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님의 약속 (사도행전1:1-5)
오늘 아침부터 우리는 사도행전을 배우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서와 서신 서들을 연결시키는 일에 가교적 역할을 한 누가의 서신 서입니다. 본서는 초대 교회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으며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었으며 성령님이 복음 사역에 활동하시는 모습이 어떠했는가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1. 디오빌로에게 보낸 누가의 서신
사도행전은 누가란 사람이 데오빌로에게 두 번째 보낸 편지입니다. 누가가 먼저 번 쓴 글이라고 한 것은 누가복음을 말합니다.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데로빌로에게 보내는 글로 명시하고 있으며 그를 가리켜 '각하'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데오빌로는 이방인이기는 하나 신분이 꾀나 높은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란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예수님 생존시에 그의 이름은 성경 어디에도 나타난 바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바울과 친숙한 동료 지간이었으며 바울의 복음 사역에 많은 도움을 준 사람입니다. 누가는 의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계층의 많은 사람들과 교통하고 있었으며 인망이 좋았던 사람으로 높은 사람들과도 많은 교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바울과의 교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 받았을 것으로 보이며 그리스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가 기록한 누가복음이나 사도 행전을 볼 때 이런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그 제목이 말해 주는 바와 같이 사도들의 복음 전파를 위해 그 행한 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만약 이 서신이 아니었더라면 복음이 어떤 경로에 의해 어떻게 그토록 능력 있게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부터 시작하여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는 데까지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 특별히 바울의 행적을 따라 복음 사역의 역사가 기록된 살아 있는 기독교의 역사 서인 것입니다. 이 기록은 아마 주후 61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신학자들이 추측하고 있습니다.
2. 주님이 내리신 분부
누가는 1절과 2절에서 자신이 먼저 번에 보낸 서신의 내용이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고 밝히고 3절부터 그 다음부터의 복음이 전파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주님은 십자가에서 해를 받으신 후,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셨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누가의 서신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사실부터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으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의 살아나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나타내시고 그 부활을 본 모든 사람으로 주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40일 동안 보이셨다는 것은 40일 간이나 부활하신 몸으로 이 세상에 머무시면서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다는 뜻입니다. 4절 말씀을 보면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모이셨을 때 그들에게 분부하시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주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그 약속이란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나면 그의 신앙 생활은 성령이 없는 생활이 되며 그의 증거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의 일꾼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려면 그들은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성령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라고 할 때 물 세례를 생각하지만 물세례는 성령 세례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물세례는 회개의 고백에 지나지 않지만 성령 세례는 중생의 증거인 것입니다. 물세례는 주님의 명령에 의해 하나님의 종들에 의해 주지만 성령 세례는 주님이 직접 주십니다.
결론 : 이같은 성령 세례의 약속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약된 축복입니다. 우리는 과연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받았으면 성령 세례를 받은 성도답게 성령의 결실을 맺어야 하겠습니다.
(2) 주님의 명령(사도행전1:6-8)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어느 날 사도들과 자리를 함께 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들이 가장 궁금히 여기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의 요지는 이러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이스라엘의 회복이란 이스라엘의 독립을 말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강대국 로마에 정복당하여 그들에게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소원은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이 독립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가 나타나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으며 예수가 바로 이 일을 행하실 분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생각은 주님의 제자들도 똑 같았습니다.
1.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 속으로 한심스러우셨지만 이 문제에 대하여 크게 나무라지 아니하시고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일은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생각을 전적으로 물리치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에 두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 아니시지만 이스라엘의 독립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와 기한은 아버지만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할 시기가 역사적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분은 자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로 알고 메시야를 기다려 온 것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은 이처럼 자신들이 기다려 온 메시야라면 이스라엘을 회복하셔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롬11:25절에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은 완악해지므로 복음을 배척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그러나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 그 날이 올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독립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하셨으며 그날에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주님의 지상 명령
8절 말씀은 그 당시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성령을 받고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지상 명령이십니다.
(1) 첫째로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는다'고 하신 일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권능이란 말은 '그 능력'이란 의미로 헬라어로 '뒤나민'( )인데 사도들이 증인으로서 필요로 하는 모든 능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증인들 역시 능력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힘만으로는 이런 위대한 영적 사역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들을 진리로 이끄시고 우리들로 복음을 담대히 증거 하게 하는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나타내시는 권능의 역사는 영적 능력으로 죄인을 회개시키시고 사람들로 진리로 이끄시고 믿는 자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이 주시는 이 권능을 받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권능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권능을 받고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는 증인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
(2) 다음에 성령의 권능은 오직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나타납니다. 우리는 혹 잘못 생각하여 성령의 권능을 기적적인 역사로, 신유적인 권능으로 은사적인 능력으로만 나타나는 줄로 알고 있지만 이런 일은 성령이 하시는 일 중에 가장 미미한 일에 불과합니다. 성령이 하시는 가장 놀라운 권능은 우리의 입으로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파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3) 다음에 주님은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내 증인이란 그리스도의 증인을 말합니다. 증인이란 말은 '마르튀스'( )로 영어로 순교자란 말(martyr)의 어원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증인은 순교적인 사명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계 3자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을 표현할 때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명감으로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본 대로 오리라
(사도행전1:9-11)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이 제각기 다르게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을 명령으로 주시고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은 말씀은 여러 말씀을 하시는 가운데 제자들이 각기 자기가 들은 입장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에 대하여 간략히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별다른 이의가 없습니다.
