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선교와 복음
길성남 교수
<3월 13일>
◆ 강의 목표
선교사 바울에 초점을 맞추어서 강의. 사도행전과 서신서를 다루되, 바울의 선교사역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의 선교와 선교 여정을 죽 살펴본다. 그 여정 속에서 바울 서신서를 어떤 시점에서 어떤 내용을 어떤 과정 속에서 기록했는가를 볼 것이다. 바울의 선교 메시지를 볼 것이다. 바울의 선교의 전략들. 바울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는가?
시작하는 말
바울 사도는 기독교가 시작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약성경의 2/3를 기록했고, 예수님과 초대교회의 가교 역할.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에만 머물지 않고 이방지역까지 확산되어서 유대종교의 틀을 벗어나 세계종교가 되는데 기여한 사람. 바울을 모르고는 선교와 전도를 말할 수 없고 목회도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바울의 복음과 선교를 제목으로 강의를 개설했다. 예수님도 우리의 삶의 지표가 되고 사역의 중요한 모델이시지만, 어떻게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다른 존재처럼 느껴진다. 바울 사도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물론 바울의 삶과 여정을 생각하면 우리가 흉내내기 힘들지만, 예수님보다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그가 복음에 붙들리고 성경에 붙들렸을 때 인간적인 시련을 이기고 복음의 일꾼으로 살았다. 우리도 복음에 붙들리고 성령의 능력에 붙들리면 우리도 바울과 같은 능력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자. 바울이 “내가 예수님을 본 받는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고 하였다.
Ⅰ. 바울은 누구인가?
1. 기독교 교리 체계를 세운 신학자
신학자들 세계에서는 바울을 기독교 신학을 창시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바울의 서신서도 기독교 교리에 체계를 세운 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로마서의 경우 “A compendium of the christian doctrine(기독교 교리의 핵심 요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은 교리/신학을 세운 사람. -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갑종 교수는 “바울은 결코 서재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글을 쓴 사람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 이미지로 바울을 이해하면 다 알 수 없다.
2. 선교사이자 목회자
field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돌아보고 기도했던 선교사였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고 2, 3년 씩 목회를 한 사람이다. 이 뻔한 얘기가 오랫동안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회자되지 않았다. D. Bosch의 Transforming Mission 학자들 세계에서 정식으로 바울을 선교사로 이해하고 접근한 것은 1899년이다. 바젤의 젊은 신약학자 Paul Wernle의 논문 Paulus der Heidenmissionars(바울 곧 이방인의 선교사)을 발표했다. 이것이 정식으로 신약학회에서 바울이 선교사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공식적으로 다룬 논문이 아닌가 하고 주장했다. 이 글에서 Wernle는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셨지 생각하거나 사고하도록 보내셨다”고 말함. 복음을 선포하도록 선교사로 보내셨다는 인식이 강했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생각한 신학자. 이런 이해가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졌다.
1960년 대에 들어서 바울의 삶의 정황을 진지하게 고려하다 보니 바울의 선교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M. Hengel(튀빙겐의 학자)이 쓴 기독교 선교의 기원이라는 논문에서 “바울의 신학(바울 서신서에서 보면 다른 복음서나 베드로의 서신 등이 가지고 있지 않는 독특한 점이 있다고 본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편지를 받는 독자층이 다르기 때문에 독특한 내용이 있다고 본다. 그 내용을 마태나 마가의 글과 구분하기 위해서 ‘바울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의 삶의 정황이 뭐냐?” Sitz im Leben. 바울의 독특한 생각이 형성된 삶의 자리, 토양이 있었는데, 그것이 Mission이었다. 많은 문제에 부딪히면서 답을 찾는 과정(교회 내의 음행, 송사 문제, 대적자들 처리)에서 서신서가 나왔고, 그 안에 자신의 독특한 관점이 반영되었다.
A. Hultgren(미국학자, 루터파)의 바울의 복음과 선교(p 145) “바울의 신학은 선교신학이다.” “바울에게서 선교라는 것은 바울 자신의 정체성과 생각 자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N. A. Dahl(바울 연구의 탁월한 학자)은 바울을 가리켜, “바울은 선교신학자다”고 했다.
길성남 교수 “바울은 신학적 선교사였다”
우리는 바울 자신을 선교사이자 신학자인데, 엄밀하게 말하면 선교사이다. “바울은 탁월한 선교사다” 우리는 이번 학기에 바울의 선교 메시지와 선교의 방법, 전략을 생각해 보고,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다룰 것이다.
Ⅱ. 선교사 바울(Paul the Missionary Par Excellence)
1. 인간 바울
‘안질’, ‘독설’, ‘말에는 졸하다’(바나바는 쓰스, 바울은 허메. 허메는 제우스의 대변자로서 주로 말을 한다. 설교자로 나섰는데 말에 졸했다. 유두고는 졸다가 창에서 떨어져 죽어. 고린도 교회에 아볼로는 왜? 사도행전에 보면 아볼로는 탁월한 언변가)
“건강한 신체에 작은 키와 대머리와 굽은 다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눈썹은 서로 만나고 코는 약간 굽었으며 우애가 충만하였다. 때로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나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Act of Paul and Thecla 3 - 신약외경) ; 성경과는 조금 다른 듯. 그러나 학자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봄.
2. 회심 전 바울(Pre-Christian Paul)
1) 길리기아 다소 사람(행 22:3) - 유대인, 길리기아 다소 태생, 예루살렘에서 성장, 교육은 가말리엘의 문하생, 하나님에 대해 열심. 최근의 바울 연구자들은 사도행전을 무시하는데, 이 본문이 중요하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썼고, 누가는 자신의 신학적 관점을 관철하기 위해 쓰면서 누가의 신학에 의해 바울 기사도 왜곡되었다고 본다. 아덴의 설교도 누가에 의해서 각색되었다고 보는 요즘의 학자들 경향. 따라서 서신서를 우선시하는 경향. 그러나 여전히 사도행전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도 많다. 그 중 화란학자 W. C. van Unnik 행 22:3에 근거해서 다소냐, 예루살렘이냐?의 제목으로 글. 바울의 정체성을 말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 어디서 자랐느냐에 따라 근본 바탕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당시 많은 학자들이 바울을 ‘다소’에서 살았고 헬라의 사상과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van Unnik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자랐기 때문에 히브리적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행 22:3이 중요하다. 물론 이 학설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인정받고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다소의 시민권과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다소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언제 예루살렘으로 왔겠는가? Unnik에 의하면 제대로 걷기 이전에 예루살렘으로 이주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M. Hengel 등이 주장하기는, 아마도 다소에서 적어도 헬라식 초등학교는 마쳤을 것이라는 것. 회당에서 헬라적 훈련. 바울 서신을 보면 바울의 헬라어 구사력이 상당한 수준이다. 적어도 제2외국어로 배운 것은 아니다. 누가복음, 히브리서 정도의 헬라어는 아니지만 모국어에 가깝게 구사하고 있다. 적어도 14/5세까지는 다소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그래서 bilingual이 되었다. 한편, 집에서는 아람어 내지는 히브리어를 사용하면서 컸겠지. 따라서 이방에서 태어났지만 히브리적 사고로 살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바울을 이해할 때도 히브리적 경향을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바울이 박해를 받을 때 사도들이 길리기아 다소(고향)로 그를 보낸다. 8년 정도 생활함. 한편 안디옥에까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가 세워지자 예루살렘으로부터 안디옥에 파송된 바나바. 바나바가 회심 후 8년이 지난 ‘사울’을 찾아가 안디옥에서 1년 동안 함께 사역했다. 이것은 Unnik의 주장한 것대로 이주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여전히 다소에 살고 있었지 않았을까? 그리고 바울은 다소에서도 복음 증거를 했을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혼자 어렸을 때 유대식의 교육을 받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 조기 유학을 했을 것이다. 사실 다소에는 교육과 철학의 도시였다. 지중해 연안에서 최고의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곳이 다소였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은 사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행 23:16 “바울의 생질”('ο υιοσ τησ αδελφησ παυλοσ -바울의 누이의 아들)이 나온다. 아마도 바울의 손 위 누님이 그를 데리고 있지 않았나? 자기 딸을 예루살렘에 시집 보내 놓고 아들을 그 누이에게 맡기지 않았을까? ^^
이런 사울의 성장 배경(이방에 성장, 언어 습득)이 사울을 부르셔서 이방을 위한 사도로 세우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2) 로마 시민(행 16:37, 38; 22:25; 28) - 3차 여행 후 성전에서 정결 예식을 드리려다가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이유로 핍박받음. 천부장과 대면을 해서 로마 시민임을 밝힘. 이 때 ‘나면서부터 로마시민’이라고. 유대인이 어떻게? 알 수는 없다. 학자들은 BC 63년에 예루살렘이 로마 폼페이 장군에 의해 초토화. 전쟁 포로가 되어서 끌려갔다. 아마도 이 때 바울의 할아버지가 전쟁 포로로 끌려갔을 것이라고. 노예가 되었다가 좋은 주인을 만나서 풀려나는 경우가 있었다. 해방된 노예로 자유롭게 로마에 정착해서 살아. 사울의 아버지가 상당한 정도로 비즈니스에서 성공해서... 라고 추정. 로마 시민권자인 것도 바울의 선교에 큰 도움이 되었다. 로마 관리로부터 보호를 받음. 선교사로 사역하는데 굉장한 도움을 받음(그렇다고 우리가 미국 시민권에 목 매달 것인가? ^^).
3) 가말리엘 문하의 학생(행 22:3. cf. 행 23:16) - 당시 유대교 Shammai 학파(엄격)와 Hillel 학파(관대-‘남이 너에게 하면 기분 나쁜 것은 너도 하지 마라’). 가말리엘은 Hillel 학파에 속한 사람.
