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뉴스/문화읽기

흡연은 사단의 행위

은바리라이프 2010. 7. 4. 01:11

흡연은 사단의 행위

 

 


치명적인 식물, 담배

이것에는 몇 가지 미덕이 있다. 심심할 때 무료함을 없애주며, 인생살이의 고민을 연기와 함께 날려주며, 제법 멋도 있어 보인다.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자가 고민 내지 심사숙고할 때의 필수품이었다. 나 역시 하루 두 갑 이상을 태워대던 골초시절이 있었고, “이건 남자의 한숨을 숨기기 위한 거야.”라며 같잖은 개똥철학을 여성들에게 설파하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왜 이 사업을 좋아하는지 아는가? 제조원가의 100배를 벌어주고, 게다가 중독 성분이 있어 브랜드 신뢰도를 환상적으로 유지해 주기 때문이지.”

문제는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의 말처럼 성분도 좋지 않은 것이 지독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에 당도했을 때, 그는 인디언들이 식물의 잎을 태워 연기를 마시는 걸 보았다. 인디언들은 거기에 약효가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것이 이 치명적인 식물이 유럽으로 전해진 주된 이유였다.

 

 

이것, 담배의 폐해는 폐암, 심장병, 뇌출혈, 뇌경색,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불임증 등등 그 부작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하루 한 갑 정도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일 년에 한 컵 정도의 타르를 폐에 쏟아 붓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런 경우, 폐와 폐에 달린 가련한 허파꽈리들은 도리 없이 푸석하게 썩어갈 수밖에 없다. 공기정화장치인 허파꽈리들이 타르 등 온갖 독성물질을 뒤집어쓰고 평생 청소도 못한 채 방치된 굴뚝신세가 되고 있으니 가련하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담배를 피우는 사단

흡연의 욕구는 어디로 왔을까? 욥기에 담배 피우는 모습과 흡사한 구절이 있다.

‘그것의 눈은 새벽의 눈꺼풀 빛 같으며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끊는 것과 같구나 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 그것의 힘은 그의 목덜미에 있으니 그 앞에서는 절망만 감돌 뿐이구나’(욥 41:18-22)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담배를 필 때 담배 끝에는 타는 등불이 있고 가끔씩 불똥도 튀긴다.

 

‘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끓는 것과 같구나’

담배 필 때에 코와 입에서 나오는 연기는 마치 끓는 가마솥에서 나는 연기와 흡사하다.

 

‘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

숨결에 따라 담뱃불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한다.

 

‘그것의 힘은 그의 목덜미에 있으니’

담배를 빨 때에 목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이다.

 

'절망만 감돌 뿐이구나' KJV 성경버전엔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는도다'로 되어 있다.

사람들이 담배 필 때에 죄와 세상사에 찌든 슬픔과 고통을 위로 받는 느낌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그것’은 리워야단, 리비야단, 또는 악어 등으로 불리는데 이는 사단을 가리킨다. 사단은 지옥에서 입에서 불을 내며 위로를 받는다. 즉, 입에서 불을 내는 행위는 절망할 것이 분명한 사단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흡연은 사단과 비슷한 행위를 하는 것이며, 심하게 말하자면, 사단에게 속하여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자기 아비의 정욕적인 모습을 따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담배에서 내뿜어지는 검고 악취나는 연기는 무저갱 속에서 분출하는 지옥연기와 매우 비슷하다.’(영국왕 제임스 1세)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하는 이유

‘기독교인이 담배를 피워도 되는가?’라는 문제제기가 편협해 보인다면 ‘흡연이 더 나은 기독교인이 되는데 유익이 되는가?’로 바꾸어 생각해도 좋겠다. 성경을 보면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충분히 많다.

 

첫째, 흡연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을 더럽히고 파괴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전3:16-17)

 

둘째, 흡연은 불요불급한 곳에 재물을 낭비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이 아닌 것에 돈을 쓰며 배부르지 않는 것들을 위하여 수고하느냐’(사55:2)

 

셋째, 흡연은 일단 습관이 형성되면 사람을 노예로 종속시킨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롬6:16)

 

넷째, 자녀와 청소년에게도 나쁜 본보기다. 자녀에게 권할 만한 일인지 돌아보면 일의 선악이 자명하다. 자녀에게 결코 권할 일이 아니라면 아버지인 하나님이 자녀인 우리에게 주신 바도 아닐 것이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눅11:11)

 

다섯째, 흡연은 우리의 거룩을 방해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

(페리 록우드 목사의 <그리스도인과 담배> 참고)


더러운 습관에서 나오라

사단은 늘 우리들을 미혹한다. 거짓의 아비인 사단은 더러운 것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일례로, 말보로 담배광고에 등장하는 ‘말보로맨’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멋진 캐릭터 중 하나다. 서부 사나이, 말보로맨의 터프하고도 고독한 이미지는 세계 각국의 수많은 생명을 즐겁게, 기꺼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보로맨들의 뒤를 따라-광고모델인 말보로맨들까지도-암병동으로 실려갔으니, 생명까지 좌지우지하는 초강력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단의 미혹술이 뛰어나긴 하지만 우리가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 건 욕심 때문이다. 고린도 등 초대교회 성도들은 온 도시를 뒤덮은 헬라식의 음란한 종교의식과는 구별되는 단정하고 올바른 삶, 성령에 지배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세상이 주는 유익과 즐거움에서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던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세상과 더러운 습관에서 나오라고 하신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기독교엔 크고도 높은 진리가 있다. 담배 따위, 담배를 끊고 말고 따위에 모든 것이 걸려있을 정도로 빈약하지 않다. 따라서 ‘교인이 담배를 피다니’ 식의 정죄도 바람직하지 않다. 금연은 기독교의 결국(結局)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나를 포기하고, 내 욕구를 버리고, 그분께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이 기독교다.

 

‘세상 즐거움, 세상 자랑 다 버리고 예수를 좇을 수 있는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격에 대한 질문이 여기에 있다.

 

'그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눅5:27-28)

 

 은바리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