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한흠 목사 상암월드컵경기장 한국교회 100주년기념 대부흥회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중에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데 교회는
오늘의 한국 교회의 실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사데 교회를 보면서 오늘의 한국 교회를 보는 것 같다는 불안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한국 교회를 보시고 뭐라고 하실까요?
이름은 살았으나 행위가 죽었다고 책망 하시지 않으실까요?
누가 아니요 하고 변명할 목사가 있습니까?
누가 아니요 하고 변명할 장로가 있습니까?...
청중은 원래 귀에 듣기 좋은 말씀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면 모두가 아멘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하늘의 복도 받고, 땅의 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면 할렐루야 하고 열광합니다.
그러나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요 구원도 확신할 수 없다고 하면은
얼굴이 금방 굳어져 버립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죄를 지적하거나 책망하면 예배 분위기가 금방 싸늘해져 버립니다.
듣기가 싫고 몹시 거북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사역할 때 저는, 비슷한 반응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청중의 반응에 예민해지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좋아하는 말씀을 일부러 골라서 설교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신 죄라든지, 회개라든지, 순종이라든지, 거룩이라든지 하는 듣기 피곤한 말씀은
할 수 있으면 피하거나 꼭 말을 해야 할 때에는 달래듯이 부드럽게 말하고 싶어하는 유혹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은 예수님이 절대로 바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절대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이 강단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그 결과 저도 모르게 복음을 조금씩 조금씩 변질시키는 설교자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믿음만 가지고 떠드는 값싼 은혜에 안주하기 좋아하는 무리들이 자꾸 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복음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믿음만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믿음의 열매가 되는 행함을 등한히 다루던지 무시하면,
입만 살고 행위가 죽어버리는 사데 교회가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0절을 보면 바울은 유익한 말씀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 없이 전하고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포함하여 한국 교회 많은 지도자들은
바울처럼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전하는 용기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 것은 먹이고, 쓴 것은 할 수 있으면 먹이지 않으려는 나쁜 설교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설교자는 청중에게 인기가 있어서 사람들을 많이 끌어 모으는 데는 성공할지 모르나
행위가 죽은 교회를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의 지도자 여러분!
복음을 변질시켰다는 주님의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몇이나 됩니까?
“입만 살았고 행위가 죽어버린 교회를 만든 책임은 너에게 있어.”하고 따지신다면
“나는 아니오.” 하고 발을 뺄 수 있는 목회자가 몇 사람이나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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