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 판도라가 열리며 나비가 되다
- sirius
- 추천 7 조회 1250 2009.12.31
제가 그린 그 '진짜 같은 거짓말의 거인과 같은 심연'의 옆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문제는, 소재의 단순 반복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봐왔던 그 서사의 지향점도 단순하게 반복 한다면, 겉은 서기 2154년을 지향하는 최첨단 3D IMAX SF일 뿐 속알머리는 다 썩어 문드러진 전근대적인 영화임에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늑대와 춤을>, <파워 오브 원>, <라스트 모히칸>. 진심으로 감동과 전율을 느낀 영화들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매우 불쾌한 영화입니다. 저만의 생각일 수 있어 좋은 영화를 개인적인 편견으로 왜곡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럽지만, 이 영화들은 겉으로는 두 문명/문화간의 평화적인 교류를 역설하나, 한 껍데기 벗겨보면, '미개한자들이여, 해결사는 바로 우리(백인)!'라는 나름 자연스럽게 우리 머리 속에도 심어졌던 전근대적인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파워 오브 원>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흑인사회에 뛰어든 핏덩어리 백인 청년을 모든 흑인들이 레인메이커(해결사)로 추앙하는 모습이 가장 극명한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영화 <라스트 모히칸>에서는 마지막 남은 모히칸족이 아이러니하게도 백인이며 또한 모히칸족과 여타 인디언들은 그 마지막 백인 모히칸이 이루는 사랑의 감동을 위해 지극히 주변화된 배경으로 그려지는 것도 그 전근대적인 시각의 좋은 예입니다.
물론, 영화의 구성은 분명, 혁신적입니다. 인류가 만들어 낸 영화라는 엔터테인먼트 장르에 지금까지 외계인이 등장할 때마다 언제나 '비극'으로 구성한 점은 실로 아이러니합니다. 여기서 비극의 의미는, 외계인이 우리보다 우수한 문명을 가지고 있거나 물리적으로 더 강력한 개체여서, 인류/인간의 존망이 외계인에 달려 있는 그런 상황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Avatar>와 같이, 외계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력한 존재로 인류를 그리는 영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지와의 조우>, <E.T.>와 같이 외계인과 평화적인 교감을 보여주는 영화도 있지만 영화 속의 외계인은 분명 인류보다 앞선 문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명과 거리가 먼 외계생명체를 보여주는 <에이리언>과 같은 영화도 그 강력한 물리적인 힘에 인간들은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Avatar>의 외계인(나비족)은 인류 선사시대의 원시부족사회 단계 정도로 볼 수 있으며, 반면, 인류는 최첨단 기술문명을 보유한 ‘앞선자’의 위치로 그려집니다. 인류에게 나비족은 ‘나무 근처에서 날아다니는 파리’에 불과할 정도로, 외계인을 다루는 데 있어 <Avatar>의 영화사적 위치는 혁신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혁신으로 보이는 그것은 오만 그 자체입니다. 광대한 우주 속에서는 지구는 창백한 한 점에 불과하다는 과학적 발견의 또 다른 모습인 외계로부터 침략 공포를 제임스 카메론이 ‘겸손하지 못하게’ 깨뜨렸다는 의미의 오만함은 아닙니다.
나비족은 인간과 닮았으며, 또한 판도라 위성은 지구 행성과 유사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지만 판도라는 ‘지구인’이 만든 ‘지구 속 판타지 세계’일 뿐입니다. 즉, 원천적인 새로움은 없이 지구를 약간 변형한 것에 불과 합니다. 그 변형도 영화적인 재미나 내용 전개를 목적으로 무리하게 진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극명한 예는 영화 속 육상동물에 있습니다. 나비족은 인류와 같이 4개의 손 or 발을 가지고 있으나 나머지 영화 속 모든 육상동물은 6개의 손 or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화론이 우주적 정설이 아닐 수 있으며 또한 과도한 논리 비약일 수 있지만, 나비족만 외따로 극명하게 다른 생체 구조를 지닌 것은 영화적 재미를 위한 설정임에 자명합니다.
