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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조용래] 식구와 가족

은바리라이프 2011. 2. 24. 17:46

[한마당-조용래] 식구와 가족

[2011.02.23 17:39] 트위터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김치를 직접 담가 먹을 만큼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일본인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는 된장찌개처럼 숟가락을 같이 집어넣고 먹는 음식엔 난감해했다. 덜어먹는 일본 식습관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너무 깔끔을 떠는 것 같아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오래전 그에게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란 뜻의 식구(食口)란 우리말을 소개했다. 한 식구이기에 찌개뚝배기에 거리낌 없이 숟가락을 함께 집어넣고 먹는다는 우리 식문화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었다. 같은 한자문화권이지만 일본말엔 식구란 한자어는 없고 대신 가족(家族)이 있을 뿐이다.

우리 조상들은 식구, 즉 가족의 개념을 밥을 같이 나눠먹는 사이로 규정했다. 여기에 ‘우리’를 덧붙인 ‘우리 식구’란 말은 한 울타리(우리) 안에서 밥을 같이 먹고 동고동락하는 사이로 뿌리를 내렸다. 우리가 우리(we)란 뜻과 공동체를 지탱하는 울타리라는 뜻의 이중의미를 갖는 것이다.

요즘 음식점에선 물김치나 찌개 등을 각자 따로 주거나 덜어먹게 하는 게 일반화됐다. 한식세계화다. 그래도 각 가정에선 뚝배기에 숟가락을 함께 넣어 먹는 집이 적지 않을 것이다. 비위생적으로 비치겠지만 식구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강하다는 얘기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중·고교생 6979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가족으로 볼 수 있는 대상’에 대해(복수응답) 고모(81.7%)보다 이모(83.4%), 백부·숙부(79.8%)보다 외삼촌(81.9%)을 더 많이 꼽았다. 대체로 친가 쪽보다 외가 쪽 친척을 더 친밀하게 느끼고 있다.

연구원은 한국사회의 가족관이 전통적인 부계·혈연 중심에서 모계·생활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의미라고 풀이한다. 모계사회의 도래라고 말하는 것은 좀 과장된 것이겠으나 흐름 자체를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식구처럼 같이 밥 먹는 횟수의 차이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누가 우리 가족, 우리 식구냐고 세상은 지금 묻고 있다. 성경 마가복음의 한 대목(4:31∼34)을 보자. 어느 날 집회 중인 예수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찾아왔다고 누군가 전하자 예수는 대뜸 “내 어머니와 내 형제가 누구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이들이 형제요 가족이라고 스스로 대답한다.

최근 혈연간 연대관계는 많이 약화되고 있다. 그런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게 돈과 이해득실이다. 과연 우리의 가족은 누구인가. 우리 식구는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까.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