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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를 가르치는 그리스도인 -4억녀

은바리라이프 2010. 9. 28. 15:20

부자를 가르치는 그리스도인
제1독서: 암 6:1상, 4~7 / 제2독서: 딤전 6:11~16 / 복음서: 눅 16:19~31 (성령강림절 후 18주)
입력 : 2010년 09월 25일 (토) 00:27:14 [조회수 : 593] 김재검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1935년 계용묵 씨가 쓴 <백치 아다다>는 돈으로 인한 비극을 그린 작품입니다. 아다다는 부모에 의해 논 한 섬지기의 지참금과 함께 이웃집 청년에게 보내집니다. 아다다는 그 결혼 지참금 때문에 이제까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얻은 행복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결혼한 남편이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새 아내를 맞이하고 아다다를 쫒아 내버립니다.

친정으로 돌아온 아다다는 구박만 받다가 자기를 이해해주는 수롱이라는 청년을 만납니다. 수롱이는 아다다를 데리고 둘만의 행복을 찾아 신미도라는 섬으로 갑니다. 신미도에서 수롱이는 아다다에게 삶의 용기를 주려고 그동안 모은 당시 화폐 단위로서는 꽤 큰돈 150원을 꺼냅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밭을 사서 살자고 하는데 아다다는 그 돈을 보고 절망감이 듭니다. 아다다는 자기가 이전에 누리던 행복을 빼앗아 간 것이 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아다다는 수롱이가 잠든 틈을 타서 그 돈을 가지고 나가 바다에 던져 버립니다. 뒤쫓아 온 수롱이는 이성을 잃었고 그 모습에 아다다는 사시나무처럼 떨기만 하고 극도로 화가 난 수롱이는 아다다를 발로 걷어차 결국 아다다는 바닷물에 빠져 죽습니다.

성경 정과 구약과 복음 본문은 부요한 재물이 오히려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먼저 구약 본문은 가난한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대언하는 예언자 아모스가, 때를 잘 타 쉽게 돈을 벌어 갑작스레 부자가 된 사람들의 몰염치한 사치스러운 생활을 엄중히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저주받아라! 시온을 믿고 안심하는 자들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사마리아를 믿어 마음 놓고 사는 자들아 … 상아 침상에서 뒹굴고 보료 위에서 기지개를 켜며 양떼 가운데서 양 새끼를 골라 잡아먹고 외양간에서 송아지를 잡아먹는 것들, 제가 마치 다윗이나 된 듯 악기를 새로 만들고 거문고를 뜯으며 제멋에 겨워 흥얼거리는 것들, 몸에는 값비싼 향유를 바르고 술은 대접으로 퍼 마시며 요셉 가문이 망하는 것쯤 아랑곳도 하지 않는 것들, 덕분에 이제 선참으로 끌려가리니 기지개켜며 흥청대던 소리 간 데 없이 되리라." (아모스 6:1상, 6~7)

마지막 구절은 그 말씀 선포 시점으로부터 불과 2년 만에 있게 될 사마리아 성의 포위 함락(B.C. 722~721)과 더불어 이스라엘 북 왕국의 몰락이 임박해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본문의 '안심하고 흥청대는 사람들'은 사치와 허영을 드러내는 전시품이 된 재물이 시민 사회의 구성원들을 갈라놓아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한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아주 손쉽게 갑작스럽게 돈을 번 사람들의 무질서한 사치 풍조가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온갖 형태의 도덕적 무질서를 조장하며, 가난한 이들의 마음속에 응어리가 지게 하고 또한 의지가 박약한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행동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9월 7일 한 케이블 방송에서 한 여성이 "부모님이 주는 용돈만으로 생활한다. 지금 입은 의상만 4억 원이 넘고 수십억 원 상당의 명품을 소지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많은 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그 방송 나간 후 "방송에서 한 대답은 실제와 다르다. 대본대로 했다"라고 반박하였지만 전 남편의 인터뷰 내용이 밝혀지면서 또 다른 얘기가 나왔습니다.

전 남편은 명품 4억 녀의 실제 생활이 거의 사실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가 지금 살고 있는 논현동 빌라에는 명품 가방만 40개 정도 된다. 적게는 2천만 원, 많게는 4천만 원에 달해 전체 가방 가격만 최소 8억 원 정도다.", "김씨가 17평 규모의 빌라에 산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실제 거주지는 80평대 고급 빌라로 전세가만 8억∼9억 원이다. 빚 때문에 살지 않는 곳으로 전입 신고한 것으로 보인다."

