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바울에 대한 소고
- 종말론을 중심으로-
백 유 현
제 1 장 서 론
흔히 ‘바울과 예수’라는 주제는 수십년 동안 신약 신학자들의 의제 역할을 해왔다. 그 결과 기독교 역사와 사상 가운데 가장 우뚝 솟아 있는 두 인물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형성되었다. 예수님은 후대에 세워질 기독교 교회를 위해 친히 사역하시고 돌아가신 설립자, 창설자였다. 이해 반해 바울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기독교 교회의 재섭립자이며 가장 위대한 신학자였다. 그러므로 예수와 바울은 기독교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중심인물로서 예수와 바울의 관계에서 과연 바울은 자기의 신학을 전개함에 있어서 12사도가 아닌 바울이 4복음서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신학사상으로 바울 서신을 독자적으로 기록했는가와 만약에 영향을 받았다면, 예수 신학에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점으로 모아진다.
바울서신들이 신약에서 가장 먼저 쓰여졌음에 불구하고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메세지와 인격은 바울의 서신이나 바울의 신학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울신학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메세지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복음서가 단순히 예수의 전기나 혹은 예수의 메세지만을 기계적으로 옮겨 적은 역사적 전기 문헌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복음서가 궁극적으로 복음서 저자나 혹은 초대 교회의 신앙적 전유물이라고 보지 않는다. 복음서가 분명히 초대교회나 복음서 저자의 신학을 갖고 있음에 불구하고 그들의 신학은 역사적 예수의 몌시지와 그분의 인격과 사역에 확고한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복음서와 역사적 예수와의 연속선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본 소고에서는 바울의 종말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히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메세지를 중심으로 예수의 종말사상을 살펴보아야 되며 예수의 종말사상 안에서 종말론사상을 전개한 바울 신학사상은 예수의 종말사상과 서로 같다는 점을 밝히는데 있다.
제 2 장 예수의 종말론 사상
우리가 신약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종말관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복음서를 중심으로 예수 자신이 종말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종말론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의 종말사상에 관한 깊은 이해가 선결적으로 요구된다. 예수 자신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예수의 주된 청중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서 뿐 만 아니라 종말에 대한 예수의 교훈 자체가 당시 유대인들의 종말언어와 구조를 통하여 형성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의 종말론을 붙잡기 위해서는 당시 유대 묵시문학과 세계관에 돌아가서 그 문맥에서 살펴보고나서 예수의 종말론을 살펴보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된다.
제 1 절 예수 당시 유대인들의 종말 사상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고대의 그 어떤 민족들의 것과는 다른 독특한 종말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종말 사상이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전세계와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종국적인 목적과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종말사상이다. 이는 하나님에 하여 시작이 있었으며 하나님에 종말론적인 완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종말론적인 완성을 향하여 계속 나아가고 있는 현 세계의 역사를 ‘이 세상’ 혹은 ‘현 세상’으로 표현하고, 반면에 궁국적인 완성이후의 역사를 ‘저 세상’ 혹은 ‘오는 세상’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오는 세상으로 전환되는 단계를 ‘주의 날’ 혹은 ‘메시야 시대’의 도래로 간주했고 그리고 이 날에 즈음하여 전세계사적인 종말론적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였다. 유대인들은 이 현 세상은 궁극적으로 사탄과 그 추종세력에 지배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의인들, 곧 율법을 따라 살기을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는 세상이 올 때까지 잠정적으로 핍박과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사탄과 그 추종세력들이 다 격파를 당하고 메시아가 지배하며 의인 곧 경건한 유대인들이 축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들은 현 세상에서 오는 세상으로 전환되는 것은 진화론적인 과정이나 혹은 이 세상 자체의 혁명적인 과정을 통하여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의 주재자이신 하나님 자신의 특별한 역사적 개입,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 자신의 특별한 대리자인 메시아의 오심과 그의 사역을 통하여 전환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대리자는 ‘메시야’로서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때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때로는 ‘인자’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제 2 절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종말론 사상
1. 종말론의 구조
위에서 살펴본 유대 종말 사상이 팽배해 있는 유대 사회에서 예수가 출생하시고 성장하시고 그 자신 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종말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고 있던 자들을 그의 제자로 부르시고, 그리고 종말사상의 영향 아래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예수께서 기르치셨다면 예수의 종말사상과 당시 유대인들의 종말사상 사이에는 분명히 어떤 공통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시 유대인들에게 배척당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이해 할 수 없었던 독특한 종말론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양자 사이에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서로 다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공관복음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메세지의 중심 테마이다. 그런데 예수의 종말사상과 관련하여 복음서에서 발견하는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하나님의 나라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막1:14-15)라는 선언이다. 만일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올 것이다’ 라든지, 혹은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에 어느날에 올 것이다’라고 선언하셨다면,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미래에 도달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그러한 기대감 속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에 온다는 사실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라고 선언하였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그 종말의 시간, ‘현 세상’에서 ‘오는 세상’으로 전환되어지는 그 결정적인 시간이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현재의 시간을 오는 미래의 시간으로 바꾸는 그날에 이미 왔다라는 것이다. 오는 세상이 이미 현 세상에 미래에 올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의 시간 속에 의미 침투하였다는 것이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현재의 시간이 이미 종말의 시간이 되는 위대한 역사의 전환이 하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던 바 곧 장차 자신의 왕권을 세상에 나타내시겠다고 하신 그 말씀에 예수님오심과 그의 사역안에 이미 성취 되었다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미래적인 종말사상에 젖어있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으며 종말이 이미 현세계 안에 침투하였으며, 오는 세상이 이미 현세계 안에 침투하였다는 독특한 선언을 하셨다는 점을 부정 할 수가 없다.
