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종교
배현주
바울 서신들, 특히 고린도 전후서를 읽는 독자는 바울이 몹시 다양한 종교 전통들의 교차 지점에 서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 다양한 종교 전통들의 의미론적 경계가 항상 분명한 것도 아니기에 바울에 대한 이해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특히 고린도 서신은 묵시문학, 예언, 신비주의, 지혜, 신비 종교, 영지/영지주의, 신생 랍비주의(incipient rabbinism), 그리고 심지어 마술/이적(magic/miracle)에 이르는 다양한 헬레니즘적 종교 현상들, 혹은 헬레니즘적 유대교의 종교 현상들을 조명하는 자료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1) 알란 시걸(Alan Segal)은 바울의 서신들이 일반적으로 야기하는 당혹감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바울 서신들은 읽기가 쉽지 않다… 바울은 헬레니즘적 유대교의 견해들, 유대 신비주의와 묵시문학, 그리고 신생 랍비주의뿐만 아니라 그리스적 수사학에도 익숙하다. 학자들은 이제 이러한 다양한 사고 영역들에 주목하면서, 이 중의 하나에 자신의 전 인생의 과제를 집중한다. 바울이 이 모두를 한꺼번에 들어내 보이지 않았으면, 이들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학자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바울의 서신들은 널리 읽혀지고 있지만, 사실상 서양 문헌에 있어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작품들로 분류된다.2)
고린도 전후서는 특별히 바울이 당시의 “대중 종교”(popular religion)3)의 현실과 어떻게 교차 혹은 상호 작용하였는지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보존하고 있는 지식의 보고(a treasure house)이다. 바울의 선교 활동은 진공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헬레니즘 사회의 다양한 종교 문화적 전제들을 지닌 청중과의 의사소통을 통하여서 전개되었다. 바울의 서신들의 복잡성은 그가 청중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실마리들을 파악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참여적 방식 때문에 야기되기도 한다.
바울이 당시 청중들의 종교 문화적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였는가를 연구하려면 두 가지 위험에 조심하여야 한다. 첫째는 환원주의의 오류(a fallacy of reductionism)이고, 둘째는 정적인 취급의 오류(a fallacy of static treatment)이다. 쾨스터(Koester)는 첫째 오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바울 사상의 어떤 측면들을 그의 종교적 배경 중 하나의 특색에 연결지으려는 다양한 시도들은 일반적으로 그의 신학의 다른 요소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특정한 한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4) 선택적인 즉 양자택일적인 접근방식은 바울 사상의 세계를 통합적으로 관찰하지 못할 위험이 있으며, 그의 복잡하고 풍부한 신학의 면모를 단일한 체계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오류는 종종 바울의 신학 혹은 종교의 독특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거나 평면적으로 설명하면서, 소위 “배경”(background)을 단지 부정적인 뒷그림(negative foil)으로만 간주하는 데에서 발생할 수 있다. 바울과 배경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양분하는 정태적인 이분법은 양자의 역동적인 상호관련성을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작업에 기여하지 못한다. 바울의 독특성과 차별성은 바울 자신도 당시의 문화 “배경”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점을 전제 할 때에야 더욱 분명해질 수 있다. 즉 바울의 비판과 혁신의 내용과 질을 알기 위해서도 “배경”은 단지 정태적인 보조화면이 아니라 바울 신학 형성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요소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 관점은 바울의 “독특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공헌으로 하여금 그가 살았던 본래의 역사적 모태 안에서 다시 제자리를 찾게 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라는 자의식으로 살았다는 사실과, 동시대인들은 그를 헬레니즘적 로마 사회의 종교 문화라는 무대 위에 대다수로 출몰하였던 카리스마적 예언자들, 선견자들(seers), 지혜자들의 한 명으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상호 모순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통합적이고 역동적인 접근방법을 채택하면, 연구의 지평이 비현실적으로 광범위해진다. 바울 서신에서 발견되는 모든 종교적 실마리들을 각각 깊이 있게 취급하는 작업은 이 연구의 목적과 연구자의 역량을 넘어간다. 본 연구는 매우 소박한 목적에 만족하고자 한다. 즉 최근의 연구에 의거하여 바울이 헬레니즘적인 대중 종교의 현실과 상호 작용한 풍부한 흔적들을 극히 제한적으로나마 질서있게 논의해보려는 것이다.5) 즉 복잡한 헬레니즘의 대중 종교성에 있어서 특별히 바울의 편지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한 영역인 마술과 이적의 현상을 선별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헹엘에 의하면, 헬레니즘 문화는 “계시를 통한 고차원적 지식”(the higher knowledge through revelation)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특징지어진다.6) 교육받은 계층의 사람들은 계시문학과 점성술 같은 지식에 심취되었으며, 일반 대중들은 대개 마술에 매료되어 있었다. 물론 이 두 종류의 관심이 분명하게 나뉘는 것은 아니었고,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마술도 역시 하나의 지식이요 지혜로 간주되었다. 이 글은 바울이 마술과 이적이라는 대표적인 대중 종교의 관심사와 역동적인 관계 속에 있었음을 증명하고, 누가의 바울과 역사적 바울 사이의 관계성을 다시 점검해보며, 결과적으로 바울에 관한 보다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 있어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교 문화 속에서 겪어야 하는 각종 삶의 실제적 문제들을 풍부하게 노정시키는 고린도 전후서가 가장 중요한 본문이지만, 진정성 있는 다른 바울 서신들도 인용될 것이다.
