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어거스틴

제5장 성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은바리라이프 2010. 12. 23. 19:00

제5장 성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교회의 역사 안에서 사도 바울 다음으로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 354-430)이었다. 하버드 대학의 철학교수 화이트헤드(Whitehead)가 “현대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이고 현대의 모든 신학은 어거스틴의 주석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어거스틴이 이렇게 위대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어거스틴은 타락과 방황으로 불신앙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인류사에 위대한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자신의 과거의 죄를 고백하였다. 세상의 지도자들은 가능하면 자신의 잘못은 숨기고 잘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자신에 대한 인기와 존경심이 최고에 달했을 때 「고백록」을 써서 자기가 죄인인 것을 고백하였다. 바울도 신앙의 성숙성이 깊어질수록 고백이 바뀌었다.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고전15:8-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3:8), 마지막에는 “죄인 중에 괴수”(딤전1:15)라고 스스로를 밝혔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을 복수(confessions)로 표현했다. 죄만 고백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신앙을 고백하였다. 죄고백은 감사와 찬양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거스틴이 위대한 성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기도하는 어머니 모니카와 암브로시우스라는 좋은 스승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방탕과 타락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또한 인생에서 좋은 신앙의 스승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둘째로 어거스틴이 위대한 이유는 그의 신학 사상이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신학의 토대를 놓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고대에 나타났던 모든 신학사상을 종합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를 했고, 후대로 넘겨주어 중세와 근대 신학의 모태가 되도록 했다.

 

 

1. 어거스틴의 생애

 

어거스틴은 354년에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Tagaster)에서 기독교인 어머니와 이교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모니카는 남편의 타락을 인내로 참아내며 남편과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녀의 남편은 370년에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았다. 모니카는 어거스틴의 재능을 일찍 발견했고 그가 출세의 길을 걷기를 원했다. 어거스틴은 11세에 웅변가가 되기 위해 라틴어를 배웠고, 17세에 카르타고라는 대도시로 가서 수사학 학교에서 공부하며 우수한 학생임을 증명했다.

 


 
 

 

카르타고는 방탕의 도시였다. 어린 어거스틴은 세속의 한가운데서 죄의 달콤함에 깊이 빠져들었다. 어거스틴은 한 여인과 동거를 시작했고 18세에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어거스틴은 또한 극장의 연극에 탐닉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카르타고의 드라마는 그의 감정을 깨끗하게 하는 대신에 상처를 할퀴는 것 같이 감정을 짜증스럽게 했다고 고백한다.

 

어거스틴은 19세에 철학을 발견하면서 극장의 쾌락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키케로(Cicero)의 「호르텐시우스」를 읽다가 ‘지혜를 향한 엄청난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후에 그는 진리탐구를 위한 방황을 시작했다. 어거스틴은 회심을 하고 신앙으로 돌아오기까지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지적이고, 윤리적인 방황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서 그리스도를 만나 평생을 큰 동요 없이 살아간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단맛 쓴 맛도 모르고 답답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런 사람들이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방황해 봐야 매 맞고 고통을 당하게 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도 과거의 삶이 그리 대단한 경험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인생의 상처만 많이 남게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오 하나님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을 때까지 나의 인생에는 진정한 휴식이 없었습니다.”하고 고백하고 있다.

 

젊은 어거스틴은 성경이 비지성적이라고 비웃었다. 그는 20대에 마니교에 빠져서 9년을 방황했다. 마니라는 종교지도자는 216년 바벨론에서 태어났다. 마니의 사상은 중국, 인도, 팔레스타인, 이집트까지 퍼져나갔고 기독교 신앙에 큰 위협이 되었다. 마니교 사상에 의하면, 이 세상은 보이지 않은 두 개의 물질인 ‘선과 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람 안에서 악의 원리가 강하면 악을 행하게 되고, 선의 원리가 강하면 선해 진다고 했다. 왜 이런 사상이 생겨났을까? 세상에는 선이 패배하고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참 많이 있다. 욥처럼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어느 날 재산이 다 날라 가고 가족들이 비명횡사하고 자기 몸까지 병들어 비참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반면, 악하고 못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그 자식들도 잘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악을 허용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마니교는 바로 이 문제에 대답을 하려는 시도였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이 없고 늘 선과 악이 대립한다고 본 것이다.

