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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과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은바리라이프 2009. 10. 28. 12:13

추수감사절과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글번호 34155 love-jesus님이 2007-10-16 14:59:1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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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과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추수감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창세기 4:3∼4)다. 즉 유대인의 맥추감사절(레위기 23:9∼14)과 장막절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추수감사절 모습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비롯됐다.

1620년 경건한 삶을 추구하던 청교도 102명이 영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60여일의 항해 끝에 같은해 11월20일 신대륙의 플리머스항에 상륙했다. 그해 겨울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듬해 봄에 씨앗을 뿌려 가을에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다. 이때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도운 인디언들을 초대해 수확한 곡식과 채소,과일 등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음식을 나눠먹었다. 고난 중에 드린 감사의 기도가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된 것이다.

첫 개척지 플리머스의 초대 지사였던 윌리엄 브래드퍼드는 감사절을 지킬 것을 이렇게 선포하였다.

“높으신 하나님께서 금년에 풍부한 수확을 주셨다.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 밀 콩 호박과 여러 채소를 심게 해주셨고 자라나게 하셨다. 숲에서 사냥을 하고 바다에서는 생선과 조개들을 넉넉히 거둘 수 있게 축복해주셨다. 야만인의 습격에서 보호하시고 여러 질병에서 지켜주셨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모든 순례자들(Pilgrims)에게 선포한다. 주후 1623년 11월29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모여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 모든 축복을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라”

그후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1789년 헌법 제정을 축하하면서 그해 11월26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했다. 그러나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은 추수감사절이 영국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폐지했다.

추수감사절이 다시 지켜지게 된 것은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다.

1863년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국민이 고통스러운 역사를 겪고 있을 때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의 조기 종결과 국민 단합을 위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감사일(Thanksgiving Day)로 공식 발표했다.

“국내외에 흩어진 모든 미국민이 이 날은 하늘 아버지의 선한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라” 그 후 역대 대통령은 추수감사절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이 전통이 되어 버렸다.

“험하고 고생스러운 시대에 초라한 경제력을 가졌던 우리 조상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훨씬 편하고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위험은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깨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덕에 대하여 헌신과 봉사 정신으로 감사를 올리자”(우드로 윌슨 대통령)

“이 가을 날 하루를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는 것은 우리 미국인의 슬기와 경건이 드러난 전통이다”(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현재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939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감사절을 11월 셋째주 목요일로 변경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추수감사절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한국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기 시작한 것은 1904년제4회 장로회 공의회에서 11월10일을 감사일로 선포한 뒤부터이다. 미국인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날을 기념, 매년 11월 셋째 주일후 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하여 예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모아 총회 전도국에 보내 전도 사업에 쓰기로 하였다. 1914년에는 각 교파 선교부 회의에서 미국 선교사의 최초 입국일인 11월 셋째주 수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언했고 이후 수요일에서 주일로 바뀌게 됐다. 한국교회가 이와 같이 추수 시기가 한참 지난 때를 추수감사절을 지켰던 것은 바로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 때문이다.

추수감사절의 큰 의미는 추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첫 소산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물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크게 하려면 예물을 포함한 감사의 마음과 그 시기(첫 소산의 때)를 잘 정해야 한다. 성도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추수의 시기에,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의 절기를 지키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추수감사절의 시기는 나라마다 다른데 영국은 전통적으로 8월1일을 추수감사절(Lamas)로 지키고 있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부활절 후 40일 즉,승천일(목요일)전 3일간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다행히 한국에는 추석이라는 추수의 명절이 있으므로 추석 전후 주일(추석을 낀 연휴가 있는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킨다면 시기적인 의미 뿐 아니라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자녀들이 고향의 부모님집에 모여 온 가족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추수 음식을 나누게 돼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더욱 커질 것이다.

현재 소수의 교단에서 추석 즈음에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상황에 맞는 한국적 추수감사절 제정과 학습문답 제도 개선을 위해 한국교회의 결단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현재 한국 교계 일각에서는 우리 실정에 맞는 시기인 중추절(추석)을 전후해서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을 새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고 이를 시행하는 몇몇 교회와 교파도 있다.

