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나

요나의 착각

은바리라이프 2009. 9. 24. 14:11

요나의 착각

욘 3:1-10


    Scripture Reading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Sermon

       우리 속담에 "남 잘되는 것 꼴을 못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관되는 말로 "동냥은 못 줄 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는 말도 있지요. 또 다른 표현으로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이 자기가 뜻한 대로 되지 않을 때 심술을 부려 훼방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요나서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죄악을 보시고 요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그런데 이어지는 2절을 보면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였다고 했습니다. 요나는 이방인들인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준엄한 책망으로 회개하게 될 것이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또 만약 그들에게 "당신들 이제 곧 망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맞아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외면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배 위에서 폭풍을 만나 파선할 지경이 되었을 때 자신이 제비뽑기로 선택되었을 때에 불순종을 회개하며 물 속에 자신을 던지게 했습니다. 다행히 큰 물고기에게 삼켜져 3일간을 뱃속에 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실 동물의 뱃속에 3일간이나 있으며 생명을 유지했다는 것 자체가 신비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보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요나였지만 살려주셨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겨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요나서 1장 17절을 보면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고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가 물속에서 익사하지 않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요나가 죽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삼켜 생명을 보전하게 하셨습니다. 2장 10절을 보니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죽고사는 것, 사람의 행사가 다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해도, 실패해도, 이루지 못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것을 이루고야 마십니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사명을 주셨습니다. 3장 2절을 보니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그제서야 요나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니느웨로 갔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요나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3장 5-6절을 보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굵은 베를 입고 회개했습니다. 왕까지도 보좌에서 내려와 화려한 왕의 옷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회개했습니다. 온 백성에게 금식령을 내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는 길로 돌이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참 회개를 어여삐 보셨습니다. 3장 10절을 보니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통회하는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방인의 땅 니느웨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자신은 선민이라고 우쭐대며 니느웨를 같잖게 보던 유대인 요나에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니느웨의 멸망을 외친 후 어찌되나 보자는 심산으로 성 동편에 초막을 지었습니다. 멸망하는 니느웨를 신나게 구경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들이 용서받았습니다. 살아났습니다. 요나의 심사가 살살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망해야 하는 데 살아나다니! 기껏 멸망을 선포하라 해놓으시고는 살려주시다니! 요나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인데 이방족속이 살길을 얻었으니 유대인 요나의 심기가 뒤틀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듭니다. 4장 1절을 보면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라고 막말을 합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이제 하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뜻이 오늘 본문을 통해 주어집니다.

       요나가 초막 속에서 사태를 관망하며 이제나 저제나 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 박넝쿨을 초막에 드리워지게 하시어 그늘을 만들어 요나로 하여금 더위를 피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4장 6절을 보면 요나가 박넝쿨로 인해 기뻐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벌레들이 박넝쿨을 다 갉아먹었습니다. 해가 뜨자 동풍이 불고 해가 요나의 머리에 강렬하게 내려 쬐었습니다. 괄괄한 요나가 이번에도 펄펄 뛰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요나의 원망과 항의에 비로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일러주십니다. 9-11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나는 하찮은 박넝쿨 하나는 그토록 아끼면서도 십이만여명의 목숨과 가축들의 생명은 멸망하기 바랬습니다.

       요나는 착각했습니다. 그 속이 꼬여있었습니다. 자신은 선민이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만 하고 니느웨는 악인들의 땅이어서 다 죽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니느웨를 위해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구하기보다 그들의 멸망을 기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리라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요나 자신에게는 물론 요나가 그렇게도 미워하고 싫어했던 이방인들에게도 미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오직 자기에게 만 귀중하고 자기만을 인도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가 살아나자 잔뜩 꼬인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야 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요나를 부르신 처음에도 이미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섭리와 은총은 요나 아닌 다른 사람들, 멸망받아 마땅한 죄인들에게도 미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니느웨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에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착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하심은 요나에게도 있었지만 니느웨에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칫 내 계획, 내 경험, 내게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하나님이 되십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부르시고 나를 사용하시듯이, 나를 부르신 바로 그 때에 이미 그들의 길을 계획하셨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을 이루십니다.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누구 한사람에게 독점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훌, 여호수아와 갈렙과 함께 일했습니다. 기드온은 300명 용사와 함께 싸웠습니다. 주님도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나와 함께 또다른 사람들을 준비하시고 그들 안에서도 역사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만 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인 동시에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름받아 성도된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앞서가지 말고, 착각하지도  말고 매사에 잘 분별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함께 이뤄갑시다.   

        2006. 1. 22(오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둥교회 목사 박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