4) 기독교 박해자 - 기독교 복음 이해(갈 1:13-14, 23; 빌 3:6; 딤전 1:13) -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다” "I was advancing in Judaism" 공부에서 상당히 뛰어나게 두각을 나타냈다. 그 때는 Torah(구약성경)를 배웠음. 모세의 율법을 바리새적 입장에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에 능통했음. 이렇게 구약성경을 공부했던 것이 선교사로 사역하는데 굉장히 기여했다. 특히 서신서를 기록할 때 구약성경을 많이 인용했다. 구약에 대해 해박했다. ∴ 선교사로 부름을 받기 이전에 사울은 상당한 정도의 교육을 받았다(공부해서 남준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 동족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 결국 교회의 박해자로 나타났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기독교의 박해자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그 죽음의 증인으로 등장. 사울을 ‘청년’이라고(행 7:58). 몇 살이었을까? M. Hengel의 책에는 아마도 20대 중반에서 후반 정도의 나이였을 것이라고. 빌레몬서에는 바울이 자기를 가리켜 ‘나이 많아 늙은’이라고 표현했는데 아마도 50대 후반일 것. 탁월했던 사울이 왜 사람들을 때려잡는 사람으로 등장하나? (신학자들 중에도 이런 사람 있다 ㅠ.ㅠ) 스데반을 생각해 보자. 어쩌면 스데반(헬라파 출신을 집사로 세웠으니까)과 사울이 헬라파 유대인 출신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마도 사울이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 스데반을 포함한 기독교인들을 알고 있었고, 스데반과 같은 사람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자신이 교육받은 것들과 비교했을 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울도 당대의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겠지. 회심하기 전의 사울에게는 예수는 ‘나사렛 이단의 괴수’일 뿐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메시야...’ 죽으면 메시야가 아니다. 그런데 저들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는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구약에 의하면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신 21:23)’. 따라서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겠는가? 저들을 벌할 뿐 아니라, 저들을 가만히 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실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느하스의 ‘열심’의 전통이 이스라엘에게 면면히 내려오다가 폭발한 것이 마카비 혁명. 사울도 토라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열심’에 근거해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다. 사울이 생각했던 열심의 측면이 이렇게 나타났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 250km를 달려서... 그 열심을 생각해 보라.
3. 회심과 소명
1) 회심(소명) 기사(행 9:1-19) 9:1-9, 22:3-16, 26:11-18
다메섹으로 갔다는 것은 다메섹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는 250km.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는 체험. 살기 등등해서 가는데 하늘에서 빛이 비춘 장면을 생각해 보라. 사울이 예수님을 만났던 것은 전혀 자기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간절히 열망한 것이 아니고 급작스러운 것이었다.
9장 7절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 소리 자체는 들었는데 내용은 이해하지 못했다.
22장 9절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2) "사울“에서 ”바울“로?
행 8:1; 9:20, 11:25; 13:1
행 13:9(“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참조 : 마틴 행겔, 『그리스도인 이전의 바울』, 31-42(“로마 시민권과 바울과 사울이라는 이름들”)
사울은 ‘큰 자’, 바울은 ‘작은 자’. 체험을 통해서 사울이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베냐민 지파 중에서 가장 크게 된 사람이 사울왕이었으니까 ‘큰 자’다? לואשׁ(asked) 〈 לאשׁ(ask)
라틴어 Paulus는 little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히브리식의 의미는 asked.
사울의 이름이 바울로 바뀐 시점은 회심(AD 34/35년) 이후가 아니다. 행 13:9에서 바뀜. 구브로 총독의 이름이 서기오 바울. 1차 선교 여행(AD 46/47-48)이 진행되고 있을 때. 사울의 회심으로부터 11/12년이 흘렀다. 오히려 선교의 현장 속에서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는, 이름이 두 개였다. 히브리식 이름과 헬라식 이름이었던 것. ‘마가 요한’ 중 ‘마가’는 라틴식(로마식) 이름 Μαρκος(Marcus), ‘요한’은 'Ιωαννης. 요한 ןנחוי(야훼는 은혜로우시다). 선교의 현장에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기 때문에 로마식 이름인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
3) 회심(conversion)인가, 소명(calling)인가?
행 9:1-19; 갈 1:15-16
60년대 들어서면서 학자들은 사울의 다메섹 체험을 개종이나 회심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conversion은 하나의 종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로 들어가는 것. 다메섹의 체험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도전했던 학자는 스웨덴 출신, 하버드에서 가르쳤던 Krister Stendahl. 갈 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택정-소명, 사명(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명) - 사도행전의 기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 회개보다는 ‘그릇’이라는 개념에 강조를 두고 있다. 부르심과 사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Stendahl 등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 아니다, 유대교 안에서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고 이방인들에게 증거했을 뿐이다라고 주장. 렘 1:5-8에 나오는 소명 기사와 대단히 비슷하다.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이런 면에서 바울의 체험을 소명의 체험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이방인 선교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을 당시까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이 독립된 종교의 창시자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다. AD 70년 이후에 성전이 없어지고 세계로 흩어질 때 비로소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우고 독립된 기독교의 모습을 보였다. 큰 유대교 안에서 진정한 메시야를 만난, 진정한 메시야를 만난 사람들이라고 생각. 그리고 모든 유대인들이 자신들처럼 메시야를 고백할 것임을 생각했을 가능성이 많음. 놀라운 것은 유대인을 넘어서 이방인에게도 메시야를 전하라고. 따라서 바울도 이방인들에게 메시야를 전해서 유대인들 안으로 넣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 일차적으로 회심(극적 전환)으로 보고, 그와 함께 소명의 내용이 있다고 본다. 동시에 일어났다고 본다.
- (이상성) 이원론적으로 보지 말자. 회심과 함께 소명이 따라온 것이 아닌가? Stendahl이 너무 한쪽으로 모는 것 아닌가?
- Stendahl은 바울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들을 많이 제공했다. ‘놀랐지?’ 회심 일변도인 바울의 체험에 대한 시각을 넓혀 주었음. ‘이신칭의’에 대해서도 Stendahl은 이방인의 사회적 입지를 위해서 말한 것 아니냐는 등 새로운 시각을 도전적으로 많이 제시했다.
4) “이방인의 사도” - 회심 후의 자기 표현
롬 11:13
롬 15:16-19
갈 2:7-8 :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가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행 11장의 부조 방문과 일치시킬 것인가, 15장의 예루살렘 회의인가 논란이 많다)
의미 : ① 예루살렘의 기둥과 같은 사도들이 바울의 복음을 인정했다. ② 바울의 사도직 인정(바울은 사도직을 자칭했다)
물론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은 아니었다. 회당에 들어가서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하고, 회당에 있던 이방인들이 바울을 따라서 각 지역에 교회를 세웠다. 바울의 사역은 유대인들에게는 결실이 별로 없었지만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결실이 많았다.
엡 3:1-10 : 자신이 사도로서 받은 메시지의 내용 곧 ‘비밀’ - 엡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① 함께 후사가 됨 ② 함께 지체가 됨(한 몸) ③ 함께 약속에 참예 ‘함께’는 믿는 유대인과 함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된 한 몸은 교회. 이것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이 이방인에게 전하는 내용이었다. 과거에는 할례를 받고 율법에 따라서 제사를 드리고 유대인화해야 했지만, 지금은 할례의 길, 율법의 길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의 길을 통해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한 몸이 된다. 이것을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의 비밀’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Ⅲ. 바울의 선교사역(A. D. 34/35-65)
다메섹과 아라비아 사역(AD 35-37)
행 9:19-25; 갈 1:16-18; 고후 11:32-33
바울은 다메섹 이전부터 선교사로서의 훈련을 쌓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가운데 그들의 주장을 충분히 파악하고, 이윽고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됨. 준비를 갖추고 난 후 즉시 사역에 involve됨. 즉시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했음. 그의 사역의 시작 지점은 다메섹. 이것이 이해가 되는가? 최소한 신학교에서 3년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갈 1:16-18 아라비아에 간 후 3년. 이런 표현 때문에 아라비아 3년 신학교에 가서 seminary 과정을 공부했다??? 전통적으로는 기도, 말씀 묵상하고 사역을 준비했다! 이 기간에 충분히 준비한 이후에 비로소 사역을 시작했다는 것. 그러나 근거 없다. 18절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년 만에” 이것은 다메섹에서 3년을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변종길 교수).
행 9장엔 아라비아로 갔다는 말이 전혀 없다. 9: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의 제자들이 사울을 광주리에 달아내림. ‘여러 날’이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일수도. 건너 뛰었다는 것. 아무튼 그의 제자들이 생겼고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여러 날 전했으니까 죽이려고.
고후 11:32-33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아레다 왕은 분봉왕 헤롯의 장인. 아레다 4세(Aretas Ⅳ, 9BC-AD40). 나바티안 왕국의 왕. 아라비아라고 할 때 우리는 항상 남쪽을 생각하는데, 당시 나바티안 왕국을 ‘아라비아’라고 불렀다. 그 수도가 Petra. 지금도 있음. 완전히 바위지역. 바위를 조작해서 왕궁과 경기장을 만들었음. 당시 다메섹이 나바티안의 왕인 아레다의 영향권에 있었다. 그래서 그가 다메섹 뿐만 아니라 나바티안에도 들어가고 Petra에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한 3년 전했는데, 이것 문제가 되어서 유대인들이 문제를 삼고 아레다 왕의 방백들이 바울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 크게 틀린 얘기가 아닌 듯.
그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왔을 때 거기서 사도들을 만남. 사도들은 여전히 예전의 박해자 사울의 모습만 기억. 사울과 예루살렘 사도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사람이 바나바. 다시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울을 다소와 길리기아로 보냄.
다소와 길리기아 사역(AD 37-45)
행 9:30; 갈 1:21
8년 기간을 완전 침묵. 뭘 하고 있었을까? 고후 11장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받은 많은 고난(24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굶고 춥고 헐벗음... “ 39대는 주로 회당에서 맞는 것이다. 신앙을 공적으로 부인하거나 문제를 일으킬 때 잡아서 39대를 침. 바울이 39대를 다섯 번 맞았다는 것은 회당에서 맞았고, 맞은 후에도 계속 일을 해서 맞았다는 것. 사도행전에서 볼 때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서 버려진 일은 나오지만 39대 맞았다는 매 얘기는 안 나온다. 학자들은 ‘이 매를 AD 37-45년 사이에 다소에서 주로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맞은 것 아니냐’라고 추정. 초야에 묻혀서 열심히 사역을 했을 것이다. 그 소식이 바나바에게 들려 왔기 때문에 사울이 최적의 사람임을 생각하고 같이 안디옥에서 사역했던 것이 아니냐...
어디든지 가서 열심히 살고 있으면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 불러낼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정말 같이 동역하고 싶은 동료로... ^^
안디옥 교회 사역 시작(AD 45)
행 11:25-26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자 지도자가 필요해서 예루살렘에서 바나바를 위임목사로 보냄. 바나바가 보니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중심으로 모인 교회. 목회가 힘들자 다소로 가서 사울을 데리고 옴.
