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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중독’이 정말 있을까?

은바리라이프 2010. 9. 15. 17:41

‘음식 중독’이 정말 있을까?

 

 8방미인 최종수정일: 2010-06-04 17:35 조회: 3918댓글: 35


마약중독, 알코올중독...귀에 거부감 없이 쉽게 들어오는 말입니다. 쇼핑중독, 도박중독, 인터넷중독...정말 이런 병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런게 있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은 듭니다.  그런데 음식중독이라... 이런 ‘질병’이 과연 존재할까요?


캐나다의학회저널(CMAJ) 최근호에는 지금 현재 가장 빠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 21세기 유행병인 비만에 ‘음식중독(Food Addiction)’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음식중독이란?


비만의 원인은 몸에서 소비하는 칼로리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칼로리 섭취과잉(과식)이 ‘강박적’이고 본인의 의지로 컨트롤이 안되는 상태라면?  일부 학자들은 이것을 ‘음식중독’이라고 부릅니다. ‘음식중독’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가 아니면 꾸며낸 말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음식중독은 대개 탄수화물중독, 설탕중독, 탄수화물 탐닉, 폭식, 야식, 비만 등의 단어와 함께 등장합니다. 음식중독을 해결해야 폭식증이나 비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병(?)이 있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음식섭취에 “중독성”이 실제 있는지, 있다면 이것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제대로 된 연구결과가 거의 없습니다.



음식중독의 진단은?


우리는 가끔 우울감을 느끼지만 이것은 ‘우울증’이란 진단과 거리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아 초콜릿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면서 “내가 초콜릿 중독일까?”라고 생각해볼 순 있지만 실제 “초콜릿 중독”인지 진단을 받아볼 객관적 검사는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중독(addiction)’ 진단기준을 보면 지난 1년 동안 아래 7개 항목 중 적어도 세 개 이상이 해당될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코카인 같은 마약이나 술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당분이 많이 들어있어 단맛이 강하거나 지방함량이 많은(입에서 사르르 녹는) 음식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1) 금단증상이 나타난다(집중이 안되고 음식생각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2) 금단증상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음식을 사용하며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음을 알고 있다.
3) 초기에는 소량으로 얻을 수 있었던 효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양을 섭취해야 한다.
4) 음식섭취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지속되고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다.
5) 음식섭취의 시작, 중단, 섭취량 조절 등 식사행동을 조절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
6) 음식 때문에 중요한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7) 음식으로 인해 분명한 손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에 대한 탐닉을 계속한다.


어떤 중독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통제력을 상실했다면 중독이라고 봐야 한단 얘깁니다.  배가 고프지 않은 데에도, 식사를 마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에도 음식이 당기고 평소보다 더 많이 먹게 되면서 무엇보다 머리로는 그만 먹어야 겠다고 생각하는 데에도 몸은 계속 음식을 입 속에 집어넣고 때를 ‘폭식’이라고 합니다. 음식중독의 증상이죠.


음식중독을 해결하지 않고 비만을 치료할 수 있을까?


‘과식의 종말’ 저자인 데이비드 케슬러 박사는 당류, 지방, 소금의 절묘한 조합이 뇌의 쾌감중추 자극을 극대화해서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 맛을 본 느낌과 즐거움은 그대로 뇌에 각인되어 음식을 보지 않아도 생각나게 하고 음식이 눈에 들어오면 본능적으로 손이 가게 만듭니다. 입속에 들어와 미각을 통해 뇌에 신호가 전달되면 그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겁니다. ‘음식중독’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요. 문제는 이런 반응이 반복되면서 습관으로 자리잡게 되고 이 습관은 우리 몸의 ‘식욕조절’과 ‘에너지밸런스 조절’ 기능을 왜곡시켜서 비만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탐닉이 단순히 의지력 부족 때문만은 아니며 따라서 이런 ‘중독’을 본인 스스로 치료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중독의학저널(Journal of Addiction Medicine) 최근호에는 비만을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범주에서만 보지말고 약물중독과 마찬가지로 ‘음식중독’이나 폭식장애 같은 정신신경학적 측면에서 접근해서 음식에 대한 강박적, 충동적 욕구를 치료하고 약물남용과 마찬가지로 음식의 과잉섭취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만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의 30%가 폭식장애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마약이나 음식에 탐닉하는 중독 역시  유전과 환경 요인 모두 작용합니다. 마약이든 음식이든 여기에 탐닉하게 되는 건 뇌에서 느끼는 ‘보상(reward)’ 때문입니다. 그런데 폭식이나 음식중독으로 인한 비만 환자나 마약중독 환자나 유전적으로 뇌의 쾌감중추에 있는 도파민수용체가 일반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활성이 더 증가한다는 겁니다.


비만의 원인에 폭식이나 음식중독이 함께 동반되어있다고 본다면 비만치료를 그저 칼로리 계산해서 섭취량을 줄이고 운동하라는 처방이 얼마나 효과적일까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비만치료를 ‘저칼로리 식사+운동’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비만인구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체중감량에 성공했다는 사람도 3년 이내에 95% 이상이 원래 체중으로 되돌아 옵니다.  지금 현재 하고 있는 비만치료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의미지요.  강박적으로 음식에 집착하는 사람에게 식단표 짜주고 무조건 적게 먹으라는 치료는 약물중독 환자에게 그냥 약 먹지 말라고 말하고 방치해두는 것과 꼭 같습니다.  금단증상 때문에 고생하고 결국 다시 약을 찾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식 중독의 경우도 금단증상으로 고생하다 결국 더 많이 먹게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됩니다.



음식중독의 치료는?


비만치료에 인지행동치료가 포함되어야 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특히 폭식이나 음식중독이 동반된 환자에게 강박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치료하고 자기통제능력을 키워주는 건 아주 중요합니다.


약물치료도 중요합니다.  본인의 의지 만으로 담배를 끊기 힘들어 하는 사람에겐 니코틴이 혈액으로 조금씩 들어가게 하는 니코틴 패치도 처방하고 금연치료 보조약물도 투여합니다. 마찬가지로 단음식을 끊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포도당이 조금씩 혈액으로 스며들게 하는 ‘슈가 패치’가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요. 폭식증이나 강박적 과식행동을 보이는 환자들에게는 푸로작 같은 항우울제가 도움이 됩니다. 비만치료제로 알려진 시부트라민(리덕틸)을 복용해도 체중감량 뿐 아니라 폭식 빈도를 줄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간질 치료제로 알려진 토피라메이트도 폭식장애 증상 개선에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운동도 도움이 됩니다.  동물실험에서는 운동이 뇌의 도파민수용체의 활성을 증가시킵니다.  제가 요즘 강조하는 피트(PHIT)운동은 고강도인터벌운동인테 고강도의 운동을 하면 도파민을 포함한 카테콜라민 분비가 저강도 운동에 비해 더 많이 증가합니다. 이것이 폭식 증상이나 음식중독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임상 경험으로는 나름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비만’이 질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20년 가까이 비만환자들을 치료해오면서 폭식과 음식중독의 늪에서 고통받고 있는 분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이 분들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