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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춤

은바리라이프 2010. 6. 30. 15:12

그리스도인과 춤

- 페리 록우드 / 이준승 역

"난 단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춤을 추는 건데요!"

저는 지난 몇 주 동안 "목사님, 그리스도인이 춤을 추는 것은 옳은가요?"라고 하는 중대한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세상적인 논란거리들을 회피합니다. 오늘날 일반교회에서는 직분자들과 찬양대원들과, 주일학교 교사들과 교회회원들 중 많은 분들이 이와같은 질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매주 기도회보다는 댄스장에 있는 교회 회원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많은 사역자들은 춤을 추는 것이 해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이런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권장하는 교회가 날로 증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몇몇 목회자들은 춤에 대해 아주 강력하게 맞서고 있기도 하지만, 숙소에서 사람들이 교제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또한 춤을 권장하는 봉사단체들로 인해 사실상 춤추는 것을 지지합니다.

지난 전시 중에 저는 디베르트 부대(Debert Camp)에서 열린 무도회에 참석한 모든 귀부인들에게 맞서 항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 항의는 상당히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단장은 그 무도회가 오타와(Ottawa)에 알려질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사무실로 초청을 받았고, 정중하게 대접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한 후,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 입장은 그리스도인의 견지에서 볼 때 아주 단호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분은 대령 세 사람, 소령 세 사람, 군목 세 사람으로 구성된 사령부 앞으로 저를 초대했습니다. 저는 힘차게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완성해 놓으신 일을 개인적으로 믿어 구원을 받아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춤추는 것이나 세상적인 다른 오락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습니다. 많은 토론이 일어났으나,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질문들에 대해 대답해 줄 수 있었습니다.
모임이 끝나기 전에 여단장은 군목들이 조금 전에 나눴던 대화에 아무 개입을 하지 않아, 혹 그들에게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 중 연합 교회 목사 한 분이 급히 일어나서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부대 군목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저는 록우드 선생님과는 의견을 완전히 달리합니다. 저는 한 그리스도인의 개인적인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편협하고 제한적입니다. 저는 춤에 대한 록우드 선생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인생의 하이라이트들 중 한 장면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그것은 오래도록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추억입니다. 아내와 저는 무도회에서 가장 훌륭한 댄서(Dancer)로 선정되어 처음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영국 국교회 군목 한 사람만이 그리스도인과 춤에 대해 저와 똑같은 생각을 피력했습니다. 그 모임을 종식시킨 저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저와 여기 계신 군 목사님들과의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이분들은 자신들의 최고 사령관을 기쁘게 해 드리는 말을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저도 동일하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분들은 자신들의 최고사령관이 디베르트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최고 사령관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우편에 계신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볼 시간이 없다고 하는 죄인들은, "성경은 춤춰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라든지, 혹은 "성경은 우리에게 술을 마셔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방어하려고 성경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춤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은 뭐라고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 출애굽기 15장 20절 : "아론의 누이 여선지자 미리암이 그녀의 손에 작은 탬버린을 드니 모든 여인들이 탬버린과 춤으로 그녀를 뒤따라 오더라"

- 사사기 11장 34절 : "입다가 미스페로 그의 집에 오니, 보라, 그의 딸이 탬버린과 춤으로 그를 맞이하러 나오니 그녀는 그의 외동딸로 그에게 그 딸 외에는 아들이나 딸이 없더라"

- 사무엘하 6장 14절, 20절 : "다윗이 자기 온 힘을 다해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더라." 그러나 신앙심이 없었던 미칼(Michal)은 "오늘 이스라엘 왕이 얼마나 기뻤으면, 마치 하잘 것 없는 자 중 하나가 수치도 모르고 몸을 드러내는 것같이 왕의 신하들의 몸종들의 보는 데서 자신의 몸을 드러내셨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춤추는 것이 신성한 용도에서 오용되어 "하잘 것 없는 자"로 되었습니다.