1. 바울과 마술(Paul and Magic)
마술이란 적합하게 수행하면 예측가능하고 보장된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방법들에 의해서 자연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특정한 상황을 초래하려는 인간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마술은 “산업화 이전 사회 및 원시적 산업사회에서 가장 만연한 대중 종교의 형태”로7) 존속해왔다. 그레꼬-로마 세계에서도 역시 마술은 “사회의 모든 계층에 있어서 일상 생활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8) 바울이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과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을 구분하고 있지만(고전 1:22), “이적을 요구하는 것은 단지 유대인들만이 아니었다. 헬라인들의 대부분도 역시 이적을 구하였고, 다른 민족들의 대다수도 역시 그러하였다.”9) 고대의 엘리뜨 문헌에 반영되어 있는 의심스러운 평판에도 불구하고,10) 마술과 관련된 다양한 물품들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은 마술이 고대 지중해 세계에 만연한 현상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11)
고대세계에서 유대인들은 마술의 성행에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유대인들의 하나님의 이름, “이아오(IAO=Jehovah-YAWH)와 사바옷(SABAOTH)"은 마술에 있어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이름의 하나가 되었다.12)
유대인을 이러한 컨텍스트에서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 그들의 주문들, 혹은 그들의 것이라고 주장되는 주문들은 널리 권위가 인정되었다. 이는 대체로 유대 인종의 신비성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그들이 그 이름이 비밀에 둘러싸인 강력한 신과 친밀한 관련이 있다고 단호하게 주장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비밀은 그들의 주장의 가치를 더욱 고양시키는 것이거니와, 이 신은 더욱이 역사 과정에 개입하였었고 또 역사의 변화를 위해 관여할 준비가 되어있는 신으로 믿어졌기 때문에 더 권위가 있었다.13)
현자 솔로몬과 입법자 모세는 마술사로 널리 알려졌다.14) 요세푸스는 솔로몬이 귀신축출에 관한 마술적 기술들을 남겼다는 전승을 기록하면서 엘르아살이라는 유대인이 이 방법을 사용해서 황제 “베스파시안과 그의 아들들과 부하 장교들과 모든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마술적인 귀신 축출을 행하였다고 보고한다.15)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술사 바예수(행 13:6)나 에베소에서 악귀 축출을 하다가 실패한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나(행 19:13-14) 다 유대인들이었다. 랍비들이 후대에 강조하려고 하였던 유대교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상에도 불구하고, 유대 역사는 결코 마술에 대한 관심을 전적으로 퇴치하지 못하였다.16)
성서학에 있어서 마술에 관한 연구는 마술과 종교, 혹은 마술과 이적의 상호 배타성을 오랫동안 당연시 하였다. 초기 인류학자인 프레이저(James G. Frazer)가 제시한 진화론적 모델이 이러한 입장의 이론적 근거라 하겠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마술은 종교와 과학이라는 후대 발전 과정을 선행하는 가장 원시적인 지식 형태이다.17) 그러므로 “이차 세계 대전 전까지, 마술에 대한 논의는 두 개의 널리 지지되는 전제들에 의해 구속되었다. 그 하나는 마술이란 종교로부터 쉽게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술이란 퇴폐적인 문화 현상이라는 것이다.”18) 그러나 이차 세계 대전 후부터 에반스-프리차드 (E. E. Evans-Pritchard)의 독창적인 연구의 영향 아래 인류학의 분야에서 새로운 경향이 태동하였다.19) 구조 기능적인(structural-functional) 틀 속에서 현대 인류학자들은 “마술과 종교 사이의 낡은 이분법”은 오해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엄정한 범주로 간주되면, 현상을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합의점에 도달했다.20) 보다 적합한 관점은 마술과 종교의 구분이나 경험적 차이를 무시하지 않되,21) 양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마술을 “모든 종교 전통에 있어서 종속적이지만 항상적인 특징”으로, 혹은 “종교 체계들에 있어서 필요한 그리고 보편적으로 현존하는 하부구조(substructure)”로 포괄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다.22) 이러한 구조 기능적인 마술 이해를 신약 성서와 초기 기독교 문헌에 적용하여 “종교-마술적” 현상을 규명하려고 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아우니(David E. Aune)이다.23)
마술을 종교의 한 요소로 간주하는 최근의 이론은 특별히 바울 연구에 새로운 빛을 던져준다. 바울 자신은 “마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경계해야할 부정적인 현상과 연결짓지만(갈 5:20),24) 역설적이게도 마술을 경계하라고 한 갈라디아서 자체는 “마술적 편지”로 분류된다. 베츠에 따르면, 갈라디아서는 성령, 즉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defense of the indefensible) 편지이다.25) 베츠는 성령의 변증을 위해 바울이 제시하는 몇가지 중요한 논의들을 추적한 후에 저주와 축복 모두를 가동시키는 편지의 기능에 주목한다(1:8-9; 6:16). 바울이 갈라디아인들에 대해서 지닌 신뢰, 즉 그들이 자신의 논의를 이해하고 따를 것이라는 확신은 단지 상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성령을 지녔다는 사실, 혹은 성령이 그들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바울은 종이에 쓰여지고 수신자들의 결정과 견해에 따라 처리될 [자신의] 논의들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갈라디아인들에게 구원과 구원의 상실 중 하나를 택하라고 도전하기 위하여, 성령의 도구로서 마술의 차원, 즉 저주와 축복을 도입하였다. . . . “마술”의 차원을 포함시킴으로써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이 복음과 최초로 대면하였던 사건을 반복한다. 갈라디아인들이 이 편지를 읽고 나면, 그들은 복음과 최초로 대면하였던 순간으로 이전되는 자신들을 느낄 것이고 따라서 바울의 성령 방어는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선포와 일치하게 될 것이다.26)
더욱이 위에서 언급한 아우니의 연구는 바울 서신들 안에서 “마술의 문화”(the culture of magic)의 자취를 지적하고 있다. 우선, 바울은 자신이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말하고 있는데(갈 6:17), 아우니는 바울이 여기서 부적 이미지(amulet imagery)를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계시록 14장 1절에서 예수의 이름이 부적처럼 마술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27) 또한 아우니는 마술적 기도와 바울 서신 속에 나오는 저주/축복 공식들 사이의 유사점에 착안한다.28) 저주는 두 가지 점에서 마술적 주문과 구조적 유사성을 지닌다. 한편으로, ”마술적 기도가 명령법의 사용과 . . . 위협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것 같이, 저주의 공식들도 이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29)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갈라디아서 1장 8절의 저주와 6장 16절의 축복이 마술적 편지의 성격을 띠게 하듯이, 저주 공식이 있는 고린도전서 16장 22절도 마술적 차원을 도입하고 있다.
