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바울 주변인물

위로의 아들 바나바

은바리라이프 2010. 2. 5. 23:27

위로의 아들 바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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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 36~37, 9:26~30, 11:19~26 13:1~3
바나바의 본명은 요셉입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은 사도(使徒)들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위로의 아들’, 또는 ‘격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행 4:36).



그는 유대인으로서 구브로 섬에서 성장한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일원으로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사도들의 사역하는 일을 돕기 위해 자기 소유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놓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시 하나님께 바쳐서 연약한 형제를 권면하고 위로하는 아름다운 봉사를 계속 했던 사람입니다.



이처럼 바나바는 신앙이 독실하고 마음이 넓고 후덕(厚德)하여 그의 사랑의 행동은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그에게 ‘위로의 아들’이란 별명으로 부쳐주고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바나바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같이 성격이 과격하거나 급하지 않고, 침착하고 신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알며 숨은 인재를 찾아 등용시키는 관용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을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추천해서 교제할 수 있도록 주선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바울이 처음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사도들 모두는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바울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소 사람 바울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의 과거의 모습들이 그들의 기억에 생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으므로 온 예루살렘 안에서 가장 두렵고 증오에 찬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만이 바울을 가까이하며 마음을 열고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바나바만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바울의 간증을 믿었습니다. 그는 바울도 자신과 다른 믿는 사람들처럼 동일한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바울을 사도들에게 인도하여 그를 소개하였습니다. 또한 바나바는 바울을 믿고 그의 인격을 보장해 주었으며 변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바울을 영접할 때까지 함께 머물렀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권면하며 상담하고 추천하는 일이 그의 사명이요, 은사였습니다. 그의 은사는 연약한 형제를 북돋는 힘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초대교회의 선각자요, 귀한 일군으로서 사람들로 인정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있던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 흩어져야만 했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을 떠나 안디옥까지 갔던 믿는 사람 몇 명이 안디옥에 도착하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님을 증거하며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곳의 수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고 주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안디옥은 로마 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로마 총독이 거주했던 곳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곳에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하였습니다. 이같이 이방지역인 안디옥에 처음으로 교회가 설립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에게 안디옥 교회의 중책을 맡겼습니다. 그만큼 바나바는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1장 22~26절)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일군으로 인정받던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로부터 파송 받은 안디옥교회가 날로 부흥하여 더욱 할 일이 많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나바는 신앙의 친구요, 전도의 동지인 바울을 찾아 머나먼 다소까지 갔습니다. 이때 바울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헬라파 유대인들의 오해를 받고 다시 자기 고향인 다소로 가서 조용히 지내고 있던 때입니다. 이런 때 바나바가 바울을 찾아와서 함께 일하고자 권하며 안디옥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안디옥에서 함께 협력목회를 하였습니다.



두 젊은 전도자는 1년 동안 함께 있으면서 마음과 힘을 합하여 많은 사람들을 열심히 위로하고 격려하고 가르치면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러자 큰 무리들이 주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때 안디옥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예수 믿는 사람을 칭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처음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모두 바나바의 공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써 바나바가 바울에게 이방 세계의 복음 전도의 관문을 열어 주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바나바의 요청에 응한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그보다 바나바가 바울을 찾아와 설득한 것이 더 위대한 일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인품과 타고난 재능과 열렬한 신앙과 헌신적인 정신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바울의 용기도 인정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이처럼 사람을 보는 눈도 있었고, 인물을 등용할 줄 아는 용기도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선교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구별하여 이방인을 위한 초대 선교사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최초의 선교여행을 동행하여 고락을 같이 하였고, 생사를 같이하며 영광과 곤욕도 같이 하였습니다.



이들은 먼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를 거쳐서 소아시아의 중심부인 비시디아 안디옥(지금의 야르바츠)과 이고니온(지금으로 코냐), 루스드라, 더베 등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지역) 일대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나바와 바울의 제 1차 여행이었습니다(행 13:2~14:8).



구브로 섬으로 가서 전도할 때 총독이 예수를 믿었고, 전도를 방해한 바예수가 소경이 되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구브로 전도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루스드라에 갔을 때 바나바를 ‘쓰스’ 곧 ‘주피터’라 하고 바울을 ‘허매’ 곧 ‘머큐리’라 한 것을 보면 바나바는 두령 격의 위엄스러운 태도가 있고, 바울보다 연장자인 것 같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이 말한 대로 몸이 왜소해 보이고 말이 시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바울의 설교와 이적은 바나바보다 우세하여 전도 초기에는 바나바와 바울이라 칭하던 이름순서가 후에는 바울과 바나바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차 전도여행에서 수행원으로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갔는데 그가 도중에 여행을 포기하고 돌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준비했던 집의 아들로서 바나바의 생질이 되는 관계였습니다. 처음으로 가보는 전도여행이라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고 따라나섰다가 마가 요한은 밤빌리아 지방의 버가에서 도중하차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마가가 너무 고생이 됨으로 도중에 포기하였다는 전승과 마가는 할례당이어서 바울과 바나바가 할례없이 세례를 주는 것을 반대하다가 서로 결렬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그 후 2차 전도여행에 앞서 마가 요한의 동행을 놓고 바나바는 바울과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1차 여행 때 버가에서 돌아간 마가 요한을 바나나는 동행하자고 주장했고, 바울은 동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위험이 많은 전도여행에 겁이 많은 청년을 참가 시킬 수 없다는 바울의 주장도 일리가 있고, 젊은이의 잠깐 실수를 용서하고 다시 동행하자는 바나바의 관용도 후진(後進)을 사랑하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의견의 일치를 못보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다시 구브로를 향하여 떠나고, 바울은 실루아노를 데리고 길리기아로 갔습니다(행 15:36~41).



다른 면에서는 바울이 진리 위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하였지만, 이 마가의 동행 문제는 바나바의 말이 옳았던 것으로 후에 증명되었습니다. 바울의 생각은 마가와 같은 사람은 결코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일에 바울은 그 일을 두고 후회를 한 것 같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생의 마지막 때에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부탁하는 것을 볼 때 이를 알 수 있습니다(딤후 4:11).



바울과 헤어진 후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고향인 구브로로 향하고, 바울도 자신의 고향인 길리기아를 지나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아시아가 아닌 마게도냐를 건너가 빌립보, 고린도 등 (지금의 유럽, 그리스 지역)으로 가서 각각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이후 바나바의 소식은 막연합니다. 초대교회의 선각자인 바나바, 착하고 신앙이 독실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는 그 후 다시 소식이 없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설립에 뚜렷한 공적을 남긴 바나바는 그 후 어디에선가 순교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행했던 마가는 얼마 후에 베드로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마가가 쓴 복음서는 대체로 바나바와 베드로에게 들은 것을 토대로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여간 마가의 동행문제를 놓고 바나바와 갈라섰던 바울의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마가는 훌륭한 주님이 일꾼이 되었습니다. 역시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키우는 일은 바울보다는 바나바가 월등한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나바와 바울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쉬워하는 것은 바나바가 구브로를 향하여 간 것까지는 알 수 있는데 그 후의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그 이후에 어디서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도들의 행적도 우리가 알 수 없어서 궁금한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히 착한 사람, 위로와 격려의 사람 바나바의 행적을 기록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그의 업적은 결코 흐려지거나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착하고 이해심이 많은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주님과 교회를 향해 헌신적이고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해 관대한 삶은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과 귀감이 됨이 분명합니다.





참고 성구: 행 15:36~41, 딤후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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