- 마태복음 11장 17절 :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아니하였고;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애곡하여도, 너희가 애통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이 구절은 심판도 하나님의 긍휼도 완악한 세대에게는 아무 효력도 내지 못함을 의미합니다(삼상18 :6; 시149 :3; 렘 31:4; 눅15 :25 과 같은 다른 구절들도 찾아 보십시오).

이 구절들이 가르치는 바는 무엇일까요?

- 첫째, 춤은 참 종교든, 거짓 종교든 간에 하나의 종교적인 행위였습니다.

- 둘째, 춤을 추는 것은 민족적인 축제나 대승을 거둔 후와 같이 오직 경사스런 경우에만 행해졌습니다.

- 셋째, 춤은 대개 낮 동안에, 공개적인 곳에서, 대로나 들이나 숲에서 행해졌습니다.

- 넷째, 춤을 신성하게 사용하지 않고 오락이나 수치스런 목적으로 오용하는 사람은 치욕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 다섯째, 두 이성이 마주 붙어 춤을 추었다는 사실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경배하는 행위도 아니요, 오락적인 행위도 아닙니다.

- 여섯째, 성경에서 유일하게 오락을 위해 모여서 춤을 추었다고 기록된 경우는 신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가족들과 연관되어 욥기에 묘사된 자들과(욥21장) - 그들은 결국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 헤로디아의 딸이 춤춘 경우(마14장)뿐으로서, 밥티스트 요한을 살해함으로 끝납니다.

이 사실은 이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확실하게 해결해 줍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에 한 것이나 미래에 될 지도 모르는 것과 관련해서 춤에 관한 질문을 토론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교회에서든, 공연장에서든, 궁전에서든, 집에서든 간에, 공동체 내에서 단독으로 추는 모든 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춤을 추어야 할까요? 이에 대한 제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춤을 추어서는 안된다고 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1 . 춤은 건강을 해치는 것입니다.

춤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건강의 법칙을 어깁니다. 한 의학 교수는 전체를 대표해서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해 동의하고 있습니다. 춤은 일반적으로 밤 9시에 시작해서 자정이 지난 시간 동안 오래도록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은 쉬라고, 낮은 일하라고 주셨습니다. 레크리에이션으로서 권장된다 할지라도, 춤추는 것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음날 상쾌하고 왕성하기보다는 과로로 지쳐 있습니다.

2 . 춤은 부도덕한 것입니다.

현대의 춤은 하나님의 7번째 계명과 상반되는 생각과 감정들을 불러 일으킵니다. 마태복음 5장 27절과 28절은 "옛 사람들이 말한 바, 너는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어왔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정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는 이미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지, 제 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춤은 하나님 보시기에 절대로 부도덕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현대의 춤은 어느 때, 어느 장소이든지 간에 건전한 사회에서는 용인되어질 수 없는 방종함과 친밀함을 용인합니다. 여성들은 친밀한 접촉을 받아들이고, 또한 사람과 맞닿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러한 행동은 춤 출때가 아닌 다른 상황에서는 불결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아주 큰 댄스 학원의 원장이 왈츠를 할 때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숙녀분은 신사분의 어깨에다 손을 얹으십시오. 가슴은 신사분의 가슴 위에 두시고, 신사분이 팔로 숙녀분의 허리를 감쌀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손은 신사분의 손을 잡으십시오."

자존심이 있는 숙녀라면, 댄스장 외에 다른 곳에서 이런 저속한 짓을 하도록 허용하겠습니까? 오늘날 현대적인 부모님들이 그리스도인 젊은이들 가운데서 장려하고 있는 바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소위 춤은 "해(害)가 없다"고 하면서 무용학교(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자녀들을 다니도록 허락하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섹스는 현대적인 춤을 지배하는 세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누구든지 정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는 이미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저 또한 여기에 반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으며, 담대하게 말하건대, 많은 이들이 온갖 무도회에서 간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3 . 춤은 영적인 생명을 죽입니다.

