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회심
1. 제목 : 바울의 회심
1) 쟁점 : 바울의 회심의 부분에 있어서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행 9:1-9까지와 행 22:5-11절 그리고 행 26;12-20절까지 다메섹 도상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진술이 서로 다르다는 것에 있다. 9:4은 땅에 엎드려진 사람은 단지 사울 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에 26:14절은 사울뿐만 아니라 모두가 땅에 엎드려 졌다고 말하고 있다. 9:7의 경우에는 사울과 함께 갔던 사람들은 어떤 음성을 들었는데 22:9에 따르면 그들은 아무 소리를 듣지 못한 것으로 나와 있다. 둘째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실제적으로 만나서 회심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의 회심은 환각이나 환상, 그의 간질병 혹은 생리학적 세뇌에 의한 것이라고 몇몇 학자들은 말한다. 세번째는 언제 이방인에게 선교하라는 명령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다. 9장에는 디메섹 도상의 사건을 설명해준 아나니아가 말해준 것으로 되어 있고, 22장에는 아나니아의 말이 암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 있을때 나중에 본 환상에다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들에게 보내리라"는 말씀을 연결시킨다. 또 26장에는 다메섹 도상에 있을때에 바울이 이 사명을 위탁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2) 중요성 : 바울의 회심에 있어서 쟁점이 되는 것 3 가지 즉 진술의 상이한 부분과 회심의 실제성 그리고 이방인 사역에 대한 위임에 대한 진실을 명확히 밝히는 것은 다음의 같이 중요하다. 사울의 회심은 독특한 것이기도 하지만 바울이 인격적으로, 실제적으로 만난 예수를 통해 우리는 그 분께 순종해야 하며 그분을 섬기라는 명령을 받을 수 있어 우리는 바울의 실례를 신앙 생활에 적용할수 있다. 다시 말해서 초기 기독교의 교리를 체계화 시킨 바울 회심의 시작이 단순히 환각이나 병적인 질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바울에게 은혜를 주시고 이방인의 선교를 시작케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심의 실체에 대해서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또 성경의 역사성과 사실성을 증명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
2. 제시된 해결책과 논거의 평가
1) 사건의 상이한 진술 비교
가) 행 9:7의 서 있었다라는 표현과 행 26:14의 우리 모두가 땅에 엎드려 졌다는 표 현. : 벵겔을 비롯한 몇몇의 학자들은 처음에는 엎드려 졌으나 나중에는 다시 일 어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학케트의 학자는 일어섰다 라는 단어의 의미 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이 동사는 종종 다른 행 동 곧 서 있지 않은 행동에 반대되는 행동으로,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 아니라 동작 개념에 반대되는 개념인 고정되어 정지해 있는 것을 의미한 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그 구절의 '서 있었다' 는 개념은 사도행전 26:14절 의 땅에 엎드려져 있었다라는 개념과 완전히 일치한다. 행9:7절에서의 누가 의 목적은 무릎을 躊거나 엎드리거나 하는등의 행동과 비교되는 개념으로써 일어 서 있다고 말하는데 있지 않고 그들은 보고 들었던 것에 압도되어 그 지 점에서 꼼짝도 못하고 서있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들 은 얼마동안 말하거나 움직일수 없었던 것이다.
나) 9:7의 소리만 듣고라는 표현과 빛은 보면서도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의 표현 : 3가지 해석이 나오는데 하나는 9장에서의 소리는 천둥소리나 잡음이고 22장의 소 리는 분명한 소리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9장과 22장에서 격의 차이 점을 발견해야 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9장의 속격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은 소리 의 일부를 뜻한다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의 견해는 사건의 기록을 가지고 억지 로 짜맞추려하는 모습들이 보이며 다음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지 않은가 생각된 다. 마지막 하나는 헬라어에서의 듣다라는 말은 단지 듣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서 이해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2) 회심의 실체성
가) 클라우스너 박사는 바울의 환상은 그의 간질병이 탓이라고 발하고 있다. "많은 간질병 환자들이 크고 위대한 인격을 소유하여 세계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그 들중에는 모하메드, 어거스틴, 시이저, 파스칼, 룻소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바 울은 병의 영향이 아니라 체험이기 때문에 또렷하게 그때 일을 회상한다. 조오 지 리텔톤은 "바울의 회개와 사도직 하나만 으로도 기독교가 신의 계시임을 증 명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언급한바 있다."