 

당시 모니카는 어거스틴이 마니교에 빠진 것을 알고 눈물로 기도했다. 교회의 감독은 모니카에게 “오직 그를 위해 기도하라, 그는 독서를 통해 스스로 잘못이 무엇인지 발견할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어거스틴은 공부를 통해 마니교의 모순을 발견했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의 최고 이론가, 파우스투스를 만났는데 자기의 고민거리를 명료하게 답변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니교에 흥미를 잃었다.

 

이제 마니교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보자.

 

  1. 하나님도 영원하고 악도 영원하다면 하나님은 절대주권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고 승리하시는 하나님이지 악과 영원히 대립하는 그런 신은 아니다.

  2. 마니교는 악을 물질이라고 주장했다. 악은 물질세계가 아니라 영적인 영역인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세계는 원래 선한 것이었고 물질은 생명에 유익한 것이다. 물질을 악하게 보면 물질을 창조한 하나님도 악한 존재가 된다.

  3. 마니교적 윤리관은 인간이 죄를 지어도 ‘악의 원리’에 책임을 돌리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도 내 안에 사탄이 죄를 지은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마니교적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4. 마니교는 몸을 학대하고 죽기 직전까지 금식하고 완전한 신자로 환생을 해야 한다는 금욕주의를 가르쳤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에서 빠져 나와 로마에서 선생으로 성공하려는 꿈을 가졌다. 그는 로마에서 신플라톤주의를 만나게 되었다.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누스(Plotinus, 204/5-270)는 세계형성의 원리를 유출설(emanation theory)로 설명했다. 유출설에 의하면 우주의 가장 위대한 신으로부터 에너지가 넘쳐 흘러나오면 그 신보다 열등한 신들이 생겨나오게 되고 유출된 에너지가 그 신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악해져서 마지막에는 악한 세상을 창조한 열등한 신이 나오게 된다. 신플라톤주의는 물질을 악하게 보았고, 본래의 신과 가까우면 선한 것이고 멀어지면 악이 된다고 보았다. 악이란 ‘선의 결핍’이라고 보게 된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깨닫고 완전하게 마니교를 벗어났다.

 

AD 384년 어느 날 모니카는 로마에 있는 어거스틴을 찾아와서 그를 밀라노의 유명한 설교자인 암브로시우스 감독에게 데려갔다. 암브로시우스는 훌륭한 설교자였다 그는 이민족을 학살하고 회개하지 않은 황제에게 성사를 집행하지 않고 교회 밖으로 쫓아낸 명망이 높은 성직자였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권력 앞에서 그렇게 당당할 수 있다면 . . .)

 

 

황제를 교회에서 추방하는 암브로시우스
 

암브로시우스는 어거스틴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던 두 가지를 설명을 해주었다.

 

  1. 교회의 권위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 결국 신앙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교회의 권위는 이성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이성보다 우월하며 이성을 보완한다.”
  2. 구약성경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문자적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문자적으로 읽지 말고 영적인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거스틴은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조금씩 은혜를 받다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롬10: 17). 어느 날 어거스틴은 정원에서 “하나님 왜 지금 나의 더러움을 벗어 버릴 수가 없습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소리 내어 울부짖었다. 그런데 어디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Tolle lege’(들고 읽어라). 그래서 그가 성경을 폈을 때 로마서 13장 13-14절의 말씀을 읽게 되었다.

 

 

회심
 

어거스틴은 회심을 하고 모니카와 함께 로마를 떠나 고향으로 떠났다. 두 사람은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던 중에 신비로운 영적 체험을 하였다. 그리고 모니카는 세상을 떠났다. 어거스틴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수도원 생활을 시작했다. 17세 되던 자기의 아들이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면서 성직자로 안수를 받고 히포의 감독이 되어서 목회를 하면서 신학적 작업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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