추수 자체만을 가지고 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농경사회에서 가지는 정서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통은 상당부분 농경사회에서 틀을 잡은 것들이다. 우리나라가 선교를 받은 후 약 80년 이상 지난 1960년대까지 우리는 농경사회가 중심이었다. 그때 한국교회의 전통적 기초가 세워졌고, 그 이후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교회도 엄청난 부흥성장을 이뤘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대한민국이 정보화로 말하자면 세계 초일류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농경시대에 터한 정서로 추수감사절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미국이나 일본보다 수십배 수백배 정보화가 앞선 한국상황이란 사실을 인식한다면 시대 변화에 따라 교회문화의 옷도 갈아입어야 한다. 점점 도시화되어 가는 현상 속에 교회는 새로운 추수감사절 문화를 창출해내야 할 것이다.

이제 농경사회의 추수감사절 향수에 젖어 그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변화한 사회 속에 적용할 수 있는 감사절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11월 셋째주일이란 문자적 전통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나라의 추수시기에 맞춰 감사절을 지켜도 좋은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연중행사로 의례가 되어 가는 절기에 신앙적 의미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는 신앙의 회복운동이 오늘의 성도들 가슴속에 담길 때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미가 생명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범위 내에서 수평적인 감사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에 대해서 감사하고, 직장에서는 상사와 동료들에게도 감사하고, 동네에서는 이웃에게도 감사하고, 교회에서는 나의 영혼을 이끌어주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런 감사가 있는 곳에는 불화와 다툼이 없다. 이런 감사가 있는 곳에는 인정과 친절과 온정이 넘친다. 이런 감사가 있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는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하다.

감사절에는 즐거워하며 잔치를 베푸는 일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와 한량없으신 축복에 감사하면서 온 백성이 즐겁게 잔치를 베풀고 모두가 기뻐하는 일이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행사는 이웃 불신자들도 호감을 가져야 하고 또 그들도 초청되어야 한다. 교회의 축제가 이웃에게 공감되어야 하고 교회의 잔치를 이웃의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감사절을 지키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부천제일교회(담임목사 윤대영)는 지난해 추수감사절을 모든 성도들이 참여한 가운데 ‘자아를 드리는 감사절’ 행사를 가져 한국교회에 신선한 도전을 주었다.

최근 헌혈자가 줄어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믿는 이들이 자신의 피를 나눔으로써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자는 뜻에서 색다른 추수감사절 행사를 마련한 것이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선물인 육체를 온전히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마음으로 저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시신 기증 서약서에 서명했다. 성도들은 헌혈과 시신기증 서약을 통해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광염교회(조현삼 목사)의 ‘특별한 추수감사절’ 행사도 눈여겨 볼 만하다. 그 첫번째 행사는 절기헌금 전액을 콘테이너와 함께 아프리카 수단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에 서울광염교회는 이랜드에서 쾌척한 성인 및 아동 의류 600여 상자를 40t짜리 콘테이너에 담아보내고 추수감사 헌금 전액을 구제부원들을 통해 현지로 직접 보냈다.

이와 함께 서울광염교회가 준비하고 있는 두번째 행사는 ‘목회자 유가족과 함께 하는 추수감사절’이다.

‘나누어야 할 유가족의 아픔,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라는 모토로 이미 ‘목유사’(목회자유가족을 돕는 사람들)를 통해 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섬김운동을 벌여오고 있는 서울광염교회는 한국 교회가 목회자 유가족을 기억하고 함께 하는 추수감사절을 보낼 수 있도록 감사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천안 백석장로교회(최인광 목사)에서는 성도들과 함께 지난해 한가위 밤을 이웃들에게 선물하러 돌아다니는 일로 보냈다고 한다. 천안에서 제일 가난한 동네라고 하는 한 임대아파트를 찾아가 그곳 주민 250세대에게 딸기 450상자를 전달했으며, 포도 100상자, 사과와 귤 70상자등은 지체장애인 공동체인 밀알의 집에, 사랑의 집에, 예향교회 성도에, 삼일육아원에, 목회자가 떠나서 석 달 째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90여명의 공동체인 신아원에, 하나로교회에, 그리고 여러 마을의 경로당에 전해졌다. 오병이어의 기적이었을까? 그렇게 돌려도 남은 과일은 어려운 교회 8곳을 정해 몰래 교회 문 앞에 두고 왔다고 한다.