다이스만은 갈 1:8f와 고전 16:22에 나타나는 동족어들, anathematizo와 anathema가 그레꼬 로마의 저주 서판(curse tablets)의 마술적 저주(magical execration)의 전문용어임을 입증했다…이 모든 저주 공식들에 나오는 동사들에 나타난 명령법의 사용을 볼 때 우리가 마술적 기도의 한 변종으로서의 저주를 다루고 있음이 분명해진다.30)
또 한편으로, 저주는 “구원 이적”(Heilungswunder)의 반대인 “징계 이적”(Strafwunder)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31) 고린도 전서 5장 3-5절에 묘사되어 있는 "제의적 저주 의식“(a ceremony of ritual execration)도 ”징계 이적“의 변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와일즈는 바울의 중보기도에 관한 연구에서 축복과 저주의 공식에 관해 논의하고, 이 본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짓는다.
바울은 갈라디아에서와 같이 고린도에서 교회 내부로부터 교회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을 직면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예언자적이고 종말론적인 심판을 상당히 고압적으로 선언하였고, 그의 심판의 발언이 신적인 보호 속에 수행되리라고 확신하였다. 그 어떤 다른 보호 조처가 취해질 수 없다고 확신하면서 바울은 그의 보통의 중보적 관행을 훨씬 웃도는 확실성을 지니고 사도적 중보자로 행동하였다.32)
이밖에도 바울 서신에서 마술의 문화와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죽은 자들을 위한 “대리 세례”(vicarious baptism; 고전 15:29)라는 기이한 현상은 “마술적 행위에 매우 근접하는 것”인데,33)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을 이론적 근거로 삼으면서 이러한 의식을 분명히 승인하고 있다. 둘째, 시걸(Segal)은 고린도 후서 3장 18절의 “거울”을 에스겔 1장의 단어 eyyin에게로 소급되는 “마술적-신비적” 주제로 다룬다.34) 셋째, 쿨만은 “그리스도는 주”(Kyrios Christos)라는 신앙 공식이 예배와 재판 때에만이 아니라 귀신 축출(exorcism)을 할 때도 발화되었다고 지적한다(빌 2:11; 롬 10:9 등).35) 마지막으로 “십자가”는 “못”으로 처형된 인물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는 한, 적어도 바울의 청중들에게 있어서 마술적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십자가형에 쓰여진 못은 악한 시선(evil eye), 병, 그리고 적들의 힘을 물리치는 마귀 축출의(apotropaic) 힘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초기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상흔을 숭배하였던 현상” 배후에 이러한 문화적 코드가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6) 십자가 역시 곧 “악령들의 힘을 물리치는 수단,” 또는 “악을 물리치는 부적”(a talisman against evil)로 사용되게 되었다.37) 성서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는 행동은 초기 기독교 이후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38) 바울 자신의 이름도 추후 기독교 대중의 마술과 이적에 대한 관심이라는 현상 속에서 차용되었다. “사도 바울의 기도”(The Prayer of the Apostle Paul)라는 영지주의 문헌은 바울적인 신학적 전통에 서있으면서, 동시에 조금도 주저함 없이 마술적 본문에서 발견되는 주문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39) 성서를 포함해서 초기 기독교의 문헌은 마술과 이적 사이의 극단적인 이분법을 고수하였지만, 대중들은 이적 속에서 마술을 보기도 하였다. 중요한 것은 마술이든 이적이든 초월적 능력의 행사가 대중들의 개종에 큰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2. 바울과 이적(Paul and Miracle): 누가의 바울과 역사적 바울
최근의 인류학적 연구에 기초하여서 분석한 이상의 연구는 전형적인 "에틱“(etic) 방법에 의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방법은 학문적인 참고틀로 무장된 관찰자나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특정 종교의 내부인이 ”이적“으로 증언하는 내용들이 외부인의 (혹은 외부인의 관점을 채택하는 연구자의) 눈에는 ”마술“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사실, 즉 학자나 독자가 ”이적“과 ”마술“의 차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유념하게 한다. 예를 들자면 누가의 한 장면,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 19:12)는 진술은 외부인과 독자들에게 전형적인 마술적인 장면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 종교의 내부인의 관점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에믹"(emic) 방법이다. 이 방법은 연구 대상자들 자신의 발언을 중시하면서 해석하는 공감의 해석 방식이다.40) ”에믹“ 방법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인들인 누가나 바울이 기독교인들의 초월적 능력의 행사를 다 "마술”과는 질적으로 다른 ”이적“으로 개념화한다는 사실을 중시하게 되는데, 이 장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바울 연구에 초래하는 한 이슈를 다루려고 한다. 그것은 누가의 바울과 역사적 바울의 유사점에 관한 문제이다.
역사 비평은 오래 전부터 누가의 바울과 역사적 바울 사이의 불일치성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관심은 누가의 신학적 관심이 전승에 대한 그의 편집적 활동을 주도하였기 때문에 사도행전을 역사적 정보의 전수자로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논의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필하우어에 따르면 누가의 바울과 역사적 바울 사이의 근본적 차이는, 자연 신학, 율법, 기독론, 그리고 종말론에서 발견된다.41) 필하우어는 다음과 같은 간략한 문장으로 자신의 결론을 요약한다. "사도행전의 저자은 그의 기독론에 있어서는 바울 이전의 단계를 반영하고, 그의 자연 신학, 율법의 개념, 종말론에 있어서는 바울 이후의 단계를 반영한다. 그는 독특하게 바울적인 사상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42) 또한 이러한 신학적 사고의 차이 외에 바울의 삶과 인간적 특징들을 묘사하는 것에도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들에는 차이가 발견된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위해 평생 분투했지만, 사도행전에서는 단지 ”열둘“만이 참된 사도들이다(행 1:21-22). 바울은 ”약하고 말도 시원하지 않은 자“ (고후 10:10)로 평가받은 반면, 사도행전에서는 힘차고 탁월한 연설가로 묘사된다. 바울은 자신의 바리새인으로서의 삶을 과거 시제로 언급하지만(갈 1:13-14; 빌 3:4-8), 사도행전에서는 여전히 바리새인이다(행 22:3; 23:6). 바울은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에게서 벗어날 때 광주리를 탔다고 말하는 반면(고후 11:32-33), 사도행전에서는 같은 일이 ”유대인“으로부터 탈출할 때 일어난다(행 9:23-25).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는 것도 사도행전에서는 정치적이거나 신학적인 이유가 아니라(갈 2:11-13), 개인적인 문제, 즉 동행자 선택의 문제이다(행 15:36-40). 특별히 헨켄은 바울이 위대한 이적 행사자로 사도행전에 그려지는 것이 바울 서신과 전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43)
사도행전은 저자가 마술과 이적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세계 안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는 예수의 승천과 오순절 사건에서 시작해서 사도들과 바울이 행한 이적들을 계속하여 보도하고 끝날 무렵까지도 바울의 몰타 섬에서의 이적을 강조한다. 한편 빌립이 세례준 사마리아의 시몬(행 8:4-25), 구브로섬 바보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만난 바예수라는 이름의 거짓 예언자(행 13:4-12) 그리고 스게와의 일곱 아들 및 떠도는 유대인 귀신 축출자들(행 19:8-20) 등 세 곳에서 마술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 세 번째 이야기는 당시 예수의 이름이 강력한 마술적 효과가 있다고 널리 간주되었다는 점과, 그래서 기독교인이 아닌 유대인 귀신 축출가들도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려고 하였다는 점을 보여준다.44) “에믹” 방법을 택해서 문학 비평적 방법과 함께 사도행전의 악령과 마술과의 관계를 연구한 게렛에 의하면,