나) 사울의 회심의 경험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환각에서 오는 경험일 뿐이다. 사 울은 단순히 여행의 피로로 인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과열 된 흥분으로 인하여 또는 그가 전생에 걸쳐서 가장 잔옥한 악행을 저지르게 될 도시에 가까이 감에 따라 그의 마음에 엄습해 온 통렬한 양심의 가책으로 인하여 그가 극도로 흥분된 상태에 있을때 갑작스럽게 그를 두렵게 하고 그의 마음을 전 복 시켰던 뇌우에 압도 당해버리고 만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역시 회 심 이후의 바울의 마음과 업적 그리고 그가 행하였던 일들을 충분히 설명해주진 못한다. 바울의 회심 사건은 인격적이며 실제적이다. 만약에 회심이 환각에서 오 는 경험이었다면 그는 자신의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인하여 오히려 후회를 하 였을것이다
다) 현대의 성경 비평가들의 견해, 특히 튀빙겐 학파의 사람들은 환상론을 주장하 는데 (vision theory) 이에 따르면 기독교의 진리에 관한 사울의 그 자신과의 갈 등, 그의 마음속에서 점점 더 확대되어지는 바, 그의 바리새적 종교관이 그릇될 것이라는 확신, 스데반의 임종시의 말에 대한 기억과 그 말에 대한 감동으로 자 신이 박해하던 기독교의 교리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모든 것이 사울의 마음을 강하게 적용하여 결국은 이러한 것들이 그의 마음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주관적인 관념들을 외부로 투사케하여 그것들이 객관적인 실체로 보이게끔 했다 는 것이다. 우리는 바울의 회심 이전의 주관적인 관념에 대해서 알수 없을 뿐 더 러 주관적인 관념을 바울이 왜 외부로 투사케 했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라) 위리엄 사강이라는 사람은 바울의 회심을 회심과 세뇌의 생리학이라는 부제의 책 에서 바울이 극도의 신경 과민적인 흥분이라는 예민한 단계끝에 삼일간의 금식을 통한 완전한 허탈, 환각 그리고 피 암시성이 증가하는 상태가 왔는데 이런 상황 에서 그가 이전에 신봉하던 것 과는 정확하게 반대되는 새로운 믿음이 처음에는 아나니아에 의해 그리고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주입된다고 주장한 다. 성경의 어디에도 극도의 신경 과민적인 흥분 상태로 바울이 있었다는 언급은 없으며 아나니아나 초기 크리스챤들의 세뇌의 증거도 우리는 찾아볼수 없다.
3) 바울의 소명 :
6장, 22장, 26장에서의 상이한 구절들이 바울에게 있어서는 예수와의 만남, 아나 니아와의 만남, 예루살렘에서의 확인 환상이 모두가 한 사건의 여러 부분에 불과 했을 것이라고 보면 문제가 해결 될것 같다..
3. 해결책
1)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부활하신 예수는 바울에게 나타났다. 이것은 주관적인 꿈이나 환상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객관적인 출현이라고 볼수 있다. 바울의 회심에 관한 기록에는 문학적이고 상황적인 동기들에 따라 다양성이 발견되는데 저자인 누가의 의도는 자연히 있을수 있는 다양성을 가지고 정직하게 묘사하였음이 분명하다. 헬라어의 의미와 그 당시의 관용적인 표현은 이를 증명한다.
2) 바울의 회심에 대하여서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것이 정신적인 현상이라고만 주장을 한다면 우리는 해석할수 없는것이 생기는데 바울의 눈이 멀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바울의 체험이 정신적인 환영을 보거나 그의 병적인 증세에 의한 체험이라면 우리는 바울의 눈이 멀게된 것을 해석할수 가 없게 된다. 또 그의 내부로 부터 투시된 환영으로 인하여서는 바울의 전생애가 바뀔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의 성격으로 인해 그런 불 분명한 체험이 있었다면 그는 그 체험의 사건을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울은 분명히 그의 서신에서도 그가 예수를 보았다고 증거하고 있으며 그분이 자기에게 소명을 주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바울 회심의 원인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였으며, 실제적인 만남으로 인한 자기 정체성의 깨달음이라고 볼수 있다.
3) 다메섹의 도상에서 자기를 핍박하는 사울이라는 사람을 주님께서 만난 것은 그를 징계함도 아니고 그를 책망함도 아니었다. 주님의 목적은 그를 부르셔서 그의 종교로부터 자유함을 주시고 아울러 그에게 이방 민족의 선교라는 사명을 위탁하시려고 부르신 것이었다고 생각할수 있다. 누가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3개의 장에서 나누어 설명하는데 9장 보다는 22장이 22장 보다는 26장에서 바울의 사명을 문학적인 방법을 써서 풀어나간다. 3개의 장의 차이는 바울 회고의 첨가도 아니고 누가의 기록의 실수도 아니고 바울의 사명을 극명하게 드러내려는 문학적인 시도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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