춤은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특성을 저해하는 그런 성향에 속합니다. 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리스도의 영을 거스립니다.
술이 항상 춤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술 마시는 것과 춤추는 것은 항상 함께 다닙니다. 무도회가 홀이나 교회에서 열리든지, 학교나 가정에서 열리든지 간에 음주가 그 출입구를 터 놓습니다. 이런 것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위해 합당한 분위기인가요?
춤의 의상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브닝 드레스가 그리스도인의 간증에 어울립니까? 춤은 몸을 드러내는 것(nakedness)등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적합치 않는 것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제가 종종 목격하게 되는 바는, 정규적으로 무도회에 참석하는 자들이 교회의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고, 또 춤을 즐기는 자들은 지역사회에서 구원받지 못해 멸망당할 영혼들에 대한 부담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디스코(Disco) - 마귀의 속임수

우리는 불경건한 시대에, 정신 나간 세상에, 사악한 세대의 한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교회역사가 오랜 기간 동안 기록하고 있는 것은 세상과 교회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계는 둘 다 사랑할 수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세상 둘 다를 따라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의 영혼을 멸망시키고, 결혼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하며, 의를 방해하려고 오랫동안 역사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최신 취미는 인간성이 저속하리만큼 아래로 떨어지도록 하는 디스코 장면입니다. 디스코는 7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주말의 두 스텝", "초인적인 부기춤"이라고 불리워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창작물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요일 2 :15)고 말씀합니다.
사도 베드로도 "너희가 그들과 함께 과도한 방탕에 휩쓸리지 아니함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너희를 비방하나"(벧전 4 :4)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하기 서글프지만, 디스코는 지금 많은 학교에서 체육 프로그램의 한 분야입니다. 이것은 캐나다와 미국, 전세계에 걸친 대 사업입니다. 20개의 새로운 디스코가 매일 선을 보입니다.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조차 노예와 죄로 이끄는 이런 활동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디스코가 북미의 동성연애자의 술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동성연애는 헐리우드 광경의 일면입니다. 동성연애는 많은 부자들과 사회단체나 정부의 지도자들을 위한 도피로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게이(Gay)의 인생이라고 불리우는 동성연애가 하나님에게서 저주받았고, 그분의 심판 아래 있음을 상기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이 생활양식은 질환이 아닙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있는 죄입니다. 로마서 1장 26,27절은 말씀합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타락한 애정에 내버려 두셨으니: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으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본래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하여 욕정이 불일 듯 하여;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흉칙한 짓을 행하여, 자기들의 탈선에 상응하는 보응을 스스로 받았느니라". 주님께서는 그와 같은 사악함을 보고 눈감아 주시지 않습니다.

디스코의 엄청난 악영향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디스코 댄스, 디스코 맘보, 디스코 스케이팅 파티 등에 대해 자주 듣습니다. 현대의 단정치 못한 옷 스타일은 디스코 광경에서 유래되었는 데, 그것은 지옥에서 디자인되었습니다. 허벅지 위로 반 이상을 치켜 올리고, 심지어 히프까지 올리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벅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인해 바빌론을 심판하셨습니다.


이사야 47장 1-3절을 보십시오. "오 바빌론의 처녀 딸아, 내려와 티끌 속에 앉으라. 지면 위에 앉으라. 오 갈대아의 딸아, 거기에는 왕좌도 없도다. 이는 네가 다시는 부드럽고 우아하다고 칭함을 받지 못할 것임이라. 맷돌을 가져다가 곡식을 갈고, 네 머리타래들이 드러나게 하며, 다리를 벗어 네 허벅지가 드러나게 하며, 강들을 건너라. 네 벌거벗음이 드러나게 될지니, 실로 네 수치가 보여지게 되리라. 내가 보복하리니, 너를 한 남자로서 너를 만나지 않으리라". 우리의 현 사회는 허벅지를 드러낸 데 대해 이와 유사한, 혹독한 심판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쇼 비지니스(SHOW BUSINESS) 잡지에서 발췌한 아래 기사는 세상의 관점에서 본 디스코의 사악함을 그리고 있습니다.