방송에서 공개된 자동차에 대해서는 "김 씨 소유의 자동차가 맞다. 전체 가격 중 2억 4천만 원 중 일부를 내고 나머지는 리스로 매달 130만 원씩 지불하는 것으로 김 씨 본인의 자동차가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외에도 김 씨와 작년에 금전 문제로 재판이 진행 중이며, 쌍방 폭행으로 함께 기소돼 있다고 주장, 사치 심리를 가진 김 씨로 인해 빚이 늘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김씨는 "일본에서 재미삼아 한차례 모델을 했을 뿐 직업이 없었다"며, 용돈은 부모와 서울의 대형 복합 건축물의 대주주 부자로 알려진 숙부에게 받았으며 카드도 주로 어머니와 숙부의 것을 이용했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전염되듯 퍼져 나가는 사치 풍조는 마침내 특별히 생활의 여유를 누리는 소수 특권층의 사람들을 거슬러 절망적인 욕구 불만과 거센 분노를 자아냅니다. 이렇게 재물이 올바르게 사용되지 않고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을 때 그것은 참으로 사회적 재난을 초래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일러주신 복음 말씀은 재물이 오로지 개인의 만족과 성취의 수단이 되어 버릴 때 찾아드는 모든 '파멸적' 능력을 극적인 형태로 제시합니다. 재물은 이처럼 다른 사람의 궁핍을 보고도 느끼지 못하게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립니다.

"예전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 집 대문간에는 사람들이 들어다 놓은 나사로라는 거지가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더구나 개들까지 몰려 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다." (눅 16:19~21)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는 갑자기 장면이 바뀝니다.

"얼마 뒤에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부자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다가 눈을 들어 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브라함이 나사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22~23).

여기서는 모든 것이 완전히 뒤바뀌어지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유다적 표현으로 영원한 행복을 뜻하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배고프지 않을 식탁에 자리 잡게 되고, 반면에 그 부자는 '죽음의 세계'에 거꾸로 떨어져 심한 괴로움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부자는 자기의 전 생애 동안 전혀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나사로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머리를 숙이던 그 부자의 정신 상태는 여전합니다. 즉 그는 '죽음의 세계'에서도 아브라함에게조차 명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소리를 질러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보시고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를 축이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원하자 아브라함은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또한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고 대답하였다." (24~26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인생 역전 이야기, "애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 의해 손상된 모든 균형을 바로잡아 주실 만큼 우리를 생각해 주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브라함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는 하나님의 그 마지막 말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무한한 희망이 됩니다.

그리고 형제적 사랑을 나누고 재화를 서로 나눌 수 있도록 변화되는 데는 특별히 거창한 징표나 기회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단순히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으로 족하고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특히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듣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렇지만 종교란 인간들의 불의나 압박 앞에서 하나의 '진정제'와 같은 것일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인구 60억 중에 10억은 하루에 1달러 미만의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해마다 8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빈곤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난과 연관되어 죽어가는 사람의 숫자가 하루에 2만 4,000명이랍니다. 이 때문에 스위스 교회는 몇 년 전에 스위스 연방 의회 건물 앞에 2만 4,000개의 촛불을 켜놓고 침묵 기도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부자로 하여금 거드름을 피게 하는 상황이 됐든 가난한 이로 하여금 공포감 속에서 움츠러들게 하는 상황이 됐든 그러한 모든 상황을 거슬러 일어날 수 있는 의식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구약의 아모스와 서신서의 바울 그리고 비유 말씀에 나오는 모세와 예언자들과 같이 또한 그 누구보다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그리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회개'시켜 세상 사물에서 마음을 끊고, 형제적 사랑과 재화를 나누어 쓸 수 있는 마음에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마침내 그 부자는 자기의 불행을 근본적으로 깨닫고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기 아버지의 집에 보내어 자기의 다섯 형제들만이라도 '그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28절) 경고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형제들이 생활을 바꾸면 그 고통스러운 곳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교 신자가 오직 하나님께서 저세상에서 정의를 이루어 주시리라는 이유만으로 불의를 묵인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인간 상호 간의 관계가 이 세상에서부터 바뀔 수 있고 또한 바뀌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불의를 거슬러 싸워 입증해야 합니다. 정의와 사랑이 바로 이 지상에서부터 모든 사람의 노력에 의해 실현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가 서신서 본문에서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와 본티오 빌라도에게 당당하게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님"(13절)을 따라 열심히 부자들로 하여금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가르쳤으며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 디모데에게 그 사명을 감당하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선포해야 할 말씀은 서신서 본문에 연이은 17~19절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사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시오. 교만해지지 말며 믿을 수 없는 부귀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 희망을 두라고 이르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착한 일을 하며 선행을 풍부히 쌓고, 있는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 주라고 하시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위하여 든든한 기초를 쌓아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라고 이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