누가가 마술적 관행과 관계가 없는 국외자로서 글을 썼든지, 혹은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인들 같이 마술에 종사하다가 개종 후 그것을 부인한 사람으로서 글을 썼든지, 악령의 영역과 그리스도의 영역의 관계성은 저자에게 중요한 관심사이다. “마술”은 단지 그의 글의 내용에 양념으로 곁들이기 위해서나 혹은 그의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위해” 언급된 이국적인 무엇이 아니다. 오히려 마술은 항상 모든 차원에 존재하는 영적 세계에서 적대자들이 행하는 행동의 정규적 방식이다.45)
누가에게 있어서 “힘센 자”인 사탄은 “더 힘센 자”에게 정복당했다(눅 10:18; 11:14-23). “‘힘센 자’가 추방당하였기 때문에, 악령들은(demons) 더 이상 사탄을 주인으로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탄의 사자들인 마술사들에게 더 이상 복종하지 않는다.”46)
어쨋거나 이적을 중시하는 사도행전에 있어서 바울은 위대한 이적 행사자로 그려지고 있는데, 바로 이점이 누가의 바울과 역사적 바울 사이의 이분법 및 누가의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과 바울의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는 근거로 종종 사용됨을 볼 수 있다. 역사적 바울의 능력은 그 역설적 성격이라는 견지에서, 혹은 말씀 선포의 능력이라는 차원에서만 해석되곤 하였다. 예를 들자면, 쾨스터는 고린도 서신의 바울의 기독론을 마가복음과 함께 연결지으며, 그 둘의 공통점이 당시 성행한 “신인 기독론”(the divine man christology)에 대한 비판에 있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영적인 공연(pneumatic performances)을 통해서 사도적 권위를 입증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의 신인 그리스도 (the divine man Christ) 이미지 안에 전제되어 있는 기독교 가치들에 대한 ‘종교적’ 이해를 거부했고, 그것을 ‘육에 따른 그리스도’(고후 5:16)라고 불렀다… 다시금 기준은 예수 안에 있는 계시의 인간성과 근본적 역사성인데, 이것은 예수의 신적인 자질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47)
이러한 주장 배후에 계시와 종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신정통주의와 유사한 전제가 놓여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쾨스터의 매우 정교한 종교 사학파적 접근 방식과, 헬레니즘적 로마 종교들을 단순히 정적인 “배경”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부적합하다는 그의 논의를 기억하여 보면, 바울의 이적 행사를 쉽게 무시하는 이러한 관점은 그의 비판적 연구가 오히려 충분히 비판적이지 못한 측면을 보여준다.
바울은 자신의 이적 행사를 공공연히 지적하였다. 자신의 전 선교 활동을 요약하는 보고에 있어서 자신의 이방인 선교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en dynamei semeion kai teraton) 성령의 능력으로” 수행되었다고 주장한다(롬 15:18-19). 저벌(Jervell)은 이 구절에서 “바울이 어디서 복음을 선포하든지 이적들이 일어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48)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던 첫 순간을 환기시키면서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en dynamei)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살전 1:5). 또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도 자신의 선포가 성령과 능력으로 수행되었던 것임을 환기시킨다(갈 3:5).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en apodeiksei pneumatos kai dynameos)으로” 된 것이라고 말하며(고전 2:4), 고린도 교회에서 자신이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en pase hypomone, semeiois te kai terasin kai dynamesin) 행한 것”이 곧 “사도의 표(ta semeia) 된 것”이라고 말한다.(고후 12:12). 이러한 분명한 진술들에 근거하여, 저벌(Jervell)은 “이적은 바울의 선포에 있어서 상당히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말씀과 이적이 공존하듯이, 이적과 성령도 공존한다”고 주장한다.49) 그러므로 아우니는 “행 13:6-12에 묘사된 바울은 바울 서신들의 저자와 충분히 일치한다”50)고 주장한다. 콘첼만도 십자가 신학이 바울에게 있어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에 비해서 이적은 이차적으로 중요하다고 지적하지만, “바울 역시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무아경의(ecstatic) 현상들과 이적들을 성령의 역사로 간주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51)
저벌은 바울이 자신의 “영적”(pneumatic) 자질을 표면으로 크게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과 누가의 바울이 역사적 바울과 주요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저벌은 바울의 편지들이 증언하는 것은 주로 “논쟁적인 바울”(the polemical Paul)이며,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역사적 바울의 다양한 면모의 일부를 반영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미지의 바울”(the unknown Paul)은 역사적 바울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이다. 그는 “교회의 다른 부분들과 같은 설교와 실천을 수행하는, 평화적이고, 논전지향적이지 않고, 논쟁적이지 않은 사도이자 선교사(the irenic, noncontroversial, and nonpolemical apostle and missionary)이다.”52) 누가의 바울이 보여주는 두 가지 측면이 이 미지의 바울을 알려주는데에 가치가 있다. 첫째는, 유대인이자 유대 기독교인으로서의 바울의 모습이고(행 23:6ff; 21:22-24 등), 둘째는 “선견자적인 카리스마적 설교가, 치유자 그리고 이적 행사자”로서의 바울의 면모이다(행 13:8ff; 14:2ff; 16:16ff; 19:11ff; 20:7ff; 28:1ff).53) 저벌은 바울 서신 자체에 나오는 증거자료들을 분석하면서, “바울의 적대자들이 그가 이적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 만큼 바울의 이적은 미미”하였다거나, 바울의 표적과 기사에 대한 언급은 강력한 말씀 선포만을 뜻한다거나, 또는 “사도의 표”는 무엇보다도 고난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적적인 능력은 역설적이게도 약함으로 나타난다”는 등의 기존의 견해들을 논박한다.54) 저벌에 의하면, 고린도후서 10-12장에 기술되어 있는 예외적 상황은 바울이 자신의 병을 극복할 수 없는, “병을 앓는 이적 행사자, 병을 앓는 이적 치유자(ailing miracle worker, an ailing miracle healer)”이기 때문에 초래된 상황이다(고후 12: 7ff).55) 누가와 바울 사이의 결정적 차이가 여기에 있다. 고난에 대하여 독특하게 이해하는 “바울과 달리, 누가는 바울의 이적 이해에 담겨있는 역설을 표현할 수 있도록 능력(dynamis)과 병(astheneia) 사이에 어떤 연결을 짓는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56) 저벌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바울의 문제는 그가 이적 행사를 뜻대로 할 수 없다거나 혹은 환상이나 다른 카리스마적 특권들을 결여했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전형적인 카리스마적 인물이기 때문이다”57)(고전 9:1; 14:18; 15:7f; 고후 5:13; 12:2ff; 갈 1:12, 16; 2:2 등).