수영로교회(정필도 목사)에서도 의미있는 추수감사절을 보냈다. 성도들이 십시일반 모은 쌀 1000㎏과 과일 100상자를 해운대장애인협회에 전달하며 한해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웃과 함께 나눴다. 수영로교회는 해운대장애인협회 외에도 신양원, 경로당, 인근 경찰서 및 아파트 경비원 등에게도 82상자의 과일을 전달했다. 이와함께 사랑의 쌀 나누기를 통해 모여진 성금으로 교회내 독거운인 및 장애인 120여 가정에 10㎏의 쌀을 각각 나눠주었다. 수영로교회는 2002년부터 4월과 11월 연 2회에 걸쳐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를 벌이며, 교회 내외부의 장애인 및 독거노인 등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물질이 있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작은 축복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이 복을 나눠주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서 가느다란 빛이라도 그리워하는 곳이 있다면 작은 빛이라도 들고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령화 사회로 인하여 독거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대화 상대자가 되어주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작은 나눔이나, 시골 벽촌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복음 들고 힘쓰는 전도자들이나 미자립교회, 외국땅 먼곳에서 고국쪽의 하늘을 바라보며 외로움과 싸우는 선교사들, 모두 관심의 대상이요 나눔의 대상이다.

부요한자만 나눠줄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이치지만 작은 것을 나눌 줄 아는 것이 주님의 가르치심이요 참 사랑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 중 하나다. 내게 줄 수 있는 무엇이 있는가 찾아보고 감추는 자가 아니라 드러내놓고 나눌 수 있는 감사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결론

수확의 기쁨을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곧 다가온다. 하지만 모두가 다 풍족해서 수확한 것을 감사할 수만은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축제의 한 켠에는 더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눈이 맑아서 늘 그들을 향해 열려있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어느 게시판에 실린 이 글이 바로 그런 글이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힘겨운 성도들과 교회들에게…


①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교인들의 자리가 꽉 차지 못하며 1년 내내 한 사람도 전도의 열매를 맺지 못하며, 아무리 절약해도 재정은 늘 남는 것이 없으며, 교회간 모임있으면 멋있게 우리 교회가 한턱 낸다고 말할 능력도 없으며, 이웃에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돕고 싶어도 능력안되어 도와달라는 말에도 도움은 고사하고 아무말도 못하며, 땅은 있어도 건축할 돈없으며, 조립으로도 못세우고 천막으로 교회 세우러 갈찌라도…

②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이 고백을 내가 진심으로 내 마음으로 할 수 있을까? 추수감사절이기에 감사의 설교를 해야 하는데 자신과 교회를 바라보니 감사는 커녕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픔만이… 그러다가 기독교신문을 보았다. 많은 교회들이 광고비를 주면서까지 교회 건축완공예배를 자랑하고, 교육관 완공예배를 축하해 달라고 하는데, 우리는 조립지을 돈도 없어서 이 겨울에 천막치고 예배드리러 간다. 분노와 소외감,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는데 추수감사절이라고 어떻게 감사를…

그러다가 송명희씨의 글을 읽었다. 1급 장애인인 그가 또 6개월째 고통스런 병을 앓고 있다 한다. 사람들 만나면서 얼굴에는 감사의 미소를 짓다가 혼자있을 때면 눈에는 눈물만 고인다고… 그런데도 감사한 마음이 든단다. 인공호흡기 매달고 누워있지 않고 그래도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고 있으니 감사하다고.

여호와로 인하여,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라고,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기쁨, 감사, 결코 잊어서는 안될 가장 귀한 감사로 시작하라고 교훈하는 성경 말씀. 아이들은 무엇을 손에 쥐어주어야 감사하다는 말을 겨우 한다. 어른은 손에 직접 잡지는 않았어도 말만 들어도 감사한다.


이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나의 눈을, 나의 마음을 화려한 불빛에 두기보다는 전기세 못내 단전된 집 방 한 구석에 켜있을 촛불 한 자루에 두어야 한다. 나의 눈을 하루 머리둘 곳 없어 이리저리 헤메이는 사람들을 보아야하며, 아침을 먹고는 저녁 쌀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아야 한다. 기름값 없어서 방 하나에만 온기를 넣고 온 가족이 한 방에만 옹기종기 모이는 사람들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늘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은 내 생명 영원으로 이어주시고, 지옥불 면하고, 천국문 열어놓으신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 또 감사 내 삶의 자리가 어디에 있든지 내 영혼의 뿌리에는 감사로. 결코 사람들 앞에 초라하고 비굴한 사람으로 비쳐지지 않으며 오히려 위풍당당한 모습과 존경 속에서 많은 이웃들과 살아갈 것이다.

그 삶의 자세를 배우고자 비결을 듣고자 귀 기울일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다.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조차 감사의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세상을 바라본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다. 주님의 이름으로.
자료출처 : 장애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