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
- 210. 바울과 실라의 데살로니가 전도 사건 개요 빌립보에서 떠난 바울과 실라는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 그곳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서 세 번의 안식일에 걸쳐 복음을 전하였다. 이에 경건한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불량배를 동원하여 바울이 머무르던 야손의 집을 습격하고 그와 형제를 끌고 가 반란죄로 고소하였다. 역사적 배경 데살로니가는 B.C. 42년 빌립보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편에 가담함으로 자유 도시가 되었다. 복쪽에는 기름진 골짜기가 있고 남쪽으로는 에게해의 근해가 있어 해상무역의 요충지가 되었다. 그래서 부유한 상업 도시였으며 인구가 무려 이십만 명이나 되었다. 반면에 종교적으로는 자유로왔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서 세 번의 안식일에 걸쳐 복음을 전파하였다. 아직까지 유럽 쪽에는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적이 없어 바울의 전도에 대해 별 방해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건한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개종함으로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 유대인들도 이방인 개종을 시도하였으나 할례와 율법 준수의 조건 때문에 유대교로 개종시키기 힘들었다. 여기서 경건한 헬라인이란 바로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을 가리킨다. 또한 데살로니가는 때때로 부계 대신 모계의 성씨를 사용할 정도로 여성들, 특히 귀부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컸다. 그런데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자 분노한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행패를 부리고 바울이 머무르던 집 주인인 야손과 그의 형제들을 체포하여, 바울이 예수를 헬라어로 주 또는 황제 를 지칭하는 그리스도라고 전파한 것을 빌미로 반역죄로 고소한 것이다. 그러자 반란이 일어나서 자유 도시의 위치를 상실할 것을 염려한 관원들이 바울을 추방시키겠다는 보증으로 보증금을 받고 야손 일행을 방면하였던 것이다. 구속사적 의미 오랜 세월 동안 유대교가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데살로니가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순식간에 개종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것은 율법의 형식주의에 얽매어 힘을 잃어버린 유대교와 진리의 복음이 지닌 생명력의 차이를 증명한 사건이다. 복음은 전파되는 어느 곳에서나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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