 지금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자부심과 삶의 큰 목적을 느끼며 헌신한다고 한다. 그들은 더 많은 전사 생산을 위해 자신들의 남편에게 둘째, 셋째 부인까지 직접 찾아다 바친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파라다이스는 또다른 지옥이 될 것이다. 진정한 파라다이스는 다름이 백만송이 빛깔과 모양의 꽃처럼 피어날 때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이 아닐까?

글·사진 현경 교수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 cafe.daum.net/chunghyunk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