1차 선교여행(AD 46-48/49)
행 13:1- 바나바가 젤 앞, 사울이 마지막에 이름 등장. 금식하며 기도. 선교 여행
행 13:4-28
구브로를 선택한 이유는 바나바가 레위 사람, 구브로 출신.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 심방을 잘 했던 것 같아. 앞으로 교회에 적합한 지도자상. 이때 마가 요한이 동행. 1차 선교 여행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일행에서 떠남. 마가 요한은 사울과 바나바가 부조 여행을 예루살렘에 갔다가 데리고 옴.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골 4:10). KJV(1611): Marcus, sister's son of Barnabas. 표준새번역: 사촌, 최근의 영어 성경: cousin(사촌형제) 혼동이 되는 이유는 헬라어 ανεψιος가 현대 헬라어에는 nephew(조카=생질)이 맞다. 그러나 고대 세계에서는 이 단어가 cousin(사촌)의 의미였다. 독일어 성경에도 사촌(der Vetter)으로 번역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회당에 들어가 설교함. 누가는 바울의 설교의 요점을 기록했다. 과거 이스라엘 역사를 훑으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루가오니아의 두 성(루스드라, 더베)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일으켜 세움. 사람들이 몰려와서 바울은 허메(신들의 소식을 전하는 전령자-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담임목사였는데, 왜 바울이 주로 설교를 했을까? 바나바의 설교의 내용은 성경에 없다), 바나바는 쓰스(최고의 신-무게를 잡았을까?)라고 부름. 유대인들이 와서 돌로침. 성밖에 내침.
1차 선교여행에서부터 바울은 큰 고난을 당함. 자기의 동족들에게 이런 고통을 당하면서도.
1차 선교여행에서 언급되지 않은 일(행 14-15장)이 있으니 디모데를 만난 것.
안디옥으로 돌아감. 상당한 성공을 거둔 듯 함.
칼빈은 캅바도기아라고 생각. 다수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바는 ‘남갈라디아설’ - 갈라디아서를 받은 교회가 어디에 있었는가? 남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들에게 보낸 회람 서신. 이런 사실은 1차 선교여행이 성공적이었음을 뜻함.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불타는 사명감? 행 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바울 자신은 돌에 맞아서 죽게 되는 상태까지 갔지만,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은 이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다시 한번 언급한다. 행 15: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주께서 이방인들의 눈을 열어서 깨닫게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안될까?” 오늘날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목회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하신 주님께서 필요하다면 표적과 기사를 주시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힘을 주신다는 것 믿어야 하지 않는가? 여러 가지 프로그램보다 주의 역사를 사모하자.
중간에서 마가 요한이 떠난 사건(13:13). 2차 선교 여행을 떠나려 할 때 바울이 동행을 거절함. 그 때문에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고 갈라졌음. 누가는 이 얘기를 빼지 않았다. 누가가 바울편이어서? ^^ 두 지도자가 싸운 이유는 마가가 왜 도중하차했나와 관련이 있을 것. (현유광 교수 생각-) 안디옥에 있을 때는 '바나바와 사울'의 순으로 언급. 13장부터는 이름의 순서가 바뀜. '바울과 바나바'로. 무슨 이유인가? 처음 선교 여행을 떠날 때는 바나바가 지도자였어. 그런데 중간에 협동목사가 담임의 자리를 차지함. 이에 대해서 바나바의 사촌인 요한이 기분 나빠서 몇 차례 의의를 제기했는데 바울이 안 들어줘서 이탈. 리더쉽의 변화가 이유였다! (R. Longenecker 생각-) 이방인 선교에 관한 문제. 아직 사도회의가 개최되기 이전. 예루살렘 교회가 가진 ‘이방인 선교의 정책’이 있었을 것이다. 반드시 이방인에게 선교할 때는 ‘회당’을 통해서 한다는 것. 회당 안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개종하여 할례 받은 이방인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God-fearers, 할례는 받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울이 설교했을 때 거기서 이방인들과의 접촉점이 마련되고 거기서 교회를 형성하게 됨. 그러나 아직 이방인선교가 문을 열지 못했음. 고넬료 때부터 이방인 선교 정책을 뛰어넘는 것이 되었다.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직접 갔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문제가 되었다. 바울도 구르로의 총독인 서기오 바울에게 직접 복음을 전했다. 예루살렘에서 자라서 예루살렘의 정책에 익숙해 있었던 마가 요한이 이것을 볼 때 분명히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마가 요한이 선교지를 떠났다. 누가 맞을까? ^^
갈라디아서 집필(시리아 안디옥, 49)
49년이라 함은 사도회의 바로 전이라는 뜻.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 갈라디아서. 전통적인 견해는 사도회의 이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봄. 최근의 학자들은 사도회의 이전이라고 봄. 최갑종 교수는 갈라디아서가 사도회의 이후라고 본다. 이유는 갈 2:1-10이 사도회의의 내용과 비슷하다는 것(①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검증 받기 위해서. ② 그리고 바울의 사도권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후에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함. 무할례자들을 위한 사도로. 이런 내용이 사도회의에서 언급된 내용과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갈 2장의 내용은 사도회의의 내용을 반영하므로 사도회의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갈 2장의 내용이 사도회의와 다르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갈라디아서에는 '계시'로 인해 올라갔다고 했다. 행 15장의 내용엔 계시가 아니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대적자들이 와서 논쟁. '이방인들의 할례와 구원문제' 결국 안디옥 문제가 갔던 것. 따라서 내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또 한가지 증거로, 갈라디아서는 신분과 삶의 문제를 다룬다. ‘하나님의 백성됨’의 신분을 어떻게 얻을 수 있나?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된 자가 어떻게 살 것인가? 성령이냐 율법이냐? 최갑종 교수는 갈라디아서의 무게가 신분보다 ‘삶’에 있다고 보았다. 전통적인 견해는 신분의 문제였다. 분명히 5,6장에서 삶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1-2, 3-4장은 ‘칭의’ 즉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가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초점은 ‘신분’의 문제라고 본다. 3-4장은 중요한 신학적 논쟁. 1-2장은 자기의 자전적인 논증을 펼치면서 사도권 받았음 얘기함. 그러면서 3-4장에서 제시할 논증의 출발점을 삼는다. ‘오직 예수로만 구원받는다’는 논증. 결국 갈라디아서는 이방인 성도의 신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만일 갈라디아서가 사도회의 이후에 기록되었다면 사도회의의 결정 내용을 언급했을 것이다. 왜 얘기하지 않았나에 대해서 또 다른 논증이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않고 지나가고 있다는 점은 사도회의 이전에 기록된 것을 뒷받침한다.
쓴 이유는 바울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갔을 때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들어와서 ‘바울도 사도인가?’ ‘바울이 전한 율법을 무시한 복음이 참된 복음인가?’의 문제를 제기했다고 본다. 전통적인 율법 없는 믿음의 복음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니까. 당대의 유대인들이 볼 때는 바울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방인도 율법을 지키되 개종을 하면 <할례>를 받고 <유대인화> 하고, 그 후에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율법에 근거한 이방인들의 구원관). 그러나 율법의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까지이다. 율법은 몽학선생이다. 율법의 시대가 끝나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AD 49)
행 15:1-29
사도회의는 안디옥 교회에 바울과 바나바가 돌아와 있을 때 또 예루살렘으로부터 들어와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함. 그래서 사도회의가 소집되었음. 그 사실은 아직 49년까지는 예루살렘 교회와 교회 안에서 복음에 대한 문제가 공식적으로 분명하게 확정되지 못했다. 이견이 있었다. 사도회의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1C 교회의 신학적인 경향은,
1C 교회
(좌) 바울 - 베드로 - 야고보 - 바리새파 유대인들 - 유대주의자(Judaisers) (우)
Torah-free 고넬료 의인, 할례자들 예수 믿는데, 이방인도 할례를
Gospel 이후 율법지킴 받아야 한다는 확신(extreme right wing)
이런 상황에서 복음을 재정리함. ‘많은 변론’ 후 베드로가 일어나서 얘기,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시고...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는 줄 안다” 그 후 바나바와 바울이 일어나서 하나님이 이방인 가운데서 하신 일을 증언. 갈 3:1-5에 보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을 행함으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고 한 것을 보면 갈라디아에서 일어났던 성령체험을 상기시킴. 이방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자 이방이 돌아오고 성령을 체험하는 것을 보았음. 오직 예수의 복음을 통해서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는다. 이제 최종 결론을 야고보가 일어나서,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아모스 구절... 이방인 형제를 괴롭게 하지 말자... 목 매어 죽인 것과 우상의 제물과 피를 멀리하자고 하자...” 주 예수의 은혜를 통해서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야고보 역시 베드로와 함께 확증하였다. 한편으로는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당장 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유대인들 사이의 필연적인 table fellowship이 생길테니 문제 발생 가능성(지금도 kosher가 있는데 당시는 얼마나 심했겠는가)이 있었어. 삶의 스타일이 다르니까. 그래서 야고보는 fellowship을 생각해서 최소한 이방인들이 지켜야 할 선을 말했다(넓게 보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자와 약한자, 가난한자와 부유한자의 구별이 생겼다. 바울은 강한자나 약한자나 다 주의 자녀로 보았다. 바울 자신은 강한자지만 약한자 편에 선다. 그래서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며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려고 했다. [고신 교단이 약한자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로마카톨릭도 사순절에 고기를 먹지 않는다]
- 예루살렘 사도 회의는 ‘복음의 확정’ 때문에 중요하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질 중요한 신학적 결정.
<4월 16일>
2차 선교여행(AD 49-51)
1차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믿음을 세워주려고 2차 선교여행. 그 시작부터 어려움에 봉착함.
바나바는 사촌인 마가를 선교단에 포함시키려 하고 바울은 거절함. 둘이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섬(행 15:39). 바나바도 고집이 좀 있는 듯… ^^ 갈라질만큼 중요한 문제였는가? 바울이 끝까지 거절한 이유는 뭘까? 아직도 마가가 자신의 원칙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바울의 선교정책에 마가 요한이 충분히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바울이 실라를 선택한 이유는?(행 16:37) “로마 사람인 우리를...” 결국 실라도 로마 시민권자였다는 것이다. 살전 1:1 등에는 실루아노라고 표현한다. Σιλουανος는 로마식 이름이다. 즉 실라는 이방인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선교할 수 있는 신학적 기본바탕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이 실라를 ‘택했다’(행 15:40)
행 15:40-18:22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수리아와 길리기아는 1차 전도여행 때 전도했던 지역이 아니다. 갈 1: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갈라디아와 사도행전을 종합한다면, 다소에서 나바티안 왕국에서 전도하다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전도, 그 후 제자들이 광주리에 담아서 도망가게. 그 때 간 곳이 수리아와 길리기아. 여기에서 8년 정도 지냄. 그 후에 바나바가 길리기아 다소에 가서 바울을 데리고 왔을 것. 그 때 세웠던 교회를 2차 전도여행 때 돌아본 듯 함. 즉, 바울은 1차 선교여행 이전부터 선교에 참여했었다.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남(16:1,2). 제자, 어머니는 유대인, 아버지는 헬라인(개종하지 않은 듯), 칭찬 받는 자(사역자들에게 중요한 조건, 외적 소명). 아직 할례받지 않은자. → 바울이 데려다가 할례를 행함. 이상하다. 갈라디아서 앞부분에는 디도를 억지로 할례시키지 않았었다.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복음 사역을 할 때 분명히 들르는 곳은 유대인의 회당이었다. 할례를 받지 않는 디모데를 회당에 데리고 들어갈 때 유대인과의 관계에서 큰 문제가 있을 수 있었다. 이 선교를 위해서 할례를 행했다. 디도의 경우에는 구원의 문제였기 때문에 끝까지 반대했다. 그러나 선교의 문제에서는 거리끼지 않았다. 고전 9장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자와 같이 되고, 율법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있는자와 같이 되었다”는 것은 바울의 중요한 선교원칙. 외골수로 했다면 할례를 하지 않았겠지...
