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나

본문스크랩] 요나의 믿음

은바리라이프 2009. 9. 24. 13:54

본문스크랩] 요나의 믿음 | 나의 관심정보 메모 삭제 2009/09/24 13:53   
그까이꺼(matsy) http://memolog.blog.naver.com/matsy/412
출처 기도일기 | 노래하는
원본 http://blog.naver.com/theoch/90048141606

여호와께서 큰 바람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이 든지라 (요나 1장 4절~ 5절)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에 부딪쳐 들어와 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마가복음 4장 37절~38절)

 

표적을 구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2장 39절)

 

이어서 말씀하신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큰 풍랑이 치는 배안에서.. 깊이 잠든 요나처럼... 예수님도 주무신다..

 

둘다 풍랑은 안중에 없다.. 요나의 고백을 통해 이유를 들어보자..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1:9)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12)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둘의 평안의 비밀은 믿음에 있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하나님의 능력을 알기에.. 가질 수 있는 믿음의 평안이다..

 

요나는 진정한 믿음의 선지자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실 것을 알고 있다..

망할 것을 경고하도록 시키시는 이유가 구원을 주실 마음에서 비롯 됨을 잘알고 있다..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니느웨의 힘과 막강한 겉모습은.. 애초에 염두조차 두지 않는다..

요나에게 니느웨는..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누추함이다..

니느웨의 멸망을 경고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앞에 불순종한 이유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권세를 추호라도 의심치 않는 믿음때문이다..

요나에게 니느웨의 멸망은.. 기정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스로 도망가는 요나의 불순종만을 힐난할 뿐..

그의 절대적 믿음은 간과하기 쉽다..

 

바다의 풍랑앞에서 두려워 벌벌떠는 사공들은 도무지 평안할 수 없다..

하지만 요나는 왜 풍랑이 부는 지를 알기에.. 태연하다

풍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됨을 알고 있다..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곧 깨어질 위기의 배안에서 모두의 경악과 공포를 뒤에 두고..저홀로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시퍼렇게 초죽음 되어 나타난 선장에게 눈비비며 하품하듯 말하는 요나..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 역시 예수님앞에서 다시스행 뱃사공같은 신세였다..

그리고 잠에서 깬 예수님은.. 너희에게 믿음이 없다고 나무라신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요나에게나 예수님께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풍랑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나님의 시선만이 중요할 뿐이다..

 

요나가 말한다..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예수님께서 말하신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바다를 잔잔케 하실 하나님만이 보인다..

풍랑과 파도는 단지 어떤 사건의 과정일 뿐.. 목적이 아님을 안다..

오로지 유일한 변수는 하나님이시다..

 

격렬한 풍랑앞에서 보인 요나와 예수님의 평안은.. 하나님이 이유이시다..

 

바다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내고 다시 살리심을 얻은 요나

십자가에 몸을 던져 요셉의 무덤에서 3일을 지내고 다시 살리심을 얻은 예수님.. 

 

둘의 resurrection 부활의 이유는 오직 구원에 있다..

 

니느웨의 구원에 절실하게 필요한 요나는 망망한 바다에서 다시 살아 나온다..

이를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신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태12:41)

  

요나 이야기의 절정은 니느웨의 회개이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태연하게 살아서 걸어 나온 사람의 이야기는 니느웨를 소동케하였다..

그 사람은 니느웨의 멸망을 이야기한다..담담하게.. "40일 후에 무너진다 "

 

밑도 끝도 없는 이사람의 성의없는 선포에 왕부터 가축까지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다..

그리고 요나는 그들을 위해서 예수님처럼 스스로 죽지도 않는다..

아니 그들의 죽음보다 박넝쿨의 죽음을 더 슬퍼하였다..

예수님은 가버나움과 벳새다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애곡하시었다..

암탉이 병아리 품듯이 품었노라고..

하물며.. 헤아릴 수 없는 기적까지 베풀었노라고..

 

요나보다 큰 예수님께서는

요나가 행하지 않은 많은 일을 더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우리를 향해 꾸짖으신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태12:41)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폭풍앞에서조차 태연했던 요나..

하룻동안의 성의없는 외침에도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있기에..

멸망을 애타게 기다리며 간구하는 역설적인 요나의 믿음..

 

그의 믿음속에서는.. 니느웨의 구원은 오히려 멸망보다 쉽다..

폭풍따윈 아무래도 좋다..바다에 던져진 들 어떠리..

7배나 뜨거운 플무불이든.. 며칠을 굶은 사자굴이든.. 홍해 앞이든

도대체 뭐가 문제이리...

 

자신의 노력여하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절대성 앞에서 그분의 판단앞에서

구원은 이루어진다는 요나의 믿음은 절대적이다..

 

우리의 구원관이 이와 같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작정하시면.. 구원은 멸망보다 쉽다..

 

요나의 존재감이 반딧불이라면 초신성의 밝음보다 수억배 더 빛나실

예수님의 존재감은..

 

온 우주와 만유와 역사위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서...

 

그리고 우리의 진실한 믿음의 회개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