예수의 독특한 선언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라는 것은 이 세상이 이제는 현 세상이 끝이나고 오는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선언이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그 종말이 이미 왔다라는 선언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유대인들의 종말관에 비추어 볼때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종말론적인 사건들이 일어나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여러가지 종말론적인 사건이란, 메시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괴롭게했던 모든 이방 세력들의 격퇴와 예루살렘과 성전의 회복,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지 귀환, 성지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민족 중심의 메시야 왕국 건설등이다. 이런 사건들이 이루어질 때 만이 오는 세상 곧 종말이 도래한 것으로 이해 될 수 있었지만 예수는 이러한 현상들의 아직 구체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아직도 현세상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세계 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종말론에 있어서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 세상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함께 공존하는 시대가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두가지 큰 모멘트를 가지는데 역사 안의 성취와 역사 말의 완성이다.
예수께서는 한편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 도래를 선포하면서, 또 한편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기 때문에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에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 오심에 관하여는 예수께서 자신의 메시야직 인격과 그의 독특한 사역 근거를 두고 말씀하신 반면에,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가 내림에 관하여는 그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과 관련을 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의 오심이 그 자신의 수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 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일어날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자신이 수난, 죽음, 부활등의 사건을 미래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결정적인 계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당시 유대인들의 종말 사상에 비추어 볼 때 독특한 점이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저자들 중 특히 사도 바울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하나님의 위대한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해석하기 전에 즉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전 인류를 대표하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전 인류가 그들의 죄 때문에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인 종말론적인 죽음을 대신하는 종말론적인 죽음이며 예수의 부활이 예수 개인의 부활이 아니라 모든 구속받은 성도들의 역사의 마지막에 누리게 될 그 종말론적 부활을 대변하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기 전에, 이미 예수 자신이 구약에 나타난 고난의 메시야 사상과 관련하여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우연적인 개인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전 인류에게 영향을 즉 전 인류역사에 영향을 주는 다시 말해서 현 세상을 오는 세상으로, 전 인류의 역사를 종말의 역사로 전환시키는 위대한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의 종말론적 교훈에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사실은 전 인류와 전 우주의 종말론적인 완성은 예수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두고 있을지라도 전 인류와 전 세계와 전 우주에 종말의 실재와 종말의 역사는 예수의 재림 전에 이미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종말론적인 사건의 역사의 마지막 전세계와 우주의 궁극적인 끝에 가서 비로소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미래적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적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사건 직후부터 전 인류와 전 세계와 전 우주에 종말의 실재를 이미 가능하게 하는 현재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불러워지는것은 그것이 미래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현재적인 의미에서라는 점이다. 종말이란 이 세상 끝에 가서 비로서 이루어지는 미래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앞당겨져 일어난 종말론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미 앞당겨져 개인적으로 세계사적으로 현재화 되었다는 점이다.