바울이 다녔던 거리를 합산하면 20,000마일×1.6km=32,000km 이 정도 하려면 체력과 의지가 대단해야 한다. 오로지 주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자!
‘예수의 영’이 비두니아 지방으로 가는 것을 허락지 않아(16:6)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지나서 무시아에 갔음. 왜 막으셨을까? 복음 전하는 시점이 아직은 아시아가 아님. 그보다 더 급한 지역이 있음을 나타내신 것. 나중에 에베소에서 전하는 것을 보면 아시아를 반대한 것이 아님. 드로아까지 가니 환상을 봄.
아시아에서 배타고 유럽으로 감(아놀드 토인비-바울을 태운 배가 유럽의 역사를 바꾸었다). 빌립보 도착.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제의 아버지가 빌립 2세의 이름을 따서 도시이름으로 명명. 성문 밖 강가에서 여자들에게 말함.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여자들인 듯. 하나님의 공경한다고 했음. 고넬료 같이 개종은 하지 않았어도 God-fearer들. 자주빛 나는 옷감을 만들어 파는 루디아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16:14) 사업상 이주해 와 있었을까? 온 집이 믿고 세례를 받았음.
점치는 귀신들린 여자 고쳤다가 감옥에 갇힘. 간수에게 복음을 전함. 이런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듯함. 그리고 빌립보서를 써서 보냄.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왔는데, 루디아 가정에게 복음을 전한 후 결국 핍박받음. 매 맞고 옥에 갇히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의심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옥에 갇힌 상태에서 찬송을 했다(16:25). 하나님의 권능이 임재하고 있는 것을 체험했음. 이것을 통해 간수가 구원받고 교회가 세워지는 일의 중간 거점, 과정이 되었다. 현재의 고난이 최종적 고난이 아니다. 이 상황과 어려움을 놀라운 주의 역사가 나타나는 계기로 삼으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이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우리도 감사하자.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마게도냐의 수도인 데살로니가는 20만의 인구. 바울은 큰 도시를 거점으로 복음 전파. 일단 회당에 들어감. 세 안식일 동안.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17:3-바울 전도의 핵심)라고 전도하고 다녀. 그러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17:7)고 참소. 예수가 왕이라는 것. 곡해해서 고소. 반역죄로.
베뢰아 지역.
아덴으로. 아레오바고 설교. 바울 이전에도 철학, 예술, 문학에서 지중해 연안의 중심 도시. 플라톤, 소크라테스가 활동했던 곳. 교육, 학문으로 유명. 알렉산드리아, 아테네, 다소 3곳에 제일 좋은 대학 존재. 아덴에는 스도이고 철학자들이 존재했고, 가장 새로운 얘기를 듣고자 했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자 붙들고 아레오바고로 가서 설교하게. 이 설교를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가 없고 인간적인 입장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실패라고 본다. 고린도전서에 “앞으로는 십자가만 전하겠다”고 한 것을 보면 바울이 아덴의 설교를 철저하게 반성하면서 그 후에 고전 2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믿은 사람이 있었다. 부활의 내용도 증거되었다.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 같은 여자도 있었다.
고린도로 내려감. 18개월 동안 머물며 2차 선교여행의 중심지가 됨. 고린도에서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됨.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함”(18:5)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18:9-10) 바울이 갈등을 했던 것 같음. 그래서 주님께서 위로. 본도 사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남. 클라우디우스 황제(AD 41-54년 통치) 때 로마를 살던 유대인이 쫓겨날 때 이들도 나옴. 사가 수에토니우스가 남긴 ‘열 두 명의 로마황제들’이란 책에서 클라우디우스가 크레스투스(Chrestus)라는 사람 때문에 일어난 논란을 적고 있다. 로마인들의 공동체에 소란이 일어났고, 유대인들은 다 쫓겨났다. 학자들은 Chistus를 잘못 적었을 것이라고 추측. 유대인 가운데 예수를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소란을 피우자 다 쫓아냄.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음. 아볼로를 데려다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가르쳤어. 그만큼 바울을 만나기 전에도 복음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었다. 업이 같아서(18:3-tent maker, 가죽제품을 만드는 일) 바울이 그들에게 가서 함께 있으며 일을 함. 작업장에서 같이 일하며 복음 증거. 항상 자기 손으로 벌어서 사역을 함. 굉장히 중요한 동역자를 만난 것. 롬 16:3 로마에 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바울이 불굴의 투지를 가진 사역자라서 혼자 다 이룬 것 같지만, 당시에 바울과 함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피땀 흘리며 사역을 했는가? 뒤에 얼마나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이런 수고와 조력 없이 바울 혼자 다 할 수 없었다. 목숨까지 내어놓는 동역자들이 있었다. 앞으로 사역을 할 때 혼자 ‘영웅적 목사’가 되려고 하지 말라. 부름받은 자들은 다른 동역자들과 더불어 주의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라.
<4월 24일>
바울과 아가야 총독 갈리오(Gallio)의 만남(18:12-16)
“델피의 비문(Delphi Inscription)” : 바울 연대기의 초석
갈리오는 세네카(Seneca)의 형제. AD 65년에 네로가 스승인 세네카를 처형하면서 갈리오도 함께 처형. 갈리오라는 이름은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델피의 비문”에도 나옴. AD 51년 7월-52년 7월. 아가야 지방의 총독. 바울이 고린도에서 갈리오를 만난 것이 이 시기일 것. 바울이 고린도에 들어온 것이 갈리오가 부임하기 1년 전쯤으로 생각. 새로운 총독이 오자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했다고 봄.
데살로니가 전서 편집(고린도, 50-51)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이 어떤 상황에서 이것을 썼는지를 추정해 볼 수 있음. 마케도니아 지방의 가장 큰 도시인 데살로니가에서 3주밖에 안 됨. 이 기간에 모인 성도들이 모였으니 수가 얼만 안되었음. 그만큼 신앙이 부족하고 연약... 유대인들이 바울만 핍박한 것이 아니라 새로 믿는 사람들도 괴롭혔을 것이다. 그래서 고린도에서 염려하면서 그들이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디모데를 먼저 보냄. 살전 3:3-6-7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이것만이 주된 목적은 아니다. 살전, 살후는 종말에 대한 설명. 4장 13절 이하. 예수께서 오시기를 갈망하고 있는데 오시기 전에 죽는 자들이 생겼다는 것. 그렇다면 살아있는 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산다고 하더라고,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등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를 설명.
데살로니가 후서 집필(고린도, 50-51) - 전서 이후 6개월 정도 뒤에
내용을 보면 전서에서 종말의 때에 대해서 말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말의 문제가 그들에게 화두였음을 알 수 있다. ‘속히 오신다’는 신앙이 강했던 것 같아. 예수님이 오시면 어떨까?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사람이 생겼어.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3:10-12). 교회 안의 유무상통하여 내어 놓는 그 돈을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이 생긴 것이야. 주님 오시는 것을 기다리면서 그냥 남의 양식을 먹고 사는 사람. 살후 2:1-2 ‘지금은 아니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고 난 후에야 주께서 오실 것이다. 오실 그날까지는 규모 있게 행해야 한다. 비록 혹시 예수께서 당장 오신다 할지라도 일상적인 일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3차 선교여행(AD 52-57)
행 18:23-21:16
아볼로 등장.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알렉산드리아 출신.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으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저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가르쳤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서 고린도에 가(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 그곳의 제자들은 성령을 모르고 있는 상태. 그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음. 성령이 임하시고 12명이 방언과 예언을 함. 에베소에서의 사건. 성령세례 문제에서 자주 언급되는 본문임. 12명은 구원받은 이후에 바울에게서 안수를 받을 때 성령을 받았다는 것임.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번역 자체는 어떻게 보면 전통적인 장로교의 가르침을 뒷받침. 그런데 KJV는 “너희가 믿고 난 이후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모든 사역자들은 구원받은 이후에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 그런데 본문을 가만히 읽어보면, 아직 그들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제자’라는 표현을 썼지만. 왜냐?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함” 그리고 “요한의 회개의 세례만 받은 적 있음” 4절은 바울의 전도설교를 요약해서 기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예수님에 관해서 먼저 얘기했음. ‘저희가 듣고’ 그들이 받아들였다는 것. 그 후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따라서 바울을 만나기 전까지는 온건한 제자가 아니었다. 사실 이것은 능력의 임함보다는 하나님께서 저들을 자녀로 받으셨다는 겉으로 드러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회당에 들어가 3달 동안 복음 전파. 그 후 Tyrannus 서원에서 2년 가르침. 서방 사본에 보면 두란노라는 곳에서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까지 말씀을 강론했다는 내용 나옴. Tyrannus는 아마도 에베소 지역에서 활동했던 철학자, 수사학자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 사람이 오전 11이전까지 그가 수업을 함. 그 이후는 햇볕이 뜨거워서 수업을 하지 않을 때 바울이 그 장소를 빌려서 복음을 전한 듯 함. 19: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그만큼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들었음.
이렇게 전파되자, 복음과 함께 그곳의 세력간의 갈등이 시작됨. 에베소에서 은장색 데메드리오. 아데미 여신의 신전이 고대 7대 불가사의로 알려져 있다. 규모는 길이 127.5m, 폭 66m, 기둥이 127개, 기둥의 지름이 1.2m, 기둥의 높이는 19m. 이 신전도 원래 그 이전의 것이 화재로 소실된 후 만든 것. 신전이 유명해서 소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순례하고 참배를 해. 그렇게 돌아가면서 기념품들을 사가지고 감. 그래서 은장색들이 재미를 봤음. 이 때 바울이 와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19:26)고 하자 열 받음. 밥그릇에 위협을 느낀 데메드리오가 소동을 일으킴. 연극장으로 달려가서 두 시간 동안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당시 20-25만 명이 에베소 시민. 그 정도로 아데미 신상을 중요하게 생각했음. 하늘에서 떨어진 신상이라고. 자기 도시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 중요시하고...
에베소를 떠나는 과정에서 보면, 에베소의 관리들이 매우 신사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보게 됨. 서기장이. 헬라어는 민회와 모임을 εκλησια를 쓰고 있다. 원래 이것은 교회를 나타낼 때 쓰는 단어가 아니다. 법적인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민간어원설에 빠지지 말라.
