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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마이너리티 2세’들의 외침 ② 불법체류 방글라데시인 민수

은바리라이프 2009. 12. 28. 13:35

대한민국 ‘마이너리티 2세’ 그들의 외침 ② 불법체류 방글라데시인 초등생 민수 [중앙일보]

2009.12.21 03:33 입력 / 2009.12.21 09:05 수정

[2009년을 보내며] “넌 한국사람이니 한국말 잘해라 그랬는데 … 엄마는 거짓말쟁이”

검은 피부의 방글라데시인 불법 체류자. 주민등록번호도 없지만, 민수(7·가명)의 태권도복 가슴엔 태극기와 ‘코리아’가 새겨져 있다. 1년 전부터 태권도를 배워 온 민수는 최근 1품 심사를 통과했다.[최승식 기자]
초등학교 1학년 민수(7·가명)의 부모는 불법체류자다. 1997년 방글라데시인 아빠(41)·엄마(37)는 3개월짜리 비자를 받고 한국에 왔다. 일자리를 얻은 부모는 불법체류자로 한국에 남았다. 그러다 2002년 민수를 낳았다.

긴 속눈썹에 짙은 쌍꺼풀, 초콜릿색 피부. 민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글라데시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태어난 민수의 정체성은 ‘100% 한국인’이다. 1학년 민수는 국어 90점을 받아 반에서 2등을 했다.

민수는 자신이 한국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이제 막 알게 됐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 역시 부모와 같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도. 생후 13개월이 된 민수의 동생도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었다. 민수는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49㎡(15평) 반지하집에서 민수를 만났다. 보금증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집이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낮에도 형광등을 켜놔야 했다. 아이는 기자와 조금 친해지자 ‘기자 누나’라고 불렀다(기자는 25세 여성이다). 아이의 말을 지면에 옮겨 불법체류자 2세의 삶을 들여다봤다.

누나는 주민등록번호 있어요? 와! 그럼 아이디(ID)도 있겠네. 카트라이더(인기 인터넷 게임)도 할 수 있겠네. 누나 주민번호 잠깐 빌려서, 누나 컴퓨터로 한번 들어가 봐도 돼요?

난 주민번호가 없거든요. 그래서 회원 가입을 못 해요. 학교 홈페이지에도 들어갈 수 없어서 공지사항을 확인할 수 없어요. 친구들한테 다 물어봐야 해요. e-메일도 못 보내요.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내가 방글라데시 사람이라 그렇대요.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예전에는 내가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말을 잘해야 한다고 그랬거든요.(불법체류자인 민수 부모는 주민번호가 없다. 단속 대상이라 언제 추방당할지 모른다. 통장도 만들 수 없고 보험도 들 수 없다. 아빠는 공장에서 일하고 엄마는 작은 보습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월 수입은 둘이 합해 180만원이다. 그중 30만원은 고국에 있는 각자 부모에게 보낸다.)

난 몸이 좀 약한 편이에요. 지난해에는 편도선 수술도 했어요. 그때 엄마가 정말 많이 한숨을 쉬었어요. 아빠는 친구한테 돈도 빌렸대요. 엄마는 반지하방에 오래 살아서 내 기관지가 약해진 거래요.(보험이 안 돼 수술비만 350만원이 나왔다. 빚 때문에 방글라데시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이다.)

집에서 병원 놀이를 하는 민수와 돌이 갓 지난 여동생.
누나, 그거 알죠? 우리 엄마·아빠 불법인 거. 아는 형이 있는데, 그 형 아빠도 올봄에 쫓겨났어요. 난 정말 방글라데시 가기 싫어. 난 한국말밖에 못해. 거긴 친구도 없어. 나 정말 공부 열심히 해요. 국어·수학 전부 90점 넘어요. 가끔 경찰 아저씨를 만나면 인사도 열심히 해요.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허리를 깊게 숙이며)엄마가 가르쳐준 ‘배꼽인사’요. 그럼 잡아가지 않을 거 같아서요. 학교에서 소원을 적어내라고 한 적이 있어요. ‘합법 되는 것’이라고 써냈어요.(민수는 기자에게 말을 하다 엄마를 돌아보더니 “엄마도 경찰한테 잡혀가지 않도록 조심해. 아빠한테도 전해줘”라고 말했다. 민수의 꿈은 도둑 잡는 경찰이다.)

누나, 난 우리 반 형식(가명)이가 제일 싫어! 맨날 외계인이라고 놀려. 싸운 적도 있어요. 애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내 눈을 때린 적도 있어요. 한참이나 눈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아팠어요. 엄마는 “그 애 엄마, 어쩜 미안하단 소리 한번 안 하느냐”며 울었어요. 엄마는 나보다 한국말을 더 못하는데. 친구들이랑 싸우고 나서 담임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민수는 오바마 대통령처럼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아이”라고 했어요.(담임 교사가 다문화 교육을 한 것이다. 2008년부터 불법체류자의 자녀라도 거주가 확인되면 초등학교 전입이 가능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누나, 난 ‘마법의 성’(더 클래식의 노래) 노래 제일 좋아해요. 누나는요? 수업시간에 배웠는데 가사가 감동적이잖아요. 같이 불러볼래요?(아이는 거침이 없었고, 성격이 밝았다.)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소중해. 함께라면.”

누나 내일도 와요. 누나한테 해줄 얘기가 아직 많아요. 또 올 거죠?

김효은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2008년 말을 기준으로 국내에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은 약 20만 명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가족동반이 허락되지 않아 자녀의 통계를 정확하게 집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시민단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장기체류한 ‘미등록 이주아동’을 2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대부분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이다.

한국은 ‘미등록 이주아동이 교육받을 권리’를 일부 보장하고 있다.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외국인 아동도 한국 아동과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9조 1항을 개정해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도 학교 입학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주아동이 진학하기 위해서는 출입국 증명서, 외국인 등록증 등을 관계기관에 제출해야 해 사실상 입학이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2월 정부는 시행령을 ‘전월세 계약서나 이웃의 거주확인 보증서가 있으면 입학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개정했다. 방글라데시 불법체류자의 아들 민수가 개정 시행령의 혜택을 받은 사례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을 제외하면, 민수 같은 미등록 이주아동은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아동의 기본권을 강화하고 있는 국제 흐름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은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을 내년 2월 발의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3년 이상 거주한 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자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법안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이주 아동에게 무조건 합법체류 자격을 주면 불법체류를 양성화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부는 “아동이 부모의 체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이주아동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면 국내 아동과의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효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