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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진품으로 인정한 토리노 수의, 하지만...

은바리라이프 2010. 5. 21. 10:51

교황이 진품으로 인정한 토리노 수의, 하지만...

박재권 / 캐나다 주재 기자     

교황이 진품으로 인정한 토리노 수의
▲ 교황이 진품으로 인정한 토리노 수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면에 있어서 최종권위이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말씀이라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그 말씀을 믿는 그 믿음으로 충분하다. 믿음은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은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 원로들이 그것으로써 좋은 평판을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는 것들로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분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도마야, 네가 나를 보았으므로 믿는구나.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고 하시니라』(요 20:29).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5월 2일 ‘토리노 수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의 ‘피로 새겨진’ 성상이라고 말해 수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감쌌던 것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교황은 이날 이탈리아 토리노를 방문해 10년 만에 일반에 공개된 토리노 수의를 관람하면서 이 수의가 진짜 그리스도의 매장에 사용된 천이라는 데 대해 강력한 믿음을 피력했다. 그는 ‘이 장례용 천은 복음서들이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의 시신을 감쌌던 천’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이 수의는 가시관을 쓰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힌 한 남자의 피로 새겨진 성상이라며 수의의 핏자국이 전하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는 "수의의 형상은 죽은 남자의 모습으로 이 핏자국은 이 사람의 삶에 대해, 그리고 사랑과 생명에 대해 얘기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토리노 수의는 (주인공이) 죽은 당시 어떤 모습으로 무덤에 눕혀졌는지 말해준다.’며 ‘그 시간은 하루 반 정도로 짧았지만 그 가치와 중요성은 매우 크고 무한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동안 교계에서 기독교 유물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은 것 중 하나가 바로 “토리노 수의”이다. 2세기 터키에서 처음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이 “가짜 수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된 뒤 부활하기 전까지 시신을 감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청은 지난해 수의에 남아 있는 문자 흔적을 컴퓨터로 해독한 연구 결과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천으로 드러났다고 밝히는 등 수의가 진짜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이 천이 13~14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예수님께서 사망하신 요일과 시간(유대력과 시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고로 자신들이 정해 놓은 사망 추정 시간에 맞추어 마음대로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겨우 하루 반 동안 있었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나의 표적을 통해서 말씀하신 삼일 밤과 삼일 낮 동안 땅의 심장에 있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예언은 빗나갔단 말인가? 그러나 교황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루 반나절 정도 무덤에 계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이 아니라 “유월절 예비일”에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계셔야만 했다. “유월절 예비일”은 수요일이었고 그분의 부활은 그 주의 첫날 일찍 일으켜지셨으므로 정확히 사흘 낮과 사흘 밤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예언하셨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마 12:40).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듣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기억하건대, 저 미혹하던 자가 살아 있을 때 말하기를 ‘삼 일 후에 내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였나이다』(마 27:63). 그런데도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지 않고 억지로 꿰맞추는 식으로 해석하여 어물쩍 넘어가기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사제들의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고개를 숙이며 눈물과 함께 참회하며 사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지상에 남아 있지도 않은 “가짜수의”를 다시 꺼내들고 나와 진짜라고 사람들을 속이고 성경을 왜곡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심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러한 사실을 믿지 못했고 예수님 살아계실 때에도 그분의 십자가 대속을 가로막고 나선 제자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이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고서 믿게 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열흘째 되던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그들 각자에게 임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신실한 모습으로 변화됐다.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순교를 마다하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몸을 바쳤다. 그 후 오늘날까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자연스럽게 믿고 받아들이며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것을 조명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주님을 “주”라고 시인하며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자연인들, 즉 종교를 가장한 정치집단인 카톨릭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면 믿을 수 없음으로 각종 유물들을 급조해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구원받지 않은 그들에게 임하실 리 없기에 그들의 인간적인 힘과 능력으로 믿어 보려고 하지만 역부족인지라 그들은 그처럼 여러 가지 가증한 것들을 고안해 낸 것이다. 부활은 이런 가짜 유품의 유무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그 저자이신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 가짜 수의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천으로 되어 있지만 성경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머리에 덮었던 수건과 몸을 감쌌던 수의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몸을 구부리고 들여다보니 세마포가 놓인 것을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아니하더라. 그때 그를 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세마포 옷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주의 머리에 둘렀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그것만 한쪽에 개어져 있더라』(요 20:5~7).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현장을 역사적, 고고학적 유물로 본존하지 않으시고 기록된 말씀으로 보존하셨다. 그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는 그분의 부활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고후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