3. 맺는 말
이상의 고찰을 통해서 바울의 서신이 당시 팽배해 있던 “마술의 문화”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말씀 선포자 바울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 뒤에 감추어져 있는 이적 행사자로서의 바울의 면모를 재구성하여 보았다. 전자의 모습은 “에틱”적인 전제를 통해서, 후자의 모습은 “에믹”적인 전제를 통해서 접근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 연구는 누가의 바울과 역사적 바울 사이의 중요하면서도 간과되어왔던 한 유사점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역사적 바울이 대중적인 종교문화와 어떻게 접촉점을 만들고 있는지, 또한 어떻게 사도적 권위를 세워나가며 분투해야했는지에 대한 이러한 “에틱”적이고 “에믹”적인 분석은, 바울의 고유한 신학에 대한 이해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반드시 강조해야 하는 점은 역설적이게도 바울의 이성에 대한 호소이다. 이 특징이 바울의 이적 행사의 측면과 함께 부각되어야만 바울에 대한 진정한 입체적 이해를 구성할 수 있다. 바울의 말씀 선포와 성령의 나타남은 이적의 행사를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은 바울이 기독교인들에게 이성적 분별력의 사용을 동시에 요청하였다는 점과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살전 5:19-21).58) “형제들아, 생각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오히려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고, 생각에는 어른이 되라”(고전 14:20). 스타우워즈(Stowers)는 바울이 로고스를 “이성”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이성,” “추론,” 혹은 “숙고하는 기능이나 능력”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들이 풍부히 발견됨을 지적하고 있다.59) 바울이 고린도 서신에서 반박하는 것은 “이성의 사용”(the use of reason) 그 자체가 아니라, 바울이 보기에 십자가 복음의 정신에서 빗나간 다른 종류의 지혜에 의존하는 “이성의 남용”(the abuse of reason)이다.60)
결론적으로 이 글의 논의는 결국 바울에 대한 새로운 초상화를 요청한다. 바울을 체계적인 조직신학자로 묘사하는 고전적인 초상화나 “서구의 내향적인 양심”(the introspective conscience of the West)의 주창자로 그리는 종교개혁의 초상화가 역사적 바울에 대한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그림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종교성과는 어느 접촉점도 없이 말씀선포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신학자라는 신정통주의적 이해 역시 역사적 바울과는 거리가 있다. 이 연구는 다이스만(Deissmann)의 옛 주장, 즉 바울이 “신학은 이차적 문제”일 뿐인 “종교적 생활의 영웅”이라는 주장으로 회귀하려는 시도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20세기 초반에 브레데가 제시한 것, 즉 바울에게 있어서 종교성/경건과 신학/사고는 불가분리적 관계에 있다는 통찰에 충실한 것이 바울을 입체적이고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적합한 방식이라는 점을 다시 환기하고자 할 뿐이다.
1) 많은 성서학자들이 지역적이고 문화적 차이에 근거해서 디아스포라 유대교와 팔레스틴 유대교를 선명하게 나누는 구분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데 동의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유대교를 포함해서 전 지중해의 문화세계가 헬레니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Martin Hengel, Judaism and Hellenism: Studies in their Encounter in Palestine during the Early Hellenistic Periods, trans. John Bowden (Philadelphia: Fortress, 1974), 104-5, et passim; idem. The 'Hellenization' of Judaea in the First Century after Christ, trans. J. Bowden (PhiladelphiaL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89), 53ff. 아우니(David Aune)는 그러한 전통적 구분법을 “질서정연에 대한 튜튼민족의 강박관념”(a Teutonic compulsion for orderliness"이라고 부른다. “Magic in Early Christianity," in Aufstieg und Niedergang der Roemischen Welt, II.23.2, ed. von Hildegard Temporini (Berlin: Walter de Gruyter, 1980), 1519. 새로운 관점에 입각한 바울연구를 위해서 다음을 보라. Troels Engberg-Pedersen, ed., Paul beyond the Judaism/Hellenism Divide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w Press, 2001).
2) Alan Segal, Introduction, in Paul the Convert: The Apostolage and Apostasy of Saul the Pharisee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90).
3) 퍼거슨(Ferguson)은 로마의 “시민 제의”(civic cults)에 대립되는 현상으로서 “사적 종교”(personal religion)를 지적하면서, 이 후자의 범주 아래 신탁(oracles), 꿈과 점(dreams and divination), 치유 제의(healing cults), 마술과 저주, 맹세, 미신, 점성술, 운명, 죽음 및 사후 세계 등에 대한 대중의 다양한 관심사들을 다루고 있다. 그가 “사적 종교”라는 용어로 아우르는 이러한 현상들을 이 글에서는 “대중 종교”로 표현하고자 한다. 퍼거슨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종교 생활의 중요한 측면들을 주목하고 있다.
