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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그런데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우리 언어로 듣게 됨이 어찜이냐(8)
[읽을거리]
오순절 날에 성령이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임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각 지역의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듣고 있었던 사람들은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자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함을 우리가 듣는도다(11)
그들 가운데 나타난 기적은 단순한 언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일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성령충만의 결과가 무엇을 가져오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단순히 신비로운 것을 접하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하고, 병을 고치며,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려 하는데 마음을 두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전국의 명산과 기도원 등에는 이러한 이들로 기도의 소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령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혼동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복음을 전하려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던 자들이 각 지역의 언어로 하는 말이 복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면 여기에는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종교가 방언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의 자세가 기도하는 모습이더라도...
오늘날에도 많은 언어들이 존재합니다. 또한 그 속에서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그 언어들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고 있지를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각 나라의 언어들을 말할 수 있는 자들이 있다면 주의 복음을 위하여 쓰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과 기도]
성령 충만함이 가져다 주는 결과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떤 은사들이 우리에게 온 다 할지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내가 가진 은사들을 생각해 보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쓰여지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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