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직접 담가 먹을 만큼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일본인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는 된장찌개처럼 숟가락을 같이 집어넣고 먹는 음식엔 난감해했다. 덜어먹는 일본 식습관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너무 깔끔을 떠는 것 같아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오래전 그에게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란 뜻의 식구(食口)란 우리말을 소개했다. 한 식구이기에 찌개뚝배기에 거리낌 없이 숟가락을 함께 집어넣고 먹는다는 우리 식문화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었다. 같은 한자문화권이지만 일본말엔 식구란 한자어는 없고 대신 가족(家族)이 있을 뿐이다.
우리 조상들은 식구, 즉 가족의 개념을 밥을 같이 나눠먹는 사이로 규정했다. 여기에 ‘우리’를 덧붙인 ‘우리 식구’란 말은 한 울타리(우리) 안에서 밥을 같이 먹고 동고동락하는 사이로 뿌리를 내렸다. 우리가 우리(we)란 뜻과 공동체를 지탱하는 울타리라는 뜻의 이중의미를 갖는 것이다.
요즘 음식점에선 물김치나 찌개 등을 각자 따로 주거나 덜어먹게 하는 게 일반화됐다. 한식의 세계화다. 그래도 각 가정에선 뚝배기에 숟가락을 함께 넣어 먹는 집이 적지 않을 것이다. 비위생적으로 비치겠지만 식구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강하다는 얘기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중·고교생 6979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가족으로 볼 수 있는 대상’에 대해(복수응답) 고모(81.7%)보다 이모(83.4%), 백부·숙부(79.8%)보다 외삼촌(81.9%)을 더 많이 꼽았다. 대체로 친가 쪽보다 외가 쪽 친척을 더 친밀하게 느끼고 있다.
연구원은 한국사회의 가족관이 전통적인 부계·혈연 중심에서 모계·생활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의미라고 풀이한다. 모계사회의 도래라고 말하는 것은 좀 과장된 것이겠으나 흐름 자체를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식구처럼 같이 밥 먹는 횟수의 차이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누가 우리 가족, 우리 식구냐고 세상은 지금 묻고 있다. 성경 마가복음의 한 대목(4:31∼34)을 보자. 어느 날 집회 중인 예수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찾아왔다고 누군가 전하자 예수는 대뜸 “내 어머니와 내 형제가 누구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이들이 형제요 가족이라고 스스로 대답한다.
최근 혈연간 연대관계는 많이 약화되고 있다. 그런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게 돈과 이해득실이다. 과연 우리의 가족은 누구인가. 우리 식구는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까.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