진화론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머뭇거리지만,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나비족과 다른 육상동물이 매우 이질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구상에서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유사하게 보인다는 논리는 아니며, 단지 해부학적 생체 구조상 저렇게 극명하게 다른 구조로 자연 진화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서의 이질감이었습니다. 이는 영화 <Avatar>를 통해서만 판단한 것이기에 속단일 수 있습니다. 즉, 나비족의 출현 기원 등 추가 설명이 있다면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오픈 테마이기에 제 생각이 명백히 틀릴 수도 있습니다. 너무 지엽적인 논리로 흘러가는데, 핵심은 판도라와 나비족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지구와 인류를 바탕으로 구성된 ‘단순 배경’이라는 것입니다. 인류와 avatar가 되기 위해서는 인류와 유사한 생체 구조를 가진 외계인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인류와 유사하지만 판도라에서는 생뚱 맞은 2수 2족의 ‘나비족’을 탄생시킨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⑴.
이에, 판도라는 지구이며, 나비족은 더더욱 인류일 뿐입니다. 영화 <Avatar>는 인류와 외계인간 교류/충돌이 빚어지는, 더더군다나 인류가 그 외계인을 문명적으로 지배하는 ‘혁신적인’ 영화가 아닌, 우리가 지구상에서 익히 봐왔던 ‘앞선자의 뒷선자 파괴/지배’의 New Version에 불과합니다. 최첨단 CG 덕분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캐릭터가 제공되지만 실상 지구와 우리의 모습을 재해석한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더욱 문제는, 자신이 가진 상상력 속도를 기술 발전 속도가 따라잡도록 10여 년을 기다린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적 기술에 대한 과욕이 영화 속 인류의 기술 맹신의 오만함에 그대로 반영되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그 오만한 시선에 힘만 실어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깔끔하고 정교하게 덧칠한 최첨단 CG 덕분에 ‘익숙하지만 올바르지 않은 그 서사’가 아무런 거부감이나 무리수 없이 자연스럽게 전개된다면, 이는 어린 아기한테 매우 정교한 실제 총기를 쥐어주는 격 그대로 입니다.
실제, 제임스 카메론 영화 속 인류는 심각한 문화지체 현상을 겪고 있어 아기 정도의 정신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화 속 인류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기술문명을 이룩했으나 그만큼 정신문명이 따라가지 못해 인류는 언제나 그 기술 수준에 걸맞지 않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즉, 제임스 카메론 영화 속 인류는 언제나 그들에게 매우 버거운 기술 수준을 가지고 있어 혁신적으로 뛰어난 개인이나 소그룹의 힘으로 일이 해결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에이리언2>이었으며 또한 이번에는 <Avatar>입니다.
그의 영화 속 인류는 기술 쪽만 과도하게 성장한 비정상적인 문명으로서, 간결한 서사구조로 영화적 기술 부문에 많은 공을 들이는 제임스 카메론과 ‘배 다른 형제’입니다. 쌍둥이가 아닌 배 다른 형제인 이유. 간단합니다. 영화 속 인류와 달리, 그의 간결한 서사구조는 정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간결함은 언제나 그랬듯이 강력한 영화적 기술의 날개를 달고 한 순간이라도 스크린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간결한 이분법적 서사구조에서 어느 한쪽에 오만하리만치 거대하게 힘을 부여한다면 그 서사의 결말은 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임스 카메론은 그의 영화 <Avatar>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그 오만한 시선에 최첨단 CG를 덧칠하여 뻔한 얘기만 하고 있을까요?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은 분명 달랐습니다. <Avatar>의 단순한 이분법적 서사구조 사이에는 심연과 같은 혜안이 문득문득 숨겨져 있었으며, 이는 ‘판을 뒤집는’ 역설적인 시각으로서 뻔한 결말의 힘을 빼는 또 다른 거대함이었습니다. 이에, <Avatar>는 여타 다른 영화와 구별되는 그 '진짜 같은 거짓말의 거인과 같은 심연'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은 어느 순간 나비족이 되어 판도라 위성의 Hometree 위에서 그들과 함께 이크란을 타고 하늘을 날게 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푸른색 옷을 입는 것만이 아닌 그들의 생각과 영혼에 동화하는 순간까지 다가갑니다. 인류의 무자비함에 쓰러지는 Hometree를 보며 탄식하고 무수한 이크란들이 전쟁을 위해 활공하는 모습에 탄성을 지릅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영화 속 나비족을 대하는 관객의 접근법은 <파워 오브 원>의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을, 그리고 <늑대와 춤을>과 <라스트 모히칸>의 아메리칸 인디언을 대하는 그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입니다.
