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나

호세아 서론

은바리라이프 2009. 11. 12. 23:13


여로보암 2세 당시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호세아 선지자의 활동 무대
명칭
'호세아'란 '구원'이라는 뜻으로 '여호수아'와 '예수'라는 이름의 뜻과 동일하다. 북 이스라엘이 영적, 사회적으로 타락했을 때 호세아 선지자는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 곧 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하면서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본서는 저자의 이름을 그대로 따라 책의 제목을 삼았다.
저자 및 기록연대
본서의 저자는 호세아이다. 그는 이사야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B.C. 782-753년경 북이스라엘을 통치한 여로보암 2세 때 소명을 받아 예언 사역을 시작하였다. 호세아의 출생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선지자로서는 특이하게 북이스라엘에서 출생하였다. 소명 전의 직업에 대해서는 제빵업자(7:4) 또는 농사꾼이라는 설이 있다.
배경 및 주제

■ 역사적 배경

본서의 표제에 의하면(1:1) 호세아는 남유다왕 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와 북이스라엘왕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기간에 예언 활동을 하였다. 이 시기의 초반은 평화와 번영의 시대였다. 특히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B.C. 793-753)의 통치하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유능한 여로보암 2세는 40여년 동안 왕국을 다스리면서(왕하 14:23) 영토를 솔로몬 시대의 판도와 같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14:25) 확장시켰으며, 팔레스타인의 주변 국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물론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으면서 항상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던 아람(다메섹)이 앗수르의 공격으로 그 세력이 약화되었고 동시에 앗수르도 국내 ·외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주변국가들에 대한 공격을 멈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시대에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정치적인 안정 속에서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시대에 북이스라엘은 영적·사회적으로 가장 타락하였다. 즉 그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망각한 채 율법을 무시하고 음란하게 우상을 섬겼으며, 이웃에게 불의를 자행하는 타락과 부패의 길을 걸어 갔던 것이다. 이 때문에 호세아 선지자는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 곧 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하면서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호세아의 경고와 호소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범죄했기 때문에,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살만에셀 V세의 공격으로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됨으로써 멸망하였다(B.C. 722). 그리고 그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앗수르로 끌려가는 비극을 당하고 말았다(참조. 왕하 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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