예수의 종말론의 구조에 관하여 지금까지 말한 교훈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결국 종말에 관하여 3중적인 차원을 말씀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이전까지 그 자신의 메시야적 자아계시와 그의 메시야적 사역,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과 약속된 메시야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계시하고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자를 살리는 그의 인격과 사역을 통하여 이미 이스라엘 민족에게 미치는 종말론적인 나라와 둘째,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후 예수께서 친히 높아지신 부활의 주님이 되셔서 성령님을 파송하여 그의 구원역사와 왕권을 온 세상에 나타내심으로 현 세계 안에서 이루어져가는 영광스러운 종말론적인 나라와 마지막 셋째, 세상 끝날에 예수님께서 인자의 영광을 가지고 심판주로 오셔서 완성하게되는 영원한 종말론적인 나라이다. 이와같은 예수의 종말론의 교훈들에 관한 이해를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이와같은 예수의 종말사상이 초대교회와 바울을 위시하여 신약저자들의 종말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바로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바울의 종말론의 핵심을 이해하게 된다.
2. 개인의 종말론
예수는 개인의 종말 문제를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와 종말론 관점에서 언급하셨다. 신약은 하데스와 중간상태와 게헨나를 명확히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하데스는 구약의 스올과 같은데 여기에 대해 예수는 별다른 언급을 하시지 않았다. 예수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눅16:19-31) 사후의 문제를 밝히고 있는데, 이것을 여자적으로 해석해야 될는지 교훈적으로 해석해야 될는지는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십자기상의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니라’(눅23:43)고 약속하신 말씀은 의롭게 죽은 자는 사후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됨을 밝혀준다.
부활 문제에 대해서는 예수 자신이 죽은 자를 여러번 살리심으로 메시야 시대의 부활을 암시하였고, 또 예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강조하셨다(요11:25).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부활에 대한 교훈은 미래의 객관적인 종말론적 사건과 현재의 영적 실재 두 사건을 말하고 있다. 양자는 모두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기인한다.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가 육체의 죽음을 당할지라도 다시 살 것이며, 그를 믿음으로 현재의 영적 생명을 소유한 자는 누구든지 또한 장래의 불변적 존재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요5:25, 26, 6:39, 44, 54).
그리고 요한복음에서의 영생과 부활은 현재와 미래 양면을 다 포함하고 있다. 미래의 종말론적 심판에 대해서는 요14:48에 잘 나타나 있다. 미래의 심판은 본질적으로 현재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인간의 믿음에 관계 되어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 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는 것이라’. 이처럼 그리스도를 통한 현재의 심판은 미래의 심판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으며 후자는 전자에 기준하고 동시에 후자는 전자의 완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제 3 장 바울의 종말론의 사상
바울의 종말론은 그리스도 중심의 종말론이다. 그리고 바울의 종말론에 있어서 참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요소는, 바울이 비록 그 자신에서 그 신학, 즉 종말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여러가지 전통적인 술어와 사상을 사용하고 있다 할찌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바울 동시대의 유대적 종말론적 기대의 모든 제 형식들과는 구분이 되어지는 완전히 독립된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그 점에 있다. 이것은 말할 나위 없이 바울의 종말론이 어떤 전통적인 도식에 의해 결정되어지지 않고 예수 안에 나타난 종말론을 토대로한 종말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종말론에 있어서 결정적인 기독론적 특성이다.
제 1 절 바울의 종말론 사상의 구조
바울 신학의 전체적 사상 구조를 살펴보면, 이 시대와 오는 시대의 종말론적 이원론으로 되어 있다. 이 사상은 바울 자신이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1세기경 유대교 내에 이 사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공관복음에서도 이 사상이 예수의 교훈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을 볼 수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을 현세적인 이원론에 근본적인 수정을 단행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아왔다. 하나님이 예수의 역사적인 사역을 통해 이루어 놓으신 일을 인하여 이 두 세대 사이의 구별은 완전 하지가 않다. 반면에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을 통하여 인간에게 주신 구속적인 축복사건 즉 종말론적 사건으로 보았다. 이 사실은 바울의 종말론이 그의 전체적인 신학사상과 분리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 즉 이 세 사건들은 이미 역사 안에서 전개되고 있는 구속사적 사건으로 미래성과 현재성 양면을 가진다고 한다. 예수의 죽음심을 통해 신자는 이미 종말론적 심판 아래 놓여 이 악한 현세로부터 해방되고(갈1:4), 어둠의 세력을 벗어나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졌다(골1:13).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신자는 역사의 마지막에 있는 부활을 현재에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종말론적 부활의 시작인 동시에 첫 열매이다. 따라서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의미있는 말로 자주 표현하였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죽음과 심판 및 부활을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신자는 여전히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삶은 오직 성령의 계속적인 도우심(牽引)을 통해서 유지 될 수 있다. 여기서 신자는 비록 그가 그리스도를 통해 현재 여기서 종말론적 구원을 일부 체험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종말에 있는 완전한 구원을 또한 대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신자는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긴장된 상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제 2 절 바울의 개인 종말론 사상
1. 중간 상태
바울의 종말론 교훈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해서 이다. 죽음과 부활의 중간상태에 대해서는 고후5:1-10에 약간 임시하고 있을 뿐 이것도 해석상에 많은 문제가 있다. 바울은 그리이스 철학의 영혼불별설에 대조해서 마지막 날 부활을 특히 강조한다. 마지막 날 부활한 몸은 단순히 죽기 전의 몸의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하늘에서 오는 신령한 몸이다. 바울은 중간상태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가하는 중간 상태에서의 인간의 존재양식에 대해서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중간상태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암시를 줄 뿐이다(빌1:23). 이것은 예수께서 죽어가는 강도에게 말씀하신 그 이상의 해석은 아니다(눅23:43).