분명, 지금까지 여타 영화들에서 관객이 동화(同化)하는 주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이나 아메리칸 인디언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객체이자 배경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은 Fiction이 아닌 Non-fiction으로서, 관객들은 역사적인 선입견과 결정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이들의 삶은 역사적으로 이미 결론이 나있으며 영화 속에서 ‘레인메이커’나 ‘늑대와 춤을’이 아무리 난리를 친다 하더라도 그들의 삶은 앞선자의 지도와 편달 속에 쉽게 끝나지 않을 갈등과 파괴를 경험할 것임을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에 관객들은 뒷선자들에게 쉽게 동화할 수 없는 영화적/역사적 환경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그 오만한 시선과 불가피하게 영화 내내 함께하게 됩니다.
관객의 동화 주체는, 대신 그 반대쪽에 있는 백인, 즉 앞선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선자의 그 오만한 시선에 동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객들이 동화하는 주체는, 그 앞선자 그룹 중에서 외따로이 떨어져 나온 일부 백인입니다. 이들이 외따로이 떨어져 있는 섬이 된 이유는, 그들의 정치적인 신념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계기로 인해 흑인, 인디언과 교류하게 되며 더 나아가 이들과 동화합니다. 영화 속에서 그 백인들은 ‘뒷선자’ 흑인, 인디언과 분명 동화하며 이를 통해 개인간의 우정을 넘어선 인종간의 평화 또는 신뢰와 같은 보다 거대한 담론을 얘기하는 것이 보이지만, 문제는 관객들은 그들의 개인적이지만 또한 스펙타클한 경험에 동화할 뿐, 그들이 실제 뒷선자들과 동화할 때의 Point는 관객에게까지 넘어오지 못합니다. 이는 영화의 서사구조의 문제일 수 있지만, 백인과 흑인/인디언간의 구별되는 모습, 즉 '늑대와 춤을'이 아무리 백인의 모습으로 인디언이 된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백인이기에 관객들은 그 동화(同化)의 정점을 원천적으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판도라는 열렸으며, <Avatar>의 전(前)과 후(後)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Avatar>는 분명 여타 문명/인종간 교류 영화와 다릅니다. 또한, <Avatar>를 SF판 <늑대와 춤을>, <파워 오브 원>, <라스트 모히칸>이라고 칭하는 것은 폄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영화 <Avatar>가 성취한 부분에 있습니다. 이는 바로 <Avatar>가 새로운 영화적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며, 역설적이게도 그 패러다임의 주동력은 영화의 보조 수단으로 생각해왔던 CG 등 영화적 기술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에게 있어 이는 매우 역설적입니다. 간결하고 단순한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영화적 기술에 보다 투자하면서 영화적 거장이 아닌 할리우드 기능장 정도로 인식되는 그에게, <Avatar>에서 보여준 성취는 보조 수단인 영화적 기술이 서사구조와 관객의 영화 읽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판을 뒤집는 중대한 수단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Avatar>에서 관객이 동화하는 주체는, 명약관화 바로 ‘나비족’입니다. 이분법적인 구조에서 인류는 처녀지 판도라와 정신적으로 보다 성숙한 나비족을 좀 먹는 ‘바퀴벌레’로 각인될 정도로 관객은 나비족에 동화되고 ‘같은’ 인류는 철저히 배척할 지경에 이릅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혁신적인 CG 기술에 있습니다. 실사와 CG간이 구분이 더 이상 무의미해지며 CG로 그려진 판도라와 나비족을 실사로 인식하는 착각에 의해, 관객들은 ‘뒷선자’인 나비족에 100% 동화하며 영화의 서사구조를 따라 갑니다.