미래에 대해 미리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호기심, 또는 출산, 재산, 및 여행 등 현재에 일어나는 실제적인 일들에 관한 불안한 관심 등은 후기 헬레니즘 시대에 증대된 “운명”(fate; hermarmene)의 지배에 관한 믿음이 강화됨에 따라서 더욱 절실하게 되었다. 퍼거슨의 “사적 종교”라는 용어는 Festugiere의 Personal Religion among the Greeks에서 유래하였다. Everett Ferguson, Background of Early Christianity, 2d ed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3), 199-234.
4) Helmut Koester, "Paul and Hellenism," in The Bible in Modern Scholarship, ed.J. P. Hyatt (Nashville: Abingdon Press, 1965), 192.
5) 이 연구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예언, 묵시운동, 신비종교, 영지주의, 지혜의 추구 등도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종교적 문화적 배경이다.
6) Hengel, Judaism and Hellenism, 210-18.
7) John Middleton, "Magic: Theories of Magic," in Encyclopedia of Religion. 골딘은 “최신식 이십세기 미국의 고층 아파트에서 12층과 14층 사이에 13층을 발견할 수 있다면 희귀한 일일 것”이라고 말하며 마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놀랍게도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마술의 마법”(magic of the magic)이라고 부른다. Judah Goldin, "The Magic of Magic ad Superstition," in Aspects of Religious Propaganda in Judaism and Early Christianity, ed. E. Schuessler Fiorenze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76), 115-47.
8) H. D. Betz, "Magic in Greco-Roman Antiquity," in Encyclopedia of Religion.
9) J. G. Griffiths, "Hellenistic Religions," in Encyclopedia of Religion. 다즈(E. R. Dodds)는 위대한 이성주의와 계몽주의의 시대인 기원전 5세기와 4세기 경에도 그리이스 사회에마술적 치유와 마술적 공격이 만연하였음을 지적한다. The Greeks and the Irrational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51).
10) 마술에 대한 금지가 만연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술이 실제적으로 성행한 모순적 현상에 대해서, Susan Garrett, The Demise of the Devil: Magic and the Demonic in Luke's Writings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89), 11.
11) 부적들과 호부들(amulets and charms), 마술적인 기호들과 그림들(magical signs and drawings), 주문들과 진언들(spells and incantations), 저주 서판들과 저주 입상들(curse tablets and curse figurines), 그리고 심지어 마술 교본들(magical handbooks)이 발견되었다. H. D. Betz, ed., The Greek Magical Papyri in Translation: Including the Demotic Spells (Chicago &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6); J. G. Gager, ed., Curse Tablets and Binding Spells from the Ancient World (New York an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베츠는 마술 파피루스들을 고대의 “지하문학” 혹은 “탄압된 문학”으로 간주하고, “쿰란 문서가 유대교에 대해서, 또는 나그 함마디 문서가 영지주의에 대해서 중요한 것만큼” 이 자료의 발견은 “그리스-로마 종교들에 대해서”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12) A. A. Barb, "Mystery, Myth, and Magic," in The Legacy of Egypt, ed. J. R. Harris (Oxford: Clarendon Press, 1971), 161; Elisabeth Schuessler Fiorenza, "Miracles, Mission, and Apologetics: An Introduction," in Aspects of Religious Propaganda in Judaism and Early Christianity, ed. E. Schuessler Fiorenza (Notre Dame: Notre Dame University, 197), 13. 크래머의 책은 “아브람의 하나님,” “야곱의 이아오"(the Iao of Jacob),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등을 부르는 연애 마술(erotic magic)의 예를 소개한다. Ross S. Kraemer, ed., Maenads, Martyrs, Matrons, Monastic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8), 108-9.
13) A. D. Nock, "Paul and the Magus," in Essays on Religions and the Ancient World, vol. 1, ed. Zeph Stewart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72), 325.
14) Louis H. Feldman, "Josephus as an Apologist to the Greco-Roman World: His Portrait of Solomon," in Aspects of Religious Propaganda in Judaism and Early Christianity, 87; Hengel, Judaism and Hellenism, vol. 1, 130, 238.
15) Josephus, The Antiquities of the Jews, 8.45-46.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명철과 지혜는 고대인들보다 뛰어났는데 지혜가 남달리 많다는 애굽인들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니 애굽인들의 지혜는 솔직히 말해서 솔로문의 지혜와는 상대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것이었다. . .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솔로몬]에게 인간에게 유용한 기술인 귀신들을 쫓아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는 또한 병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주문(incantation)도 만들었다. 그는 귀신을 쫓아내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축사 방법(manner of using exorcisms)을 후손들에게 물려 주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이런 치료 방법은 큰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는 내 동족 가운데 한 사람인 엘르아살(Eleazar)이란 자가 베스파시안(Vespasian)과 그의 아들들과 부하 장교들과 모든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축사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솔로문이 언급한 것과 같은 종류의 고리를 귀신들린 자의 코에 걸고 난 후에 코를 통해 귀신을 내어 쫓았다. 이 때 귀신들린 자가 곧바로 거꾸러지면 솔로문의 이름을 들먹거리는 한편 솔로몬이 만든 주문을 외워대면서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귀신에게 명령했다. 엘르아살은 구경하는 자들에게 자기가 축사의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조금 떨어진 곳에 물이 가득 담긴 컵이나 대접을 갖다 놓고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 나와서 물을 쏟으라고 명령했다. 이것을 보고 구경하는 자들은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온 줄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볼 때 솔로문의 지혜와 학식이 어떠했는가를 우리는 손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김지찬 역, 요세푸스, vol. 1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7), 500-1.
16) 이적 행사자인 초기 랍비들에 대해서, Hengel, Judaism and Hellenism, vol. 1, 207; Peter Schaefer, "Jewish Magic Literature in Late Antiquity and Early Middle Ages," Journal of Jewish Studies 16/2 (1990), 75-91.
17) James G. Frazer, The Golden Bough (London: The Macmillan Company, 1922).
18) Aune, "Magic in Early Christianity," 1510.
19) E. E. Evans-Pritchard, Witchcraft, Oracles, and Magic among the Azande (Oxford: Clarendon Press, 1976).