R. H. Charles를 위시한 여러 학자들이 신자가 죽는 순간 즉시 불변의 몸을 소유한다고 주장하나 여기에 대한 확실한 성경적 증거가 없다. 오히려 이러한 견해는 마지막 날 부활의 몸에 대한 사상을 약화시킨다. Oscar Cullmann은 중간 상태 즉 죽음과 부활사이의 영혼은 잠자는 상태라고 말하고있다. 최근 학자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바울도 종종 죽은 상태를 자는 것으로 말한 것은 사실이다(살전4:13, 고전15:10등). 그러나 잠자는 것은 그리이스나 히브리 문학에서 죽음에 대한 일반적 용어이기 때문에 바울은 이런 영향 속에서 문학적 표현으로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표현하였으므로 특별히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잘못 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재림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다양한 표현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역상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을 찾아 오시는 최후의 구속사적 방문이다. 이 방문을 통해 하나님은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로 각각 구분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영원한 저주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혹은 어쩌면 에배소서까지 제외한 바울의 모든 서신서들 가운데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언급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독교 복음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기 위해 3가지 특징있는 용어 즉 ‘파루시아’(παρουσια), ‘아포칼립시스’(αποκαλυψιs), ‘에피파네이아’(επιπανεια)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을 G. E. Ladd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파루시아(παρουσια)는 ‘임재’(빌2:2), ‘도착’(고전16:17, 고후7:7)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특별히 왕이나 황제들의 지방방문 등, 고위계층들이 방문하는 의미로 사용된 전문 용어이다. 이와같이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에(마24:3)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고전15:23) 백성을 자신에게로 모이시고(살후2:1, 비교 마24:31) 악을 멸하기 위하여(살후2:8, 살전2:19, 3:13, 4:15, 5:23) 권능과 영광 중에(마24:27) 세상으로 다시 찾아오실 것이다.
아포칼립시스(αποκαλυψιs)는 ‘계시’(드러내는) 혹은, ‘노출’을 뜻한다. 부활 승천한(승귀)그리스도께서는 높아지신 주(主)로서(빌2:9) 지금 왕으로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고 계신다(고전15:25). 그러나 그의 왕권과 주권은 지금 세상에 완전히 드러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왕권과 주권은 때가 될 때, 즉 그의 재림 때에 완전히 드러나고 효과를 발하게 될 것이다(살후1:7, 고전1:7). 그 때에는 모든 자들이 무릎을 그 앞에 꿇을 것이며 모든 입술이 그의 주(主)됨을 고백할 것이다(빌2:10,11).
에피파네이아(επιφανεια)는 ‘나타냄’을 뚯하는데, 그리스도의 재림의 가견성(可見性)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주로 목회서신에 한정되어 사용되기는 하지만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그 입김으로 말미암아 불법의 사람을 죽이시고 파루시아 에피파네이아(by the parousia of epiphaneia)통하여 그를 폐하시리라고 말한다(살후2:8). 그리스도의 재림은 비밀이거나 숨겨진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역사 안에 침투하는 가시적인 것이다.