서사구조 또한 인류가 인간의 형태가 아닌 나비족의 형태를 직접 갖춘 후 교류하는 인간 대 avatar link 구조를 바탕으로 함에 따라 관객들은 앞선자와 뒷선자의 교감을 매우 사실적으로 극대화된 상태에서 함께 동화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늑대와 춤을이 황색 피부와 흑색 머리를 가진 진짜 인디언이 되어 다른 인디언과 함께 한다면, 영화 <늑대와 춤을>은 명백히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인식될 것입니다. 이에, 영화 <Avatar>의 핵심은 바로, 인류가 직접 나비족이 되는 ‘과학기술’이며 CG를 통해 이를 실사와 같이 표현한 ‘영화적 기술’인 것입니다.
이 Avatar Link가 재미있는 것은, 한쪽이 기능을 수행할 때 반대쪽은 기능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비족이 되었을 때는 인간 제이크는 의식이 없습니다. 또한, 인간 제이크가 깨어있을 때는 나비족 제이크설리에게 의식이 없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 또한 <Avatar>의 서사구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만약, 나비족이 되어 있을 때 반대쪽의 인간도 깨어 있는 상태가 된다면, 그 나비족은 인간에게 실시간으로 조종 받는 느낌으로 관객에게 다가설 것입니다. 즉, 인간과 나비족간의 심정적인 동화(同化)의 교감이 아닌 군사작전와 같은 매우 이질적인 느낌의 ‘조작’이라는 느낌이 강할 것이기에 이 <Avatar>의 Link 장치는 나비족에 대한 동화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호접몽, 인간 제이크와 나비족 제이크설리 ⓒ 20th Century Fox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런 서사구조가 가능한 것은 바로 영화적 기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면 원천적으로 이런 서사구조를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또한 되지 않는 기술로 불완전하게 표현하는 것은 도리어 영화의 맥을 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Avatar> 가 성취한 영화적 기술의 진화는 실로 중대한 것입니다.
영화적 기술에 대한 ‘전투적인’ 투자로 ‘신이 질투할만한’ 판도라와 나비족 그리고 여타 동물들을 실재하는 것처럼 ‘창조’한 제임스 카메론의 지금까지 노력이 극대화된 인간의 상상력도 모두 표현하며 이를 통해 전혀 새로운 서사구조도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실로 영화적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바꾼 것이라 생각됩니다. 말 그대로 판을 뒤집은 것이며, 판도라는 열렸으며, <Avatar>의 전(前)과 후(後)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에게 바칩니다: You ARE the king of the WORLDS!
2009년의 마지막 날 sirius
(1) 영화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로서, 실제 나비족과 인간의 avatar로서의 나비족간에 신체적인 지대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실제 나비족은 손가락이 4개이며 인간 avatar 나비족은 인간과 같이 5개입니다. 이렇게 굳이 구분시킨 이유는 본편에서는 안 나오나 후편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 장치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인간 avatar 나비족이 대량으로 만들어진 후 반란이나 전쟁이 생긴다면 본 차이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Avatar 블레이드러너가 avatar를 구분할 수 있는 아마도 매우 절대적인 근거가 되겠지요. ^^;
(2) 지구에서 판도라까지 시공간거리는 4.4광년입니다. 영화에서는 지구에서 판도라까지 5년 9개월 22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에, 2154년도에는 아직 광속으로 움직이는 우주선은 없나 봅니다. 아니면, 현재까지 과학적 이론에 충실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라 광속여행이 아예 불가능함을 보여준 것 같기도 합니다.
(3) 영화에서 판도라에 대한 잘못된 번역이 있습니다. 영화 초반 판도라를 ‘행성’이라고 칭합니다. 하지만 판도라는 목성의 타이탄과 같은 ‘위성’입니다.
* 마지막으로, 매우 지엽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외계행성이 아무리 지구와 비슷한 환경일지라도 그 행성의 외계인이 인간과 매우 비슷한 형상으로 진화한 것은 정말 티끌의 티끌만큼 확률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적 설정을 위해 그런 것이라 대충 이해하기로 하였습니다. 진심으로 감동적인 것은, 극대화된 사실성을 가진 새로운 세계를 아예 창조할 만큼 뛰어난 지성과 감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동물을 진화시킨 자연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 개발과 자연의 이분법적 구조상, <Avatar>에서 나비족의 승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류가 경험했던 역사적 사실까지 거론할 필요 없이, 보다 우세한 기술문명을 가진 인류는 다시 strike back하겠지요. 이제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이 시작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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