1. 하늘을 쳐다 본 이유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이모저모로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에게 부쳐진 이름이 계 3장에서 '충성된 증인이시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복음을 자신의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그 사명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주님이 이처럼 지상의 사명을 다 마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은 모두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 어디로 가시는 것인가? 이런 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했습니다. 이 보좌에 대하여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대로 그는 이기심으로 하나님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영광을 누리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에서는 예수님이 하늘에 올라가신 일에 대하여 '그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그의 피를 가지시고 단번에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지상에서는 땅에서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우리를 위한 화목 제물로 희생되셨습니다. 그가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으신 후에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아버지께 간구 하신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
제자들이 하늘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을 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해 준 이들은 누구였습니까? 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제자들에게 들려 준 말 중에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라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재림의 모습에 대하여 밝히 밝혀 주고 있다는 점에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한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이 땅에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재림에 대하여 수도 없이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 하늘의 증인들도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심을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밝혀 준 것입니다. 다음에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란 말은 그의 부활하신 몸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내려오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몸으로 오신다는 의미하는 눈에 분명히 보이는 영광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영광의 몸으로 면류관을 쓰시고 백마를 타시고 하늘의 많은 군대를 이끌어 이 땅에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천사들의 이 말은 그가 재림하시는 장소에 대하여 바로 올리우심을 받은 그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감람산에서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슥14:4말씀을 보면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주님을 맞이하는 모습에 대하여 계1:7절에서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 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결론 : 우리는 하늘로 올리가 지금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사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도 우리의 구원도 그 분에게 있습니다. 그 분은 그곳으로부터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날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새로운 사명
(사도행전1:12-26)
예수님의 승천을 바라보고 그가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은 사실을 확실하게 믿게 된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제 새로운 사명을 받기 위해 한 곳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감란원이라고 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감란산에서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이들은 이 산에서 내려와서는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 다락방에서 무슨 일을 한 것입니까?
1. 합심하여 기도한 제자들
제자들은 주님의 아우들까지 합하여 약 120명 가량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합심 기도에 들어갔는데 그들이 어떤 자세로 기도했는가에 대해 몇 가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 그들은 우선 기도하기 위해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그 성령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한 곳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성령은 아무라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사람들에게만 은사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성령을 받은 것은 그들이 모두 주님의 약속과 명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14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모인 주의 제자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인 목적이 동일했고 기도의 제목도 동일했습니다. 그들은 금방 주님이 자기들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심을 보았기 때문에 마음이 뜨겁고 간절했습니다. 이들의 기도에는 불이 붙었습니다. 분위기가 뜨거워졌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같이하는 기도는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기도입니다. 약속에 매달리는 기도에는 능력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기도하라는 명령을 친히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을 믿고 기도할 수 있는 충분한 보장이 있었기 때문에 담대한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전혀 기도에 힘썼다는 말은 모든 일을 잊고 오직 기도하는 일에만 전념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성령을 주시라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기도에 흐트러짐이 없이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이런 기도는 급기야 2장에 가서 약속된 성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맛디아의 선출
기도회 도중에 베드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가지 제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제의란 배신자 유다의 자리를 채우는 한 명의 제자의 수효를 채우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수효는 열 두 명이라야 합니다. 12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숫자이며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수효이기도 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한 후,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제자의 수효를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제자란 예수님에 의해 지명 받은 자로 구성되었는데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이 마당에 그런 방법은 어렵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제비를 뽑아 선출하자고 제의한 것입니다. 원래가 제자(사도)란 예수님의 제자의 반열에 들어가 있는 자로 부활의 증인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말하기를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고 하면서 유스도라 하는 '요셉'과 '맛디아' 중 하나를 선출할 것을 제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선출하기 전에 기도하기를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로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고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그 중에 '맛디아'를 뽑아 열 둘 중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베드로는 16절 이하에서 가룟 유다에 대해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불의의 삯을 받아 그 돈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자에 대한 성경에 기록된 예언도 시편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룟 유다가 결국 멸망의 도구로 쓰임 받았었다는 점에서 큰 경각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한 뜻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한 곳에 모여 기도하는 일은 교회의 부흥과 우리들이 주의 사역을 하는 일에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 가운데는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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