드로아에서 밤중까지 강론을 하다가 유두고가 졸다가 죽는 일도.
항구도시 밀레도에 감. 에베소에 가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함. 해풍이 불어오는 해변가에서 고별의 모임을 갖는다. 무척 감동적.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고백. 캬~
에베소 장로들에게 구체적인 당부. 31절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가이사랴에서 전도자 빌립의 딸 만나고, 선지가 아가보 만나고, 굳이 굳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감. 결국 붙들리고 옥에 갇히고... 뻔한데 왜 그렇게 했나? 구제 헌금을 들고 갔다. 복음 전파와 함께 그가 목숨걸고 했던 작업이 연보 모금이었다. 이 두 가지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썼다. 돈 모으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오해를 받았는지 모른다. 자신과 일행이 쓸 것은 벌었지만, 연보를 모으는 일은 굉장히 열심히 했다. 결국 이것 때문에 대적자들은 탄 속셈이 있어서 겉으론 사례를 받지 않지만 뒤로는 거금을 챙기는 일을 한다고 비난. 그러나 바울은 목숨을 걸고 연보를 전달하려 감.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기도도 부탁함.
<5월 8일>
바울의 선교사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역이 편지쓰기이다. 바울의 편지 전체를 ‘목회서신, 선교서신’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목회서신을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라고 본다. 현재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디모데와 그레데섬에서 목회하던 디도에게 목회와 구체적으로 관련한 내용을 썼기 때문에 목회서신이라고 한다. 규정하기 나름이지만, 사실 바울의 모든 편지들이 목회를 위한 연장선에서 보낸 것이다.
고린도전서 집필(에베소, 55)
고린도후서 집필(마게도냐, 56)
교회를 세운지 4-5년이 지난 이후. 우리가 가진 편지는 고린도전서와 후서이다. 그러나 사실,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는 두 개 이상이다. 4통을 썼다.
A : lost letter(잃어버린 편지) 고전 5:9 “너희에게 쓴 것에~”
B : 고린도전서 - 16장을 보면 바울에게 다녀갔던 사람들(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등)이 있었으며, 고전 7:1, 8:1을 보면 “너희의 쓴 말에”를 보면 고린도의 성도들도 바울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그들이 질문한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음. 에베소에서 썼다는 것은 고전 16:8을 통해 추측함. 크게 세 가지 주요 문제가 있었다.
① 4파의 분쟁 문제 - 아볼로파는 어떻게 생겼을까? 아볼로가 에베소에 와서 예수님에 관해 전했지만, 그가 성령의 세례에 대해 알지 못했을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사설 신학교에서 가르침. 그 후 고린도에 보내져서 바울이 없는 고린도에서 자연스럽게 사실상의 담임교역자 역할을 한 듯함.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탁월한 웅변가. 수사학을 배우고, 구약성경을 잘 알았던 아볼로였기 때문에 대단히 impressive한 설교자였다. 16:12절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라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어쩌면 아볼로파가 고린도교회 안에 상당히 많이 있었기 때문에 결자해지의 의미에서 보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볼로는 가지 않았다.
② 음행문제
③ 송사문제 - 천사들까지 심판할 자들이 어떻게 믿지 않는 자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겠는가?
그 외에도 부활에 대한 질문 등...
C : 고후 2:4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쓴 편지” 방문과 관련된 듯하다. 방문 암시 - 고후 2:1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방문 시 대단히 심각한 고린도교회의 상황이었던 것 같음. 그 상황 때문에 애통하며 편지를 쓴 것. 무슨 일이었는지 자세히 밝히지는 않지만, 고후 10-12장을 보면 주로 고린도교회 안에 들어온 대적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고후 11: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이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들의 이간질이 있어서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을 배척했던 것 같다. 바울을 깎아 내리면서 대적자들이 자신들을 과시. 자신들은 특별한 계시와 환상을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상당히 강하게 했다는 것이다. 바울 사도를 볼 때 말도 시원치 않고, 특별한 체험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 듯함. 고후 10:10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바울의 말이 약점이었던 것 같다. 고후 3장에는 천거서를 문제삼는다. 바울의 사도권을 문제삼음. 11:2에서 바울은 자기를 ‘중매쟁이’로 생각했다.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선한 목적으로 애를 썼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다른 영을 받고,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 잘 용납하였다’는 것(12:4).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12:5). 얼마나 섭섭했으면... ㅠ.ㅠ 그러나 말에는 졸하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다(12:6).
또 대적자들이 문제삼았던 것은 12:16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례를 받지는 않았다. 그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사실상 바울은 아주 간교한 친구이기 때문에 뭉칫돈을 챙긴 놈이다. 가는 곳마다 헌금을 걷었다는 것. 사울의 중요 사역 중 하나는 헌금을 걷는 것이었다. ‘거액의 연보’
세 번째 편지를 디도를 통해 보내고 간절히 그를 기다린다. 고후 2: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결국 드로아에 복음의 문이 열렸지만, 고린도에서 오는 디도를 만나려고 간 것. 고후 7: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는 위로하셨으니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고린도교회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울의 모습.
D : 고린도후서 - 디도를 통해서 소식을 들은 후 편지를 보낸 것이 고린도후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눈물로 쓴 편지를 받고는 뉘우침. 이렇게 기쁜 마음을 중간 중간에 언급하고 있다. 거짓교사들이 공격했던 것에 대해 바울은 고후에서 변호함. 그 중 중요한 내용이 자신이 받는 직분은 영적인 것이다. 계시나 환상의 체험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비난에 답함. 10-11장에서. 진정한 사도의 표지는 ‘고난과 약함’이다. 약함 가운데서 능력 있게 되는 것과 주를 위해 당하는 고난이야말로 사도됨의 진정한 표라고 함. 11장에 생생한 얘기를 좍~ 늘어놓음. 11: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바울은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하게 온갖 어려움을 다 말함으로써, 복음을 위해 수고한 사도의 참다운 표로 고난을 제시하였다. 12:1에는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 11:16에서부터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망가질 대로 망가진 건가? ^^ 1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양심이 있어서 3인칭을 사용. 14년 전의 케케묵은 얘기를 하는 이유는 가장 극치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이었는지 모르지만, ‘셋째 하늘 ≥ 낙원’에 올라가 여러 계시를 받았음. 그러나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에 가시를 주심(12:7). 8-9장에서 또다시 헌금 얘기. 오해를 받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서 집필(고린도, 57)
로마서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에 있을 때 기록. 57년은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헬라에 가서 3달을 머물렀다(행 20:3, 아가야 근처였을 것). 그 때 고린도에 들렀을 때 로마서를 쓴 것 같다. 롬 16:23 “나와 온 교회식 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함께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가이오는 고전 1:14을 볼 때 고린도 사람이다. 바울에게 세례를 받음 사람. 고린도에 들렀을 때 자기가 세례 주었던 가이오 집에 머물고 있었던 것 같음. 로마서는 대단히 교리적인 서신이요, 이신칭의를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1-4장은 이신칭의, 5-8장까지는 이신칭의로 새롭게 된 사람이 어떻게 살까? 9-11장은 유대인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 이방인의 충분한 수가 들어올 때 저들도 돌아올 것이다. 12-13장은 구원 얻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14-15장은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강한자와 약한자 사이에 일어난 분쟁의 문제 다룸. 16장에는 마지막으로 로마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얘기.
그렇다면 로마서를 쓴 이유는?
① 중요한 부분은 자기 개인적인 문제와 관련 있다.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썼다.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모든 지역에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다.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다(롬 15:23). 그래서 예루살렘→로마→서바나에 가겠다고 얘기함. 따라서 너희가 나를 선교사로 파송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 장차 선교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 로마 교회가 제4차 전도여행의 후원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롬 15:24-28). 1--8, 9-11, 12-13장에 체계적으로 복음을 제시하고, 이런 복음을 서바나로 보낼 것이니 나를 보내달라.
② 또 이방지역에서 거둔 ‘거액의 연보’를 들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자신이 오해를 받지 않도록 디도를 데리고 가는 등 신경을 쓰면서 가고 있다(고후 8:19). 고린도후서에서 ‘은혜’는 연보를 뜻한다. 고후 8:20-21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올라가는 길에 바울은 대단히 염려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롬 15:25-30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서바나로 가리라.....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삼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예루살렘에는 바울을 죽이려는 불신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가는 연보를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이 기꺼이 받게 해 달라는 것.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다.
③ 14-15장에서 말하는 로마 교회의 문제 때문에. 약한자는 유대인 신자, 강한자는 이방인 신자. 글라우디오 때 유대인들이 추방당한 사이에 이방인들이 더 많아지고 유대인은 소수가 되었음. 그들이 가진 독특한 생활 양식은 다수가 되어 있는 강한 이방인들과 마찰이 생긴 듯 함. 바울이 그것을 듣고 ‘너희가 성도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복음을 통해 말함으로써 약한자와 강한자 사이의 싸움을 중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다시 로마 교회가 평화를 회복하고 견고한 공동체로 새워진 후, 비로소 바울을 파송하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 쓴 뜻함.
<5월 15일>
예루살렘 도착과 가이사랴 투옥(AD 57-59)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지 말라고 경고. 올라간 목적은? 구제헌금을 전달할 목적으로. ① 왜 굳이 전달하려고 했는가? ② 그리고 왜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기도 부탁을 했을까? 좋아할텐데...
① 바울 사도가 이방교회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신령한 것을 너희에게 나누어주었으니, 너희는 물질을 가지고 저들에게 연보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함. 같이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로서. 주고 받는 성도 간의 아름다운 교제가 실현되기를 바랐다. 그들이 받으면 바울의 이방선교 자체를 예루살렘 교인들이 인정한다는 것이고, 이방인 교회의 성도들을 기꺼이 받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방인 성도와 유대인 성도의 참다운 연합이 된다. 이것은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엄청 중요한 비전이었다.
② 이방인 성도들로부터 걷은 헌금을 저들이 받아 줄 것인가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을 가졌다. 이미 바울이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갔을 때는 이미 30년 정도 지났을 때다. AD 49년 사도회의를 통해서 복음의 내용이 확정되었다. 유대인 신자들도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사도회의 후 7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성도들 가운데 아직 상당한 숫자가 유대민족주의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이방인들에게 대해 적대적이었을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 율법 없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까지 거부했다. 그런 바울이 제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오더라도... 이 때는 유대인들의 민족주의적 의식이 상당히 고조되어 있을 때였다. AD 66까지 고조되다가 전쟁이 터진 것. 행 21:20 “... 형제여 그대로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는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날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상당히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음. 이런 상당수의 성도들이 친율법적 사고를 하고 있었기에 바울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극우파에게 체포됨.