바울은 재림의 시기가 언제이냐 하는 문제에서 언제나 예수의 말씀을 반복하여 답변하고 있다. 즉 그날은 전혀 예상치 못한 시기에 ‘밤에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고 말한다(마24:43, 눅12:39, 살전5:1ff).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요청되는 바 그들은 ‘깨어 근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바울의 교훈이나 사복음서에서 말씀하시는 예수의 교훈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양자가 한결같이 역사 안에 영광스럽게 임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적이고 역사적인 재림을 강조한다. 그리스도가 재림함으로 하나님의 모든 구속경륜은 마지막 완성에 접어들 것이다.
3. 부활과 심판
바울은 신약의 어떤 저자보다도 부활에 대해 많이 취급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죽은 자가 부활이 없다(고전15:12)고 주장하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답변할 때 이 문제에 있어서 아주 큰 공헌을 하였다. 구원은 항상 전인격적이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의 몸의 부활을 거듭 강조했다.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당시 그리이스 철학의 영향 아래 있는 고린도 교회들에게 이 사실을 명확히 밝혔다. 그러나 그는 부활한 몸의 성질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다만 부활한 몸은 영광스럽고 불변적인 것 만을 밝혔다. 또한 그는 신자의 부활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밝혔다. 그리스도를 부활시킨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을 또한 부활케 할 것이다(고전6:14, 고후4:14) 실제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마지막 부활의 첫 행위이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은 종말론적 부활 추수의 첫 열매인 것이다(고전15:20). 신자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있게 될 것이다.
심판에 대해서는 롬2:5,16,13:2, 고전11:32, 고전4:5, 살후2:12, 딤후4:1 등에서 말하고 있으나 가장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곳은 로마서 2장이다.여기서 바울은 그 날에 하나님께서 각자의 행위를 따라 심판하시되(롬2:5),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롬2:7-8)하실 것을 밝힌다. 그리고 율법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유법으로 각각 심핀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심판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유대인이나 헬라이나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그들의 응답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인간에게 한편으로 구원을, 한편으로 심판을 가져다 주는 갈림길이다. 이 심판은 현재성과 미래성의 양면을 가진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마지막 완성은 죄와 악으로 혼란된 이 우주의 회복,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회복을 포함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재 회복을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다.
제 4 장 결 론
기독교의 모든 교리를 체계화한 인물은 사도 바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울이 그 자신의 신학을 전개함에 있어서 독자적인 사상에 의해 전개하기보다는 전승과 계시로 받는 신학인데, 이는 예수의 신학사상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의 종말론 사상이나 예수의 종말론 사상은 너무 비슷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예수의 종말론 사상은 예수 당시의 종말론과 예수의 종말론 사상과는 많은 공통점이 있으나 서로 다른 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종말 사상은 매우 독특한 형태의 종말론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묵시적 종말론 사상인데,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로부터 서서히 와서 성장하는 형태보다는 완전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성과 속이 확연하게 구별될 종말 그리고 성지 중심으로 이스라엘 민족 중심의 하나님의나라가 도래하는 사상이다. 그런데 예수는 이러한 현상들이 구체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아직도 현 세상의 상태가 유지되면서 현 세계 안에 하나님의 나라 안에 이미 도래하지만,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고 영광스럽게 강력하게 도래할 것을 선언하셨다. 다시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을 하나님의 나라 차원에서 현재적인 측면과 미래적인 측면을 말하면서 오순절 사건 이후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미래적인 종말론적인 나라가 이미 현재화(先取)되었으며, 주의 재림과 함께 주어질 그 완성을 여전히 기대하고 있는 종말을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예수의 종말론 사상은 초대교회와 바울을 위시하여 신약성경저자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바울의 종말론의 사상은 어떤 전통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예수 안에 나타난 종말론 사상을 토대로 한 종말론 사상이다. 바울 역시 예수와 같이 유대적 종말론의 형식들과는 구분이 되어지는 완전히 독립된 독특한 종말론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의 종말론은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의 종말론인데, 그 구조는 이 시대와 오는 시대의 종말론적 이원론으로 되었다. 그리고 이미와 아직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긴장된 상태 속에서 살아야 하는 종말론적인 성도의 삶을 있는 종말론 사상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종말론의 사상과 바울의 종말론의 사상은 서로 같은 구조 속에 있다. 이는 바울이 예수의 종말론의 사상을 토대로 그의 사상을 전개한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바울을 보면, 그는 예수의 철저한 종이었고 사도였다. 그리고 바울은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의 가르치심의 본의(本意)를 분명히 깨달았으며, 주의 본을 따라 외인에게 구원의 경륜을 선포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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