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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마이너리티2세’들의 외침 [4] 김천 달동네 다문화가정 우정이

은바리라이프 2009. 12. 28. 13:51

대한민국 ‘마이너리티 2세’ 그들의 외침 [4] 김천 달동네 다문화가정 맏딸 우정이 [중앙일보]

2009.12.28 03:30 입력 / 2009.12.28 04:53 수정

“아이들 놀리듯 전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해요”

우정이네 4남매가 경북 김천의 집에서 머리를 맞대고 누워 웃고 있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엄우정(11), 정원(8), 정대(10), 연정(1). [김천=프리랜서 공정식]
유난히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에 거무스름한 피부. 초등학교 5학년 엄우정(11)양은 다문화가정의 2세다. 필리핀에서 온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모는 약간 다르지만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고 최신 휴대전화를 탐내는 점에선 한국의 여느 11세 소녀와 같다.

경북 김천시 남산동. 큰 길에서 굽이굽이 골목길을 올라가면, 언덕 위 하늘 아래에 우정이네 집이 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5만원, 어둑한 33㎡(10평)짜리 반지하방이 우정이네 보금자리다.

21일 찾아간 집은 어수선했다. 엄마인 디오스 다다이아팟(41)은 칭얼대는 18개월짜리 막내 딸 연정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옆에는 왜소한 체구에 큰 야전 점퍼를 입은 아빠 엄태경(48)씨가 TV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썽꾸러기 형제 정대(10)·정원(8)이는 컴퓨터에 정신을 쏟았다. 서로 다른 일을 하면서도 여섯 식구는 옹기종기 전기장판 하나 위에 모여 있었다.

국내에 결혼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후반이다. 우정이 부모는 96년 한 교회의 주선으로 결혼했다. 동남아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온 때가 97년 즈음인 것을 감안하면, 엄마는 ‘동남아 며느리’ 중 선배 격이다. 결혼 2년 뒤 우정이가 태어났다.

같은 반 30명 중 다문화가정 2세는 우정이가 유일하다. 유행처럼 번지는 놀림. 2학년 때가 극성이었다. “너네 엄마는 어디서 왔느냐, 너는 왜 피부가 검으냐?”

태극기와 필리핀 국기를 들고 우정이네 가족이 사진을 찍었다. 우정이네는 “가족사진을 찍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우정이도 안다. 아이들이 결코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럴 때마다 우정이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이 아직 잘 모르니 같이 맞붙어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 속내를 나중에야 털어놓는다. “사실 신경을 안 쓰는 건 아니고요…. 신경 쓰지 말자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말투에선 경상도 특유의 억양까지 묻어 나왔다.

가끔 엄마와 나들이할 때 뒤통수에 꽂히는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정작 자신이 놀림받을 때는 “신경 쓰지 않는다”던 우정이었지만, 엄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불쾌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우정이는 이 눈빛에 대해 “(사람들이) 엄마가 왜 한국에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래도 아이는 어른스럽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제가 약간 까매서 아이들은 특이하다 하는데, 저는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빠는 한국,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잖아요. 두 나라의 문화를 모두 배울 수 있어 부모가 다 한국인인 아이들보다 더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정이는 아직 필리핀 외갓집에 가본 적이 없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다. 일용직 막노동을 하는 아빠가 버는 한 달 수입은 150만원 남짓. 기초생활 수급비 60만원이 없다면 여섯 식구가 먹고 살기 힘들다. 엄마는 몸이 약해 일을 못한다. 우정이는 학원도 다니지 않는다. 방과후 학교에서 서예를 배우는 게 전부다. 지난해는 피아노 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우정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하자 이웃 아저씨가 학원비를 대신 내줬다. 그러나 아저씨가 이사하면서 학원을 그만둬야 했다. 우정이 엄마는 “네 아이 모두 대학을 보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우정이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재능도 있다. 지난해에는 김천시교육청에서 주관한 독서논술대회에서 교육장 상을 받았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친구의 소중함을 주제로 글을 썼다. 1학년 때 우정이에게 말을 많이 걸어주던 친구의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될 때쯤이면 저 같은 다문화가정 아이가 많아질 거잖아요. 그냥 국어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법도 알려주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근데 돈은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동생은 제가 책임진다고 약속했거든요.”

줄곧 TV를 보던 아빠가 한마디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다 듣고 있던 모양이다. “누가 니 보고 돈 벌어 오라카더나.”

TV에서 눈을 떼지 않는 아빠는, 촉촉해지는 눈을 숨기지 못했다. 우정이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우정이는 “최신 휴대전화가 갖고 싶지만 아빠한테는 얘기하지 않아요”라고 귓속말하듯 말했다. 아이는 다시 조용히 말했다. “저번에 연정이랑 손가락 걸고 약속했어요.” 

김천=장주영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