로마 항해(59-60)
(행 23:16) de; oJ uiJo;" th'" ajdelfh'" Pauvlou th;n ejnevdran (바울의 누이의 아들) 이 사실을 바울에게 알리고, 바울은 가이사랴에 보내짐. 470명이 호위함. 그러나 가이사랴의 총독 앞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함. 가이사에게 항소. 이 때의 가이사는 네로. 큰 어려움 속에 로마로 가지만, 하나님의 위로 가운데서 힘을 얻고 담대하게 폭풍 속에서도 전도. 마침내 로마에 당도.
로마 투옥(60-62)
자기가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치달음. 2년 동안 허송세월 보내기도 했고... 그러나 결국 2년이 지나서 로마까지 왔다. 간절히 원했던 곳인데... 로마에 가서 그 성도들과 교제하고 그 성도들이 보내주는 데로 서바나까지 가려고 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로마에 오게 되었어. 아마 바울이 이런 상황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로마의 성도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써 보내지 않았느냐? 선을 이룸은 이런 것을 말한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순간순간 닥치는 어려움에도 우리는 절망할 필요 없다. 마침내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의해서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행 28장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28:23),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30) 이것은 가택 연금상태이다. 그러면 옥중서신과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아마도 2년 정도는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재판을 받기 전에 감옥에 감금되었던 듯 함.
셋집(AD 60-62)에서 쓴 옥중서신(로마에서의 1차 투옥, 이 때 네 개의 옥중서신을 썼음)
에베소서 집필(로마, 61) - 에베소서는 다음 학기 강의가 있다. 에베소서는 바울 복음의 진수가 농축되어 있다. 목회할 때 하나님이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에 대한 metaphor도 많다. 그런 표현(성전, 몸, 충만 등)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존 스타트)를 참고하라. 좋고 옳은 내용이다. 로이드 존스의「에베소서」(8권)의 문제점은 너무 방대해서 정작 무엇을 말하려는지 파악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엄밀하게 말해서 로이드 존스의 설교는 강해 설교가 아니다. 존 스타트가 잘 설명하고 있다.
빌립보서 집필(로마, 61) - 옥에 갇혀 있을 때 빌립보에 있던 에바브라 디도가 바울을 찾아온다. 그냥 찾아오지 않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선물을 가지고 온다. 그것을 받고 감사의 편지로 써 보낸 것이 빌립보서이다. 4장 10절 이하. 여러 번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후원했던 것에 대해 열거한다. 복음의 시초부터 바울을 위해 재정적인 후원을 했었다. 바울은 분명히 자기 손으로 일해서 선교지에 필요한 것을 벌었으면서도 빌립보 등의 교회가 보내준 재정을 거절하지 않았다.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빌 4:15-16) 그러면서도 사실은 그 헌금이 필요 없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족하고 감사할 비결을 배웠다. 감옥 안에 있어도 사실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만족한다. 그것 없이도 지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받으실 만한 것이다(4:18). 너희 모든 쓸 것도 채우시리라(4:19). 또 감사만 다 아니라, 에바브라 디도를 통해서 들었던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듣고 그에 대해 권면. 4:2에 “‘유오디아, 순두게’에게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교회 전체에 문제를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서로가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고 한 것을 보아서, 뭔가 빌립교 교회가 하나 되는 일에 문제가 있었음. 특히 2:5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한 것을 보면 더 확실하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낮추고 비워서 종과 같이 되었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그래서 하니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시고 주라 고백하게 하셨다. 이것은 초대교회에 있었던 일종의 찬송시라고 한다. 그것을 바울이 영감 받아 썼는지, 원래 교회 안에서 통용되었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이 찬송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겸손하심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나? 서로가 그리스도의 낮아짐과 겸손함을 본받고, 서로를 세워주어서 소위 공동체의 구원을 이루기 바랐던 것. 성도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교회가 온전해 지기를.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함. 저들을 본받을 것이 아니라, 3:17에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바울은 모든 것을 자랑할 수 있을 만큼의 과거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똥으로 여겼다. 혈통, 출신, 학벌 등 모든 자랑할만한 것을 똥으로 여겼다. 무엇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부르심의 상을 향해서 달려가는...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자세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배우고 본받기 원했다. 저들도 바울 사도와 같이 일체의 비결을 터득하고 끊임없이 푯대를 향해 달려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
골로새서 집필(로마, 61) - 무엇을 얘기하는지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골로새에 문제가 있자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간다. 이 교회는 빌립보 교회와는 달리,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다. 아마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할 때 에베소의 두란노서원에서 강론을 했는데, 그 때 아시아에 있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말씀을 들었는데, 이 때 골로새 출신의 에바브라가 거기에 와서 회심을 했다고 본다. 그래서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였다. 골 1:7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런데 문제가 생겨서 에바브라가 감당할 수 없어서 교회를 아킵보(골 4:17)에게 맡기고 바울에게 감. 교회 안에 거짓교사들이 들어와서 천사 숭배(2:18)를 주장하고 먹고 마시는 것과 월삭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기 시작함. 천사숭배는 헬라어 원문으로 ‘천사들의 예배’라고 볼 수 있다. 영어성경도. 저들이 ‘본 것’에 대해 주장했다.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금식을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게 하면 그것을 통해서 너희가 환상을 볼 수 있다. 그 환상은 하늘에서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광스러운 광경이다. 정말 진정한 신자라면 천사를 보아야 한다. 그것이 깊은 차원이다. 에바브라에게도 그런 질문을 했겠지... “당신 그것 봤습니까?” 그러면 참 면목이 없을 것... 사도 요한도 보았고, 이사야도 보았다... 중간기 시대의 문헌에도 에녹이라는 사람도... 바울은 이런 얘기를 듣고 2장에서 “저들은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식의 보화가 있음을 모르고 있다. 인간을 유전을 따르는 것이다.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는 것이다”고 함.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고 그리스도 안에 너희의 생명이 감추어져 있고, 때가 될 때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골로새 2장에서 우상숭배적 요소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이 천사를 숭배하는 식으로... 그러나 이 속격 구문을 주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는 목적격의 속격으로 보았지만, 최근에는 주격이 속격으로 본다. 해석이 달라진다. 과거의 해석으로는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놓지 말라. 주격을 보면, ‘환상 속에 진정한 신앙의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신앙의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과 보화를 추구하는 것이 옳다’로 메시지가 달라진다. 여러 증거를 통해 볼 때, 주격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따라서 바울 사도가 골로새서를 쓴 중요한 목적은 이단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비판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진정한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골로새 교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것이었다.
빌레몬서 집필(로마, 61) - 바울은 빌레몬에게 왜 편지를 써 보냈나? 어떻게 보면 매우 사적인 편지같이 보인다. 공동체 안의 문제도 아니고, 오네시모를 가운데 두고 바울의 개인적인 부탁같이 보인다. 그런데, 이 편지가 우리의 정경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빌레몬서의 메시지가 의미가 깊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 종. 오네시모의 뜻은 ‘쓸모 있는 자’인데 전혀 빌레몬에게 쓸모 없는 자였다. 아마도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집에서 손해를 끼치거나 도적질을 해서 탈출을 한 듯하다. 인생의 격정 끝에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서 회심을 하게 되었다. 바울이 그를 보니 아주 좋은 사람임을 깨달아 빌레몬에게 편지를 써서 다시 돌려보냄. 오네시모는 골로새서 4장에 두기고와 함께 나옴. 아마도 이 두 사람이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까지 같이 배달을 한 것 같다. 빌레몬은 골로새에 사는 성도였다. 많은 학자들은 빌레몬이 사실 골로새 교회의 중요한 member였다고 생각함. 골로새서 편지를 전달하는 가운데 편지가 같이 전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주석은 골로새서와 빌레몬서가 같이 묶여서 집필되고 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통해서 빌레몬서를 빌레몬에게 보낸다. 그 내용은 자못 감동적이다. 오네시모가 과거에는 쓸모 없는 자였지만, 이제는 쓸모 있다. 감옥에서 낳은 아들과 같다고 하면서 바울의 애정을 표현. 그러나 주인이 빌레몬이니까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 이제는 종이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그게 가능한 얘기인가? 종에다가 악한 종인데... 5절의 표현을 보면, 빌레몬이 그만큼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골로새 교회가 빌레몬의 집에서 모였을 가능성도 크다. 그렇다면 빌레몬이 종을 대할 때 인간적으로 대했을 가능성이 크다. 바울이 그렇게 교회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손해를 끼치고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갔다. 그런 사람을 바울이 지금 종으로 생각하지 말고 사랑 받는 형제로 보라고 한다. 바울이 사람을 심리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원리주의자인가? 빌레몬이 그런 불평도 할 수 있지 않을까? 18절,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아마 바울이 안 할 줄 알고 썼을 가능성이 많다. ^^ 20절,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너는 이 외에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너도 오네시모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뜻. ^__________^ 바울은 김칫국. 2절, “확신함으로...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이런 내용을 보면, 빌레몬서는 오네시모를 받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기록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종과 주인의 관계를 말함으로써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체제 안에서의 질서를 중시하는...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바울은 노예제도를 넘어서고 있다. 기독교의 복음의 메시지를 교리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인 사례를 설명함으로써 그리스도안에서 서로를 형제로 받고 같이 교제하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어울릴 수 없는 종과 주인의 엄청난 차이가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라는 것, 그리고 잘못을 한 종이지만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었으니까 더 이상 문제시하지 않는 것... 이것이 복음의 정신이다. 이런 복음 때문에 죄인인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분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고, 과거에 잘못을 행했어도 뉘우쳤으면 더 이상 문제삼지 말고 동역자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출옥 이후의 사역(AD 62-64)
그러면 28장 그 이후에 바울이 어떻게 살았나? 많은 학자들은 바울이 4차 선교여행까지 했다고 본다. 스페인 선교까지 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디도가 목회하던 곳은 에게해에 있는 그레데섬.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그레데에 들렸다는 내용은 없다. 디도서를 보면 잠정적으로 디도가 목회하고 있다는 내용이 1:5에 나온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그 후 3:12을 보면,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과동하기로 작정하였노나”라고 했다. 이것은 다 4차 선교여행 때 일어난 일인 듯 하다.
1 Clement 5 - 뿐만 아니라 4차 선교여행은 성경에는 없지만, 클레멘트가 고린도에 보낸 편지에 보면 바울사도를 회상하는 부분이 보인다. “그가 서쪽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증언. 여기서 서쪽 끝은 아마 스페인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4차 선교여행 기간 중 쓴 것이 디도서와 디모데전서이다.