20) Aune, "Magic in Early Christianity," 1511. "‘마술’을 ‘저 밖의 세계’(world out there)를 대처하는데 필요한 특수한 종류의 사회적 지식으로 간주하는 편이 더 낳다--그 지식을 어떤 집단은 마술로 부르고 다른 집단은 종교로 부를 것이다. 마술과 종교와 과학은 로마제국에서 모두 상호 교차하였다: 개인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social location)와 그 위치와 함께 발생하는 사회적 지식의 한 기능으로서 경계선들을 긋고는 하였다.“ Charles R. Phillips, "The Sociiology of Religious Knowledge in the Roman Empire to A.D. 284, in ANRW, II. 16. 3. (Berlin and New York: Walter De Gruyter, 1986), 2732.
21) 아우니는 구드(W. J. Goode)가 제시하는 마술과 종교의 “이분법적이 아닌 경험적 차이들”에 주목한다: “(1) 마술은 ‘비범한’ 실재를 향해서 조작적(manipulative)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종교는 탄원적(supplicative)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2) 마술적 활동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도구적으로(instrumentally) 사용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종교적 활동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3) 마술은 개인적 목표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종교는 집단의 목표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 . . (5) 마술은 실패하는 경우에 대체 기술들(substitute techniques)을 소개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종교는 대체에 별 관심이 없다, . . . (7) 마술은 정서(emotion)에 대한 강조를 최소한으로 하며 비인격적으로(impersonally) 진행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종교는 정서에 의존하는 정도가 깊고 경외와 예배의 자세를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Auni, 1512.
22) Ibid., 1557, 1513,
23) David E. Aune를 포함하여 Morton Smith, John M. Hull, Howard Clark Kee, 그리고 John Neyrey 등 마술에 대한 연구를 한 신약성서 학자들에 대한 분석을 위해서, Garrett, The Demise of the Devil, 22-36.
24) 바울은 mageia(행 8:11)를 사용하지 않고 술수/주술(sorcery)로도 번역되는 pharmakeia를 1회 사용한다.
25) H. D. Betz, "In Defense of the Spirit: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as a Document of Early Christian Apologetics," in Aspects of Relgious Propaganda, 99-114.
26) Ibid., 112-13. "편지는 사도 자신이 직접 현존할 수 없을 때에 그를 대표한다.“ cf. Robert Funk, "The Apostolic Parousia: Form and Significance," in Christian History and Interpretation: Studies Presented to John Knox, ed. W. R. Farmer and others (Cambridge: Th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7), 249-68.
27)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계 14:1). Aune, "Magic in Early Christianity," 1548-51.
28) Ibid., 1551. 아우니는 “기도에 있어서 마술적 공식과 탄원의 경계선은 유동적”이라는 막스 베버의 견해를 인용한다. A. D. Nock은 많은 경우 마술적 주문과 기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려움을 지적했다. “Paul and Magus," 315.
29) Ibid., 1552.
30) Ibid., 1554. 참. 고전 12:3.
31) Ibid., 1552. 복음서들이 예수가 수행한 징계 이적들을 보도하지 않고 있는 반면에(한 가지 예외는 무화과 나무의 저주이다: 막 11:12-14, 20-25; 마 21:18-22), 사도행전에는 징계 이적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있다(행 5:1-11). 한편, “초기 기독교 외경 문학에서, 예수와 사도들 모두에게 돌려지는 징계 이적은 그 빈도수가 현저히 증가한다. 이러한 특징은 보다 교육수준이 높은 기독교 저자들의 변증적 관점이 대중적 기독교(popular Christianity)에 의해서 충분히 공감되거나 혹은 이해조차 되지 못했다는 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553.
32) G. Wiles, Paul's Intercessory Prayers: The Significance of the Intercessory Prayer Passages in the Letters of St. Paul, in SNTS Monographs, 24 (London: Cambridg University Press, 1974), 150.
33) H. J. Schoeps, Paul: The Theology of the Apostle in the Light of Jewish Religious History, trans. H. Knight (Philadelphia: The Wetminster Press, 1961), 114.
34) Alan Segal, "Paul and the Beginning of Jewish Mysticism," in Death, Ecstasy, and Other Worldly Journeys, eds. John J. Collins and Michael Fishbane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5), 121.
35) Oscar Cullmann, Christ and Time, trans. Floyd V. Filson (London: SCM, 1951), 153.
36) J. Massyingbaerde Ford, "The Crucifixion of Women in Antiquity," The Journal of Higher Criticism, 3/2 (1996), 308.
37) Jaroslav Pelikan, Jesus Through the Centuries: His Place in the History of Culture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85), 96-97.
38) Ibid..
39) James M. Robinson, ed. The Nag Hammadi Library in English (New York: HarperSanFrancisco, 1990), 27-28.
40) "emic"이라는 용어는 토착민 자신들이 인식하고 설명하는 정보를 중시하는 과정을 뜻하고, “etic"이라는 용어는 외부적 연구자나 해석자가 자신의 학문적 지식체계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과정을 뜻한다. “‘에믹’(emic)적인 기술들과 설명들은 토착민들 자신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관점으로부터 진술하는 것들이다. 이 기술들과 설명들은 토착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what and how) 생각하는가를 묘사하는 것이지 왜 (why) 그들이 다른 방식이 아니라 꼭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에틱’(etic) 구성체는, 다양한 문화들을 비교하고 토착민들의 보도에 언급되거나 고려되지 않은 모든 영역의 요인들을 고려함으로써, 어떻게 토착민들의 개념과 사고가 상호 연관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물질적, 사회적, 인지적 요소들의 전 영역에 의해서 어떻게 영향받는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John H. Elliott, What is Social-Scientific Criticism?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3), 38-9.
41) Philipp Vielhauer, on the 'Paulinism' of Acts," in Studies in Luke-Acts, ed. Leander E. Keck and J. Louis Martyn (London: Abingdon Press, 1966), 33-50.
42) Ibid., 48. 필하우어의 입장에 대한 반대 의견에 관해서는, W. Ward Gasque, A History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Acts of the Apostles (Peabody, Ma.: Hendrickson Publishers, 1989).
