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4:7-10 / 질그릇 속에 담긴 보배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를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은 여러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비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1. 우리는 진흙으로 만든 질그릇입니다.
예레미야 18장에 보면,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서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드는 광경을 보게 하십니다. 토기장이가 녹로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깨뜨려 버리고 그 흙으로 다시 만들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이 시청각 교육을 통해서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것 같이 “너희들도 내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들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다 만드신 후에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 2:7) 그래서 흙은 생명의 상징입니다. 모든 생명은 흙에서 나는 열매를 먹고삽니다. 인간은 흙에서 나서,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살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인간은 흙으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흙은 생명의 텃밭입니다. 생명의 씨앗을 심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옥토라 할지라도 아무 것도 심겨지지 않으면 그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흙은 씨앗이 뿌려지는 대로 열매를 거두지 내가 씨앗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도 그 속에 무엇이 담겨져 있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집니다. 쌀을 담아 놓으면 쌀 그릇이 되고 쓰레기를 담아 놓으면 쓰레기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은 깨어지기가 쉽고 상처 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질그릇같은 우리들은 연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이 진흙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흙으로 만든 그릇이 아무리 강한들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아무리 수 백만 원짜리 도자기라도 조그마한 돌에 맞으면 곧 깨어지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질그릇으로 빚어 가십니다. 깨어진 그릇은 고치십니다.
회복한 질그릇 속에 보배를 담아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토기장이의 모습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 나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으로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어 내가 너희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하십니다.(렘 18:6)
유명한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질그릇이지만 우리는 귀중합니다. 질그릇 속에 보배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탈무드를 보면 어느 날, 아주 지혜롭지만 얼굴이 못 생긴 랍비가 로마 황제의 공주와 만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공주가 랍비를 보고, “그렇게도 총명한 지혜로움이 이렇게 못난 그릇에 담겨 있군요”라고 말하자, 랍비는 화도 내지 않고 천연스럽게 공주에게 “공주님, 이 왕궁 안에 있는 귀한 술은 어떤 곳에 담아 둡니까?” 그러자, “보통 질그릇에 담아 두죠” 랍비는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아니 로마 황제의 공주 되시는 분께서 금이나 은 그릇도 많을 텐데 왜 보잘것없는 질그릇 같은 것을 사용하시나요?”
그 말은 들은 공주는 이제까지 금이나 은 그릇에 담겨 있던 물을 질그릇에 옮겨 담고 보잘 것 없는 질그릇에 들어 있던 술을 모두 금과 은 그릇에 옮겨 담았습니다. 그러자, 술은 곧 맛이 변하여 본래의 술맛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황제가 술맛을 보고 누가 이런 곳에다 술을 담았느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공주는 놀라 황제에게 용서를 빌고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랍비님,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을 하도록 하셨지요?” 그러자, 랍비는 “나는 다만 공주님께 대단히 귀중한 물건이라도 때로는 보잘것없는 그릇에 담아 두는 쪽이 더 나을 수도 있음을 가르쳐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겉모양이 좋다고 반드시 능력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즉, 외모는 그 사람의 능력을 뜻하는 척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일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급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의 약속이 좀 늦어진다는 이유로 주님께서 침묵하신다는 이유로 의심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도하십시오.
주님께 맡기십시오. 사모한다는 말과 조급해 한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며 의지하는 것은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한 계획을 실수 없이 이루어가고 계신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회복시키길 원하십니다.
2. 우리의 질그릇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4:7절에 보면 “질그릇 속에 보배를 담았다”고 했습니다. 이 보배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인간의 영혼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간은 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질그릇은 값이 없지만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곧 보화가 담겨져 있기에 매우 비싼 값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 속에 담겨진 보화가 잘 보이지 않고 외형만 중시합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몸짱, 얼짱이란 말입니다. 주님은 몸짱, 얼짱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짱을 보십니다.
우리의 질그릇 속에 보배의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막상 우리 자신을 부인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아' 라는 항아리를 깨트리면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망설입니다. 세상에서 싸움준비는 잘합니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는 말씀을 통해서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깨트리면 우리 속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일하시는데 자신을 깨트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알량한 나의 자존심, 아집, 고집,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내세우려고 하는 마음,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 자신이 깨어지지 못할 때 마지막 진짜 싸움에서는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우리가 가진 학식, 돈, 명예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 고백하고 있듯이 능력의 심히 큰 것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고후 4:7)
내가 깨어지면 내 속에 계신 예수님이 빛으로 일하십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옥합을 깨트릴 때 그 속에 있는 향유가 비로소 향기가 온 방안에 가득히 진동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때에는 우리 자신을 깨트릴 때입니다.
질그릇인 우리 자신을 깨트리고 그 속에 복음의 횃불을 높이 들 그때에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겉으로는 보잘 것 없는 항아리와 질그릇에 불과하게 보이지만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는 진리는 능히 이 세상의 모든 사탄의 세력을 부수고도 남는 것입니다. 교회는 크고 화려한 건물이나 숫자에 승부를 걸지 않습니다. 교회의 능력은 보이는 건물이나 사람 수가 아니라 그 안에 계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한결같이 자랑할 것이 없는 질그릇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고전 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여러분 속에 보배이신 주님이 계신가를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십시오.
3. 질그릇 속에 있는 예수님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이기도록 힘을 더하여 주십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주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이김을 주셨습니다.(고전 15:57)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라고 하십니다.
[요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우리는 주님이 이기신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본문 8-9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질그릇 같은 우리의 육체가 당하는 여러 가지 모양의 시련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당황하는 일을 만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 싸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답답할 때 하나님께 기도 드리십시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역대하 20:11-12절에 보면, 유대의 여호사밧 왕이 갑자기 모합 암몬 및 마온 왕의 연합군의 침공을 받아 유대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여호사밧왕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기에 여호사밧 왕의 답답한 심정을 보십시오. 적군은 쳐들어 와서 유다를 포위했는데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찌할 줄도 알지 못하고 주만 바라보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야하시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는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답답한 문제를 기도하고 맡기면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 되어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 주실 것이며 책임 져 주실 것입니다.
또 성도는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 핍박이란 성도에게 최고의 영예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1-42)고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을 받고 계십니까? 즐거워하고 기뻐하십시오.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많습니다. 또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고 했습니다.
위인은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를 잘 극복합니다. 당신은 영적인 오뚝이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진흙으로 빚어진 질그릇입니다. 그래서 약하고 깨어지기가 쉽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함을 고치시고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좌정하셨습니다.
이젠 주님의 십자가가 내 인생의 보배가 되었고 최고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우리는 쓰러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소망을 부어주십니다. 인생의 질그릇은 언젠가는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깨어질 질그릇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신 보배이신 예수님이 중요합니다.
질그릇인 우리들이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속에 계신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고후 4:10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질그릇 같은 인생은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진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늘 삶 가운데 생각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향한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주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실 때 제일 먼저 십자가 질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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