디도서 집필(고린도, 63-64) - 각 교회에 장로를 세우는 일을 디도에게 맡기고 어떤 장로를 세울 것인지를 말함. 특히 1:6부터는 장로의 자격... 편지를 보내서 그 일을 충실하게 잘 하기를 권면함. ** 목사도 장로인데, 목사도 이런 기준으로 세워지고 있나? 또 한가지 중요한 주제는 ‘선을 행하라’는 것. 지중해 연안에서 평이 나쁜 사람들이었어.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디도서의 아주 중요한 구절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예수님의 복음을 그레데 사람에게 맞게 적용한 부분이다. 이런 표현을 쓸 수밖에 없도록 그레데 사람들이 기질이 나빴다. 3장에도 ‘선한 일’이 자주 등장한다. 디도서의 주제어는 ‘선행, 선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디모데 전서 집필(63-64) -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쓴 편지. 또 다른 에베소서? ^.^ 디모데가 연소하지만 어떤 자세로 목회할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5절 이하는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를 말한다. 디모데전서 전체가 에베소 교회에서의 중요한 목회지침을 담고 있다.
재투옥
디모데 후서 집필(로마, 64-65) - 두 번째 로마 감옥에 갇혀서 쓴 편지. 이 때는 셋집의 상태가 아니라, 그야말로 전형적인 로마의 감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갑작스럽게 체포되어서 로마에 갇혔기 때문에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오라고 부르고 있다(4:9, 13, 21). 마지막 때의 인간적 쓸쓸함도 보인다. 물론 분명한 소망 가운데 있긴 하다(4:7, 17, 18). 특히 ‘고난’을 많이 언급한다(1:8, 2:3, 9). 의의 면류관은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예비된 것이다. 너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때 내가 바라는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니,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순교(AD 64-65)
딤후 4:6-8, 18;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2. 25.4-8 ‘바울은 로마에서 참수당했다’고 증언 - Acts of Paul(AD 200년 경의 것이기에 정확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제주도에 가면 박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만들어 놓았다. 그 때도 하얀 피가 흘렀다고 함. 당나라까지 경교가 들어 왔었으니까...
어쩌면 기독교인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바울의 스토리를 갖다 붙인 것 아닐까? ^^
지상에서는 자신이 수고한 것에 아무 것도 대가를 받은 것이 없다. 정말 복음을 증거한 것 때문에 인간적으로 낙을 누린 것이 없다. 어디가든지 굶고 힘들게 살다가 목이 잘려서 죽는, 인간적으로는 비참하게 끝났다. 과연 이런 삶이 복되다고 할 수 있나? 만약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면, 그리고 결국 남는 것은 감옥에 갇혀 고난 받다가 목이 잘려 죽는다면 그래도 이 길을 갈 수 있겠는가? 정말 이런 길을 가는 것이 복음전도자의 길이라면 누가 여러분과 결혼을 하려고 할까? 바울은 세상에서 약속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꺼이 하나님께서 주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면서 죽을 수가 있었다. 어떻게 그가 그렇게 죽으면서 만족하고 자신의 삶에 일점 후회가 없었을까? 저나 여러분이 여기까지 온 것은 바울이 붙들렸던 복음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한평생 변치 말라. “이런 거 안 해주나?” 그런 생각 하지 말라.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말라. 감사하는 마음을 끝까지 가지고 가라. 바울의 사역이나 삶 자체가 항상 우리에게 도전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참조. D. A. 카슨, 더글라스 j. 무, 레온 모리스, 『신약개론』, 노진준 역(서울: 은성, 1993), 260.
<5월 29일>
Ⅳ. 바울의 선교 메시지
1. 바울의 선교 메시지의 핵심 - “십자가의 복음”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내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에 사로잡힌 바울의 모습. 복음을 위해서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바치겠노라. 바울이 이렇게 헌신했던 복음은 바로 “십자가의 복음”이다. 더 푼다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1) “복음”(το ευαγγελιον)이란 무엇인가?
전문 용어가 된 이 용어는 원래 세속 헬라어에 있던 단어. 그것을 LXX에서, 신약에서 사용한 것.
① 그레꼬 로만(Greco-Roman) 배경
- 적대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알릴 때 이 단어를 사용했다. νικαω!
- 황제숭배 Imperial cult의 맥락에서 황태자가 탄생했다는 소식이 좋은 소식 곧 복음이었다. 황제 탄생의 비문에 “신의 생일은 온 세계에 있어서 신으로 말미암아 생겨날 즐거운 소식의 시작이다” 그 즐거운 소식이 ευαγγελιον이다. Caligula 황제가 태어났을 때, 그 시대를 구원과 행운의 시대가 선포된 시기로 봄.
- 황제의 즉위는 전통적으로 좋은 소식 곧 ευαγγελιον으로 알려졌다.
** 복음서 기자들은 진정한 황제로 태어나신 것 자체가 복음이요, 이분이 부활하심으로 온 세계에 즉위하신 것이 복음.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악한 세력에서 승리한 것이 복음이었으므로 이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② 구약 배경 : 이사야 52:7-10; 40:9-11
그런데 LXX에도 ευαγγελιξω, εθαγγελιξομαι이 나온다. 따라서 구약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다. 사 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고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포로의 때가 끝나면 회복의 때, 구원의 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자비롭고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해서 버림받아 하나님은 저들의 하나님 되심을 거절했었는데, 바벨론의 포로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 거기서 해방되어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 예수님의 첫 설교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 이제 포로의 상태, 절망의 시대가 끝나고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고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나님의 통치 시대가 왔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으로 임하셔서 통치하신다’라는 동사 형태를 명사로 바꾼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됨. 이런 이사야에게 예언된 내용이 좋은 소식. הרשׂב(베숄라) 이사야에 기록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신 분이 예수님이요, 그것을 이루신 것이 좋은 소식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복음이라는 것이다.
** 많은 학자들은 이 ①② 두 견해에 대해 both ~ and ~를 취한다.
** 그런데 바울이 말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 especially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 <그리스도> = <주 κυριος>
הוהי ⇒ ןודא → ינדא로 바꾸어 불렀는데, LXX는 이것을 κυριος로 번역했다.
사도들의 케리그마의 핵심 내용(행 2:36)
① 예수 죽음/부활
② 주, Χριστος
③ 죄사함
빌 2장의 찬송시에도 구약에서 ינדא라고 부르던 것을 κυριος라고 불렀다. 모두가 주로 인정하고 그 분 앞에 무릎꿇도록 하는 것이 바울의 선교.
2) 바울의 복음
① 내가 받은 복음, 내가 전한 복음(고전 15:1-4; 갈 1:11-12)
“나의 복음”이라고 표현. 내가 먼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한다. 사람에게 받은 것도,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
② “십자가의 도”(고전 1:23; 2:2)
(21) ejpeidh; ga;r ejn th'/ sofiva/ tou' qeou' oujk e[gnw oJ kovsmo" dia; th'" sofiva" to;n qeovn, eujdovkhsen oJ qeo;" dia; th'" mwriva" tou' khruvgmato" sw'sai tou;" pisteuvonta": (21) ejpeidh; ga;r ejn th'/ sofiva/ tou' qeou' oujk e[gnw oJ kovsmo" dia; th'" sofiva" to;n qeovn, eujdovkhsen oJ qeo;" dia; th'" mwriva" tou' khruvgmato" sw'sai tou;" pisteuvonta": (22) ejpeidh; kai; !Ioudai'oi shmei'a aijtou'sin kai; $Ellhne" sofivan zhtou'sin,v (23) hJmei'" de; khruvssomen Cristo;n ejstaurwmevnon, !Ioudaivoi" me;n skavndalon, e[qnesin de; mwrivan, (24) aujtoi'" de; toi'" klhtoi'", !Ioudaivoi" te kai; $Ellhsin, Cristo;n qeou' duvnamin kai; qeou' sofivan:
**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라는 복음 자체가
- 유대인들에게는 σκανδαλον(㉠ trap, ㉡ temptation of sin, ㉢ 사람들로 하여금 분개하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는 반대하게 만드는 것- 여기서는 ㉢의 의미)이다. 그러면 헬라인과 유대인은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데, 과연 무슨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따라서 그 당시의 상황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결국 mission impossible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는 ‘네모난 동그라미’와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도는 결코 죽으실 수 없으며, 게다가 나무에 달려 저주 가운데 죽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예수를 전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믿는 그리스도를 완전히 짓밟는 참람죄였다. 사 53장의 내용을 유대인들은 메시야와 연관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 고난받는 자신들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챤들의 사 53장 해석은 해석학의 ABC도 모르는 무식한 짓이라고 유대인 학자들은 생각한다. 예수님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 자신의 해석은 막 10:45에 나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직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렇게 예수님이 해석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베드로 자신도 ‘영광의 그리스도’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헛갈렸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꾸짖었음(επιτιμαω-επιτιμαω).
-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 헬라인들에게도 신의 개념은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 놈의 신은 nonsense같은 구원의 계획을 세웠는가? 전능하다는 신이 왜 자기 아들을 죽이는 어리석은 방법을 사용했는가? 그 방법 말고는 없나? 만일 그런 신이 있다면 왜 믿냐? 더군다나 로마 제국 상황에는 극악한 죄인을 처단하는 형벌인데, 그 사람이 어떻게 구원자가 되나?
-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 지혜라고 한다. 이것이 mission impossible을 가능하게 만든 바울의 확신이었다. 롬 1장에서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므로.
** 어떻게 확신했나?
- 자신의 체험, 자기가 바뀌었음. 거기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것이다. 절대 바뀔 수 없는 자신을 바꾸어놓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이 체험했던 것.
- 자기가 복음을 전했을 때, 헬라인에게 어리석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헬라인들이 받아들이고, 돌아오고,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그들 중에서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결국 믿는 자, 부름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다.
** 이런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사실 실제로 선교사역, 전도사역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럴 때 진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2천년 전에 십자가에 달린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인 예수라는 이스라엘 사람을 21세기의 부산 사람이 나의 구원자로 믿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와 있는 우리 각자는 말이 되어서 받아들였나? ‘나 자신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평생을 살겠다, 이것 때문에 내가 고난을 당하고 손해를 봐도 나의 남은 생애를 주를 바치는데 조금도 후회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고상한 것이다! ...’라고 고백하고 들어왔다. 어떻게 그렇게 결단할 수 있게 되었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지혜롭게 행하신 결과가 아닌가?
<6월 5일>
복음이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핵심이지 전부는 아니다. 예수를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주로 고백한다는 사실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의 세계관을 버리고 전혀 다른 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으로 나아간다. 기독교인들이 죄를 말할 때는 항상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한다. ‘예수를 믿으시오라’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창조, 인간의 타락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을 요청한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이것을 전파했다. 그러면 30년이 넘는 바울의 사역이 성공적이었나? 적어도 그가 살던 당대에는 굉장한 복음의 진보를 이루었다. 매우 중요한 사역이었고, 성공적인 사역이었다. 그렇다면 그 비결은 무엇이었나? 복음 증거 시 바울이 가졌던 자세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3번으로 넘어감).