43) Ernst Haenchen, The Acts of the Apostle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71), 113-15. 그러나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 사이의 일치점도 많이 있다: “(1) 바울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그리스도일들을 핍박했다(9:1-2; 갈 1:13; 고전 15:9). (2) 바울은 유대 조상들의 유전에 열성적인 바리새인이었다(22:3; 23:6; 빌 3:4-8; 갈 1:14). (3) 바울은 광주리에 담겨서 성벽에서 내려져서 다메섹을 몰래 빠져 나갔다(9:23-25; 고후 11:32-33). (4) 바울은 첫번째 예루살렘 방문 후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다(9:30; 갈 1:21) (5)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서 일했다(11:25; 갈 1:21; 2:1). (6) 바울은 아니옥, 이고니온 그리고 루스드라에서 핍박을 받았다(13-14; 딤후 3:11; 참조 고후 11:25). (7)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 받을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15장; 갈 1-2장). (8) 바울은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다툰 후에 선교 여행을 할 때 실라와 디모데를 함께 데리고 갔다(15:39-40; 16:3. . . ; 살전 1:1). (9) 바울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덴, 고린도, 에베소 등지에 교회를 세웠다(16-19장. . . (10) 바울은 자기 손으로 일을 함으로써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했다(18:3; 20:33-35; 살전 2:9; 고전 4:12; 9:18). (11) 바울은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났다 (18:1-3, 18; 고전 16:19; 딤후 4:19; 롬 16:3).” Mark A. Powell, 이운연 역, 사도행전신학 (서울: 독교문서선교회, 2000), 143-44. Gerhard Krodel, Acts, PC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1), 103-04.
44) “누가에 따르면, 기독교 선교의 성공은 예수의 강력한 이름에 기초를 둔다. 시대의 구성원으로서 누가는 이 힘을 부분적으로 마술적 용어로 기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Elisabeth Schussler Fiorenza, "Miracles, Mission, and Apologetics," 13. 아우니(Aune)는 하이트뮐러(Heitmueller)로부터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1)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유대교나 그레꼬 로마의 이교도인들이 강력한 이름들을 비슷하게 사용한 것과 같이 마술적 전제들을 공유하고 있다 . . . (2)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였다는 공관 복음서의 첫 언급으로부터 오리겐의 때까지 이르는 전 영역에 있어서, 예수의 이름이 지니는 마술적 힘에 대한 동일한 믿음이 기독교 안에 발견된다.” Aune, "Magic in Early Christianity," 1546.
45) Garrett, The Demise of the Devil, 107.
46) Ibid.
47) Helmut Koester, "GNOMAI DIAPHOROI: The origin and Nature of Diversification in the History of Early Christianity," in Trajectories through Early Christianit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1), 152.
48) Jacob Jervell, "The Signs of an Apostle," in The Unknown Paul: Essays on Luke-Acts and Early Christian History (Minneapolis: Augsburg Publishing House, 1984), 91.
49) Jervell, "The Signs of an Apostle," 91, 94. 능력(dynamis)을 행하는 은사도 같은 한 성령이 행하시는 일이다(고전 12:9-11). 여기서 능력은 이적(miracles)이다. Conzelmann, 1 Corinthians, 209. cf. 히 2:4.
50) Aune, "Magic in Early Christianity," 1553.
51) Hans Conzelmann, 1 Corinthians,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5).
52) Jervell, The Unknown Paul, 10. "미지의 바울은, 바울 신학을 제시할 때 종종 묵과되는, 그의 편지들의 주변적인 진술들과 암시들 속에서 주로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미지의 바울이 사도행전의 묘사에서 잘 나타나는 반면에, 누가는 논쟁적인 바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53) Ibid., "Paul in the Acts of the Apostles: Tradition, History, Theology," 71.
54) Ibid., "The Signs of an Apostle," 91. 각 견해를 대표하는 학자들에 대한 문헌이 소개되어 있다.
55) Ibid., 94. Aune, "Magic in Early Christianity," 1548-49.
56) Ibid., 95.
57) Ibid., 94. 카리스마적 바울에 대한 참고문헌이 제시된다(Ibid., 172, n. 47). A. T. Lincoln, "Paul the Visionary," NTS 25 (1979), 204-20.
58) “바울의 신학에는 성령을 소유하는 것과 ‘책임적’이어야하는 것 사이에 이상하고도 거의 설명할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 Dieter Georgi, The Opponents of Paul in Second Corinthian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6), 108-09.
59) Stanley K. Stowers, "Paul on the Use and Abuse of Reason" in Greeks, Romans, and Christians: Essays in Honor of Abraham J. Malberbe, David L. Balch, Everett Ferguson, and Wayne A. Meeks, ed.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0), 253-86. 스타우워즈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지적한다. logismos (고후 10:4; 롬 2:15); dia logismos (롬 1:21; 14:1), logizesthai (고전 13:11; 고후 3:5; 10:2, 7; 빌 4:8), logikos(롬 12:1), nous (롬 1:28; 7:23, 25; 12:2; 14:5; 고전 14:4, 15, 19; 빌 4:7; 살후 2:2), phren (고전 14:20), phronimos(곰 11:25; 12:16; 고전 4:10; 10:15; 고후 11:19), 그리고 phronein (롬 12:3, 16; 14:6; 15:15; 고전 13:11; 고후 13:11; 빌 2:2, 5; 3:15, 1; 4:2, 10). 바울은 곳곳에서 이성과 사고와 분별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서 갈라디아서 6장 1절과 4절에 나타난 두 동사(개역에는 다 “살피다”로 번역되었다), 각각 “skopeo"와 ”dokimazo"는 소크라테스 전통과 연결되는 “자기 점검”(self-examination)의 행위로서 바울은 철학자의 과제를 기독교인 개개인의 과제로 삼고 있다. H. D. Betz, Galatians, Hermeneia (Phhiladelphia: Fortress, 1979), 298, 302.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철학이 형이상학에 국한된 사변적, 이론적 연구가 아니라, “삶의 방식”(a way of life)라는 점이 아울러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Ferguson, Backgrounds of Early Christianity, 300-01. 맬허비는 바울의 목회전략이 그리이스와 헬레니즘의 대중 철학 전통과 유사점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A. J. Malherbe, "Paul: Hellenistic Philosopher or Christian Pastor?" American Theological Library Proceedings 39 (1985), 86-98. 바울의 수사학적 논의 방식과 미덕/악덕 목록들, 환란 목록 등도 그가 당시의 철학 전통과 친밀하였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60) Ibid.,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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