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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과 상징

은바리라이프 2010. 3. 8. 22:27

이한오 (기사입력: 2010/02/25 14:46)

교회력을 지키는 신자들은 사순절의 첫날을 ‘재의 수요일’이라 한다. ‘재의 수요일’은 이날 교회가 예배 중에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고, 그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행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날 사용하는 재는 지난해 수난주일에 사용했던 성지(聖枝)를 모아 불에 태워서 만든다. 사순 첫날 수요일의 예식에서는 재를 이마에 십자 모양으로 바르며 사제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과 또 삶과 죽음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이 재는 두 가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재가 불로 태워진 것이라는 점에서 생명이 끝난 상태를 의미한다. 마치 시신이 화로에 들어갔다 나올 때 몇 조각 뼈와 흰 가루가 되는 것처럼, 종려나무의 화려하고 딱딱함은 없어지고 검고 하얀 흙이 되는 것이다. 이런 재의 이미지에서 하느님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우고 살 것을 다짐하게 된다. 이 재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상태, 더 이상 태울 것이 없는 존재로 자신을 깨끗하고 순수한 본래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죄성,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탐욕, 복음을 상대화하는 모든 시도를 태워야 한다. 태우는 것은 억누르거나 절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두번째로 재는 생명과 새로운 성장을 위한 밑거름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재를 받고 살아가는 신자들이 사순 시기 동안 새로운 각오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축제를 준비할 때에, 이 재라는 밑거름을 통해 준비하게 된다. 비누가 없을 때 재를 사용해서 세탁을 했다. 재 자신은 물에 섞여 없어지지만 더러운 오물을 함께 씻어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처럼 상징물인 재를 통해,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부활의 희망을 꿈꾸게 된다.
교회의 역사는 다양한 신앙 방식을 남겼다. 그 중에 하나는 십자가나 성물에 대한 태도이다. 대체로 로마 천주교는 상징물을 많이 사용하고 개신교는 상징물이 일종의 우상숭배의 위험성과 예수님과의 직접성을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특별히 종교개혁을 통해 로마 가톨릭의 미신적 전례를 추방한 사례가 있다. 종교개혁 직전 교회가 타락했을 당시에는 종교적 의미가 전혀 없는 미신적 행위나 성상숭배 때문에 문제도 많았고 갈등도 있었다. 또한 교황의 부당한 권위를 대적하기 위해 ‘성서의 우선성’을 내세운 것은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이까지 버리는 오류”도 없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성찬식을 폐기한 것이다. 성만찬은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과 나눈 식사이자 거룩한 성사였다. 함께 먹고 마시는 행위를 통해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쉽지만 의미 깊은 의식이었으나, 개혁교회가 말씀 중심의 노선을 정하면서 성만찬까지 없애거나 최소한 약화시켰다. 이밖에도 지금 생각하면 좋은 전통과 관습이 있는데, 당시의 여건상 폐지했다. 미신을 타파하면서 상징성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사순절은 ‘하느님의 시간’이다. 하느님이 주인이 되고, 하느님을 중심에 두며 신앙생활을 갱신하는 시간이기에 그렇게 부른다. 물론 1년 365일이 모두 하느님의 시간이자, 새롭게 태어나는 생일이자, 부활의 날로 생각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우리의 신앙을 집중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 않은가?
의식, 전례, 상징은 그 자체로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의식과 상징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사순 첫날 재를 이마에 바르면서 하는 전례적 행위가 기적을 동반하는 ‘신앙적 상징’으로 승화하느냐 아니면 우매한 ‘미신적 행위’로 전락하느냐 하는 문제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달렸다. 결혼 서약을 할 때 주고 받는 반지는 약속이 보석처럼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상징적 행위이다. 우리 삶의 주인이 하느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인생의 유한함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재’다.

‘좋은 신학’만큼 ‘좋은 기도문’이 많아지길 바라면서, 재를 바르기 전에 드리는 기도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재를 받는 이들로 하여금 진심으로 뉘우치고 주님의 용서를 얻게 하시며,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우신 선물임을 깨닫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