③ “무(無)할례”의 복음(Torah-free Gospel)
갈 2:15-16; 5:6; 롬 3:21-31; 엡 2:14-18; 3:6
2. 바울의 선교 설교
1)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행 13:16-41)
2) 아덴 아레오바고 설교(행 17:22-31; cf. 14:15-1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28절)
from th Cretan poet Epimenides(600 BC), Cretica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28절)
from th Cilician poet Aratus(315-240), Phaenomena
Cleanthes(331-233 BC), Hymn to Zeus
3) 데살로니가 설교(살전 1:9-10)
3. 설교의 자세
1) 말의 지혜로 아니함(고전 1:17; 2:1, 4. cf. 고후 10:10, 11:6)
고후 10:10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고후 11:6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Ιδιωτης τω λογω(말에 관해서는 충분하게 훈련받지 못한 아마추어) 1세기 당시에는 교육에 수사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상대적으로 설교가 약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2)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고전 2:4)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그것의 진정한 능력은 웅변술에 달려있지 않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에 있다고 보았다. εν αποδειζει πνευματος και δθναμεως(정확한 번역은, ‘성령과 능력의 시위, 입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구하기보다는 설교 원고 구성하고 매끄럽게 하는데 더 신경 쓰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자. 적어도 바울의 태도나 자세는 더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을 더 의지했다. 복음 선포의 결과라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시고 일하실 때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알아야...
Ⅴ. 바울 선교의 목적
1. 로마서 15:16-21
16절 :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
→ 선교사로서의 자기의 identity를 제사장으로 생각한다.
18절 :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1:5; 16;26)
2. 골로새서 1:28-29
1) 그리스도를 전파함
2) 각 사람을 권하고 가르침(cf. 행 20:31)
3)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
... o]n h`mei/j katagge,llomen nouqetou/ntej pa,nta a;nqrwpon
kai. dida,skontej pa,nta a;nqrwpon evn pa,sh| sofi,a|(
i[na parasth,swmen pa,nta a;nqrwpon te,leion evn Cristw/|\
parasth,swmen은 롬 12:1 산 제물... ‘드려라’, ‘세운다’와 관련 있는 단어.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르쳐 권고하고 각 사람이 온전한 자가 되도록... 똑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으니,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도록 각 사람을 세워나가는 것. 이것을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성도 수가 많아진다고 해서
Ⅵ. 바울의 선교 방법
1. 지역 중심 선교
롬 15:19
“...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Illyricum)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일루리곤 : 로마 제국 마케도니아의 북부지방. 지금의 알바니아와 유고슬라비아에 해당되는 지역
2. 지역의 중심인 대도시 선교
거기에 세워둔 교회들이 바울을 이어서 선교를 함으로써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로 시골에...
안디옥(행 11:26; 13:1)
빌립보(16:11-40)
아덴(17:16-34)
고린도(18:1-17)
에베소(19:1-41)
로마(23:11; 롬 1:15)
3. 유대인과 개종자 우선 선교
회당(행 13:14; 14:1; 17:1, 10, 17; 18:4; 19:8)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이미 회당에는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상당한 정도의 준비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복음을 전하기 좋은 바탕이다. 물론 반대도 클 수 있었지만. 결국 그들을 주축이 되어서 지역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장로들이 세워지고... 그런 것들이 가능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교회의 모판이 될 바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학적인 입장으로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하긴 했겠지만, 선교전략상 회당에서 먼저 전했다고 볼 수 있다.
시장(행 17:17)
아덴에 들어갔는데, 회당이 없었던 것 같다. 마침내 아레오바고까지 가서 설교를 함. 아레오바고 설교는 실패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아레오바고 이후에 옮겨간 곳은 고린도였다. 그런데 고전 1장에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왜 바울이 그렇게 얘기하는가를 설명하면서 아레오바고 설교 시 십자가 설교를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설득을 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아레오바고 설교에는 십자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너희가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라고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방 시인들의 시를 인용한다. 에피메니데스와 아라투스의 시(“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등... 어찌보면 상당히 지적인 설교이다. 그들의 종교성을 칭찬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시를 인용해... 그리고 설교 후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아레오바고 설교는 이방인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설교한 것이다. 그에 비해 행 13장의 비시디아 안디옥의 설교는 구구절절 구약성경을 인용한다. 바울은 청중은 누구인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설교를 했다. 바울의 선교 원칙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자로, 없는 자들에게는 없는 자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런 원칙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타문화권에 들어가서는 그들과의 접촉점을 찾아야 한다.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먼저 저들을 칭찬함으로써 관심을 끌고, 저들의 언어로... 그런데 십자가 얘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아는가? 누가는 요약의 형태로 기록했다. 누가는 여기서 단지 부활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꼭 설교 때마다 십자가를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결과에 있어서도 믿은 사람들이 있다. 관원 디오누시오, 다마리 등... 그리고 얘기를 더 듣기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상당한 결과이다.
두란노(Tyrannus) 서원(행 19:9)
철학자 또는 수사학자였던 두란노가 정기적으로 사용했던 학교였을 것이다. 강의는 대개 시원한 오전 시간에 이루어졌다. 어떤 사본에서는 바울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강론을 했다고 기록되어있다.
4. 동역하는 선교
1) 바나바, 마가
2) 실라(행 15:32), 헬라인 디도(갈 2:3), 디모데(행 16:3)
3)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4) 두기고
5) 더디오
6) 에바브라디도(빌 2:25-30), 에바브로(골 1:7)
7) 가이오(롬 16:23), 빌레몬(골로새의 신자)
8) 로마서 16장(35명) - 우리는 태반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각 교회에 충성하고 있었다. 우리는 기둥과 같은 사도들만 기억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만의 수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을 헌신적으로 돕고 목숨까지 내 놓았던 많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잘 협력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5. 자급자족하는 선교(행 20:34; 살전 2:9; 살후 3:8)
1) 자급자족의 방법 : 천막 만들기
(a) 천막 짓는 장인(σκηνοποιος), 바울(Paul the tentmaker)
행 18:3; 살전 2:9 cf. 살후 3:8; 고전 4:12; 행 20:35
로날드 호크는 천막 짓기가 바울의 삶에서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중심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바울은 천막지기였다. 그는 천막을 만들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인생에서 상당 기간 동안 그는 작업장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노예 같이, 그리고 노예들과 함께 일하였다”(Ronald F. Hock, The social Context of Paul's Ministry: Tentmaking and Apostleship [Philadelphia: Fortress, 1980], 67). → ‘바울 선교의 사회적 상황’이라는 책으로 번역됨.
"His lifestyle was characterized by both work and preaching"(Paul Barnett, 1993: 926)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종일 일하고, 오히려 틈나는 대로 복음을 전했을 가능성이 많다(행 20:34-38). 바울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한 말씀을 실천하고 살았다.
(b) 랍비와 노동
언제 배웠을까? 가업 자체가 천막을 짓는 것이었을 가능성. 또는 랍비 훈련을 할 때 천막을 짓는 것을 다른 직업으로 배웠을 가능성.
랍비 사독(Zadok): “... 토라(Torah)의 말씀으로 자기를 위해 이익을 얻으려는 자는 스스로 파멸을 자초한다.” → 예전에 이스라엘 선생들은 학비를 받지 않고 자기가 일해서 먹고 살았다.
랍비 가말리엘 3세(Gamaleil Ⅲ): "토라 연구와 세속 직업을 함께 갖는 것은 탁월한 일이다. 왜냐하면 노동은 사람의 마음에서 죄를 몰아내기 때문이다. 노동을 함께 하지 않는 모든 토라 연구를 궁극적으로 무익하고 죄의 원인이 될 것이다.“
2) 노동을 하면서 자급자족한 이유
(a) 복음을 위함(고전 9:7-12; 살전 2:9)
사례를 받는 것이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고” 그 권한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사례를 받지 않으면 복음 전하는데 도움이 되나? 복음을 처음 전했을 때 가난한 성도들이 모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모인 가운데서 오히려 그가 벌어서 도와줌으로써 재정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고 그들이 복음 전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b) 본을 보이려함(살후 3:7-9; 행 20:34-35)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으니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람들이 생겨나자, 그들에게 본을 보여줌. 스스로 수고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라고...
3) 교회의 지원에 대한 바울의 자세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지원과 마게도냐 여러 교회들의 도움을 받긴 했다. 그러나 그의 원칙은 자비량하는 것이었다.
(a) 고전 9:12 그런데 바울의 경우에는 받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b) 물질을 구하지 않음
고후 12:14
빌 4:10-20 ‘내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다’
고후 2:17
ouv ga,r evsmen w`j oi` polloi. kaphleu,ontej to.n lo,gon tou/ qeou/(
avllV w`j evx eivlikrinei,aj(
avllV w`j evk qeou/ kate,nanti qeou/ evn Cristw/| lalou/men...
"For we are not peddlers of God's word like so many;
but in Christ we speak as persons of sincerity,
as persons sent from God and standing in his presence."(NRSV)
(c) 고전 9:11, 14; 갈 6:6
Ⅶ. 바울 선교의 특징
1. 교회를 설립함(Allen, 1962: 121)
항상 교회를 세우는 것이고, 그 교회를 통해서 성도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
2. 교회를 자립하게 함
1) 개종자 교육
2) 지도자를 세움(행 14:23; 20:28. Allen, 1962: 197-98)
항상 그 교회 안에서 장로들을 세움. 때로는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는 자기의 사람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그 교회 자체에서 지도자를 세웠다.
3. 설립한 교회를 지속적으로 양육함 - ‘나 몰라라’ 하지 않음.
1) 일꾼 파송
2) 방문
3) 서신서 보내기 - 내가 너희를 늘 기억하며 기도하노라...
Ⅷ. 선교사 바울의 자세
1. 복음과 함께 목숨을(살전 2:8; 고후 12:15)
보통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지 않고, 자기의 사역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경우를 본다. 자기 목회의 야심을 위해서 사는 것은 금물이다. 정말 목회자로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는 일을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목숨까지도 내어줄 만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바울의 자세였다. “너희들이 내 자랑이고, 내 면류관이다”라고 함.
2. 아비와 어미의 자세로(살후 2:7, 11; 고전 4:14-15; 갈 4:19)
3. 종의 자세로(고전 9:19)
마치는 말
1. 선교사(목회자)의 영원한 모범, 바울
2. 나를 본 받으라(빌 3:17; 4:9; 고전 4:16; 11:1)
3. 무엇을 배우고 본받을 것인가?
(1)
(2)
(3)
(4)
▶ 학기말 시험 ◀
바울의 선교와 사역을 생각하면서 무엇을 배웠고, 앞으로 바울의 생애 중 어떤 원리를 가지고 사역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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