"수용하는 분위기가 디스코 물결을 감싸고 있으며 ... 60년대 동안 성공적으로 전쟁을 치렀던 성적 중요성이 허물어져서, 새로운 성의 자유화에 굴복하였고, 그 성적 자유화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발산하고, 죄책감 없이 가담하고 있다. 게이들은 거림낌없이 마주잡고 춤을 추고 있으며,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구역질 나지 않습니까? 에스콰이어(ESQUIRE) 잡지에서는 한층 더 심도깊게 이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디스코 열풍이 이전에 있던 대부분의 것들과 다른 점은 그 경향이 명백히 떠들썩한 주연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디스코는 완전히 야단법석을 떠는 주연이다. 가공할 만한 강렬한 흥분의 분위기 속에서 모든 성적인 욕망을 즉각적이고도 최대한의 만족을 주려고 디스코로 열광된 흥청거림은 말 그대로 고도로 높아진 무아(無我)의 상태나 몸밖에 서 있는 것같은 도가니로 몰고 간다."

이 메시지의 목적은 세 가지입니다.

- 첫째, 학교의 체육의 한 항목이나 YMCA나 YWCA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디스코의 위험성과 그 처참한 결과들에 대해 부모님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 둘째, 디스코가 간음을 장려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5장 27,28절을 보십시오.

"옛 사람들이 말한 바, 너는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어왔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

- 셋째, 디스코가 영적인 생명을 죽이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세상과 어울려 노는 동안에는 영적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디스코에서 벌어집니다 - 술, 담배, 섹스, 부도덕 등.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디스코 댄스에 참석하고 있는 선한 그리스도인 몇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이 아주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 첫째,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많은 자들은 결코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입니다.

- 둘째,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저속하고 육신적인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으며, 따라서는 안될 부적합한 본보기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해야만 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영적인 사람들에게 하듯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아기들에게 하듯 하였노라"(고전 3 :1).

- 셋째,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행하는 것이 유익할 경우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른 때에는 자신들에 대해 아주 다르게 말합니다.

- 넷째, 하나님의 말씀은 의와 경건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오직 한 가지 기준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대중들과 함께 나아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들이며, 세상을 기쁘게 하려고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악한 현 세상은 한 때 우리 주님에 대해서도 비방했습니다. 이 낡아 빠지고 죄에 속한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순종의 자녀로서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겠다고 작정해야만 합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할지라도 그분과 함께 전 생애를 동행하도록 하십시오.

맺음말

많은 이들이 "그러나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도 무도회에 다 가는데, 왜 우리는 안된단 말입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저는 단순히 다음과 같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 첫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진다고 해서 모두가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 둘째, 실제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영적으로 저급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따라야 할 본으로 적합치 못한 자들도 있습니다.

- 셋째, 춤을 추고 싶은 욕구는, 여러분이 사람들을 여러분의 편의대로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가, 또 다른 때에는 이들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가 하여, 여러분을 항상 말이 틀리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 넷째, 실제적인 질문은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는 것에 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세상의 일부분이 되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과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종합적으로 말해서, 춤과 그리스도인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거룩하지 못한 어떤 일에 참여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과업은 우리가 단순히 그분을 신뢰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들어오게 되면, 그리스도께서는 주관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다 근절하도록 하십시오(살전 5 :22).


혹자들은 "뭐라고요! 그렇다면, 젊은이들은 전혀 오락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요?" 라고 강하게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도덕성을 함양해 줄 수 있는 순수한 유형의 오락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청소년들이 위험스런 길로 뛰어들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 부모님들은 의심스런 활동들에 대해서 묵인하거나 격려해서는 안됩니다. 분명히 슬프고 가슴아픈 일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유익함을 보여줄 수백 가지의 제약들을 부가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와같은 세상적인 오락들을 찾게 될 경우 그것은 통탄할 영적인 빈혈증세가 있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이글은 아가페홈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