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는 정신적 ‘스승’이 없는 세대이다. 아니 스승의 존재를 거부하거나 필요로 여기지 않는다. 서로가 이익 창출을 추구한 나머지 이해관계라는 생존 고리로 얽혀 있을 뿐이다. 멘토십(Mentorship)은 삶을 나누는 관계를 전제로 출발한다. 삶이란 이해관계, 내 것의 확장, 다툼으로 얻기 위한 성취 이전의 생명 과제이다.
사도행전에 소개된 바울과 실라는 서로가 ‘상생(Win-Win)’의 가능성을 보여준 멘토십이다. 실라는 바울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멘토십의 필요를 채울 수 있었고 바울은 실라를 깊이 신뢰하는 관계였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상대가 되었고 그만큼 서로가 가까워졌다.
특별히 사도행전 15장 40절~41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드디어 바울은 실라에게 자신의 사역팀에 동참할 것을 권면한다. 이 이야기는 ‘모범적인 멘티’를 보여준다. 실라를 향한 사랑과 기대를 아끼지 않는 바울의 자세는 진지하고 순결하기까지 하다.
실라는 바울에게 믿음직하고 유력한 인물로 여겨졌다.(행15:22)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실라는 안디옥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거기 머무는 것이 실라에게 좋게 보였다’고 말한다. 그는 바울에게 총애를 받았으며(행15:40) 바울에게 유용한 동역자였다.(행15:41)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라는 바울에게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여겨졌을 것이다.(행17:14)
실라는 바울의 사역에 이모저모로 깊은 책임 의식을 가졌다. 바울은 책임 의식이 강했기에 아덴으로 계속 이동하는 동안 새로운 성도들에 대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남겨 두었다. 그는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서 온전하게 헌신하는 사역자였다. 무엇보다도 바울과 아름다운 사역의 조화를 이루었던 인물이다.(행17:15) 서로가 필요한 부분을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바울은 실라에게 ‘자기에게로 속히 오라’는 명령을 보낸다.
실라는 바울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부분을 순발력 있게 처리했다. 실라의 이러한 열정은 멘토였던 바울과 상생(相生)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서로가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실라는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팀에서 마가 요한의 역할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달랐을 때 선택한 인물이었다. 결과적으로 바나바는 마가의 멘토가 되었으며, 바울은 실라의 멘토가 되었다.
갈등 구조를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이루어지고 있다. 건강한 멘토십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을 시키기 위함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